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28. 당신의 결혼식. 어느 신부 대기실의 풍경
"오빠... 진짜 변태 같아요."
나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은이 보다는 못 할 거 같은데?"
"아냐. 그건 확실해. 오빤 나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 막장 변태 인게 틀림없어요."
"다행이네. 우리 서로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진짜..."
나은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상한 남자야. 사랑해요. 오빠."
그렇게 말하며 입을 맞춰왔다.
"나 진짜 오빠한테는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나은의 눈빛은 무척이나 진실해보였다.
"그런데 내가 오빠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쉬워요."
"난 이미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았는걸?"
"그게 뭔데요?"
"나은이."
"알았어요. 이제 무르기 없기예요."
그녀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말한 의미는 보통의 연인 사이에서 넌 내 거야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은은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글자 그대로 난 나은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럼 난 즐거운 시간을 가지러 가볼게요. 오빠는요?"
"난 여기서 구경하지."
욕실의 벽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안이 훤히 들여보인다.
마스터 카드 < 매의 눈 >으로 강화된 내 눈에는 대략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동전 위에 새겨진 글자를 바로 손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리니 여기 있어도 굳이 물에 젖을 필요 없이 충분히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욕실에 들어간 두 여자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나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떤 굴욕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내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은이 욕실로 들어가자 두 여인은 긴장한다.
비록 굳은 의지가 있다해도, 자신에게 악의를 지닌 상대의 손에 떨어져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특히 윤진의 상태가 심했다.
하 과장은 나름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윤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기는 그녀의 일생에서 언제 이런 비참한 꼴이 되어본 적 있을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충분히 경험이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하 과장이 그녀에 대해 폭로한 이야기대로라면, 그녀는 결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 아이까지 있었다고 했었지.
그 외에도 어지간히 막 나가는 아이였던 듯 하다.
화장실에 가둬놓고 물을 뿌리고, 변기에 빠트리는 정도는 약과였던 듯 하다.
그런 윤진이 자신이 했던 행동의 정 반대되는 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려면 얼마나 심적 고통이 클지 어림 짐작이 되었다.
해봤으니 알 것이다.
물론 나은이 지금 하려는 행위가 윤진의 과거에 대한 처벌 같은 것은 아니다.
나은은 윤진이 어떤 여자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저 자신의 남자를 빼앗아간 얄미운 여자라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나은이 하려는 행위에 어떠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그냥 여자 사이에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치정 문제에 대한 사적인 보복일 뿐이다.
나은은 떨고 있는 윤진에게 다가섰다.
윤진은 고개를 들고 떨리는 눈으로 나은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은의 외모는 꽤 선해 보이는 편이다.
대개 이쁜 여자들이 그러하듯, 조금만 미소를 지어도 한없이 착해보일 수 있는 인상이다.
오히려 그녀보다 한뼘 정도 키가 크고, 온몸에 적절하게 근육이 자리잡은 나은쪽이 너 나쁜 여자로 보이기 쉬웠다.
"지금 무섭지?"
나은은 일부러 놀리듯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윤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편할텐데..."
"포기 안 해요."
윤진은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억지로 입을 열었다.
"굳이 나한테 존대말 쓰지 않아도 돼."
나은이 부드럽게 말했다.
"어차피 자기 나한테 감정이 좋지 않은 거 알고 있는데 뭐."
"알았어. 그럼."
윤진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비록 나은의 말을 따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마음속 깊이 수긍하고 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언니가 미리 충고 하나 해줄게. 여기서 포기해."
"언니 같은 소리 하고있네. 포기 안 한다고."
"그래. 안타깝네."
"안타까울 거 하나도 없어. 저 사람이 시켜서 하는 거니까, 너랑은 아무 상관도 없거든."
떨리는 눈과는 별개로 윤진은 나은에게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 어쨌든 넌 내 거야."
나은은 오히려 흥이 돋는 모양이다.
"맘대로 해."
윤진의 몸은 조금전보다 오히려 더 떨리고 있었다.
나은의 눈에서 자신에 대한 적의를 읽은 모양이다.
"그래. 그럼 우리 앞으로는 서로에 대해 명확하게 하자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언니라고 불러."
조금전에 윤진에게 언니 같은 소리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같은 제안을 했다.
"흥. 자기 남자를 빼앗겼다고, 그런 치졸한 수나 쓰려는 여자한테 내가 왜 언니라고 불러?"
존대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윤진의 말이 많아졌다.
어쩌면 그것이 나은의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기왕 괴롭힌다면, 좀 팔팔하게 대드는 상대를 괴롭히는 쪽이 나았던 것일까?
"조금전에 오빠가 한 말 잊었어? 너희들은 내 거야. 하기 싫다면 그만두라고."
윤진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언니가 싫다면... 그래. 주인님이라 불러. 어차피 그렇게 하기로 한 거잖아?"
아마 처음부터 그걸 원했던 모양이다.
언니라는 호칭을 거절하자마자, 나은은 바로 말을 바꾸었다.
"..."
윤진은 나은을 노려보았다.
"그쪽은 어때요?"
나은이 하 과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주인님. 그렇게 할게요."
하 과장은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대답했다.
나은과 척을 지는 것보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한 모양이다.
"하정미씨는 나보다 나이가 위인 거 같으니까 내가 언니라고 부를게요. 편하게 나은이라고 불러요."
"아뇨. 제가 주인님이라 부를게요. 저한테는 편하게 이름을 부르세요."
