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8. 고압적인 여상사가 내 아래에 깔려 울부짖던 야근하던 날.
- 섬 주위로는 새하얀 모래로 가득한 아름다운 해변이 있습니다.
- 섬을 둘러싼 바다는 저 멀리 보이는 환초의 끝까지 전부 사람의 가슴을 넘지 않는 얕은 바다입니다.
-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다운 물고기로 가득합니다.
- 바다에 몇 발자국만 들어가면 바닥에서 바닷가재, 킹크랩, 전복, 매우 다양한 조개들, 굴, 성게, 멍게, 낙지 따위가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 섬과 바다의 동식물들은 모두 식용 가능합니다.
- 때때로 바다의 조류를 타고 배에서 떨어진 상자 따위가 흘러들어옵니다. 상자 안에는 문명 세계의 물품이 들어있습니다.
- 스릴있는 휴가를 즐기기 위한 이벤트가 준비되어있습니다.
- 섬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위험은 배우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 본 책자의 가장 뒷쪽의 신청서에 구조선 요청 일시를 적으시면 요청한 날자에 구조선이 섬에 도착합니다.
역시 전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지 않는다.
뭐. 그렇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소파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가보았다.
문은 모두 7개.
각각의 문에는 다시 무언가가 쓰여있다.
폭포 뒷편
호수 밑
바다 속
밀림
바위산
창고
???
흠... 여전히 어렵다.
뭔지 모르지만 하나를 선택해보자.
우선 가장 왼쪽에 있는 바위산이라 적힌 문을 열었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문의 안쪽으로는 큼지막한 바위 몇 개가 보이고 바람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조금 불안해하면서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내딛었다.
쿵!
내가 문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바로 닫혔다.
깜짝 놀라 뒤로 돌아 도로 문을 열었다.
문 저쪽으로 내가 방금 나온 응접실이 보인다.
괜히 겁을 먹은 거 같다.
다시 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바위들의 틈으로 한 사람이 걸어갈만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그걸 따라 걸어가본다.
대략 열 걸음 쯤 걷다보니 눈앞이 훤히 트였다.
그리고 내 앞으로는 아주 시원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
음...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거기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떻게 해서인지 모르지만, 난 지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산의 정상 부근에 서 있었다.
하하하...
망망 대해가 보인다.
내가 서있는 이 산의 높이는 적어도 백 미터는 훌쩍 넘을 텐데, 내 눈이 닿는 저 끝까지 온통 바다가 펼쳐져 있다.
시원하다.
바위산의 꼭데기라 섬을 지나가는 바람을 그대로 맞이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곳은 대양 한복판의 섬이었다.
난 다시 그 바위틈을 따라 돌아갔다.
다시 문을 열고 응접실로 돌아가 생각에 잠겼다.
이게 꿈 같은 것이 아니라면 저쪽은 정말로 섬인 모양이다.
어떤 방식?
모르겠다. 무슨 순간 이동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세상이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환각이라거나.
여하튼 그런 장소였다.
근데 여기를 누구랑 올 수 있을까?
다시 아까의 그 문이 있던 곳으로 가서 이번엔 다른 문으로 들어가 본다.
창고...
창고는 낡은 오두막집이었다. 지어진지 꽤나 오래되었을 것 같은 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하지만 창문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사방이 꽉 막힌 나무 판자 뿐이다.
내가 방금 들어온 문은 여전히 그대로 보였고, 저쪽에 낡은 나무 문이 하나 보인다.
그걸 열어본다.
시원한 해변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아까의 설명에서 본 바로 그 모래 해안인 모양이다.
잠시 해안을 거닐어 본다.
바닷속은 이름모를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비치 체어나 하나 가져다 놓으면 기분 좋은 휴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지연이 여름에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었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길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음...
좀 생각을 해 봐야겠다.
그 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당장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그곳에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갈 수단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대부분의 것은 AV 제작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 이 섬 또한 그렇다.
저렇게 아름다운 섬이라면 아주 멋진 장면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 멋진 곳에 나 혼자라면 절대로 성인물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우선은 기다려보는 수밖에.
