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17. 게임의 규칙 -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여자들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룰 각오를 했다.
"푸하하!"
"은희 샘! 큭!"
은희의 자폭성 발언에 송아와 은지는 웃고 난리가 났다.
역시 이런 게임은 스스로 망가져 주어야 재미가 있다.
"지, 진짜로요?"
진아가 깜짝 놀라며 은희를 바라보았다.
"응. 딱 한 번."
"와... 나 오늘 은희 선생님 다르게 보여요."
"좋았어요?"
송아가 물었다.
"음... 되게 창피한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아니다. 솔직히 좋았어요."
"어쩜 좋아? 그럼 나도 은희 선생님을 무서워 해야 하나?"
은지가 까르르 거리며 농담을 했다.
"내가 한 거 아녜요. 당한 거지."
은희가 항변을 했다.
"그래도 좋았다면서?"
송아가 말했다.
"좋긴 좋았다는 거지. 뭐. 다시 하겠다는 건 아니고."
말을 하면서 은희는 몇 번 정도 날 보고 있었다.
"나랑 자리 바꿔주세요."
은희 옆에 앉아있던 진아가 내게 말했다.
"아무렴 내가 진아씨를 잡아먹겠어?"
은희는 그렇게 말하며 진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엄마야!"
진아가 정말로 깜짝 놀라했다.
"그렇게 무서워?"
"아니... 뭐... 은희 쌤이라면... 꼭 나쁘지는... 풉!"
진아는 딴에 농담을 해보려다 얼굴이 빨개졌다.
"정말? 언니랑 키스 한 번 할까?"
은희가 진아의 얼굴을 향해 자기 얼굴을 가져갔다.
"흐악!"
진아가 정말로 혼비백산 했다.
쪽!
은희는 그런 진아가 귀엽다는 듯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고, 진아는 울것 같은 눈이 되어 손으로 뺨을 마구 문질렀다.
"그럼 이제 네 사람 마셔요."
은희가 의기양양하게 네 사람 앞에 폭탄주를 하나씩 돌렸다.
어느새 만들어 놓았던 술잔이 전부 비었다. 이제 그만하려나 싶었는데, 여자들은 다시 폭탄주를 만든다.
"근데 자꾸 나만 공격하는 거 같아요. 그니까 좀 바꿔요."
진아가 억울하다며 룰의 변경을 요청했다.
"그럼 앞으로 혼자 먹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이 질문하기. 어때? 그정도면 공평해?"
송아가 물었다.
"음... 좋아요. 그럼."
진아는 나름 납득했다.
"혼자 먹는 사람 나오면 그 사람이 질문하고, 다음은 원래의 순서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두 번 연속으로 질문은 안 되기."
송아가 선언했다.
"난 지금 사귀거나 썸을 타는 사람이 네 명 이상 된다."
다시 자기 차례가 온 은지가 물었다.
"아. 진짜! 못됐어. 딱 한 명 모자라잖아. 자기 다 알고 그런 거지?"
송아가 불평했다.
"영웅씨 진짜 대단하네?"
질문을 던진 은지가 오히려 날 보고 놀라했다.
"근데 진짜에요? 아저씨 바람둥이였구나?"
진아는 반 쯤 의심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랬어요. 다들 애인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럼 혼자만 썸?"
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니. 그냥 즐거움만 나누는 관계요."
그런 오명을 쓸 수는 없어서 난 억지로 항변을 해 보았다.
"그렇구나."
진아는 여전히 의심 가득한 표정이다.
"난 믿어지는데?"
"나도."
"영웅이는 딴 건 몰라도 거짓말은 안 해요."
다른 여자들은 전부 날 믿어줬다.
왠지 고마웠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거 썸 아니잖아요? 다들 좋다고 그냥 따라다니고, 연락하고, 선물주고 그런 사이들 아녜요?"
진아가 다시 항의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기 여자들 보러 방문하는 남자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
"그게 썸이지 뭐.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사귀는 거고."
역시 어른들의 생각은 훨씬 트여있는 모양이다.
"근데 은지 선생님은 그 남자도 포함한 거야?"
송아가 물었다.
"누구?"
"그 있잖아. 건물주."
"아... 그 사람... 말도 꺼내지 마. 무슨 썸은 썸이야. 징그러 죽겠어."
"맞아요. 그 아저씨 엄청 징그러워요."
여자들만이 아닌 이야기인가보다. 난 쓸데 없이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우리 학원 들어가있는 건물 주인. 가끔 찾아와서 좀... 추근거리는 게 있어."
