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20. 미소녀와 미소녀가 나를 차지하기 위해 엉망진창이 되던 밤
"음... 아저씨한테 독점적인 여자 친구가 될 수 없다면 본질적으로는 지연이 말이 맞아요. 정액 받이."
갑자기 수빈이 지연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너까지 왜 그러니..."
어쩐지 상황은 점점 더 내 손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건 너무 하잖아? 내가 뭐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니 조금 억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애처롭게 항변을 해 보았다.
"만약에 누군가 마약으로 쾌락을 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착취한다면 사실상 그건 노예 상태나 다름 없어요.
우리도 마찬가지구요."
자! 잠깐?
난 열심히 주변을 둘러본다.
다행이 이곳은 서울숲 안에서도 꽤나 외진 곳이라 사람의 발길이 적은 편이다.
"저기. 우리 위험한 이야기는 삼가는 게 어떨까? "
"약물 같은 것은 아니에요. 확인해 봤어요. 내 몸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게 확실해요. 그러니까 내게 일어났던 일은 전부 당신이 원인이라는 거죠. 물론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요."
수빈이 말을 하는 동안 난 그 어느때보다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과연 이 여자와 일을 저지른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심으로 난 이 여자가 점점 두려워지고 있었다.
"마약은이 아니지만, 효과는 비슷해요.
더군다나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독점적인 재화로 우릴 마음대로 사용하니 절대 공정한 관계는 아니지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구 피곤해진다.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
뭐든지 원인을 파악해야 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해야 만족하는 사람들이.
물론 대개 똑똑한 사람들이겠지만, 주변에서는 그저 피곤할 뿐이다.
"뭐. 그렇다고 그 상태에 저항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사실 자원이라는 것도 맞으니까. 그러니까 자발적인 노예 정도가 맞겠죠."
그녀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난 다시 주변을 돌아봐야 했다.
마약에 이어 노예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렇게 앳된 소녀들이 나처럼 험악한 남자 앞에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누가 보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건 죄가 없어도 무조건 유죄가 나올 상황이다.
"언니는 노예해. 난 육변기로 만족해."
지연이 한 마디 던졌다.
하아... 그녀의 한 마디가 수빈의 긴 설명보다 훨씬 더 섬찟하다.
"하아... 솔직히 말해보면, 내가 너희한테 착취당하는 정액 아니야?"
왠지 억울한 마음에 항변을 해보았다.
"그건 절대 아니죠.
아저씨가 착취를 당하고, 우리가 사용인이라면, 우리에게 어떤 선택 권한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아저씨는 다른 여자를 얼마든지 선택하고, 원지 않으면 우릴 쓰다 버린 변기처럼 버릴 수 있지만, 우리한텐 선택권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노예 맞아요."
그녀의 말을 절반도 듣기 전에 이미 벌써 나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기엔 정말 억울했다.
"왜 선택권이 없어. 너희도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남자 만날 수도 있잖아."
"그건 옵션에 없어요. 너무나도 당연하죠.
우린 아저씨가 주는 쾌락이 필요하고, 혹시라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가 아저씨한테 미움을 받는다면, 다른 여자에 비해 우선 순위가 밀릴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죠.
아저씨가 엄청나게 마음이 넓은 남자도 아니고 말예요. 뭐. 평균 이하일 거라고 생각되니 더욱 그렇구요."
이 여자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항복을 했습니다.
"뭐 그런 태도라 해서 입장은 절대 바뀌지 안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해봐야 노예냐 육변기냐 하는 정도겠네요."
수빈의 가장 특별한 점은 굉장한 미녀라는 것이 아니라, 총명한 머리일 것이다.
도저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쩐지 앞날이 두려워졌다.
"우와! 언니 말 되게 잘한다."
지연이 수빈의 말에 탄복했다.
"언니는 아는 게 정말 많은가 봐. 아는 게 많으니까 먹고싶은 것도 많겠다."
먹이는 거지?