다음 날 탐정 K 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탐정 사무실에 요청을 하고 겨우 이틀 만의 일이다.
내 의뢰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다.
- 요청하신 의뢰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짧고 간략한 내용이다.
메시지의 하단부에는 링크가 하나 적혀있다.
그걸 누르자 화면에 안내 문구가 나타난다.
- 문서를 확인하시려면 비밀 번호를 입력하세요.
흠... 비밀 번호라고?
시험삼아 AVMASTER라고 적어보았다.
그러자 PDF로 된 문서가 하나 뜬다.
난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정지혜. 31세
가족 사항 : 남편(29세), 딸(3세)
주소 : 서울시 은평구
쉽게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신상 명세가 나온다.
이런 것 뿐이라면 큰 돈을 주고 조사를 의뢰한 보람이 없다.
그런데 남편이 연하였군.
이건 몰랐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서
최근 주식 투자 중 거액의 손실금 발생 현재 1억 2,000만 원 이상으로 추정.
친정의 사업 부진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1억 5,000만 원 지원중. 현재 사정으로 보아 회수는 불가능 할 것 같음.
남편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사료됨.
3개월 전 이혼한 동생을 돕기 위해 3,000만 원 지원.
이런... 이런...
알고 보니 딱한 처지에 있었군.
남편 몰래 주식을 하다가 손실을 입고, 친정과 동생에게 지원을 해주느라 대출까지 받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출금 상환 등으로 인해 초과 지출 상태인 모양이다.
더군다나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이 문제가 불거진다면 불화가 생길 수도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더욱 심각한 내용이 쓰여있다.
남편 명의의 통장으로 임광 상사 사장 김호진에게 송금 받은 금액 총 550만 원.
남편 명의의 통장으로 예그린 인테리어 임규진 부장에게 송금 받은 금액 총 800만 원.
그렇게 대여섯 명에게서 송금을 받은 내역이 나온다.
돈을 보낸 쪽은 모두 회사와 관련된 업체들이다.
신규로 개장하는 매장의 인테리어 업체라든지, 부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라든지...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받은 돈은 모두 4,000만 원을 조금 넘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난 두 달 사이의 일이다.
전부터도 조금씩 리베이트를 챙겨오다가 주식에서 손해를 보고, 친정에 지원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이다.
그나저나 돈은 전부 남편 통장으로 받았네...
나름 신경을 쓴 모양인데?
상대도 뭔가 증거를 남기기 위해 굳이 이체를 원한 듯 하다.
재미있네. 이 사람.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를 갈구고 내가 맡은 업체들과의 일을 빼앗아 간 것은 전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상당히 다급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다니.
사실 일을 하다보면 하청을 받은 쪽에서 조금씩 찔러주거나, 혹은 약간의 접대를 받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약간이라면 넘어가 주기도 하고.
하지만 리베이트는 문제가 다르다.
적지 않은 리베이트가 오가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붙여 먹고, 그걸 이쪽에서 묵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거 들키면 빼도박도 못하겠군.
난 그동안 그녀가 맡아서 처리한 업무에 대해 살펴본다.
새로 개장하는 로드샵에 관련된 업무가 세 건.
주문 제작해서 공장으로 보내기로한 부자재 관련이 두 건.
그럼 이걸 어떻게 써먹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돈이 절박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지만, 날 미워하고 쫓아내고 싶어할 이유는 무얼까?
내게 못되게 군 것은 당연히 쉽게 해고할 수 없으니, 알아서 나가주었으면 하는 것일 터이고, 내 험담을 한 것은 그래도 안 나가면 해고할 수 있는 여론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해도, 왜 굳이 날?
이건 뒷조사로는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무래도 직접 그녀에게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날도 일이 많았다. 남을 일을 처리하다가 정 팀장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고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정 팀장이 들어왔다.
"정 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해봐."
그녀는 삐딱하게 고개를 들고 귀찮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좀 조용한 곳에서 말씀을 드렸으면 합니다. 제 신변에 대한 거라서요."
