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21. 풍전등화의 회사 생활
"두 배씩이면 엄청 큰 거 알죠? 1. 2. 4. 8. 16. 32. 64. 128...만약에 일곱 번만 이겨도 일억이 넘어요. "
주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다시 물어왔다.
솔직히 믿기 어려울만큼 큰 금액이다.
그래서 내가 한 규칙에 들어있는 사소한 함정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뭐 지금 있는 돈만으로도 그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요.
뭐.
어때요? 재미있겠죠?"
난 다시 가방에서 몇 뭉치의 돈다발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고 있으니 어쩐지 정말 돈지랄을 하고 싶어하는 졸부가 된 기분이다.
"더 필요하면 찾아오면... 아니. 송금해드릴 수도 있구요."
그리고도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면 우리만 이득이잖아요?"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뭐. 세상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죠. 나도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큰 돈이 생겼는데, 두 분이라고 그런 운이 없으리라는 법 있어요?"
"진짜 돈 자랑 한 번 제대로 하실 모양이네요."
주은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돈 자랑이라기보다는 돈 지랄이라 말하고 싶은 것을 순화한 모양이다.
"있잖아요. 돈이 생기고 나니까 알게 된 건데요.
돈자랑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난 주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진심을 뚫어보겠다는 듯 날 빤히 바라본다.
"물론 천박한 거 나도 알아요. 근데 뭐 어때요?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지?"
내 말에 주은은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내게 동의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서 그녀야말로 돈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시절부터 유학 생활을 할 때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돈이 제일이다.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잃어버린 사람일 것이다.
"뭐. 그렇게 돈을 쓰고 싶으시면 도와드릴 수 있죠."
그녀의 눈에는 차츰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아직도 어리둥절한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근데 자기야. 그렇게 상금만 있으면 너무 재미 없잖아?"
하지만 정 팀장이 태클을 걸었다.
"이기면 큰 돈을 벌면서, 지면 그냥 술 한 잔 마시고 끝내면 너무 불공평해."
"그건 그러내요."
남자 친구가 그렇게 정 팀장을 거들었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은이 그남자의 허벅지를 꼬집거나 때린 모양이다.
주은은 이 난데 없는 돈 자랑에 한 몫을 보려했는데, 남자 친구 때문에 망쳐버릴까 두려운 모양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정 팀장에 대한 비밀이라는 것이 겨우 불륜에 대한 것이다. 그걸로 협박을 해서 도대체 얼마나 손에 넣을 것인가?
하지만 내가 제안한 게임에서 이기면 7번의 승리 만으로 엄청난 거액을 손에 넣게 된다.
"그지? 영웅씨가 손이 커도 이건 좀 그래."
정 팀장이 다시 태클을 걸었다.
"그러면 벌칙 하나 넣어요."
주은은 여기서 내가 게임을 취소할까 두려운지 화급하게 먼저 벌칙을 제안했다.
"그럼 옷이라도 하나씩 벗을까?"
정 팀장이 웃으며 벌칙을 정했다. 주은이 말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추가할 내용이었다.
"음..."
주은이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남자는 은근슬쩍 다시 정 팀장을 바라본다.
"대신 우리가 지면 우리도 벗을게. 한 번에 한 개씩이야. 자기들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하면 되잖아?"
정 팀장이 출구를 열어준다.
그리고 주은이 남자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뭐. 들어보지 않아도,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을 벗을 때까지만 하자는 정도였을 것이다.
남자가 뭐라 말하고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주은이 꼬집기라도 한 모양이다.
남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어차피 위험은 거의 없다.
아무때라도, 그러니까 두세 판만 이기고 나면 판 돈이 수백만 원이 될 것이다.
거기서 멈추면 그만이다.
그녀의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결정에는 지금까지 그녀들이 연거푸 이겨온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미 승기는 그녀에게 있었다.
이런 기회를, 그것도 아무런 손해도 발생하지 않을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멍청한 일이다.
"좋아요. 그럼. 우리 해봐요."
나름 필승 전략을 만든 모양이다.
"그럼 내가 먼저 던질게요."
정 팀장이 주은의 남자 친구에게서 오백원 동전을 받아가며 말했다.
매번 정 팀장이 그에게서 동전을 받아올 때마다, 슬쩍 손을 만지거나, 가볍게 스치기라도 해왔기 때문에 남자는 그때마다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참! 우리 인간적으로 양말을 안 치는 거다. 그리고 포기해도 벗을 건 벗고 포기하기."