"난 아저씨 꼬추만 먹으면 충분한데."
나도 먹이는 거지?
"한때는 먹는 거에도 관심이 많았던 때가 있었어. 그래서 이것저것 먹으러 많이 다녔었지. 그땐 시간이 많아 먹고 싶은 걸 발견하면 20시간 씩 비행기를 타고 가서 먹기도 했었어. 그렇게 한참 탐닉하고 나니까 이젠 딱히 먹고 싶은 거 없어."
수빈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런데 먹을 거 때문에 20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갔다는 소리에 조금 놀랐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재력도 대단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참지 않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저씨가 벌써 질려한다."
지연은 수빈의 말의 함의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걸 찾아내 상대의 신경을 거스르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두 여자 아이들의 말싸움을 듣고 있으니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내가 무슨 꼴인가 싶기도 했다.
"응? 그런 거였어요"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수빈은 슬쩍 날 돌아보았다.
난 억지로 그녀에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괜히 여기서 누군가의 편을 들었다가는 피곤해질 게 분명하기에 될 수 있다면 입을 조금이라도 덜 여는 편이 낫다.
"확실히 넌 이 사람한테 이쁨을 많이 받는 거 같구나."
패배를 인정한 걸까?
"역시 아저씨들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여지없이 틀렸다.
"맞아. 남자들은 가슴 큰 걸 좋아하는 거 같아. 나도 좋아. 가슴이 크면 이런저런 걸 해 줄 수 있거든."
좀 수준 높게 싸울 수는 없겠니?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끼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훨씬 더 절박했다.
"그래. 너의 그 거대한 가슴을 부러워 해야할지, 아니면 그 조그마한 머리를 부러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던 부러운 건 사실이야."
머리가 지끈 거렸다. 어떻게 할까? 두 사람 같이 만나지 않는게 좋겠지?
"너희 혹시 나 올때까지 계속 그렇게 싸우고 있었니?"
"나 이 언니 싫어요."
언제나처럼 지연은 노빠꾸였다.
"대화를 하고 싶은데, 지연이가 계속 징징거려서 진행이 어렵더라구요."
"그런데 계속 대화할 생각이면, 우리 어디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면 안 될까?"
그때까지도 난 연신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문희 양이나, 다른 동료 직원이 지나가며 이 대화의 일부라도 듣고 오해... 아니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난 언니랑 대화하기 싫은데? 아저씨 우리 모텔가요. 그거 해줄게요. 파이즈리."
지연이 내 팔을 꽉 잡고 배시시 웃었다.
근데 언뜻 이상한 단어를 들은 듯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혹시 직장 동료가 볼까봐 그러는 건가요? 그러면 지연이 말처럼 모텔도 나쁘지 않겠네요."
수빈이 동의했다.
"나랑. 너랑. 너랑... 셋이서?"
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물어봤다.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각자 서로 다른 까닭에서였다.
그때 자전거 한 대가 우리 앞을 스쳐지나갔다.
난 화들짝 놀라 아는 사람은 아닌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가자..."
우선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따릉이를 가까운 대여소에 반납하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모텔로 갈까하다, 지난번 지연과 사진을 찍었던 호텔로 갔다.
넓은 공간에 거실과 부억이 있는 레지던스 호텔이라, 섹스를 위한 장소라는 느낌이 훨씬 덜하니 대화를 하기에는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지연이 옷을 훌훌 벗어버리기 시작한다.
무슨 짓이니?
당황해서 말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빈도 옷을 벗는다.
앗! 하는 사이에 두 여자가 모두 벌거벗었다.
물론 멋진 광경이다.
지연과 수빈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남자들의 찬사를 받고, 여자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을만한 멋진 여자들이다.
그런 두 미소녀가 벌거벗고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어떤 남자라도 바라 마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 두 미녀의 눈이 서로 이글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옷은 왜 벗었어?"
두 여자의 눈빛에 압도되어 어떻게 할 지 모르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 수 있었다.
