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4화 〉@22. 용의자 (164/377)



〈 164화 〉@22. 용의자



"좀 그렇지 않아요? 코인인지 뭔지 하다가 망한 사람이 대부분아리던데."


"그건 그래. 좀 수상하기는 해."

"그렇게 큰 돈을 벌었는데 뭐하러 회사를 다닌데요?"


한 여자가 물꼬를 트자 다른 여자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진짜가 맞아."
주은은 며칠전 우연히 그 남자와 식당에서 만나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그 남자가 가방에 엄청난 거액을 지니고 다닌다거나, 자동차 한 대가 가뿐히 넘어가는 비싼 양복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누구한테 보이려고 하는 거랑은 틀려. 그리고 내가 부탁하니까 별 고민도 없이 로렉스 하나 주문하더라고. 그것도 금장이야."


주은은 그녀들의 의문을 하나씩 풀어주었다.

"그럼 진짜야?"


"맞다! 전에 도연씨  남자가 어린 여자랑 모텔에 들어가는  봤다고 했었지?"


"으응..."
도연은 그다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시 돈으로 여자를 꼬시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런 모양이다. 하기는 갑자기 큰 돈이 생겼으니..."


"근데 회사는  여직 다니고 있데요?"

"뭐 갑자기 큰 돈이 들어와도 그냥 조용히 살던 대로 사는 사람도 많데요."

"맞아. 그냥 취미 처럼 그러는 사람도 있다더라."

주은이 돈에 대해 확신을 시켜주니,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더이상 무언가 덧붙이지 않아도 여자들은 각자 적당하게 살을 붙여 나갔다.




"그래서 결국 내 이미지를 회복시킨다는 게 결국 돈으로 어린 여자를 데리고 모텔이나 가는 남자 정도라는 거야?"


주은이 들려준 말을 듣고 나니 어딘지 입맛이 썼다.


그날 오후 우리는 다시 지하 스튜디오에서 만났고, 그녀는 자신이  일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주은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여자들이 남자에 대해서 갖는 평판은 두 가지 뿐이라고요. 잘생겼는가, 그리고 돈이 있는가. 나머지는 다 쓸데 없는 거라고요."


"그거 말고도 있잖아. 착하다라든지, 성실하다든지."


"풋!"
주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거 다 의미 없어요. 착한 사람을 어디다 써요? 괜히 다른 사람이 부탁하는 거나 말없이 들어주는 호구나 되는 거지. 또 성실한 사람이라고 다 성공하는 건가요?"

주은이 세상을 보는 눈은 무척이나 냉혹했다.

잘생긴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전부 한 덩어리로 뭉쳐 논외의 남자라고 단언했다.



"착하다는 평을 듣고 싶은 거였어요?"
그녀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딱히 그렇지는 않아."
사실 다른 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관심 없다.


AV 마스터의 능력을 갖기 전이었다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내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착한 남자라는 말을 듣는 것 보다, 차라리 전처럼 무섭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걸요? 착한 사람이 뭐가 좋아요?"


주은의 말이 맞다.

착한 사람은 그저 호구에게 붙여주는 그럴듯한 딱지에 불과하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잘생긴 남자이지만, 돈 많고 어딘지 위험해보이는 남자도 그 못지 않게 매력적이라고요."


주은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여자들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알고 보니 성격이 괜찮다거나 하는 따위로 꾸미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같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전부 발이 넓은 여자들이니 당신에 대해서는 금세 소문이  거예요."
주은은 그렇게 단언했다.

"그러니까 난 약속 지켰어요. 그리고 이거."
그녀가 주문 받은 시계를 꺼냈다.


"이건 그렇게 차려입을 때 차기 좋고, 이건 평상시에 차고 다니면 좋을 거예요."


주은이 꺼내 놓은 시계는 두 개였다. 하나는 금색, 하나는 은색.

"금통은 뭐 어디서든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데, 데이토나 스틸은 매장에서 사려면  년은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중고라도 신품 보다 더 가격이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스틸 하나 사려면 금통 몇 개 정도는 사서 단골이 되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주은은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그 시계를 구해왔는지 설명해주었다.