동전을 던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룰을 하나 덧붙였다.
"그래요. 그럼."
아주 잠깐 주은이 고민을 하다, 흔쾌히 허락했다.
그 정도라면 대단한 핸디캡도 아니다.
정 팀장이 동전을 던졌고, 앞 면이 나왔다.
내가 동전을 받아 다시 던졌고, 뒷 면이 나왔다.
"아! 진짜 오늘 우리 왜이렇게 서로 않 맞아?"
정 팀장이 서운함을 금치 못했다.
조금전까지와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녀는 이 게임의 승부가 내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 게임에서 지면 정말로 내가 큰 돈을 잃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방 팀이 던졌다.
주은과 남자 모두 뒷면이 나온다.
"예에!!"
남자도 이기는 게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주먹을 흔들며 아주 행복해한다.
"역시 우린 엄청 잘 맞는 거 같아."
남자 친구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주은이 말했다.
"그럼 약속대로 우선 100만 원입니다."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놓고, 술을 마셨다.
"그럼 누가 벗을 건대요?"
주은이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뭐. 남자인 제가 벗어야죠. 어떻게 팀장님을 부끄럽게 만들겠어요?"
난 자켓을 벗으며 호기있게 말했다.
"겨우 자켓 벗는 걸로 뭘."
주은이 한 마디 했다.
"하하. 그러게요."
그리고 다음 판도 우리는 또 졌다.
"아! 또 졌네..."
"정 팀장님한테 내가 너무 안 어울리나 봐요."
테이블 위에 다시 100만 원을 얹어 200만 원으로 만들며 나도 볼맨 소리를 했다.
"이번에도 영웅씨가 벗는 거죠?"
"그래야죠. 지혜씨는 하나만 벗어도 너무 야해진단 말이죠."
내 말에 남자는 다시 정 팀장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전에 없던 열기가 솟아올랐다.
"제가 벗기는 하는데, 너무 흉하다고 욕은 마세요."
난 셔츠를 벗으며 부끄러운척 해보았다.
"뭐. 몸이 좋으시네요."
주은이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했다.
"그지? 영웅씨는 벗어야 제 멋이 난다니까. 진짜 이건 나만 아는데... 킥!"
제법 취기가 오른 정 팀장은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적당하다. 그녀가 취한 모습을 보일수록 상대방이 경각심을 덜 것이다.
다시 동전을 던졌고, 이번엔 그쪽이 졌다.
"자기가 벗어."
주은이 당연하다는 듯 남자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
남자가 셔츠를 벗었다.
"창욱씨도 몸이 좋다. 얼굴만 잘 생긴게 아니라 몸도 좋구나. 그래서 주은씨가 그렇게 좋아하나 보다."
정 팀장이 대놓고 남자의 칭찬을 했다.
주은은 그녀의 칭찬을 어떻게 받아드려야할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이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데, 오늘 정 팀장이 마구 웃음을 흘리는 것을 모를리 없다.
"그럼요. 우리 오빠가 얼마나 이쁜데요."
주은이 선택한 방법은 남자 친구의 벌거벗은 상체를 살짝 안아주며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게임이 이어졌다.
우리가 졌다.
"왜 이래? 우리?"
정 팀장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잔뜩 서려있다.
"그러게요. 아마 오늘 운이 없나 봐요."
난 바지를 벗으며 말하고 테이블 위에 다시 200만 원을 놓았다. 이제 그녀들은 400만 원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이제 그만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남자가 주은에게 물었다.
정 팀장의 벗은 몸을 보고싶다는 욕망과 미안함 사이에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다.
"진짜로 더 감당할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주은이 슬쩍 날 떠본다. 어딘지 도발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에이. 겨우 그정도를 뭘요. 저 친구들이랑 하루에 그 열 배도 훨씬 더 넘게 쓴 적도 많아요. 그게 뭐 얼마나 된다고."
이제는 꽤 취한 모습을 보이며 난 다시 돈자랑을 했다.
주은의 눈이 빛났다.
"그럼 계속 가요!"
다시 한 번 동전을 던졌다.
"자기가 벗어."
주은이 냉철하게 남자 친구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어..."
남자 친구는 쭈삣거리며 바지를 벗었다.
