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22. 용의자
보라에게, 아니 수사관 니키타에게 생긴 그 특별한 성벽은 결과적으로 내 책임인 걸까?
물론 미안하지는 않다.
그녀도 만족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난 지금의 니키타 로마노바가 너무 좋다.
이번 섹스는 격렬했다.
난 보라에게 고통을 주었고, 보라는 그걸 전부 쾌감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이렇게..."
니키타가 말했다.
"원하는 걸 정확히 말해봐."
"때려주시는 것도 좋고, 그보다 더 심한 것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니키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겠네. 염두에 두도록 하지."
"그리고 오늘도 임무가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 캐비넷으로 가서 지난번 보라가 입었던 그 라텍스 유니폼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보라는 내가 싸놓은 정액으로 가득한 몸으로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유니폼을 입었다.
"무슨 임무입니까?"
이제 섹스의 열기를 저만치 밀어버리고, 유능한 요원의 모습으로 그녀가 내 지시를 기다렸다.
"감옥 안에 네 여자를 구속해놓았다. 그들 중 내 계획을 망치려는 용의자가 한 명있어."
"그렇다면 그녀들을 고문해서 사실을 밝히도록 하면 될까요?"
보라가 의욕에 차서 물어왔다.
어쩐지 '고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녀의 눈이 조금 빛난 것도 같았다.
"사실을 밝히는 건 뒤로 미루도록 하지. 우선은 정신없이 만들어줘야겠어."
"알겠습니다."
수사관 니키타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걸 얼굴에 하도록."
난 성인샾에서 사온 눈을 가릴 수 있는 가면을 그녀에게 건내주었다.
저 안에 있는 여자들 중 보라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세상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보라는 내게 받은 가면을 얼굴에 썼다.
검은색 가죽 가면은 그녀가 걸치고 있는 라텍스 유니폼과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럼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니키타가 씩씩하게 경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난 액티브 카드 < 모니터 >를 활성화하고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철문을 열자 그리 넓지 않은 복도가 나오고, 복도의 양쪽으로는 철문으로 된 감옥이 늘어서 있다.
"누구세요?"
니키타가 복도를 걸어들어가자 겁에 질린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누구야?"
"사람살려!"
"여기요! 여기 갖혀있어요."
그리고 네 사람 모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감옥에 갖혀있은지도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다.
더군다나 얼굴에 안대를 씌워지고, 손발이 묶여 있다가 정신을 차린 그녀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끌려온 것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아니면 하루가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들려온 발소리에 그 상대가 자신들을 가두어 놓은 범인일 수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여자들은 소리를 질러 살려달라 외쳤다.
"다들 조용히 못해?"
보라가 소리를 질렀다.
순간 떠들석하던 감옥에 정적이 찾아왔다.
모두들 나타난 상대가 자신들의 구원자가 아님을 바로 알아차렸다.
"누구세요..."
한 여자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풀어만 주세요. 절대 얘기 안 할게요. 흑!"
누군가로부터 눈물 섞인 애원이 터져나왔다.
"살려주세요. 흑!"
"엉엉! 잘못했어요."
여자들은 다시 눈물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입들 다물지 않으면 아주 따끔한 맛을 보게될 거야."
보라의 얼굴엔 잔혹한 표정이 서려있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본부장의 계획을 망치려는 범인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흑! 흑! 제발."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여자들의 울음과 애원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덜컹!
하지만 어디선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녀들의 입은 바로 닫혀버렸다.
"왜! 왜 그러세요?"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누군가에게 일으켜진 도연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찰싹!
"악!"
감옥에 있던 여자들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폭력이 행사되는 소리였다.
"조용히들 하라고 했지?"
보라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거칠었다.
"잘못했어요..."
도연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빌었다.
"죄송해요..."
다른 감옥에 갖혀있던 누군가가 사과했다.
어쩐지 그러지 않으면 자신도 그런 폭력을 당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지막 경고다. 누구든 다시 입을 열면 맞고 싶다는 걸로 알겠다."
"흑!"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보라는 도연을 일으켜 끌고 문을 나섰다.
도연은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맞을까 무서워 보라에게 끌려 걸음을 옮겼다.
보라가 도연을 데려간 곳은 지난번 자신이 괴로움을 겪었던 바로 그 고문실이었다.
