〈 218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정 회장도 그녀가 욕정을 참지 못해 그리한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두 사람은 아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영상에 탐닉했다.
"허허..."
너털웃음이 튀어나왔다.
아까와는 달랐다.
그의 목소리에 분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탄사에 가까웠다.
"하악! 학!"
"아아..."
태블릿에서는 영상과 함께 두 여자가 지르는 신음도 가감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신음이 흘러나오는 곳은 태블릿이 아니라, 앉아있는 하 과장에게서였다.
"허어..."
그리고 정 회장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탄식을 연신 내뱉는다.
"발기하셨네요."
하 과장이 정 회장이 입고 있던 가운 사이로 튀어나온 튼실한 물건을 알아차렸다.
"그래..."
정 회장이 힘없이 대답했다.
"죄송해요. 도와드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과 몸을 섞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하 과장이 예의 그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정 회장은 누구와의 약속인지 묻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대단하구만..."
다시 한참만에 정 회장이 회한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대단한 사람이에요."
하 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려 아랫도리를 만지며 대답했다.
"잘 되었네... 잘 되었어..."
"죄송해요."
"아니. 내가 미안하지. 자네 같이 이쁜 사람을... 그 젊은 시절을 나 같은 노친네와 보내게 하다니. 내가 죽익 놈이지. 지금이라도 잘 된 거야."
이미 정 회장의 목소리에서는 원한도 악의도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근데 카메라는 누가 들고 있는 거지? 남자가 하나 더 있는 건가?"
분노가 가라앉은 이제서야 누군가가 찍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 회장이 물었다.
"아뇨..."
하 과장은 지금까지 그 어느때보다 훨씬 더 곤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들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 저래서야 여자가 더 있어도 할 말이... 헉!"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이, 나은에게 카메라를 넘겨주고 화면으로 들어왔다.
그 얼굴을 확인한 정 회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유... 윤진이? 쟤가 왜?"
정 회장이 고개를 돌려 하 과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됐어요. 어쩌다보니."
"그... 그렇다면..."
정 회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다.
"안돼..."
다시 사라졌던 분노가 피어오르려는 모양이다.
"아니야! 윤진아! 그건..."
하지만 정 회장은 화면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그저 안 돼를 연신 내뱉으며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점차 그의 얼굴에서는 고개를 들었던 분노가 사라져갔다.
"허어... 허엉..."
정 회장에게 눈을 돌린 하 과장은 남자가 요상한 표정으로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어... 허어..."
남자의 표정은 슬픔이라기에도, 분노라기에도 어려웠다.
"어쩌면 그렇게도 행복해 하는 것이냐..."
정 회장의 얼굴에서는 점차 감정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다는 표정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 과장은 다시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내게 걱정마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정말로 그 남자가 이렇게 변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하기는 누가 그걸 믿을 수 있을까?
"허어... 허허... 이젠..."
정 회장은 이제는 거의 인자함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인정해버린 것이다.
자신이 결코 줄 수 없는 즐거움을 화면 속 그 남자는 자신의 정인에게,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아낌없이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남자의 시선이 여전히 발기중인 자신의 물건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순간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죄책감이라도 느낀 것은 아닌가 싶었다.
"허업!"
남자가 숨을 들이쉬었다.
"회장님?"
심상치 않다 느꼈는지, 하 과장이 정 회장을 불렀다.
"헛! 허업!"
회장은 다시 숨을 들이쉰다.
"컥!"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이 뻘개지며 옆으로 쓰러지고 만다.
"회장님!"
다시 한 번 남자를 부르고, 하 과장은 급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왜 그래요?"
나은이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윤진의 부친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자신의 부친이 쓰러진 이유가 그 동영상 때문이라는 사실을 윤진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물론 하 과장이 함구하고 있으면, 윤진이 알 수 있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때요? 조금 나아졌어요?"
그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윤진은 저 아래에서 윤진의 종아리에 올라타고 그녀의 오른발을 혀로 핥으며 물었다.
"좀 더 부드럽게 해봐."
나은은 방금전 하 과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것들을 윤진을 통해 실습하고 있었다.
나름 재미있게 놀고 있는 두 여자를 바라보며 난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 과장의 대응이 빨랐던 모양이다.
침대에 쓰러진 정 회장은 그리 오래지 않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바로 응급 처치에 들어갔고, 고비를 넘겼다며 VIP 병실로 옮겨졌다.
하 과장은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며 아직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정도라면 회장의 부인에게라도 연락을 취하는 것이 옳을 것인데, 하 과장의 입장은 다른 모양이다.
뭐. 나름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다시 한 시간 쯤 지나 정 회장이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하 과장은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고 병실로 들어갔다.
"아아아..."
이런.. 아직 제대로 회복이 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정 회장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어눌하게 하 과장을 불렀다.
"회장님..."
그 남자의 핼쑥한 모습을 보고 하 과장이 살짝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미운 남자라도 정은 남아있던 모양이다.
아까 정 회장의 태도를 보니, 그 남자가 하 과장을 어지간히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지 노리개로 쓰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결코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여러가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미안해요. 흑!"
하 과장이 눈물을 떨궜다.
정 회장은 하 과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자의 표정에선 그녀에 대한 어떤 원망도 찾아볼 수없었다.