이제 이 방안 남자들은 각기 팬티 하나씩만 입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며 동전을 던졌다.
"이번엔 내가 벗을게."
정 팀장은 팬티 하나만 남겨둔 날 발가벗기기 미안한지 입고 있던 블라우스를 벗었다.
출렁!
압도적인 가슴이 그 본색을 드러냈다.
브래지어로는 도저히 그 멋진 가슴이 다 가려지지 않는다.
"아얏!"
남자가 정 팀장의 가슴을 넋놓고 바라보다 비명을 질렀다.
주은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매서운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자기가 그렇게 보면 팀장님이 부끄러워지잖아?"
"마. 맞다. 죄송해요."
남자가 정 팀장에게서 눈을 피하며 사과했다.
"괜찮아요. 뭐. 어때. 다 벗은 것도 아닌데?"
정 팀장이 쿨하게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난 테이블 위에 400만 원을 추가했다.
이제 판돈은 800만 원이 되었다.
다시 졌다.
"아.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네..."
정 팀장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제가 벗겠습니다."
하나 남은 팬티를 벗기 위해 일어나려 하는데, 정 팀장이 내 팔을 잡았다.
"아냐. 이건 위엣사람이 책임져야지."
그러고는 브래지어를 훌떡 벗어버렸다.
"정팀장님!"
가장 놀란 사람은 주은이었다.
"스커트도 있고, 스타킹도 있잖아요?"
"응? 맞다! 나 깜빡 잊었다. 헤헤..."
정 팀장은 누가 봐도 술에 취해 있었다.
"계속 하실 수 있으세요?"
주은은 이제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번을 하든 승리의 여신은 자기 편이라 믿는 모양이다.
"뭐. 얼마든지요."
난 웃으며 다시 800만 원을 얹었다.
이제 테이블 위에 올라간 돈은 1,600만 원.
주은의 눈이 점점 더 불타오른다.
"나 잠깐 물 한 잔 마시고..."
정 팀장이 취기를 이기지 못하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이거 마셔보세요."
난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정 팀장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술 깨는 데에는 최고에요. 러시아에서 만든 건데, 엄청 비싼 거예요."
"그래?"
정 팀장이 유리병에 들어있는 액체를 한 입에 꿀꺽 삼켰다.
"으응? 정말 좀 깨는 거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 팀장의 얼굴에 붉은 기가 조금 사라졌다.
"와! 그렇게 잘 깨는 약이 있어요?"
주은이 물어왔다.
"약은 아니고, 뭔가 비방인가봐요. 언제 술자리에서 너무 힘들어하는데, 아는 사람이 챙겨주더라고요."
아는 사람은 아니고 기프트 카드로 받은 < 회복약 >이다.
모두 20병이 들어있었고, 고주망태가 되어있어도 한 병이면 아무런 숙취 없이 정신을 차릴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처음으로 써본 건데, 정 팀장의 모습을 보니 효과는 믿을만 해 보인다.
"두 분도 너무 취해서 힘들면 말해요."
"뭐. 술은 두 분이 다 드셔놓고..."
주은은 살짝 아쉬운 표정이다. 상대가 취해 있어야 이기기 쉽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정신을 차리면 게임을 끝낼지도 모른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웅씨는 안 마셔도 돼?"
정신을 차린 정 팀장이 물었다.
"난 아직 괜찮아요."
그 말에 안도를 표한 것은 주은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남자는 고개를 내게로 향하고 힐긋 힐긋 정 팀장의 가슴을 훔쳐보았다.
주은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거액에 자꾸 눈길이 가는지, 더이상 남자 친구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휴우... 진짜 신기하다. 정신이 말짱해졌어."
정 팀장이 주은의 남자 친구에게서 동전을 받으며 말했다.
"자. 이제 정신도 차렸으니, 이젠 우리가 이길 차례네!"
졌다.
"어... 음... 계속 할 거예요?"
주은이 물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돈은 무려 3,200만 원.
그녀로서는 여기서 멈춰도 딱히 서운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내 가방 안에 아직 1억도 넘어보이는 돈이 있는 것을 보았다.
"당연하죠. 계속 지니까 오히려 더 재미있어지는데요? 이제부터 이겨서 두 사람을 전부 벗겨버릴 생각이에요. 어때요? 계속 할 건가요?"
난 오히려 그녀를 도발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사실은 여기가 제일 고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