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21. 풍전등화의 회사 생활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입 벌려봐요."
내 말에 정 팀장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내가 무얼 줄 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입에 즐거워지는 사탕을 하나 넣어주었더니 정 팀장은 벌써 행복해진 얼굴로 입안에서 사탕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즐거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그녀의 목에 목줄을 메어주고 즐거운 강아지 놀이를 시작했다.
정 팀장은 기꺼운 마음으로 내가 시키는 것은 전부 따랐다.
즐거워지는 사탕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어떤 불안감도, 불행도 삽시간에 사라지고 온통 세상이 즐거울 뿐이다.
엉덩이를 맞아도 개처럼 바닥을 굴러도 마냥 즐거워 한다.
정말로 충성스러운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었다.
"하아... 이거... 진짜로 중독될 거 같아."
즐거움의 시간이 지나가도 여전히 여운은 남는 모양이다.
정 팀장은 조금 몽롱한 눈으로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내 발을 핥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말이 맞을 것이다.
마약 같은 약물의 중독성은 아니지만, 먹고 있는 동안의 즐거움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터이다.
때문에 난 처음 시험 삼아 한 번 먹고 난 뒤로는 다시는 입에 넣지 않았다.
또 딱히 그 사탕으로 인위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실 사탕이 아니어도 내 삶은 충분히 즐거웠기에, 사탕에 의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 팀장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는 재정적인 압박감과 회사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도덕적인 불편함, 그리고 이젠 그 맹랑한 여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불쾌감까지 더해져서 언제 붕괴되어도 이상치 않을 상태였다.
그런 정 팀장에게 즐거워지는 사탕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굉장한 위로가 된 듯 하다.
"이거... 많이 위험한 건 아니지?"
"걱정 안 해도 되요. 시중에 나도는 약물 따위와는 다른 거니까."
난 마치 어두운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밀매업자 같은 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아... 자기 말이 맞겠지."
정 팀장은 그다지 믿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누구라도 그럴 테지.
하지만 많은 중독자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사탕이 주는 쾌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사탕은 쉽게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당장 이걸 사용할 대상은 정 팀장 뿐이다.
정 팀장이 주은을 만나고 온 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주은이라는 여자는 매일 같이 정 팀장에게 다가왔다.
이미 약점을 단단히 잡힌 정 팀장은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애가 슬슬 속셈을 드러내는데 어쩌지?"
정 팀장이 불쾌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뭘 원하는데요?"
"이번달에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왔는데, 부모님이랑 요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메꾸기 힐들 것 같다며 걱정을 하더라고."
"결국 돈이었네요."
뭐. 예상은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따라다니며 위험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대겨 협박을 위한 것이다.
"내가 말을 피했더니, 계속 그 얘기를 꺼내더라. 그러면서도 나한테 돈을 달라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결국 어쩔 수 없이 빌려줄까 하고 물어봤지."
"그래서요?"
"어머! 정말요? 감사합니다. 이러드라니까... 내 참... 그래서 빌려주면 언제 갚을 수 있냐고 했지. 다음 달에 바로 드릴게요. 라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주은은 그렇게 애매하게 돈을 뜯어가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빌려주기로 한 거로군요."
"그래. 카드값이 450만 원이나 나왔더라. 무슨 카드를 그렇게 쓰냐 물었더니, 이번 달엔 조금 쓴 거래. 가방 하나만 사도 몇백만 원인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정 팀장도 여자이니 명품 가방은 몇 개 가진 것 같다.
하지만 주은이라는 여자는 매일 다른 가방을 들고 출근한단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일 정말 그런 대단한 집안의 여식이라면 카드값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이런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지닌 그 대단한 컬렉션은 또 어지간한 부자집 딸내미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수준이다.
"뭐... 어쨌든 그거야 그렇다 쳐도. 그 애가 물어보더라고. 영웅씨랑은 왜 그렇게 가깝게 지내냐고."
정 팀장의 눈이 빛이 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지. 그년 나랑 대화할 때 전부 녹음이라도 하고 있을 지도 몰라."
정 팀장도 그녀와의 대화는 전부 녹음하고 있다고 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도 그녀는 주은이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려 노력해보았다.
하지만 주은은 여우같이 피해다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옆에서 보기에는 무척이나 화기애애해 보였겠지만, 사실은 서로 상대의 약점을 잡아내기 위한 전력 투쟁이었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한 번 돈을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텐데?"
"그래서 말인데..."
정 팀장이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봤었지? 그거 혹시 흥신소 같은 걸 이용한 거야?"
"왜요? 주은이란 여자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뒤를 쫓든지 뭘 어쩌든지 그 계집애도 뭔가 약점이 하나 쯤은 있을 거 아냐?"
분노한 정 팀장은 아예 주은의 약점을 찾거나 안 되면 약점을 만들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려는 모양이다.
"비용이 많이 들겠지?"
사실 그녀의 형편은 그런 곳에 낭비를 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주은에게 꽤 뜯기지 않았던가?
"생각보다 많이 들 거예요. 그런 사람들 하루에 비용이 백만 원은 하더군요."
"그렇겠지? 하아... 그럼 됐어. 다시 생각 좀 해볼게."
당장 돈 걱정부터 밀려오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리베이트로 챙긴 돈이 있기는 했지만, 권 이사와 배분율이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마 기껏해야 천만 원이나 손에 넣은 모양이다.
