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23. 미래를 걸고 싸워야 하는 여인들
보라가 네 여인에게 제안을 하는 동안 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카드 하나를 사용했다.
바로 기프트 카드 < 정체를 감춰주는 가면 >이다.
- 당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감춰줍니다.
- 당신과 아무리 친한 사람도, 가면속의 인물이 당신일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드를 찢자 내 손 위에 길다란 천 하나가 나타났다.
대략 허리띠 정도의 길이에 너비는 반 뺨 정도 되는 검은 천에 구멍이 두 개 뚫려있다.
겨우 눈만 가릴 수 있는 천 쪼가리라 가면이라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생각해보면 고전 영화 주인공인 조로가 눈을 가리던 마스크와 비슷하다.
과연 이걸로 정체를 감출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프트 카드로 나온 것이니 기대는 된다.
그 검은 천을 얼굴에 두르고 머리 뒤에서 매듭을 지어 묶었다.
천이라 그런지 착용감은 나쁘지 않다.
다른 가면처럼 얼굴에서 쉽게 벗겨질 것 같지도 않았다.
거울을 보니 낯선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정말로 내가 날 보고 있음에도 절대 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과연...
이것도 평범한 물건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서로 하고 싶어할 줄은 몰랐네. 이래서야 누굴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보라는 딱하다는 얼굴로 여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발 부탁이야. 내가 하게 해줘."
다시 반 팀장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잠시 두 여자가 고민에 빠진다.
"잠깐 나갔다 올테니, 그동안 누가 할 지 결정들 해봐. 만약 모두 한 사람을 선택하면 그 사람으로 하지."
"반 팀장님이 하시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 묵묵히 있던 도연이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우리는 죽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에 나은과 정 팀장이 잠시 입을 닫았다.
"참! 우리쪽 동남아시아 고객님한텐 아주 독특한 취미가 있다고 하더라."
고문실 문까지 걸어가던 보라가 몸을 돌리고 말했다.
"네?"
도연이 깜짝 놀라 물어보았다. 아까 동남아시아로 팔려간다고 한 사람은 바로 도연, 그녀였다.
"뭐라고 하더라? 박싱? 여하튼 상대하던 여자한테 흥미가 떨어지면 그런 걸 한다고 하던데..."
"그, 그게 뭔데요?"
"모르는 게 나을 거야. 차라리 죽는 게 훨씬 낫다고 하더군."
보라는 싱긋 웃으며 한 손으로 팔 다리를 자르는 흉내를 내었다.
"아!"
도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보라가 문을 닫고 나와 여자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부탁이야. 나 혼자 살고 싶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난 아이도 있어. 흑!"
서희가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해요. 나도 아이가 있어요."
정 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꼭 아이가 있는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나은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살고 싶다구요."
"자기들은 죽는 건 아니잖아. 응?"
반 팀장이 애처롭게 다시 부탁했다.
"하지만 죽는 거랑 다를 바가 뭐가 있겠어요."
정 팀장의 목소리엔 아직은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제발... 그래도 사는게 죽는 거 보다는 나은 거잖아? 살아 있으면 희망도 있다고 하잖아? 아까 그 악귀 같은 여자 말대로라면 난..."
"저기... 그 사람. 딱히 반 팀장님한테 죽는다 소리는 하지 않았어요."
잠시 넋을 잃고 있던 도연이 한 마디 했다.
"다른 쪽으로 판다고만 했지..."
"맞아. 꼭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어요. 반 팀장님."
정 팀장이 도연을 거들었다.
"다들 왜 그래요? 알면서도... 흑!"
반 팀장이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하지만... 나한테는 죽는 게 오히려 낫다고 했어요... 흑! 어떻게 해!"
도연이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여자들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의견 일치는 이미 물건너 간 모양이다.
또각또각!
경쾌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보라가 들어왔다.
"본부장. 핫!"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보라가 외마디 신음을 터트리고 내게 달려왔다.
"누구냐!"
말보다 발이 더 빨랐다.
