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25. 그녀가 없는 사이 그녀의 남자와
"어차피 대가를 받고 봉사하는 건데 뭐. 사실 틀릴 게 뭐가 있어요?"
주은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리고 어딘지 많은 것을 내려놓은 것 같기도 했다.
"꼭... 성노예 같잖아요?"
나은이 힘겹게 항변을 해 보았다.
"응? 그러니까 다를게 뭐가 있어. 맞아. 그거. 우리."
주은이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본 나은은 무언가 섬찟한 것을 보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주은의 말에 나은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하악! 아... 좋아!"
정 팀장은 두 여자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두 사람의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둘에게 들으라고 더욱 그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흐윽! 영웅씨! 아아!"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대충 그녀를 원하는 만큼 길들인 것 같았다.
정 팀장은 정말로 내가 말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일말의 주저함 없이 따를 것 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나도 저 꼴이 될 거란 말이지?"
"아내. 틀렸어."
주은이 다시 반박했다.
"이미 그렇게 됐다고. 나은씨 모습을 봐! 틀린게 뭐가 있어?"
"아!"
주은의 말에 나은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 팀장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달아오른 때문이다.
"늦었어. 바보."
주은은 다시 내게로 머리를 돌리고 고개를 들어 날 올려보았다.
"다시 시작할게요. 고객님."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나은은 하지만 어딘지 서글퍼보였다.
그날의 촬영회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은도 주은도 정 팀장처럼 쾌락에 빠져 허덕거리며 엉망진창이 되었고, 섹시한 사진은 물론이고 섹스를 끝내고 허탈한 표정의 모습도 담아낼 수 있었다.
"나 아무래도 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거 같아."
"환영해요. 쾌락의 지옥에 온 것을."
주은은 그 끔찍한 쾌락의 함정에 빠진 사람이 자신 하나만은 아닌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가 찾아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는 벌거벗은 채 목줄을 하고 내 앞으로 기어와 앉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그녀에게 약속한 한 달이 되었다.
"정말로 이제 날 놓아줄거지?"
보라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 약속은 지켜."
"고마워."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조금도 반가운 표정이 걸려있지 않았다.
"남편은?"
"오늘도 늦을 거야."
"잘 됐군. 오늘은 마지막이니 좀 더 정성껏 봉사해 줄 수 있지?"
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리 올라와."
보라는 냉큼 소파 위로 올라와 내 허벅지 위에 앉았다.
그녀가 내 물건을 자신의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것을 말렸다.
대신 그녀의 상체를 감싸안고 입을 맞추었다.
방금전에 양치를 하고 왔는지 상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보라와의 키스는 언제나 즐거웠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는 결코 적극적이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 억지로 끌려다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오늘은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해."
"뭘? 설마 내가 너한테 사실은 반해있다고 말하게 만들고 싶은 거야?"
"응."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액티브 카드 < 호감 >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내게 지닌 감정은 진짜였다.
"꿈도 꾸지마."
여전히 보라는 냉정했다.
조금 가슴이 아팠고, 아주 많이 기뻤다.
"그럼 나와 섹스를 하는 건 어때?"
"더러워."
그녀는 일순간이라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
"조금도 즐겁지 않은 거야?"
"즐거울리가 있어? 너 같은 놈한테 이런 꼴을 당하면서?"
보라의 아랫도리는 벌써 촉촉했다.
키스만으로 벌써 그녀의 몸은 나와의 섹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내게 익숙해져 있었다.
난 보라의 몸을 들어 내 위에 얹었다.
보라는 입술을 깨물고 쾌감에 저항할 준비를 했다.
"움직여봐."
내 위에 쪼그려 앉은 채로 보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순간도 의지를 잃지 않겠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읍!"
간간히 그녀의 꽉 닫힌 입술 사이로 신음이 세어나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정도는 충분히 감내하려는 모양이다.
"흑!"
다시 한 번 터져 나온 신음 소리.
"절대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지 않을 거야."
아마도 그건 내가 아닌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진심이었다.
"네가 싫어. 하아..."
보라는 조금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증오스러워. 흐윽!"
점점 올라오는 쾌감에 저항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왜 날 이렇게! 흑!"
보라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만든 거야! 하악!"
보라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날 끌어안았다.
그녀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마주쳤다.
내 입안으로 그녀의 혀가 들어왔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따뜻하고 정열적인 키스였다.
"흑!"
보라가 입술을 떼고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힘들면 그만해도 돼."
하지만 보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흑! 흐윽!"
보라는 쉬지 않고 울면서 몸을 움직였다.
"학! 하악! 싫어! 니가 정말 싫어! 학!"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그녀는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젠 그냥 육욕에 빠져버린 여자였다.
"흐윽! 하나도 안 좋아! 이따위! 하악! 나쁜 새끼!"
오늘은 그녀에게 액티브 카드 < 표현 >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더러운 자식! 너만 아니었으면! 흐윽! 싫어! 이런 거! 너무 싫어! 학!"
물론 아무런 설정도 액티브도 적용되지 않으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의 진위를 알 수는 없었다.
"그것만 크면 다야! 하악! 섹스만 잘하면 다야! 아아! 어떻게 해!"
보라가 그렇게 즐거워하고 있으니, 나 또한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그녀의 몸을 들어올리려 했다.
"손대지 마! 하악!"
하지만 보라는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흐윽!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다시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난 그녀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보라는 저항하지 않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아주 따뜻했다.