"난 이 언니처럼 똑똑한 여자가 아니니까 몸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올리며 지연이 말했다.
너무나도 명확한 의사 표현이라 더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다른 어떤 장점도 이 상황에선 의미가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결국은 당신한테 성적으로 어필하지 않으면 내 존재 의미를 증명할 수 없는 거죠."
"언니는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뭐. 난 죽었다 깨나도 못 할 거야."
이대로 두면 다시 아까의 말다툼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녀들의 싸움의 원인이 나인데, 내가 중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 잠깐 앉아서 대화를 나눠보자."
그녀들을 소파로 유도했다.
그리고 거실 한쪽에 놓인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타서 벌거벗은 두 미녀에게 한 잔씩 나눠주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날카롭게 하고 있으면서도, 이 상황이 편치만은 않은지, 묵묵히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사실 나 지연이랑 싸우러 온 건 아니에요. 아저씨한테 말할 생각도 없었고요."
한참만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수빈이었다.
"난. 언니 싫어."
여전히 지연은 그녀와의 대화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굳이 지연이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니?"
난 지연을 대신해서 수빈에게 물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저씨 너무 위험해요.
말도 안 되지만, 아저씨 세상 어느 여자라도 자기 걸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하하. 설마."
"정말이에요. 예를 들면 김채연 같은 여자 말이에요. 억지로 끌고 가서 힘으로 관계를 맺고, 서너 번 하고 나면, 다음날 김채연의 새로운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김채연? 그 탈렌트 김채연 말이지? 왜 하필 김채연이야?"
지연은 엉뚱한 걸 궁금해했다.
"그야 내가 아는 여자 중에서 그녀가 제일 이쁘니까."
"움... 그 아줌마가?"
"아줌마?"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김채연은 이미 10년도 더 전인 2000년 대 중반이 전성기였던 배우이다.
지금 시대의 미인이라기에는 조금 그렇다.
"언니...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 같은 거 안 보지? TV도 안 보고?"
"응? 어떻게 알았어? TV 같은 거 본지 한참 됐어."
"하아... 그랬구나. 공부만 하고 살아왔다고 자랑하고 싶은 거지? 나같이 가슴만 크고 머리가 빈 여자랑은 다르단 걸 강조할려는 거야?"
수빈이 잠시 지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형태의 인간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요즘 이쁜 여자 배우는 누가 있어?"
"음... 임서연, 정예나, 김..."
지연의 입에서 연예인의 이름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렇게 많은 연예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쉬지 않고 꺼내놓기도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과연... 그 중에 누가 제일 이뻐?"
"임서연은 눈이 이뻐. 굉장히 깊은 눈이야. 정예나는 얼굴의 형태가 제일 이뻐. 코도 가늘고, 눈도 이쁘지만, 뭣보다 균형이 좋아..."
지연은 평범한 또래의 여자 아이들처럼 연예인들에 관심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수빈은 지연이 부르는 이름을 하나도 알고 있지 못했다.
"알았어. 여하튼 지연이가 말한 여자 중 누구라도 아저씨가 원하면 맘대로 할 수 있을 거예요.
아저씨한테 겁탈 당하고, 이렇게 매달리고 있는 내가 확신해요."
"응? 겁탈? 아저씨가 억지로 이 언니를 덮친 거예요?"
지연이 날 바라보며 물었다.
어? 이런... 수빈의 말 한 마디가 파문을 일으켰다.
이젠 지연에게 경멸을 받을 차례인가?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내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귀여운 소녀에게 그런 눈빛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보라나 정 팀장과는 다르다.
그 여자들에게는 그런 종류의 남자이고 싶다.
하지만 지연에게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사실 합의로 시작한 관계이기는 했지만, 일이 시작될 때 내가 합의의 포기를 주장했는데도 불구하고 힘으로 밀어붙였으니까 본질적으로는 그래."
수빈이 설명을 해 주었다.
"하아..."
지연이 날 풀이 죽은 얼굴로 바라봤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