반짝이는 가죽 부츠를 신은 보라의 왼발이 빠르게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깜짝 놀랐다.
그녀의 발재간은 평범한 주부가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바람 소리보다 더 빠른 그녀의 하이킥은 놀랍도록 무섭고 매서웠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내가 그녀의 하이킥을 놓치지 않고 보았고, 정확히 어디를 노리는 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녀의 발끝이 정확하게 내 관자노르를 향해 날아왔어도 그리 어렵지 않게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라의 발끝은 내 머리를 약 반뺨 정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보라의 눈에는 난처한 기색이 감돌았다.
"이잇!"
자신의 발길질이 허망하게 스쳐지나간 것이 화가 났는지, 보라는 발을 회수하는 그대로 날 향해 주먹을 질렀다.
전문적인 격투가 못지 않을만큼 빠르고 정확한 주먹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공격은 내게 닫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몸이 거부하는 것처럼 그 날카로운 주먹이 내 코앞까지 다가오다가 방향을 홱 틀어버렸다.
어떤 이유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에게 적용되는 설정 카드 < 성역 > 때문이다.
보라는 날 침입자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어떤 해를 입히지는 못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녀는 날 공격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짓을 해봐도 그녀는 내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만. 니키타."
어쩐지 안스러워져 한 마디 하고, 내 스스로 마스크를 풀렀다.
"아! 본부장님!"
니키타는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몸을 경직 시키며 사과를 해왔다.
"괜찮다. 나라는 걸 몰랐으니 실수라 할 수 없지."
"그래도 손발을 잘못 놀린 것은 사실입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런데 그녀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쩐지 오히려 내게 벌을 받길 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옷을 벗고, 여기에 엎드리도록."
니키타는 기쁜 얼굴로 라텍스 유니폼을 벗고, 책상에 상체를 기대고 엎드렸다.
"모두 여섯 번을 공격했었지?"
"맞습니다."
니키타는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기대에 찬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퍽!
난 힘을 주어 그녀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이건 그녀에게 주는 벌이며 동시에 상이니 조금도 소홀할 수 없었다.
"흑!"
보라가 비명을 참으며 나즈막한 소리를 내었다.
퍽!
"학!"
그녀가 두 번째 내뱉은 신음은 내 귀에는 무척이나 음란하게 들려왔다.
퍽!
"흐읍!"
이번엔 정말로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엉덩이 사이가 젖기 시작하고 있었다.
"좋은가보군."
"흑! 그렇습니다. 본부장님의 체벌에 가버려서 죄송합니다. 학!"
보라는 자신의 쾌감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녀에게 액티브 카드 < 표현 >을 활성화해놓은 채였다.
"어떤게 더 좋은 거지? 체벌과 삽입 중에서?"
"둘 다 좋습니다. 본부장님의 것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행복합니다."
니키타 로마노바일 때의 보라는 더없이 충실하고 애정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내가 죽으라면 기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에 대한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난 그녀의 뒤에서 그대로 삽입해버렸다.
"하악! 본부장님!"
니키타가 감격스러워하며 고개를 내게 돌렸다.
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손을 앞으로 보내 그녀의 두 가슴을 쥐어짜듯 거세게 거머줘었다.
"흐윽! 아아!"
이날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보라는 잠깐 동안의 유희만으로 절정을 맞이했다.
"하아... 하아..."
섹스가 끝나고 그녀는 행복한 눈으로 내게 안겨왔다.
"자. 그럼 다시 일을 진행해보도록 하지."
잠시 그녀을 안고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을 보내다가, 여자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을 확인하고 보라를 다시 보냈다.
"제발 부탁해. 나 좀 살려줘."
반 팀장이 할 수 있는 말을 오직 그것뿐이었다.
"반 팀장님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요."
"그래요. 반 팀장. 어쩔 수 없어요."
그때 다시 문이 열리고 손에 가방 하나와 생수병을 든 보라가 들어왔다.
"아직 결론들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군."
보라가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 마디를 하자, 모두들 조용해졌다.
"제가 할게요. 부탁이에요."