은희가 설명해주었다.
"건물주가 그래도 되나? 요즘 같은 세상에?"
"그니까. 무슨 건물 한 채 갖고 있다고 자기가 재벌인지 안다니까요."
진아는 그 남자가 무척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영웅씨 차례에요."
송아가 그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난 성인 동영상을 보며 자위한 적 있다."
이번엔 진아가 걸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손을 내린다.
"영웅씨는 여자를 잘 모르는 구나?"
"그러게? 그정도는 다들 한다고요. 그지 진아야?"
송아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어찌 되었던 그녀에게 난처함을 준 것은 맞나보다.
결국 나 혼자 술을 마셨다.
룰에 의거해 두 번 연속은 안 되니 질문은 송아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서로 적나라한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여전히 진아가 제일 많이 걸렸다.
술자리는 꽤 즐거웠다.
딱히 그녀들과 섹스를 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노골적인 대화를 마음 편히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이제 진짜 더 못 먹어요. 머리가 아파와요."
게임의 희생자인 진아가 소파에 널부러져 하소연을 하다가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역시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머지 여자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각자 폭탄 대여섯 개는 먹고도 혀가 꼬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녹록한 여자들은 아니었다.
"그럼 이건 여기까지만 할까요?"
다들 폭탄주 잔을 치우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송아가 냉장고에서 가벼운 안주를 꺼내 놓고, 위스키도 새걸 따는 걸 보니 여기서 끝낼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난 사실 소주보다 이게 더 좋아요. 그래서 꼭 아이스볼을 만들어 놔요."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얼음 구슬을 꺼내 아이스 바스켓에 담으며 말했다.
우리는 다시 깨끗해진 테이블 주위로 둘러앉았다.
이번엔 어른의 술자리이다.
은지가 글라스에 얼음을 넣었고, 송아가 위스키를 따랐다.
우리는 편안하게 술을 즐겼다.
어린 아이 하나가 빠지니 조금 조용해진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오가는 이야기는 야한 이야기들이다.
"참. 난 이제 그만 일어나 볼게요."
은희는 위스키 한 잔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다. 데이트 약속 있다고 했지?"
"네. 그럼 재미있게 놀아요."
어쩐지 약속이 되어있던 모양이다.
여자들은 전부 그녀의 퇴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럼 나도 일어날까?
"넌 좀 더 있다가 나와. 너도 빠지면 자리가 깨지잖아."
응?
난 은희의 미묘한 웃음에서 알 수 없는 흉계의 내음을 맡았다.
은희가 그 묘한 웃음과 함께 사라지고, 여자 둘과 나만 남았다.
혹시 지금까지의 일련의 일들이 전부 예정이 되어 있던 걸까?
은희는 분위기가 깊어지면 빠져주고, 진아는 술을 진탕 먹여 재운다?
그리고 두 여자는 흥미있는 주제로 내게 질문을 해오고 있었다.
"아까 영웅씨 지금 즐기는 사이가 다섯 명도 넘는다고 했었죠? 진짜에요?"
송아가 물어왔다.
"네. 믿기지 않죠? 사실은 나도 그래요."
"안 믿기기는요. 그냥 물어본 거죠. 근데 정확히 몇 명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척이나 끈적거렸다.
"딱 다섯 명이네요."
은희, 보라, 지연, 지아, 수빈...
하지만 안나, 민아, 아라는 포함하지 않았다.
그녀들과는 사귀는 것도 아니고 썸을 탄다 말하기도 어렵다.
그보다는 일방적으로 봉사를 받는 느낌이다.
"그럼 그 다섯 사람이랑 전부 그렇게 즐거움을 나누는 사이?"
이번엔 은지가 물었다.
"네."
"그렇게 많은 여자들하고 만나면서 전부 만족시킬 수 있어요?"
은지는 살짝 혀를 내밀었다가 집어넣었다.
"그건 좀 자신이 있어서요."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그럼 거기 몇 명 더 추가 되도 감당할 수 있어요?"
송아의 질문이다.
"그럼요."
정말로.
"근데 아까 그랬죠? 여러 명의 이성과 해본 적 있다고."
다시 그녀가 물었다. 송아 자신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고 했었지.
"몇명이랑 해봤어요? 제일 많이 해 본게?"
은지가 물었다.
"음. 네 명?"
"진짜요?"
두 여자가 모두 혀를 내둘렀다.
"네 명이랑 어떻게 해요? 아! 혼자만 좋았구나?"
"아뇨. 난 더 할 수 있었는데, 여자들이 지쳤어요."
"진짜?"