오히려 애정이 가득하고, 인자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노환인 부친이 딸을 볼 때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하 과장은 그런 옛 연인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먹였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애정이 깃들어있었지만, 그건 남녀 사이의 정념과는 조금 달랐다.
"나한테 벌어진 일... 날 미워하시지 않는 거로군요?"
하 과장이 물었다.
정 회장은 푸근한 미소를 띄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진이도요?"
정 회장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 조금... 많이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죠?"
정 회장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름 많은 생각이 스쳐가는 모양이다.
정 회장은 손을 내밀었다.
하 과장도 손을 내밀어 떨리고 있는 정 회장의 손을 잡았다.
정 회장은 무언가 말을 하려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정 회장이 하 과장의 손 바닥에 손끝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거스르지 말라고요? 알아요. 그럴 생각 없어요. 예. 뭔지 모르지만... 무서운 면도 있고요..."
하 과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정 회장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음...
그런데 내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혹시 내가 무서워?"
내 팔을 배고 누워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나은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엄청 무서워요."
그녀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뭐가?"
"오빠가... 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저 아래에서 내 물건을 입에 넣고 신이나있던 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비슷한 모양이다.
하지만 하 과장이 말한 무서운 사람의 의미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필담을 나누었다.
역시 내가 걱정할 것은 없었다.
정 회장은 하 과장과 윤진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와 척을 질 생각은 없었다.
"빨리 나으세요. 이젠... 당신 곁에는 있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건강하셔야 해요."
하 과장에게 그 남자에 대한 애정이 있던 것은 확실했다.
그 남자가 자신의 연인을 불구로 만들었고, 자신을 억지로 강탈해 갔다는 과거를 생각하면 어쩐지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더라.
잠시 두 남녀는 한 때 애정을 지녔던 사람들로서 할 수 있는 진심을 내보였다.
그러다가 정 회장의 얼굴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시 하 과장의 손에 무언가 적었다.
"알았어요. 지금 허 변 부를게요. 걱정말고 좀 쉬세요."
하 과장은 그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해서 누군가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무언가 정 회장이 전부터 지시한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하 과장은 남자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 오라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전화기가 울렸다.
"응. 그래. 잘 되고 있어? 어? 그래? 잠깐만."
난 그녀가 겪은 일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대답을 하다가, 그녀가 말한대로 윤진을 바꿔주었다.
"응. 뭔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윤진은 귀찮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뭐? 아빠가? 지금 어디야? 알았어. 지금 갈게."
윤진이 허겁지겁 전화를 끊고 날 바라보았다.
"아빠. 아빠가..."
"무슨 일 있어?"
나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빠가 쓰러지셨대요. 나 가봐도 돼죠?"
"그걸 질문이라고 해? 빨리 가야지."
나은이 대답했지만, 윤진은 벌개진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그 사람한테 전화해서 같이가. 함께 안 가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리고 그 남자 똑똑하니까 무슨 일이건 잘 처리할 것이다.
아무래도 윤진은 조금 어린 대가 있어 보호자가 필요했다.
그런 역할로 오늘의 다른 주인공인 그 신랑이 아주 제격이다.
"그럼... 나 가볼게요."
윤진은 내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내 위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옷을 걸쳤다.
"차암... 무슨 일이래?"
나은이 걱정스래 말했다.
"저기. 오빠. 나 지금 또 하고 싶다고 하면 나쁜 년일까요?"
하지만 다른 여자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니, 다시 독점욕이 머리를 치켜든 모양이다.
"윤진이 부친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
나은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리고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그녀는 황급하게 내게 달려들었다.
윤진과 새신랑이 병원에 도착한 것은 30분 쯤 뒤의 일이었다.
윤진은 울먹이며 병상에 누워있던 부친의 손을 잡았고, 하 과장은 지금 벌어진 일과 앞으로의 일을 새신랑과 의논하고 있었다.
1시간쯤 뒤 정 회장의 부인이 병원에 도착했다.
하 과장이 그녀에게는 가장 늦게 연락한 때문이다.
"지금 상태가 어때?"
그녀는 고까운 얼굴로 하 과장에게 물었다.
"안정은 되었고, 회복중이십니다."
"알았어. 비켜봐."
"저.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꼭 지금 해야해?"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그래. 나중에 하자고."
"지금 허 변호사도 와 계십니다. 잠깐이면 되니 우선 말씀만 들어보세요."
정 회장의 부인은 무척이나 기분 나쁜 표정으로 하 과장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변호사와 함께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따라 어디론가 갔다.
"그래. 할 말이 뭐야?"
하 과장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놀랍게도 정 회장이 쓰러졌던 바로 그 호텔, 그리고 바로 그 방이었다.
새삼 그녀가 달리 보였다.
보통의 여자라면 비밀스러운 장소가 필요해도, 그 곳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방은 두 사람의 밀회를 위해 장기로 빌려놓은 곳인지도 모른다.
일부러 그런 걸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한데 회장의 부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는 못한 모습이다.
호텔 방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사내가 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그 허 변호사인 모양이다.
"이건 그전부터 회장님께서 지시하셨던 사항입니다."
대답을 한 것은 하 과장이 아니라 급하게 끌려온 변호사였다.
"뭔데요?"
"우선 이걸 보시지요."
변호사는 몇 장 되지 않는 서류를 꺼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