다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반 팀장이다.
"아뇨. 저희 모두 하고 싶어해요."
나은이 나머지를 대표해서 말했다.
"어쩔 수 없군. 그렇게 의견이 모이지 않는다면..."
보라가 말을 줄이자, 모두들 그녀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보라의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그녀는 반 팀장에게 다가섰다.
"입을 벌려라."
반 팀장은 잠시 어떻게 해야 고민하느라 보라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다.
찰싹!
보라의 손이 매섭게 반 팀장의 뺨을 후려쳤다.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입을 벌려."
반 팀장이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자 보라는 그녀의 입안으로 무언가를 집어 넣고, 들고 있던 물병을 물렸다.
꿀꺽!
반 팀장은 불안한 표정으로 보라가 준 무언가를 물과 함께 삼켰다.
"저기 잠시 앉아 있도록."
보라가 반 팀장의 팔과 다리를 풀어주며 말했다.
"혹시라도 자유로워졌다고 덤벼볼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해봐."
보라의 차가운 눈빛에 반 팀장은 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런 모험을 할 용기 따위 그녀에겐 없었다.
"그리고 누가 또 하고 싶다고 했었지?"
"저요!"
"저예요!"
"제발 제가 하게 해 주세요!"
단 한 사람도 기회를 놓치려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네가 해보지."
보라는 이번엔 정 팀장에게 다가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풀어주었다.
"너도 저쪽으로 가서 앉아 있어."
정 팀장은 고분고분 보라가 가리킨 장소에 가 앉았다.
한참을 메달려 있었으니, 팔과 다리가 저린지, 두 여자는 정신없이 팔다리를 주물렀다.
보라는 다른 두 여자에게도 그 무언가를 먹였지만, 풀어주지는 않았다.
"자. 충분히 쉬었으면 이제 시작하지."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한 반 팀장과 정 팀장에게 말을 했다.
"우선 둘 다 옷을 벗어. 다시 말하지만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이게 마지막이야. 앞으로 내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즉각 따르지 않으면 탈락시키겠다."
보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 팀장과 정 팀장은 화급하게 옷을 벗었다.
두 여자 모두 각각 속옷만 남겨두고는 보라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보곤 허둥지둥 그마저도 벗어버렸다.
마치 누가 더 빨리 옷을 벗는지 경쟁을 하려는 것 같았다.
두 여자가 벌거벗는 동안 보라는 바닥에 두터운 매트가 깔려있는 고문실의 중앙으로 갔다.
"두 사람 이리로 와서 서."
이번에는 둘 다 무척이나 빠릿하게 움직였다.
보라의 양 옆에 선 두 여자는 벌써부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짐작한 모양이다.
저 무서운 여자가 힘으로 결정한다 했다.
그러니 서로 싸워야 할 모양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은 네 여자 모두를 놀라게 했다.
보라는 정 팀장의 머리를 끌어안고 자신에게 당겼다.
저항의 의지 따위 없이 보라에게 끌려간 정 팀장은 그 무서운 여자가 자신에게 키스를 하는 동안 무방비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가면을 쓴 여자는 단지 정 팀장에게 키스를 하는 것 뿐이 아니라, 한쪽 손으로 정 팀장의 거대한 가슴을 주무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보라와 정 팀장의 키스는 한동안 이어졌다.
모두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른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아... 하아..."
키스가 끝났을 때, 정 팀장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너도 이리로 와."
보라가 반 팀장을 부르자,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아마도 자신도 비슷한 짓을 당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라는 반 팀장에게 키스를 하는 대신, 그저 손을 내려 그녀의 아랫도리를 어루만졌다.
"앗!"
당황한 반 팀장이 몸을 비틀었다.
"움직이지 마."
보라가 노려본다.
반 팀장은 어정쩡한 포즈로, 그 무서운 여자가 자신의 몸을 마구 추행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섭고, 기분이 더러웠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음부를 조금 어루만진다해서 몸이 반응할 리 없었다.
"하윽!"
하지만 반 팀장의 몸은 그녀의 기대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