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21. 풍전등화의 회사 생활
뭉클!
그녀의 가슴이 느껴진다.
내 입안에서는 주은의 혀가 갈 곳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묵묵히 서있었다.
코에서는 그녀의 향기가 느껴진다.
좋은데?
나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았다.
주은의 혀를 빨아들였다.
주은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혀를 집어넣었다.
그걸 따라간다.
주은은 마지 못해 내 혀를 받아들였다.
난 마음껏 그 낯선 여자의 입안을 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주은의 얼굴에 가득하던 찌푸렸던 인상이 조금씩 거두어진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움직인다.
주은의 팔이 내 몸을 감싸왔다.
드디어 설정 카드 < 민감 >이 제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 키스를 나누었다.
여전히 저항감은 있었지만, 그녀도 틀림없이 즐기고 있었다.
"아아..."
키스가 끝나고 주은은 정신이 드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땠어요? 남자 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랑 키스를 하니까?"
"아!"
당황한 주은이 고개를 돌려 남자 친구의 안색을 살폈다.
맙소사.
남자 친구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녀와 날 바라보다가 정 팀장의 가슴을 바라보다가 정신이 없다.
더군다나 어째서인지 한 손이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슬며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익!"
주은이 짜증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내게 키스를 했다.
아까와는 달리 무척이나 정렬적인 키스였다.
나로서야 반항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정신 없이 키스를 나누었다.
키스를 나누는 동안 발기한 내 물건이 주은의 배를 몇 번이나 찔렀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내 상체를 끌어안고 키스를 이어갈 뿐이다.
어째서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바보 같은 남자 친구에게 화가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복수는 이런 것이었다.
난 내친 김에 손을 내려 그녀의 엉덩이를 쥐었다.
살짝 그녀의 몸이 움찔했지만, 키스를 끝내거나 내 손을 치우려 하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은의 엉덩이를 마음껏 만지며 키스를 즐겼다.
한참만에 그녀가 키스를 마치고 내 위에서 일어났다.
"주은씨 대단하네."
정 팀장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주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옆을 지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앉기 전에 남자 친구를 매섭게 내려보고 고개를 홱 돌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녀가 앉아있던 내 허벅지가 축축하다.
아마 누군가가 무언가를 흘린 모양이다.
"마셔."
주은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그래."
남자는 실실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럼 다음 벌친은 뭔가요?"
주은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었다.
"음... 다음이라...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해봤네..."
정 팀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생각 없거든요!"
당연하지.
그 꼴을 당하고 한 푼도 손에 넣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럼 우리 자리를 옮길까?"
정 팀장이 다시 제안했다.
"어디로요?"
"음. 좀 더 아늑한 곳으로?"
그 순간 정 팀장과 주은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어때? 그래도 해볼 거야?
흥! 그래. 어디 끝까지 해보자구요.
두 여자의 얼굴엔 그런 의욕이 서려있었다.
"그럴까요? 우리?"
남자가 속없이 먼저 대답했다.
아마 그 남자에겐 무얼 요구해도 즐겁게 들어줄 태세였다.
주은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겨야지."
그거 하나만은 틀림없었다.
남자는 즐거웠고, 또 게임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주은은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흔들었다.
오늘 따라 이상한 이 남자를 볼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운 것같았다.
"좋아요. 자리. 옮겨요."
주은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모두 옷을 입읍시다."
술집을 나와 우리는 가까운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술도 몇 병 사고, 안주거리도 샀다.
주은의 남자 친구가 자기는 스팸이 좋다며 하나 고르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여자 친구의 짜증을 유발했다.
"주은씨는 뭐 좋아해? 기왕 노는 거 얼굴 풀고 우리 기분 좋게 놀자."
정 팀장은 사람을 긁는 재주가 탁월했다.
하기는 나도 지난 두 달 꽤 짜증이 났었지.
"그래요. 그럼."
