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17. 게임의 규칙 -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여자들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룰 각오를 했다.
다음날 퇴근하고 약속한 곳에서 은희를 만났다.
"은지 원장 선생님 사는데가 저 아파트야."
은희가 가리킨 곳은 서울숲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고층 아파트였다.
"저기 굉장히 고급 아파트 아냐?"
"맞아. 강남보다 비싸다고 하더라."
"은지 원장님은 여유가 있나 보네?"
"그런 건 아냐. 저기도 사실은 월세야. 저기가 요즘 굉장히 핫한 곳이잖아? 집에서 한강도 내려다보이고. 그래서 사진 찍기 굉장히 좋아."
은희 말로는 요즘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SNS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꽤 선호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뷰가 너무 좋아서, 집안 어디서 찍어도 그림이 잘 나온다고 했다.
"조금 무리를 했던 거 같아. 그래서 걱정이라 그러더라."
SNS로 인기를 끌면 학원 운영에 도움이 될 거 같아 무리를 해서 들어갔는데, 아직 SNS에서도 학원의 운영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단다.
그래도 나름 홍보비용이라 생각하면 투자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했다.
나야 SNS 같은 거 잘 보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다.
"나도 그때 니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힘들 뻔 했어."
은희는 그때의 천만 원을 아직도 고마워했다.
"만약에 너무 힘들면 말해."
"됐어. 나 그 사람한테도 돈 얘기 안 해. 사실 그것도 받으면 안 됐는데... 여튼 은혜는 은혜. 나중에 잘 되면 절대 잊지 않는다."
그런 여자였지...
사랑하는 사람하고도 돈 때문에 힘든 것은 내비치지 않을 정도라니...
"그러니까 부자는 아냐. 은지 원장님이나 송아 원장님이나."
그게 맞겠지. 여유가 있었으면 셋이 동업을 할까.
"근데 오늘은 나 때문에 이런 자리 마련한 거야?"
"아니. 원래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회식 하잖아. 그래서 겸사 겸사. 원래 어디 식당이나 카페 같은 델 갈까 하다가 편하게 집에서 하기로 했어."
대화를 하는 사이 은지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정말 놀랄만큼 뷰가 좋았다.
거실에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통유리가 있었는데, 유리 밖은 바로 한강이었다.
"잘 오셨어요."
"예.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집이 정말 멋지네요."
"그죠? 진짜 딴 건 몰라도 경치가 너무 좋아서, 나도 자주 놀러와요."
송아가 내 말에 동의했다.
"뷰가 좋으면 몰 해. 집세가 너무 비싸서 죽겠어요. 계약 끝나면 그만 살까봐."
"하기는 부담이 되기는 해."
방 하나에 거실 하나 짜린데 월세가 300을 훌쩍 넘는다는 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다.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대단한 것도 없는데...
나처럼 서민의 감각만 있는 사람이라면 혀를 내두를 곳이지만, 요즈음은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니 그런 줄 알아야지.
"참. 이거 작은 선물입니다."
난 가지고 간 종이 백을 은지에게 건냈다.
"어머나! 이런 거 안 가져 오셔도 되는데. 이게 뭐예요? 어? 고기네?"
"그렇게 좋은 건 아니예요. 수입산이에요. 그래도 먹어보니 맛은 괜찮아서요."
마침 선물로 괜찮은 것이 있었다.
"그럼 잘 먹을게요. 맞다. 우리 이거 구워먹을까요?"
은지는 그렇게 자기만 챙기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받은 선물을 바로 주변 사람들과 나누려고 했다.
"그래요. 그럼. 배달은 조금만 시키면 되겠다."
"영웅씨 뭐 좋아해요? 우리 요리 같은 건 못해서 배달 시킬 건데."
"전 뭐든지 잘 먹어요."
"너 피자 좋아하잖아? 그걸로 할까?"
"그러지 뭐."
"그럼 앉아 계세요. 금방 준비할게요."
은지와 은희가 주방으로 갔고, 소라가 날 테이블로 안내했다.
"참. 진아씨. 여기가 그 사진 찍어주신 분."
은희의 집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콧대가 무척 오똑하고, 얼굴이 작은 귀여운 여자였다.
나이는 아마 많아야 이십 대 중반 즈음, 어쩌면 그보다 어릴 지도 모른다.
제법 이쁜 여자이다.
지연과 수빈 같은 천연의 미녀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여긴 진아씨. 우리 학원에서 사무를 보고 있어요."
