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5화 〉@28. 당신의 결혼식. 어느 신부 대기실의 풍경 (215/377)



〈 215화 〉@28. 당신의 결혼식. 어느 신부 대기실의 풍경

그 끔찍한 장면을 바라보던 승준은 자신이 어째서 그 역겨운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나은과 윤진이 함께 행동했다.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와 신랑의  애인이라 생각할 수 있으랴?

나은이 입에서 그 괴물을 뺐다.

그러자 신부는 기다렸다는  그걸 잡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안돼... 왜?"
신랑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 말했지? 나 요즘 만나는 사람 있다고."
나은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신랑은 도대체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사람이야."
나은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옛 애인에게 설명해주었다.


"자기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 듣고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었어."

"선물이라고?"
너무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응.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자기한테 주는 것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더라.
원래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기보다 상대를  생각하기 마련이잖아.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받으면 좋아할 선물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이 사람을 만났어.
근데 이 사람 나한테 엄청난 기쁨을 주었거든. 태어나서 그렇게 즐거워보기는 처음이었어.
그래서 결심했어. 당신의 신부에게  기쁨을 나눠주기로.
당신한테 그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거 같았어."
나은은 자신이 한 행동을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그걸 말이라고..."
승준은 무언가 반박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반짝이는 나은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듯 그렇게 착하기만한 여자도 아니었고, 자신의 행복만을 빌어주고 있지도 않았다.




덫이다.
그것도 너무나 완벽한 덫이었다.


나은의 복수는 완벽했다.

지금  거지같은 상황보다 더 완벽하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있는 상황이 어디  있을까?



"이건... 아니잖아?"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어 항변해본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미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결혼식날 이러면...


그때 신부가 입에서 그걸 빼고, 신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굉장한 선물이었어. 자기야.  이런 경험 처음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기쁨을 느꼈으니까."

"허..."
다시 정신이 멍해진다.




두 여자가... 아니. 온 세상이 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나 행복해. 이런 경험 할 수 있어서. 자기도 내가 행복하니까 좋지?"
윤진의 얼굴에는  한 점의 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신랑의 의무잖아?"
나은이 한 마디 했다.

"자긴 내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내가 원하는 거 하나 밖에 없어. 주인님과 섹스 하는 거. 그게 다야."


여자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왜?

"물론 나 여전히 자기를 사랑해. 그러니까 결혼은 자기랑 할 거야. 하지만 섹스는 주인님하고만  거야. 괜찮지?"

"허..."


"내 선물이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나은이 더 없이 통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남자의 손을 잡고, 신부 대기실 한가운데에 놓인 신부 의자로 끌고 갔다.

남자가 신부 의자에 앉고, 나은은 손을 아래로 내려 스커트 안으로 넣더니 팬티를 벗었다.


나은이  큼직한 남자의 위로 앉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넓은 스커트 때문에 속은 보이지 않았지만, 승준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기한테는 조금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다시 신부가 말했다.


"그래도 이해해 줄 수 있지?"


신랑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걸 바라보던 신부가 성큼 성큼 신랑에게 다가갔다.


찰싹!
신부는 신랑의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

"정신차려. 이러고 있을 거야?"

고통이 컸던 모양이다.


승준은 가까스로 멀어져가던 정신을 잡을 수 있었다.




"뭘... 원하는 거야?"

"말했잖아. 가서 결혼식 준비 하라고."


"이러고도 결혼을 한다고?"
처음으로 남자는 신부에게 적대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와서 취소항까? 그러면 내 평판은 어떻게 되라고? 엄마 아빠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승준은 그녀가 어떤 여자였던지 기억이 났다.

그런 여자였다. 자기 자신만을 아는 여자.

승준과의 결혼도 사실은 그랬다.

그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었을 뿐이다.

"결혼식..."

"그래. 결혼식. 가서 준비  해. 이상한 표정 짓지 말고. 한 번 뿐인 결혼식인데 망치면  돼!"


"하하... 그럼 난 도대체 뭐가 되는데?"
정신이 들고 나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뭐긴 뭐야. 내 남편이지. 그리고 대양 건설 이사가 될 사람이기도 하고."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윤진과 결혼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그거였다.

출세.


그리고 윤진은 약속했다. 결혼식이 끝나면 부친의 회사 중 가장  매출을 올리는 대양 건설의 이사로 발령을 내줄 거라고.


이제 겨우 서른의 나이에 도급 순위 백위권 건설 회사의 이사라니.

윤진과 결혼해 사주의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자리였다.

아마 정년 퇴직때까지 개처럼 일을 해도 그 자리에 다가서리라는 보장은 없으리라.

승준은 영리한 남자였다.
좋은 학교를 나왔고, 일에 대한 열정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널렸다.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다다를 수 있는 한계는 명확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계기였다.

그리고 윤진과의 결혼은 그에게 충분한 동력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걸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승준은 고개를 들어 윤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신이  들어?"
윤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해. 알았지?"


순간이다.