주은은 이빨을 갈며 냉장고에서 불닭과 매운 곱창 따위의 안주를 몇 개 정도 골랐다.
모텔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두 개의 방을 잡고 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럼 모두 다시 옷을 벗어야 하겠죠."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주은의 남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즐거워지는 사탕을 먹으면 사람이 멍청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은 그대로 남아있고, 머리는 돌아가지만, 그저 마냥 즐겁게 느껴지고 세상 모든 일이 낙관적으로 생각될 뿐이다.
남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게임에 이기고 싶은 의지도 있었다.
게임은 계속 되어야 했고, 그러려면 아까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옷은 천천히 벗죠."
정 팀장이 말했다.
"우선 아까의 상금은 다시 꺼내 놓을게요."
난 3,200만 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돈이 가득 들은 가방도 그 옆에 놓았다.
주은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장치이다.
"옷을 벗는 것보다 다음 번에 그쪽 팀이 지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보죠."
정 팀장이 주은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뭔데요? 생각한 게 있다면 말해봐요."
주은이 도발적으로 물어왔다.
옷을 입고 있으니 조금 마음이 안정된 모양이다.
"역시 그것 밖에 없겠죠?"
정 팀장이 이번엔 주은의 남자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지면 그쪽 중 한 사람이 우리랑 섹스를 해요. 어때요?"
정 팀장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풀며 말했다.
"어... 음... 그래요. 그럼"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흔쾌히 대답했다.
"너..."
주은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걱정마. 이번엔 이길 수 있을 거야. 계속 져왔잖아?"
남자는 믿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면?"
주은이 물었다.
"그러면 다음 번에 이겨야지. 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지 않아?"
남자의 단호한 말에 주은이 묘한 표정이 되었다.
언젠가는 이긴다.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계속 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번은 이기겠지.
잠시 주은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질 경우 해야 할 벌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은은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가 남자 친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주은이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정 팀장이 테이블 위에 사온 술을 내려놓고, 안주를 펼쳤다.
그리고 주은의 남자 친구가 쪼르르 다가와 그녀를 돕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주은의 미간에 다시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창욱씨는 와인? 위스키?"
정 팀장은 주은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전 와인이 좋겠어요. 취기가 조금 올라서요."
기프트 카드 < 회복약 >이 < 즐거워지는 사탕 >의 효과까지 없애줄지 몰라 그에게는 가짜 회복약을 주었다.
그러니 그가 느끼는 취기는 진짜일 것이다.
"그래요. 그럼."
정 팀장이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고, 남자가 웃으며 그걸 받았다.
주은은 다시 정 팀장과 남자 친구의 손이 포개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씨바...'
주은은 입을 열어 소리 없이 한 마디 내뱉었다.
"해요. 그럼."
그리고 날 바라보며 자신의 결정을 알려왔다.
"좋아요. 근데 우리 술 한 잔 마시고 하자. 그럴 여유는 있지?"
한껏 여유가 넘치는 정 팀장이 나 대신 주은의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해요. 전 위스키로 할래요. 가득 따라 주세요."
< 회복약 > 때문에 취기가 싹 가셔버린 주은은 다시 조금 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 팀장이 그녀를 위해 정말 가득 따라 주었고, 주은은 의자에 앉아 그걸 마시기 시작했다.
"자기는 뭘로 할래?"
정 팀장의 목소리엔 애적이 가득했다.
연기일지, 아니면 오늘의 통쾌감 때문일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위스키로 하죠."
정 팀장이 내게 위스키를 따라 주었고, 자신도 한 잔 따랐다.
우리는 테이블 앞에 앉거나 서서 각자의 잔을 비웠다.
"그런데 창욱씨 키도 꽤 크다. 180은 훌쩍 넘겠어."
정 팀장은 아직 서있는 남자 옆에 자리잡고 앉아 고개를 들고 물어보았다.
"예.185예요. 근데 영웅씨는 저보다도 꽤 크시네요."
