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7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217/377)



〈 217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이 끝나고, 저녁에는 이 호텔에서 피로연을 거행할 예정이라 했다.

저녁 늦게까지 거행될 피로연을 마치고, 내일 오전에 신혼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하아... 정신없는 하루에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나은이 훌훌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샤워기에 찬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물줄기를 맞으며 서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벌어진 일들에 대해 마음을 정리하는 모양이다.

오늘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 신랑과 신부가 아니라 그녀였다.

나와 함께 있는 내내 아무렇지 않은  행동하고 있었지만, 심적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복수가 끝난 뒤에 몰려오는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안아줄 수 있어요?  쉬고 싶어요."
한참만에 욕실을 나온 나은은 침대에 누으며 말했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나은은 눈을 감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옆에 누워 나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니 하 과장이 들어왔다.




"바쁜 건 다 끝났나?"

오늘 제일 바빴던 사람은 아마 하 과장이 아닐까 싶었다.

회장의 비서이면서 회장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다.

"아직 일이 있기는 하지만... 자택으로 옮기고 하는 일이라서... 아무래도 사모님이 좋아하시질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회장의 부인이 떠올랐다.
이제 5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젊은 시절은 꽤 미인이었겠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성격이 있어보였다.

윤진의 태도로 보아 그녀 또한 자신의 남편과 하 과장 사이를 눈치채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연히 남편의 정부가 집에 드나드는 것을 반기지야 않겠지.


남은 일은 밑의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는 못 있을 거 같아요. 회장님이 이따가 보자고 하셨어요."
하 과장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번에 둘만 있게 되면... 그동안은 이런 저런 핑계로..."
하 과장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회장이 육체 관계를 요구할 것이 틀림없다는 말이다.

"걱정하지 마. 이따가 이걸 가져가서 보여줘."
 그녀에게 스마트폰을 건내주었다.

"아까도 그렇고... 대체 뭘 하시는 거예요?"
하 과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궁금하면 같이 봐도 돼."

"지금봐도 돼요?"


"아니. 이따가 정 회장과 함께 봐."

"알았어요."
 과장은 여전히 자신의 정부를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지?"

"지금 회장님과 사모님이 자택으로 이동하시니까 아마 두 시간 정도요."

"충분하군."
하 과장은 내 말을 듣기 무섭게 옷을 벗어던졌다.

"꽤 달아있었네?"

"저도 여자니까요."
하 과장은 무척이나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만 빼놓고 그런 짓을 하시면 서운하다고요."
하 과장은 나은과 윤진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발랄한 태도로 내게 안겼다.

그건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녀도 여자였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은과 윤진이 있을 때의 그녀는 그저 여러 여자  하나였을 뿐이다.

더군다나 윤진은 그녀를 그저 사용인이나, 부친의 정부 정도로만 대했고, 나은은 더욱 심했다.


이렇게 둘만 있게 되니, 그녀도 다른 욕망이 솟아오르는 것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럼 남은 시간은 당신을 위해 사용하지."
하 과장이 기다렸다는  내게 입을 맞춰왔다.

"오늘은 지금까지 못했던 걸 해봐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려 내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과장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섹스는 아주 충분히 즐거웠다.


평소 다른 여자와 할 때에는 여자들이 금세 쾌락에 빠져버려 내가 지시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전부였지만, 하 과장은 삽입을 최대한 늦추고,  쾌락을 위해 집중했다.

 과장은 손과 입 그리고 몸의 온갖 부위를 동원해 날 즐겁게 해주고 나서야,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여러모로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점이 무척 많았다.

왠지 남자를 다룰  안다는 느낌이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녀의 삶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배울 게 많을  같아요. 언제 나한테 좀 가르쳐줘요."
 과장과 섹스를 하는 도중 깨어난 나은은 우리의 관계를 아주 감명 깊게 보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서슴지 않고, 하 과장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딱히 가르킬 거 까지야."
하 과장은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음에 같이 해봐요."
하 과장의 말에 눈을 반짝이고 있는 나은을 보니, 어쩐지 그녀들의 협공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머리를 치켜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진이 찾아왔다.

"피로연이 벌써 끝났을 리는 없고?"

"대충 자리에 앉아있다가 피곤하다고 하고 들어왔어요."

"그렇게 급하게  거는 없었잖아? 친구들이 서운해하지 않아?"
나은이 놀리듯 물었다.


"친구가 중요해요? 지금..."
윤진이 그렇게 말해놓고 고개를 돌렸다.

새 신부가 다른 남자에게 달려와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와 나은의 관계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나은의 변덕으로 어떤 괴롭힘을 당할  알  없다.


윤진은 여전히 나은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 빨리 벗고 올라와."
오늘 따라 나은은 윤진에게 관대했다.

아마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는데 가장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새신랑은?"
나은이 다시 미소를 띄우고 물었다.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  남자의 불행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그리고 난 그녀의 쾌감을 불쾌해할만큼 속이 좁은 남자가 아니다.



"사람들이랑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참 재미있어요. 꼭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거 같아요. 왜 그런 걸까요?"


"글쎄? 충격이 워낙 컸으니까 그런  아닐까?"


"맞아요. 사실 제 정신이라면 버틸 수 없었겠죠."

여자들은 신랑의 태도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녀들  그 누구도 그 남자에게 동정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하 과장이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모자란 것인지, 아니면 나와의 관계의 흔적을 지우기 아쉬운 것인지, 그녀는 씻지도 않고, 대충 옷을 걸쳤다.