"증명할 수 있어요?"
두 여자의 유혹은 점점 더 끈적거려 오고 있었다.
뭐. 이정도라면 받아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아직 캐스팅 카드도 쓰지 않았는데, 매력있는 두 여자가 날 유혹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쟁일까? 협력일까?
아직은 판단이 되지 않는다.
"영웅씨처럼 자신 있게 말하는 남자 전에 만나본 적 있는데, 실전은 별로였어요."
은지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아직 이성을 잃을만큼의 경험은 없다 했었지?
"그러네. 말만 그런 사람도 많은데. 남자들은..."
송아도 슬쩍 내 호승심을 자극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확인시켜 드릴 수도 없고 말이에요."
"어머? 왜 안 돼요?"
그렇게 협상이 타결되려 하고 있었다.
이제 다 된 밥을 먹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아! 머리아파! 히잉!"
그런데 훼방꾼이 있었다.
소파에서 골아떨어졌어야 할 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그리곤 살짝 비틀거리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얘기들 해요? 나만 빼놓고?"
"그냥 어른들의 대화지 뭐."
"맨날 애 취급이에요?"
진아가 삐죽거렸다.
"흐응. 언니. 나도 마실래요."
그리고는 은희가 마시던 컵을 가져가 술을 따랐다.
난데없는 방해에 조금 당황한 은지와 송아가 눈길을 교환했다.
"잘 됐다. 우리 게임이나 더 할까?"
은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빨리 진아를 치워버릴 속셈인가 보다.
"좋죠."
"게임이요? 그럼 딸기 해요 우리!"
진아는 아직 술자리의 놀이가 좋을 나이인 모양이다.
금세 기운을 차린다.
"우리 그런 복잡한 거 못해."
송아가 단칼에 잘랐다.
"그거 어렵지 않은데... 어떻게 하냐면요."
"그거 머리 쓰고 외우는 거잖아. 안 해."
은지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그럼 뭐 해요?"
하지만 은지와 송아는 아직 무슨 게임으로 진아를 보내버릴지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 우리 왕게임 해요."
진아는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모양이다.
"어떻게 하냐면요... 우선 종이를..."
"그러면 이렇게 할까요?"
난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내 손바닥에는 자그마한 주사위가 몇 개 들려있다.
"응? 영웅씨 그런 거 가지고 다녀요?"
"어제 밤에 놀때 쓰던 거예요."
"그래요. 여튼 잘 됐다. 주사위로 왕을 정하면 되겠다."
송아가 반겼고, 다른 여자들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만요."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시험을 해 봐야 하는데, 이 기회에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찾아, 부스럭거리며 캐스팅 카드 <여배우 >를 사용했다.
물론 세 사람 모두가 대상이다.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다시 돌아갔다.
"어? 이건 무슨 돈이에요?"
여자들이 전부 놀란다.
"어제 아는 사람들과 내기를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좀 크게 땄어요."
"이렇게 많이요?"
내가 들고간 지폐 뭉치는 오만 원 권 여섯 개.
모두 삼천만 원이라는 거액이다.
"이렇게 해요. 제가 이렇게 나눠드릴게요."
그리고 여자들 앞에 각기 천만 원 씩 나눠주었다.
"예에..."
아직 내 의도를 모르는 여자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천만원 씩 드릴게요."
"준다고요? 왜요?"
가장 놀란 사람은 진아였다.
아니. 나머지 두 사람은 너무 놀라 반응도 못하는 것 같았다.
"몇 가지만 동의하면 정말로 드릴게요."
여자들은 마술에 걸린듯 내 말을 경청했다.
"이걸로 지금부터 게임을 하는 거예요. 원래 게임은 뭔가 걸려야지 재미있잖아요."
송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주사위로 왕게임을 한다면, 지는 사람이 각자 200만 원 씩 왕이 된 사람한테 주는 거예요."
"와! 엄청 크네."
진아가 깜짝 놀라 소리를 내고, 두 여자의 날카로운 눈빛에 입을 닫았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전부 모이면 게임이 끝나는 거예요. 그럼 우승한 사람이 3,000만 원을 받는 거죠."
"정말 준다고요? 이 큰 돈을요?"
은지가 살짝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다.
"어차피 나도 쉽게 얻은 돈이니까요. 오늘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위해 쓰는 거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아저씨 도박하는 사람? 타짜?"
"아니. 원래 도박 같은 거 안해요. 근데 초심자의 운이라고, 어쩌다보니까 계속 따더군요. 근데 이걸 내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또 도박이 하고 싶어질 거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