잠시 보라는 도연의 몸을 잡은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무말도 없이 자신이 묶여있던 곳을 바라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도연의 몸은 고문실을 한쪽 벽에 팔을 위로 한채 다시 묶였다.
보라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 한 사람씩 데리고 고문실로 왔다.
도연의 옆에 나은을 묶어놓고, 그옆에 서희를 묶어놓고, 마지막으로 정 팀장도 끌고 왔다.
잠시 그녀들 앞에서 네 사람을 바라보던 보라는 고문실 한쪽의 창고로 가서 마땅한 도구를 찾아보았다.
채찍을 손에 쥐어보고, 회초리도 쥐어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제법 긴 채찍 하나를 선택했다.
창고를 나서 채찍을 몇 차례 휘둘러본다.
휘익~ 짝!
날카로운 소리가 고문실을 가득 채웠고, 여자들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채찍을 들고 다시 여자들에게 돌아간 보라가 이제 한 사람씩 안대를 벗겼다.
"살려주..."
도연이 입을 열려다가 보라의 매서운 눈빛에 질려 입을 닫아버렸다.
잠시 뒤 네 여자들은 모두 안대를 벗고 라텍스 유니폼을 입은 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두려움과 궁금함이 가득했지만, 감히 입을 열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궁금한 모양이네? 여기 잡혀온 이유가?"
보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자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알게 될 테니 그건 말해주지. 너희들은 며칠 뒤면 이 나라를 떠나게 될 것이다."
"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도연이었다.
휘익! 찰싹!
보라가 휘두른 채찍이 도연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으악!"
그 매서운 소리에 놀란 도연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물론 보라가 들고 있는 채찍은 진짜로 통증을 주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가벼운 유희를 위한 종류의 도구이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고 맞는 입장에서는 그 날카로운 기세만으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흐앙! 잘못했어요."
도연이 소리쳤다.
"입 다물라고 했지? 내가 허락하기 전에 다시 입을 여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두 배로 맞을 각오를 해."
"읍! 읍!"
도연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제법 이쁘장하게 생긴 것들이네. 꽤 받을 수 있겠어."
보라의 웃음은 그녀의 얼굴을 가린 가면 넘어로 충분히 느껴졌다.
네 여자 모두 끔찍한 상상을 해 버렸다.
"배가 준비될 때까지 당분간은 여기 있어야 하니까 소란은 피우지 말도록 해. 나 시끄러운 거 엄청 싫어하거든."
보라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들 궁금한 게 있다면 한 가지씩만 물어봐. 대답해주도록 하지. 너부터."
보라가 채찍으로 가장 끝에 있는 정 팀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살려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울상이 되어 정 팀장이 애원했다.
"실격!"
보라는 냉정하게 한 마디하고 채찍을 휘둘렀다.
휘익! 찰싹!
"억!"
허벅지를 맞은 정 팀장은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저렇게 된다. 다음 너."
보라가 이번엔 반서희 팀장에게 물었다.
"우리를 어디다 팔아버린다는 거죠?"
반 팀장은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가 혼이 날 것이 두려운지 주저하면서도 물어보고 말았다.
"음... 넌 중국."
보라의 말을 듣고 반 팀장이 왈칵 눈물을 흘려버렸다.
"그... 그러면 저는요?"
이번엔 나은이 물었다.
"넌 몸매가 괜찮네. 아마 서아시아로 가게 될 거야."
"서아시아?"
"그래. 몰라? 아랍? 사우디? 이란? 이라크?"
"왜?"
"그쪽 남자들은 너 같은 여자들을 좋아하거든. 몸매가 좋으면 그쪽이야."
"그리고 넌 동남아다."
이번엔 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요?"
도연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쪽 남자들이 좋아할 타입이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보라의 매서운 말에 도연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저... 저는..."
정 팀장이 입을 열었다.
찰싹!
보라는 이번엔 손바닥으로 정 팀장의 뼘을 때렸다.
"흑!"
정 팀장은 당황해서 눈물을 터트려버렸다.
"누가 다시 입을 열라고 했지?"
"흑!"
"좋아. 궁금하다면 말해주지. 넌 가슴이 크니까 어디든 인기가 있겠어. 하지만 나이가 좀 있으니 러시아로 가야겠어. 그쪽 남자들은 동양 여자들이 나이가 있어도 그리 싫어하지 않거든."