송아가 바로 그녀를 소개해주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은희 샘 친구분이시죠?"
웃는 모습도 귀여웠다.
외모 면에서는 은지와 송아 보다 좀 더 이뻤다.
나이도 훨씬 어렸고.
아마 세 여자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이 여자를 고를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처음 만난 그녀에게 막 흑심이 생긴 것은 아니다.
수빈과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어쩐지 눈이 높아졌다고 할까? 전처럼 조금만 이쁘면 다 내 여자로 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주면 먹는다.
그러니까 이쁜 것은 맞지만, 한 장 뿐인 캐스팅 카드 < 수동적 주인공 >을 사용할만큼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토요일은 쉬시나 봐요?"
"네. 평일 근무만 해요."
아쉽다. 그날 이 여자도 있었다면 재미를 보았을 텐데.
"그런데 아저씨가 찍은 사진 봤는데, 진짜 이쁘더라구요. 우리 원장샘들이 되게 섹시하게 나왔어요. 나도 그날 있었으면 같이 사진 찍어달라고 했을 텐데."
"그게 무슨 친목 사진 찍은 건줄 알아?"
송아가 살짝 면박을 준다.
"나두 트레이너로 홈에다가 올려주심 되잖아요."
"너 그때 말했지? 아직 멀었다고. 겨우 여섯 달 밖에 안 됐잖아?"
"그래도 자격증 따고 여섯 달인데... 일 년을 언제 채워... 히잉!"
진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여튼 약속했다. 어설프게 배워서 교습하는 건 난 절대 못 봐."
"진아씨도 필라테스 트레이너 하시려나 봐요?"
"네. 벌써 그거 딴지 여섯 달도 넘었어요. 그니까 강사 자격은 되요. 딴 데는 수습 조금 하고 바로 강사 시켜준다는데..."
서운한 모양이다.
그걸 보면 강사 자격증을 따고도 1년이나 배우라고 하는 것을 보니 송아씨 몰랐는데 꽤 엄격한 사람이다.
"요즘 강사 자격을 너무 쉽게 주니까 그렇지. 너 몇 달 걸렸어? 석 달? 넉 달?"
"세 달이요. 히히. 같이 강습한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열심이었다구요."
"자기가 잘 하는 거하고, 남 가르쳐주는 거 하곤 완전히 달라. 요즘은 필라테스, 요가 같은 길에 진출하려는 사람도 많고, 협회도 너무 많아서 강사 자격증 따기가 너무 쉬워서 문제에요. 사실 돈 주고 사는 거랑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러니까 어설프게 알고 가르치다가 남의 몸을 망치고 만다구요."
송아가 내게 설명을 해 주었다.
협회들이 하도 난립해서, 필라테스 트레이너 자격증을 발행해주는 협회가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필라테스 뿐 아니라 요가든 뭐든 관련된 분야가 전부 비슷하단다.
"그러니까 4학년짜리가 자기 좀 알고 있다고 1학년 선생님을 하겠다는 격이지 뭐에요."
"알았어요. 시키는대로 할게요."
1년이나 더 배우라고 했는데도 잠자코 따르는 걸 보니, 그래도 믿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진아는 원래 무용하다가 짐도 열심히 다녔고, 십 년 넘게 몸을 써 왔으니까 아주 못할 건 아녜요. 다른 사람 몸에 대해 이해하고 가르치는 기술을 익히면 좋은 트레이너가 될 거예요"
낯선 사람 앞에서 면박을 준 게 미안한지, 송아는 진아를 조금 추켜주었다.
"무용을 하셨어요? 어쩐지 몸이 굉장히 이쁘더라구요."
"네. 전공이 그건데... 한국에서 무용으로 먹고 사는 거 거의 불가능해서요."
"이쪽으로 무용한 사람들 굉장히 많아요."
송아가 덧붙였다.
"아무래도 몸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니까 잘 맞는 거 같아요."
"영웅아. 나 좀 도와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쪽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희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주방으로 가보니 김치 냉장고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맥주 상자를 꺼내달라 말한다.
"맥주가 많네..."
김치 냉장고 안에는 김치통 작은 거 하나와 술들이 상자채로 들어있다. 무려 두 상자나 되는 맥주와 소주도 한 상자나 된다.
"다들 술을 좋아해요. 영웅씨도 술 좋아하신다면서요? 술 잘 드시죠?"
"뭐 남들 마시는 만큼 마셔요."
과음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 남들 만큼은 먹는다.