"둘 다 백화점 영수증과 보증서도 있어요. 조금 더 차고 다니다가 가서 오버홀 받으면 다시 새거처럼 차고 다닐 수 있어요."

주은은 자기가 구해온 가격에 아주 최소한의 마진만 받겠다고 했다.

"진짜.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 가격에 넘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진짜로 당신 말고  사람이었다면 절대 그 가격에 안 넘겨요."

그래도 내가 현금으로 전부 지불하자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이제  거죠? 음... 매출도 올려주었으니까 오늘은 공짜로 해줄게요."
돈을 챙겨 금고에 넣고 나서 옷을 벗으려 했다.


"오늘은 안 돼. 약속이 있어서."
내가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주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잠깐도 안 돼요? 오늘처럼 공짜의 기회가 또 언제 있다고?"
어쩐지 그녀의 투정이 귀여워 난 잠깐 동안 그녀와 시간을 보냈다.

"진짜로 날 창녀 취급이나 하는 남자랑 섹스하는 게 뭐가 좋다고..."
섹스가 끝나고 주은은 투덜거리며 옷을 입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나름 만족을 얻은 모양이다.



그날 저녁엔 따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빈이다.


그녀에겐 주어야  것이 있었다.




"주시니까 받기는 하는데... 왜 주는 건데요? 이렇게 큰 돈을?"
수빈에게 5,000만 원은 그리 큰 돈은 아닌 모양이다.


그냥 예의상 놀라는 척 할 뿐, 다른 여자들의 반응과는 무척 달랐다.



"그냥 악취미라고 생각해."

"알았어요. 그럼."
수빈은 내게 받은 돈 다발을 대충 가방에 쑤셔넣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금세 욕망으로 타올랐고, 나도 이 아름다운 소녀와의 섹스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옷을 벗자마자 서로에게 달려들었고, 정신없이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날처럼 꾸미지는 않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나왔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그녀 또래의 평범한 차림이었다.


물론 각각의 옷들이 전부 평범한 브랜드는 아닌  같았지만, 패션 종사자가 아니라면 그냥  꾸며 입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입고 나오면 좋겠어요?"

"아니? 그날 이랑 달라서 물어본 것 뿐이야. 사실 지금처럼 입는게 더 잘 어울려."

스물, 스물 하나의 여자에게는 정석대로 차려입은 세련된 옷차림보다, 가볍게 걸춰입은 모습이 좀 더 어울린다 생각했다.




"그날은..."
수빈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미남이가 요구했어요. 자기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니까 제일 이쁘게 차려입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쓸데 없는 것을 물은 모양이다.
아마도 수빈에게 있어서는 제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아닐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수빈은 내 표정을 금세 읽었다.

"나도 그렇게 신경 안 쓰고 있으니까."


"그래. 그런데 미남인 요즘  지내지?"

그렇게 서로의 사이가 망가져버렸다해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마주칠 때가 있을 것이다.

"잘 지내요. 음... 지나치게 말이죠. 사람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여자들과도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어쩐지 녀석의 속샘을 알 거 같았다.



"그녀석 아직도 나한테 했던 일을 다시 하려는 거죠?"
수빈이 내게 물었다.




"음... 뭐. 그렇지 않을까?"




"망가져버렸네요. 하하."
수빈은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참. 이상하더군요. 걔가 그렇게 됐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있잖아요. 당신의 이걸 만지고 있으면 오히려 미남이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정도에요."

벌거벗은 수빈은 내 자지를 손에 쥐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 저녁 벌써 세 번이나 절정에 이르른 그녀는 휴식을 원했고, 그녀의 휴식은 이런 종류였다.



"처음엔 미남이가 날 조금 피하더라고요. 자기도 미안한 걸 아는 모양이죠."
수빈은 내게 미남과의 관계를 전부 이야기했다.