"그럼 이따가 다시 올게요."
하 과장이 문을 나서자, 여자들은 자신의 몫이 늘어난 것을 즐거워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하 과장이 찾아간 곳은 결혼식이 열린 호텔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특급 호텔이었다.

많이 드나들어보았던지, 그녀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정 회장은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어. 오늘."
딸의 결혼식에 가장 수고를 한 사람이 하 과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모양인지, 그녀를 보자마자 바로 칭찬을 해준다.

"고생은요. 뭘."


"아니. 나도 알아. 그애 성격이 보통이 아니지? 요 일주일간 아주 얼굴이 반쪽이 된 거 같아."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어미라는 여자가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윤진이 저한테 딸이나 마찬가지에요."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미안하이. 내가 빨리 처리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이제 윤진이 결혼식도 끝났으니 슬슬 미뤄두었던 걸 해야겠어."


"꼭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과장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약속은 지켜야지. 그리고 너무 오래 미뤄두기도 했고."
그 말을 하는 순간 정 회장의 얼굴엔 아주 냉막한 기운이 흘렀다.


그러고보면 하 과장이 그를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고생 많았으니 가서 씻고 와."
정 회장의 눈엔 정욕이 깃들어있었다.


이제 환갑을 조금 넘었으니, 아직은 남자로서도 제구실을 할 능력이 되는 것 같다.

"그보다..."
 과장은 잠시 숨을 고른다.

아마 내가 시킨 일을 하려는 모양이다.

"말씀 드릴게 있어요."

"뭔가? 혹시 난처한 일인가?"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보여드릴  있어요."
하 과장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무척 어색했다.


"그래? 한  보여줘봐."
 회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말했다.

하 과장이 가방에서 내게 받은 태블릿을 꺼냈다.

그리고 정 회장의 곁으로  그의 옆에 앉아 태블릿을 켰다.


내가 알려주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 동영상을 플레이한다.


"이게 뭔가? 설마 이젠 내가 기력이 딸린다고 "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살색의 향연을 보고 정 회장은 씨익 웃는다.


"어?"
하지만 여자의 얼굴이 화면에 비춰지는 순간, 남자의 짧았던 웃음은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금... 지금  하자는 거지?"
정 회장은 분노를 참지 못한다.


"미안해요. 서운하시겠지만, 끝까지 봐 주세요."
하 과장은 여전히 불편한 얼굴로 자신이 등장하는 난잡한 동영상을 회장에게 들이밀었다.


"무슨 짓이야? 네가 왜?"
회장은 동영상을 한 번 보고, 하 과장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그렇게 번갈아가며 보며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발산하려 했다.


"다 보시고 나면 절 때려 죽이든,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 과장이 서글픈 표정으로 회장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을 본 회장의 얼굴에서 분노가 잠시 그쳤다.

"당신이 한 짓은 아니로군. 누가 시킨 건가?"
나이에 비해 명석한 남자였다.


뭐. 그정도 눈치는 있어야, 그정도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겠지.


"그것도 다 보시고 나면 말씀드릴게요."
 과장은 한결 같았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정 회장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하 과장이 들고 있는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에서는 시종일관 섹스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직 섹스, 그리고 섹스의 연속이다.


그리고 정 회장의 두 눈은 화면속 하 과장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하 과장의 얼굴은 여자가 보여줄  있는 가장 커다란 쾌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있었다.


"혹시... 약을 한 건가?"
 회장이 물었다.

지금 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그가 알고 있는 연인이 그에게 보여주었던 얼굴이 아니었던 탓이리라.


"아니요..."
하 과장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남자는 누구지?"
이번에는 무척이나 냉막한 음성이었다.


"최근에 알게된 사람입니다."


"그래..."
질문할 게 많은 것 같았지만, 정 회장은 묻지 않았다.

하 과장이 나중에 설명해준다는 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분노를 참기 위해 말을 삼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묵묵히 동영상을 지켜보았다.


"허허..."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 정 회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허어..."
웃음이라기보다는 탄식에 가까웠다.


"자네... 정말로... 정말로 좋아하고 있군...  사내를..."

하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 회장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무엇엔가 홀린 듯 그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어..."
그리고 그녀의 곁에 다른 한 여자가 나타나자 정 회장의 얼굴이 변했다.


"왜? 어째서? 자네...  남자의 여자도  되는 거야?"

남자가 두 여자를 상대로 마음껏 욕정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이번에도 하 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돌려  과장을 지켜보던 정 회장은 하 과장의 얼굴에 떠오른 욕정을 알아차렸다.

자신과 다른 여자가 함께 한 남자에게 성적으로 봉사하는 모습 보면서 다시 한 번 욕망에 빠져버린 연인의 표정을 바라보는  회장의 얼굴엔 오직 허탈한 심사만이 드러나고 있었다.

동영상은 계속 되었다.


나은과 섹스를 하고, 하 과장과 섹스를 하고, 두 여자에게 서로를 물고 빨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은의 몸안에 사정을 하고, 하 과장에게 그걸 핥아 먹으라 하는 모습을 보며, 정 회장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회장의 눈빛이 변한 것은.


 회장은 이제 더는 하 과장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빠진 것처럼 묵묵히 그 영상을 지켜본다.

"하아..."
그리고  과장이 나즈막히 숨을 내쉬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