정 팀장은 속없이 즐거워만 하는 남자의 허벅지를 슬쩍 잡았다.
주은은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남자 친구에게 관심을 끊으려는 듯 그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컵에 담긴 술을 조금씩 비워가며 테이블에 놓여진 돈 뭉치를 한 번 바라보고,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기분이 안 좋아보여요."
그녀에게 한 마디 던져보았다.
"뭐. 좀 그래요."
주은은 고개를 들어 날 한 번 보고는 다시 훽 돌려버린다.
어쩐지 얼굴이 붉어진 느낌이다.
"난 그냥 재미있게 놀려고 시작했는데, 게임이 꽤 과격해졌네요."
내 말에도 주은은 묵묵부답이다.
"괜한 짓을 한건가? 나랑 그렇게 해서 기분 많이 나빴나 봐요."
"당신 때문에 그런 거 아녜요."
주은이 고개를 돌려 정 팀장과 수다를 나누는 남자 친구를 노려보았다.
"그럼 여기서 그만 둘까?"
난 그녀를 슬쩍 떠보았다.
"포기 안 한다니까요."
주은이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입을 열고 내게 도전적으로 말했다.
"알아요. 포기 하지 않을 거. 그리고 포기 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난 사실 지금 굉장히 기대하고 있거든."
주은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가 내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가줘주기를 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날 몸서리치게 싫어했으면 좋겠다.
"흥. 아무리 도발을 해 보세요. 내가 포기하는지."
주은은 다시 그 매운 곱창을 잔뜩 긁어 집어가 입에 가득 넣고 꾸역꾸역 씹어 먹었다.
"그럼 이제 적당히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정 팀장이 주은 옆으로 와서 다시 긁기 시작했다.
"예. 좋아요. 엄청."
억지로 기운을 내서 강한척 해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역력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시작해보죠."
"우리가 먼저 할 게요."
주은이 정 팀장에게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받아 위로 던졌다.
앞.
그녀의 남자 친구가 동전을 던졌다.
다시 앞!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동전은 이제 정 팀장에게 넘어왔다.
"긴장되네..."
그녀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동전 한 번 던지는 것에 무려 6,400만 원이 걸려있다.
그녀가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동전을 던졌다.
뒤!
"잘 해봐요. 영웅씨."
정 팀장에 내게 동전을 건내주었다.
내가 동전을 던졌다.
뒤!
"하아..."
"아!"
아쉬운 탄식 소리는 그 두 남녀에게서 동시에 터져나왔다.
두 사람 모두 게임의 승리를 바라는 것은 조금의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다시 할게요."
주은 팀이 동전을 던졌다.
앞과 뒤
주은은 흙빛이 되었다.
"쯧!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어."
남자는 즐거웠다.
우리가 동전을 던졌다.
앞과 뒤.
두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주은 팀이 동전을 던지고, 우리가 따라 던졌다.
이번에도 동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또 동점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회를 거듭할 때마다 동점이 나왔다.
그 때마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의 얼굴이 수시로 바뀌었다.
물론 남자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표정이었고, 정 팀장과 주은은 계속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정 팀장이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요청했다.
"하아..."
주은은 속이 타는지 컵에 생수를 가득 부어 전부 비워버렸다.
남자는 오징어를 찢어 질겅질겅 씹었다.
"영웅씨는 긴장도 안 돼?"
정 팀장이 내게 물었다.
"긴장은요. 뭐. 어차피 여기서 져도 주은씨 그대로 포기 안 할 걸요."
주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걸까? 정말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다.
"진짜예요? 주은씨?"
"모르겠어요."
주은이 대답했다.
"계속 해야지. 이기면 두 배인데."
남자 친구가 오징어를 씹으며 말했다.
"진짜 욕심들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정 팀장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그만큼 큰 걸 걸었잖아요."
주은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남자는 아직 즐거운 기분이라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사실상 두 사람의 관계는 굉장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