슬쩍 주머니에 넣어둔 봉투를 보여주었다.
"응? 그래?"
흰색 봉투를 보고 내가 의도했던 것으로 생각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회의실로 가지."
"지금 다른 팀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 여기서 말하기 불편해?"
그녀는 조금 귀찮은 듯 하다.
"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니... 조용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거기로 가지."
그녀와 함께 지하 스튜디오로 내려갔다.
스튜디오는 우리 팀의 관리하에 있어서, 회의실에 자리가 없으면 때로 이곳을 쓰기도 했다.
"그래. 뭔데. 말해봐."
그녀는 소파에 앉아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이거..."
난 준비해간 하얀 봉투를 그녀에게 건냈다.
"이제 자기 주제 파악을 한 거야?"
정 팀장은 가소롭다는 듯 봉투를 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봉투 안에는 꽤 여러장의 종이가 들어있다.
그녀는 종이를 펼치고 먼저 가장 윗장부터 읽었다.
"사표는 아님. 정 팀장이 너무 갈궈서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자르고 싶으면 해고를 하든지 알아서 하세요... 이게 뭐야?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정 팀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마저 읽어보시지요."
난 씩 웃으며 말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정 팀장은 맨 위의 종이를 바닥으로 휙 던져버리고 다음 장을 읽었다.
"예그린 인테리어 임규진 명의 800만..."
여기까지 읽던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 이게 뭔데?"
"다음 장에도 있습니다."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건데?"
정 팀장은 더이상 서류는 읽지 않는다. 대신 날 바라보며 열심히 눈을 굴렸다.
"지난 두 달 동안에만 그렇게 받은 돈이 3,000만 원이 넘더군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당연하게도 정 팀장은 시치미를 뚝 뗀다.
"전에도 조금씩 받아오기는 했는데, 최근 두 달 동안에 확 늘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이라도 했다는 증거 있어? 이런 종이 쪼가리 몇 장 내 놓는다고 내가 겁이라도 먹을 거라 생각한 거야?"
정 팀장은 오히려 당당했다.
"그리고 이런 거 어떻게 구한 거야? 다른 사람의 금융 정보를 훔쳐 보는 게 얼마나 큰 범죄인지 알아?"
"물론 알고 있죠. 그리고 리베이트 등으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면 배임 횡령으로 무조건 실형이 나온다는 사실도요."
"맘대로 해. 난 하나도 거리낄 거 없으니까."
정 팀장은 오히려 날 비웃었다.
"받은 사람은 팀장님 남편 분이고요."
그 말을 듣고 정 팀장은 조금 찔린 얼굴이 되었다.
"그, 그래서? 니가 경찰이야? 검찰이야?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의 금융 정보를 훔쳐본 건데?"
아마 너죽고 나죽자를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그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주식으로 손해를 본 것도 꽤 되시더군요."
"흥신소라도 쓴 모양이지? 어딘지 모르지만 그 흥신소도 이젠 망할 거야."
정 팀장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에게 믿을 것은 그것 뿐이다.
나도 죄를 지었지만, 너도 걸리면 죽어.
"남편 분 몰래 친정에 지원한 금액이 2억 가까이 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런 걸로 협박하면 무서워서 너한테 죄송합니다. 할 거 같았어?"
"아뇨."
난 웃으며 말했다.
오늘 내가 준비한 것은 그런 종류의 협박이 아니다.
"사람 잘못 봤어. 나 너 같은 놈한테 협박을 당하느니..."
정 팀장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내가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뭐... 뭔데?"
"그걸 보여준 것은 그걸로 팀장님을 협박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그럼?"
내가 한 발자국 다가설 때마다, 그녀는 점점 더 겁을 먹고 있었다.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려는 것 뿐이에요. 범법이든 뭐든."
꿀꺽!
그녀가 침을 삼켰다.
"두려운가요?"
난 손을 뻗어 정 팀장의 얼굴에 손을 댔다.
"지.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팀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거 맞아요."
난 아직 그녀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정 팀장은 지금 원래의 그녀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두 차례 일을 저지를 동안에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