하지만 준비된 술을 보니 살짝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여자들 먹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나보다.
어쩐지 집에서 먹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정도 양이라면 집이 훨씬 저렴하게 먹고 마실 듯 하다.
내가 맥주 한 박스를 옮겨 놓고, 은희가 소주를 몇 병 들고 왔다.
여자들이 주방을 드나들며 이것 저것 옮겨 놓았다.
테이블 위에 넓은 전기 팬을 놓고, 고기 구울 준비도 한다.
그때 쯤 주문한 음식이 하나 둘 배달와 테이블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배달온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근데 진짜 맛있다."
"맞다. 뿔뿔 붙은 한우 보다 맛있는 거 같아요."
여자들은 배달온 음식보다 내가 가져온 고기를 더 좋아했다.
결국 나머지 음식들은 거의 내 차지가 되어버렸다.
"영웅씨도 같이 먹어요. 그건 남으면 버리면 되지."
"아뇨. 고기는 나도 벌써 실컷 구어 먹었어요."
"그냥 우리끼리 먹어요. 영웅이 늘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니는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은희는 날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와! 정말 배부르고 맛있게 잘 먹었어요."
"영웅씨 덕분에 굉장히 기분 좋게 먹었다."
"그러게. 술도 거의 안 먹었어요."
"그럼 배는 채웠으니까 이제부터 술을 먹죠."
잘먹고 잘 마시는 여자들이었다.
은희만 그런게 아니고, 내숭 따위 없이 화끈하다.
그녀들이 몸을 쓰는 일을 해서인지, 서로 비슷한 성격이라 잘 맞아 그렇게 모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이런 저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비워갔다.
어쩐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특히 송아와 은지가 날 배려해주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이유는 알고 있다. 액티브 카드 < 호감 >
그녀들은 모르지만, 난 이미 그녀들과 섹스를 했고, 두 사람 모두 제법 큰 쾌감을 얻었다.
섹스가 끝난 뒤, 그녀들이 느낀 쾌감은 나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SNS에 올렸더니 좋아요가 굉장히 많이 생겼어요."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주제로 올라왔다.
"나도 그래. 섹시하다고 좋아하더라."
내가 찍어준 송아와 은지의 사진은 내가 봐도 꽤 섹시했다.
당연할 것이다.
그녀들이 막 절정을 느끼고, 그걸 참고 있는 모습을 담았기에 표정을 삼키고 있어도,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그런 것이다.
대상의 욕망이나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담는 쪽이 즐겁다.
물론 패션 사진으로서는 꽝이다.
"막상 홈에는 못 올리겠더라고요. 그걸 보면 놀랄 거 같아서 말이죠."
그렇지... 학원을 홍보하는 사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홈보다 SNS를 통해 유입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 그녀들은 내 사진을 좋아했다.
"그니까 나도 언제 사진 한 번 찍어주시면 안 되요?"
수습 강사인 진아는 아직까지 미련을 못버린 모양이다.
"다음에 기회 되면 그렇게 해요."
하지만 시간 정지 카드가 다시 손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런 사진을 찍는 것이 쉬울 지는 모르겠다.
"정말이죠?"
진아가 신신 당부했다.
"나도 언제 다시 찍어줘. 난 조금 덜 섹시하더라."
내 건너편에 앉은 은희가 그윽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 게 정말로 사진일까?
"친구니까 섹시하겐 못 찍었나 보다."
송아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친구면 뭐 어때. 친구 끼리는 뭐 섹시하게 못하나?"
은지가 말을 받았다.
"맞아요. 친구처럼 지내다가 썸도 타고 뭐 그런 거죠."
진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 맞다. 은희 샘은 남자 친구 있었지... 히히. 죄송요."
"맞다. 영웅씨는 은희 원장이랑 굉장히 오랜 친구라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이쁜 사람이 친구면 엉뚱한 생각 안 들어?"
갑자기 약점을 파고드는 공격을 한 사람은 은지였다.
그녀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오래 보고 있으니까 그냥 다른 친구들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어요."
우리 사이를 광고하고 다닐 것도 아니고...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뭐래? 너 옛날엔 나 좋아했잖아?"
어? 배신이냐?
"그거야 옛날 일이지. 이젠 줘도 안한다."
"진짤까?"
송아도 이 아슬아슬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어쩐지 나 혼자 여자 넷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물론 옷을 벗고 상대하는 것이라면 여자가 네 명이라도 자신 있지만, 대화로는 한 명을 이기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