하 과장은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택한 것이 확실했다.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해요. 정미씨."
하 과장과 나은 사이의 권력 관계는 그렇게 깔끔하게 규정지어졌다.
"정말로 주인처럼 따를게요. 너무 심하게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 과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번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시키는대로 윤진을 무자비하게 구타했었다.
아직도 윤진의 엉덩이에는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날 난 두 여자에게 액티브 카드 < 회복 >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날 겪었던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트라우마까지도 두 여자에게는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하 과장은 한쪽에 일방적으로 주어진 권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었다.
만일 그녀가 나은에게 쉽게 대하다가 선을 넘는다면,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는 것이다.
사실 그날의 일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녀는 윤진의 부친과 그의 가족들에게 적지 않은 행패를 받아왔음이 틀림없다.
윤진이 하 과장과 부친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알고 있다면, 윤진의 모친도 그렇다고 보아야 했다.
아마 하 과장은 오랜 시간을 평범한 사람은 알기 어려운 권력의 힘 아래 눌려왔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지금 그렇게나 쉽게 머리를 수그리는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착하게만 군다면, 내가 굳이 심하게 괴롭힐 이유는 없잖아?"
나은은 하 과장의 태도에 만족했다.
그걸 보는 윤진의 눈이 번뜩였다.
물어볼 것도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윤진씨... 아니. 윤진아."
나은이 다시 윤진에게 관심을 돌렸다.
처음부터 나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그녀였다.
하 과장은 그저 함께 딸려온 보너스에 불과했다.
윤진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반항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볼 뿐이다.
"그래. 그래야지 우리 서로가 즐겁겠지."
나은은 그다지 기분 나쁠 것 없다는 듯 평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손을 뻗어 윤진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악!"
윤진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나은의 손에 머리를 잡혀 몸이 뒤로 넘어간 채 끌려가면서 팔과 다리를 마구 버둥거렸다.
"뭐하는 거... 웁!"
윤진이 목소리를 높여보았지만, 나은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그녀의 머리를 변기로 쑥 밀어넣어버렸다.
뽀르르르...
변기에서 윤진이 내뱉는 숨이 방울이 되어 올라왔다.
나은은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뽀르르르...
윤진이 마구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나은은 조금도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그런 나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그녀의 과거가 조금은 의심스러워진다.
사실 생김새를 보나 몸을 보나, 윤진보다는 나은이 그쪽에 훨씬 더 가깝다.
어쩌면 그녀는 한 때 쎈 언니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녀가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건 내게는 하등의 상관도 없다.
오히려 과거가 많은 여자 쪽이 좀 더 매력있지 않을까?
윤진의 머리를 잡은 채 변기 안에 쳐넣고 한참을 있다가, 꺼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때? 즐겁지?"
"미친년!"
윤진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두 사람 닮았다.
두 여자의 눈에는 서슬 퍼런 독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 그런 태도 꼭 유지해. 내가 방금 했던 말은 취소야. 그냥 우리 앞으로도 서로 이름을 부르자. 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나은의 미소는 화해를 원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을 괴롭힐 상대를 원하는 것이다.
"퇘!"
윤진이 나은에게 침을 뱉었다.
찰싹!
나은의 손이 윤진의 뺨을 시원하게 갈겼다.
"악!"
윤진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년이!"
윤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은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체격도 힘도 너무 차이가 났다.
나은은 어렵지 않게 윤진을 제압했다.
그 와중에 옷이 조금 찢어지기는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찰싹!
다시 나은이 윤진의 뺨을 때렸다.
"악!"
윤진의 얼굴이 사정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악!"
나은은 뒷일은 조금도 걱정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이 내게 완전히 중독되어있다는 사실을.
그건 그녀 자신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할 수밖에 없다.
나은은 윤진에게 그렇게 하면서고, 윤진이 나중에라도 자신에게 어떤 보복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찰싹! 찰싹!
몇 차례나 뺨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즈음 되어서는 윤진은 더는 반항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만 때려. 흑!"
아무리 강한척 해봐도, 윤진의 본질은 성미 고약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자신의 배경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은의 폭력 앞에 결국 굴복해버린 윤진은 나은의 손을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어때? 이제 조금 무섭니?"
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 서로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거 같지?"
윤진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미씨 이리로 와봐요."
나은이 윤진을 괴롭히는 동안 구경만 하던 정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은에게 다가갔다.
"우리 이제 좀 즐겁게 보내볼까요? 내 옷좀 벗겨줘요."
정미는 충실한 하녀처럼 나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나은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윤진을 내려보고 있었다.
한바탕 욕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깨달았다.
나은은 내가 그녀에게 두 사람을 선물했다는 것을 단순히 해프닝 정도로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도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렇게 과격하고 포악하게 행동한 것이다.
오늘의 행위는 두 여자의 뇌리에 아주 깊히 새겨질 것이다.
비록 하 과장에게는 힘을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녀도 자신의 주인을 주장하는 여자가 얼마든지 난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좋아."
하 과장이 나은의 옷을 전부 벗겼다.
이제 욕실의 세 여자 모두 벌거벗은 채였다.
"빨아봐."
나은이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윤진을 보고 말했다.
윤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디를?
그녀의 얼굴엔 그런 표정이 역력했다.
"보면 몰라?"
나은은 다리를 벌리고 자신의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윤진의 얼굴은 곤혹스러운 빛으로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