물론 두어 달 사이에 천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빚과 주식에서 본 손해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겠지.
그녀가 믿고 있는 것은 권 이사의 계획대로 투자가 들어오고 사업 규모를 키워, 중간에서 충분히 남겨먹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아마 다시 리베이트를 받아 손에 얼마라도 생기면 알아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웅씨 무서운 사람이야. 왜 내가 몰랐을까?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정 팀장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회한이 스쳐지나갔다.
정 팀장은 내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는 모양이다.
여전히 난 그녀의 목줄을 거머쥐고 있었고,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약까지 제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 그녀는 날 아주 위험한 곳에 서슴지 않고 발을 담그는 그런 종류의 남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만일 설정 카드 < 성역 >이 아니었다면, 주은에게 하고 있는 이상의 원한을 내게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 대해서는 그런 짓은 엄두도 내질 못한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된 거지?"
빚은 잔뜩 쌓여있고, 이제 자신을 협박하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
그런 한탄이 나올만도 하다.
"의뢰할 게 있습니다."
정 팀장은 비용 문제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그녀가 건드린 것은 정 팀장 뿐이 아니다.
명백하게 그녀의 입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나였다.
탐정 사무소에 의뢰를 한 다음날 주은을 상대로 캐스팅 카드 < 여배우 >를 사용하고, 액티브 카드 < 모니터 >를 활성화시켰다.
이제 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주 편안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본다.
사실 탐정 사무실을 이용하는 것보다 이쪽이 상대의 비밀을 파해치기에는 나은 점이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금융 정보나, 가정사까지 전부 알아내는 것은 어렵고, 또 시간도 많이 걸리니 그다지 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하루종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며, 다른 일을 하는 것은 꽤 귀찮은 일이었다.
그녀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마다 듣고,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엿듣고, 메시지를 훔쳐 보는 것도 금세 질력이 나버린다.
그러니까 절대 오래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딱히 대단한 비밀 따위는 찾기 어려웠다.
그냥 평범한 여자였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잠깐 짬이 나면 다른 여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뭐. 남들보다 열심히 말을 하고 다니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하겠다.
정말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인맥을 쌓는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루에 두어 번 정도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름 애정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난 그녀를 지켜보았다.
- 요청하신 의뢰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의뢰한 자료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사흘 뒤의 일이었다.
이주은 26세.
경기도 부성 여고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칼리지 수료
서울 아성 디자인 학원 수료
자료에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그녀의 학력에 관한 사항들이다.
흠...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다.
미국의 유명 디자인 스쿨을 나왔다더니, 커뮤니티 칼리지라...
그것도 졸업이 아니고 수료이다.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는 대학이라기보다는 성인들을 위한 2년제 교육 기관으로 그리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배우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 거길 수료만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디자인 학원을 다녔다면, 그녀가 말하는 경력은 전부 허위라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가 입사하며 제출한 서류들도 전부 가짜라는 말이겠지?
그리고 다음은 그녀의 가족 상황.
부모는 모두 생존해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것처럼 강남의 재력가는 아닌 모양이다.
부친은 부천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세금 신고로 추정해보면 연 매출이 1억 원이 되지 않는 영세 사업자이다.
수성 실업 경영. 5년전 폐업.
파산 신청.
하지만 5년전까지는 강남에 살았던 것은 맞는 모양이다.
사업을 했던 것도 맞고.
하지만 사업에 실패를 해서 서울을 떠나 그렇게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주은의 명품에 대한 욕심과 그녀의 콜렉션이 조금 납득이 간다.
아마 그것들은 한창 잘 나갈때의 산물인 모양이다.
응?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방 중에는 요즘 물건이 더 많은 것 같았는데?
주은이란 여자가 정 팀장을 협박하고부터는 그녀를 눈여겨 보았다.
그녀는 단 하루라도 전날과 같은 가방을 들지 않았고, 대개는 최신 유행의 디자인이었다.
그녀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없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알수록 모르겠는 여자이다.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적혀있는 사람이 있다.
남자 친구 : 최창욱 28세
공무원 시험 수험생 3년차.
교제 기간 3년.
흠. 생긴 것으로 보아 남자를 꽤 갈아치울 것 같았는데, 이건 의외였다.
하기는 통화를 엿들었을 때에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애정이 있다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명품에 집착하는 여자 치고는 그렇게 대단한 남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작은 의문이 하나 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산과 금융에 대한 내용들.
현재 강남의 오피스텔에 거주중.
이것도 그녀가 하고 다니던 말과 비슷하다.
그런데 오피스텔의 월세가 100만 원을 넘어간다.
도대체 급여에서 월세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얼마나 된다고?
금융 자산 3,200만 원.
그런 것 치고는 모아둔 돈이 조금 있다.
그러니까 카드 값이 모자라 정 팀장에게 돈을 빌려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뭐. 그거야 정 팀장을 협박하는 목적이 돈이니까 그럴 수야 있다 해도, 여전히 납득은 가지 않는다.
그외에는 최근 1년 동안의 금융 기록이 적혀있다.
딱히 대단한 내용은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생활비를 그리 많이 쓰지는 않는 모양이다.
생활비로 보이는 항목은 거의 없고, 카드 대금도 그 나이 대 치고는 몇 푼 되지 않는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인했다.
정 팀장에게 카드값이 모자라다던 말은 거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