우우웩!
그동안 몇 번이나 올라오려는 것을 참아왔었지만,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다행이랄까?
지난밤부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서인지 나온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쓴 물이 전부였다.




"지저분하게..."
윤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우우웁!"
다시 쏠리기 시작한다.

그순간 승준은 자신이 무엇에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도.


결혼식을 겨우  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이상황에서, 자신 앞에서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윤진에게 큰소리 한 번 못하고, 가당치 않은 출세를 머리에 두고 있는 자신이 역겨웠다.


"힘들어? 힘들어도 참아."
다시 윤진이 말을 이었다.

"다를 그렇게 살아. 힘들어도 참고 살아. 왜? 살아야하니까."
그리고 순간 승준은 깨달았다.


이 여자는 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뭘 위해서?"
신랑이 물었다.


"뭘 위해 이 결혼을 해야하는 거지?"
아직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결혼을 포기할 용기는 없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나한테는 당신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당신도 내가 필요하고."
윤진이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녀의 웃음 속에는 일종의 비웃음이 섞여있었다.


적어도 승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나 혼자서는 회사를 온건하게 물려받을  없어. 하지만 영리한 당신이 있다면 다르지."

그랬다.

윤진은 자신의 남동생과 부친의 후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었다.

그리고 회장은 승준의 능력을 꽤 인정하는 편이다.

아무 배경도 없는 승준을 귀한 딸의 배우자로 흔쾌히 인정할만큼 믿고 있기도 했다.

그러니 윤진에게 승준은 배우자로서 뿐 아니라, 경영의 동반자로서도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그녀의 말처럼 윤진에게도 승준과의 결혼은 필요했다.


물론 반드시라는 단어를 붙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는 내게 받을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하고. 안 그래?"

역시 맞는 말이다.


승준은 신분 상승의 기회를 놓칠  없었다.


만일 이 결혼이 이대로 취소된다면?

아마 예전으로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새롭게 커리어를 쌓는다?

그건 승준의 인생 계획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의례히 그러하듯, 승준은 자신의 손에 거의 들어왔던 그걸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결혼식 잘 하고, 앞으로 시키는 거  해주면 되. 자기는 영리하니까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지?"
윤진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승준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굴욕감.

저 정체 모를 남자에 대한 적개심.

무엇보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나은에 대한 분노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아직도 결정을  내리겠어? 그럼 좀 더 생각해봐. 결혼식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알아서 해. 응? 착하지?"
윤진은 마치 강아지를 어르듯 신랑의 뺨을 톡톡 치고 돌아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당연히 나은과 그 남자가 섹스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원래 자신의 자리인 멋진 의자 위에 앉아 섹스를 즐기는 두 사람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승준은 단 한 번도 눈에서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윤진의 행동은 이번에도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신부는 섹스에 열중인 나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대었다.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머리가 맑아진다.

승준은 자신의 현재의 여자와 과거의 여자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들이 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주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 멍한 순간은 전부 지나갔다.


 이상은 휘둘릴  없었다.


놀이는 이걸로 충분하다.


다시 원래의 명석한 자신으로 돌아간 승준은 자신이 윤진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것과 지불해야 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은 내려졌다.


결혼식을 포기함으로서 희생해야 할 것은 아주 잔뜩 있었다.

그에 비해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았다.

단지 지금의 굴욕을 참지 못해 결혼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식은 결행한다.




다음으로 협상이 필요한지, 비록 굴욕적이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을 따르는 것이 나은지도 고민해본다.

솔직히 말해 윤진은 믿을 수 없는 여자이다.


지금은 저 괴상한 남자에 빠져 있는 모습이지만, 언제 또 다른 남자로 갈아탈지  수 없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식이 끝난 뒤, 그녀가 어떤 변덕을 부릴지 알  없다.

어쩌면 신혼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쫓기듯 이혼하고, 회사에서도 쫓겨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확답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당연히 회사겠지.


남동생과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윤진으로서는 기필코 회사를 물려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그녀 곁에 있는 것이 후계 자리를 차지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하나 보다는 둘, 안 되면 1.5가 낫다.


그러니까 자신에게도 최소한의 패는 있다.

승준의 계산이 끝났다.





결혼식 이벤트는 나은이 생각했던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윤진과 관계를 맺는 것이지, 그의 결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까지 한 상대가 사실은 다른 남자에게 빠져있다는 고통을 두고두고 주고 싶은 것이다.

나은의 계획은 그들이 결혼한 뒤 한동안 몰래 관계를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남자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을 즐기려는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난 그녀의 계획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의 결혼식날, 다른 남자의 신부와 관계를 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벤트는 생각만큼 즐거웠다.



신부 대기실에 들어온 신랑이 신부의 불륜 행위를 보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 남자는 내가 원했던 장면을 아주 충실하게 보여주었다.


좌절, 분노, 그리고 자신이 배신한 여자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의 대상이  사실을 알고 난 뒤의 허탈감까지.

더군다나 신랑에게는 신부와의 결혼 뿐 아니라, 그 뒤에 펼쳐질 화려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더 중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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