처음으로 보라에게서 애정이 가득한 키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악! 그만! 미칠 거 같아! 그만! 안 돼!"
그렇게 말하면서도 보라의 몸은 여전히 멈추려들지 않았다.
난 이제 그녀가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으윽! 흐엉!"
절정을 느끼고 난 보라는 날 껴안고 마구 울먹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난 오히려 섹스보다 더 큰 희열을 느꼈다.
움찔!
울먹이고 있는 보라의 몸안에 사정을 했다.
"흑! 흐윽!"
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난 그녀의 몸안에 꽂은 그대로, 그녀의 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라는 두 다리로 내 몸을 감싸안고, 팔로 날 꽉 껴안았다.
그렇게 엉거주춤하게 침실로 가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난 다시 한 번 보라의 몸을 즐겼다.
보라는 내 몸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우리는 키스를 하고, 섹스를 나누었다.
그녀도 무척이나 즐기고 있다는 것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보라와의 섹스는 행복했다.
그녀는 웃다가 울다가 비명을 질렀다.
난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안에 사정을 했다.
"일어나."
그녀게 내게 명령했다.
내가 그녀의 몸에서 내 물건을 빼자, 보라는 몸을 일으키고 그걸 빨았다.
두 차례의 사정을 끝내고 잠시 수그러들었던 그놈은 바로 기운을 되찾았다.
보라는 어색하게 한 번 웃고는 귀두를 입에 문 채, 정신없이 기둥을 흔들었다.
"싸줘."
보라가 귀두를 입에서 빼고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내가 언제라도 원한다면 사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라가 귀두의 구멍을 자신의 이마에 대고 있을 때, 난 그녀의 요청을 따랐다.
힘차게 나온 정액이 보라의 얼굴을 더럽혔다.
보라는 평소라면 질색을 하던 그 행위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보라는 자신을 얼굴을 뒤덮은 정액을 핥아먹었다.
"이제 봐줘."
그리고 침대에 누워 날 바라보며 자위를 시작했다.
"이걸 좋아했었지?"
마지막 선물로 내가 좋아하는 걸 전부 해주고 싶었던 걸까?
여전히 그녀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어쩐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비장한 모습에 압도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흐윽! 간다! 아! 좋아! 흑! 미안해! 사랑해!"
그녀가 누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싸줘."
힘이 빠진 보라는 침대에 누운 채 내게 다시 요구했다.
어쩐지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 것 같았다.
난 그녀 위에 서서 그녀의 몸을 다시 내 정액으로 뒤덮었다.
"하하... 진짜 많이 나온다...인간이 아닌 거 같아."
그날의 보라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감정이 풍부했고, 섹스 자체를 즐겼다.
한 번도 그녀가 이렇게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더 할거야?"
보라가 물었다.
"더 하고 싶어?"
"내 감정 따위 상관없잖아?"
"응. 상관없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마음대로 취했고, 내 마음가는대로 관계를 이어왔다.
이제와서 그녀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알려달라 말할 수 있을까?
"하고싶은대로 해."
보라가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이정도면 됐어."
"그래..."
보라는 그다지 즐겁지 못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를 내려가 평소처럼 무릎을 꿇고 기어서 침실을 나갔다.
난 그런 그녀의 행위를 말리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그런 종류였고, 마지막 순간에 그걸 바꿀 이유는 없었다.
잠시 뒤에 물소리가 들려왔다.
욕실에 들어간 보라는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다.
가볍게 몸을 덮고 있는 정액만을 씻어낸 모양이다.
잠시뒤에 욕실문을 열고 나온 보라는 다시 내 앞으로 엉금거리며 기어서 왔다.
"또 시키실 거 있으세요?"
씻는 동안 또 울었던 걸까? 아니면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것인가?
"그동안 수고 많았어."
"당신이야말로."
보라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동안 사실은..."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고 무언가 말을 하려했다.
"하지마."
내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제발 나의 즐거움을 망치지 말아줘.
보라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날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새끼."
다시 기쁨이 찾아왔다.
물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다.
"더러운 자식! 변태새끼! 너 같은 놈은... 흑!"
마지막까지 그녀를 울리고, 날 미워하게 만든 것이 기뻤다.
한동안 증오의 눈으로 날 바라보던 보라는 엉금엉금 기어서 현관으로 나갔다.
몸을 일으키고, 옷을 하나씩 입고, 마지막으로 목에 걸려있던 개목걸이를 풀었다.
한참 동안 그녀는 그걸 손에서 놓지 못했다.
"잘있어."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내게 인사를 할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잘가."
나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잘 한 거 같다.
문을 닫기 직전, 그녀는 내게 미소를 보냈다.
나도 그녀에게 미소로 보답해주었다.
문이 닫혔다.
그렇게 보라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보라는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면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할까?
과연 난 잘 한 것일까?
거기서 손만 뻗으면 그녀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날은 잠을 이루기 무척이나 힘들었다.
다음날 퇴근길 난 집근처 마켓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맥주나 몇 병 사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있었다.
과자 코너에서 서성이고 있는 보라를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보라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서있었다.
보라가 입술을 깨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과자 하나를 주어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그녀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카운터로 가 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계산하고 마켓을 나섰다.
나도 내가 고른 물건들을 계산하고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선 그녀가 멈춤 버튼을 누르고 서 있었다.
내가 올라타자 보라는 닫힘 버튼을 눌렀다.
보라와 나의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