"흑!"
한 번 터져버린 눈물을 멈추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정 팀장은 연신 눈물을 터트렸다.
"아. 그리고 넌 그런 거 아니야. 쯧쯧..."
보라가 반 팀장을 바라보며 말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네?"
반 팀장이 깜짝 놀랐다.
"이쪽 여자들처럼 어리지도 않고, 저 여자처럼 가슴이 크지도 않네? 아무래도 다른 루트로 팔아야겠어."
"헉!"
반 팀장은 아주 끔찍한 상상을 해버린 모양이다.
"안 돼!"
찰싹! 보라가 그녀의 뺨을 때렸다.
"허엉! 안 되요. 제발.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거기 있던 그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반 팀장이 애원을 했다.
찰싹!
보라가 다시 뺨을 때렸다.
"제발. 잘못했어요. 전 집에 가야 해요. 흑! 아이가!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연신 뺨을 맞으면서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살고 싶어?"
보라가 반 팀장의 얼굴을 잡고 물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반 팀장이 눈을 깜빡이며 애원했다.
"안 돼. 이미 늦었어."
보라는 반 팀장의 얼굴을 손에서 놓고 뒤로 돌아섰다.
"조용히들 있어. 시끄럽게 굴면 가만 안 둘테니."
보라는 그녀들에게 몸을 돌리고 고문실을 나왔다.
그녀가 사라지자 여자들이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어때? 재미는 있나?"
"네. 반응들을 보니 꽤 즐겁더군요."
사무실로 돌아온 보라의 얼굴엔 조금전의 그 표독한 표정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고분고분한 고양이처럼 내 무릎 위에 앉아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잘 했어."
난 보라의 라텍스 유니폼의 지퍼를 내리고,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고문실 안의 여자들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하응..."
애교로 가득해 내 애정을 간구하고 있는 보라를 보고 있으니, 꽤 기분이 좋다.
이거 중독될 거 같다.
"힘내세요. 반 팀장님."
"그래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아요."
"언니..."
다른 여자들은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반 팀장을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으응..."
반 팀장은 반쯤 넋이 나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 표독한 여자는 자신에게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사라졌다.
다른 여자들은 그래도 살아갈 테지만, 자신은 아니다.
그녀의 머릿속이 아주 끔찍한 장면들로 가득했다.
"언니... 힘내요."
"반 팀장님..."
"괜찮아..."
반 팀장이 억지로 기운을 내며 말했다.
"난... 어떻게 되어도 자기들은 살아남아야지..."
힘없이 고개를 들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꼭 이야기 해줘. 우리 가족들한테... 응?"
그녀는 마치 유언이라도 남기듯 말했다.
아니 사실상 유언이나 다름없었다.
"언니! 흑!"
"반 팀장님! 흐윽!"
여자들 사이에 비장한 기류가 흘렀다.
그녀들이 각자의 비극을 즐기는 동안, 난 보라의 몸을 주무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보라는 조금 서운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좀 더 해주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너희들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다."
여자들에게 돌아간 보라가 그녀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리 조직은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여자가 말이지."
보라의 입에서 나온 말에 여자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만약에 원한다면 조직에 받아줄 의향이 있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의 능력과 충성심을 입증해야 하겠지만 말이지."
"하! 할게요!"
바로 대답이 터져나왔다. 한 사람도 아니고 네 사람 모두 동시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흑!"
가장 필사적인 것은 반 팀장이었다.
다른 세 사람과는 달리 그녀는 목숨이 달려있다.
"넷이나 필요 없어. 내가 필요한 것은 한 사람. 딱 한 사람 뿐이다."
"저, 저요! 제가 할게요!"
반 팀장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여자들은 그녀를 위해 양보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제가 할게요!"
하지만 그녀의 믿음은 단 1초도 가지 못해 배신당하고 말았다.
"제발 제가 할게요."
다른 세 여자 중에서 도연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자신이 하겠다고 자원했다.
슬슬 일이 무르익는 모양이다.
사실 꼭 해보고 싶었던 행사가 있다.
바로 캣 파이트.
오늘을 그걸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필사적인 캣 파이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