"그래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요. 나도 이젠 더 이상 그녀석 한테 신경을 안 쓰려고요. 아마도 당신 때문이겠죠? 미남이 그렇게 된 거는? 근데도 나 당신한테 미움 같은  생기지 않네요. 확실히 당신한텐 무슨 미스테리가 있어요."

수빈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잠자리를 함께 한 여자 중에서, 내게 어떤 비상식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아이 뿐인  같다.

"아마 무슨 세뇌 같은 종류일 거 같아요."
수빈은 그 단어를 말하며 씩 웃었다.


음...
상당히 사실에 접근한 추리였다.



"근데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걸 보니까 아주 지독한 종류인 거 같아요."


"사랑이란게 원래 지독한 세뇌와도 같지."

"진짜... 누굴 바보로 알아요?"

"맞다니까."
난 그렇게 발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튼 상관없어요. 이미 거기에 완전히 걸려버린 거 같으니까요."
수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과의 섹스 뿐이 아니라 당신이란 사람이 점점 좋아지는 걸 보면 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확실히 이 아이는 거의 진실을 알고 있다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니까 그게 사랑이야. 원래 몸이 즐거우면 마음도 따라가는 법이지."

"진짜 뻔뻔한 사람이야."
수빈은 웃으며 내게 입을 맞췄다.


"뭐. 이렇게 좋은  보니 세뇌든 무슨 최면이든 상관없어요."


수빈은 다시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지연이가 말 한 것처럼, 나 육노예든 뭐든 할게요. 내게 쾌락을 줘요."
내 물건을 자신의 몸 안으로 집어넣으며 수빈은 그렇게 고백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완전히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또 점점 더 빠져들 것도 알고 있었다.


딱히 그녀가 똑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연이 내게 갖고 있는 애정의 크기를 보면 그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수빈과는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지연과는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만나고 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는 액티브 카드 < 호감 >을 한 번도  활성화하지 않았다.

아마 보라와 함께 지연은 내게서 가장 많은 쾌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연이 날 그렇게나 따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럼 나 이제 들어가볼게요."
늦은 시간 수빈은 돌아가기 싫다는 기색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당신이랑 밤새도록 함께 있고 싶은데, 아버지가 올라와 계신 동안에는 어쩔  없어요."

"아버지가 무서우신 분인가 보네?"

"그렇게 무서운 분은 아니에요. 적어도 나 한테는요. 오히려 꽤 합리적인 분이시죠. 날 믿어주시기도 하고, 적절한 핑계가 있으면 외박이 불가능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좋을 거 같아서요."

"무슨  있어?"

"요즘 신경이 조금 곤두서 있으시거든요. 보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갑자기 보궐 선거는 왜?


"풋!"
수빈이 날 보고 웃었다.

"당신 그렇게 당황한 표정 처음 봐요."

"하하. 그랬어? 뭐. 진짜로 당황했으니까."


"우리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한 거죠?"

"선거라고 하는  보니 정치인?"


"네. 국회의원이요. 혹시 들어본 적 있어요?"


수빈이 말해준 이름은 들어본  없다.
아무래도 내가 정치에 대해 그리 관심은 없어 그럴 것이다.

"그럴 거예요. 나름 2선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렇게 이름을 날리시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가끔은 뉴스에도 나오고 하는데. 풉! 진짜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정치에 관심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  해요."

"하하... 그런데 국회 의원인데 왜 보궐선거를?"


"아버지 지역구에 시장 선거가 있어요. 거기 아버지 사람을 밀어 넣고 싶어하시거든요."

"아아..."
사실은 하나도 모르겠지만 괜히 납득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나도 언젠가 아버지처럼 정치가가 될 생각이었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말이죠."
수빈은 잠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경제학과를 나와 로스쿨을 가서 검사를 십 년 쯤 하면서 이름을 쌓다가 30대 중반 즈음에 선거에 나설 생각이었어요."

"대단하네."
솔직하게 감탄했다. 스무 살의 나이에 그정도로 구체적이고 거창한 꿈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버지도 검사로 20년을 넘게 계셨어요. 검찰을 나오시기 전에는 검사장까지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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