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17. 게임의 규칙 -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여자들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룰 각오를 했다. (112/377)



〈 112화 〉@17. 게임의 규칙 -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여자들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룰 각오를 했다.

기프트 카드 < 수트 & 슈즈 >
- 신사의 품격을 보장하는 드레스 세트입니다.
- 명망 높은 비스포크 메이커 키톤의 장인들이 최고급 비쿠냐 울 원단으로 제작한 자켓과 팬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전통을 자랑하는 드레스 메이커 아르솔라에서 제작한 드레스 셔츠와 타이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라 산토니에서 제작한 구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흠...
이건 나를 위한 걸까?



기프트 카드 < 회복약 >
- 모든 피로가 회복되어, 마치 12시간을  자고 난  같이 최고의 컨디션이 됩니다.
- 고주망태가 되어있어도 한 병이면 아무런 숙취 없이 정신을 차릴  있습니다.
- 두 병 이상을 연속으로 복용하지 마세요. 후유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나름 효용성이 있을 것 같다.
당장 꺼내지 말고 필요할 때 사용하도록 하자.


기프트 카드 < 개 목걸이 >
- 이름은 개 목걸이이지만 사람용입니다.
- 착용하고 있으면 왠지 복종하고 싶은 욕구가 상승합니다.
- 리모트 콘트롤 앱으로 작동하는 전기 충격기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보라에게 어울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녀가 내게 복종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땅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는 우선 보류하기로 했다.



기프트 카드 < 간지럼 태우는 스티커 >
- 몸에 부착하면 하루종일 근질거립니다.
- 참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성가십니다.
부착 부위는 꼭 맨몸이 아니라 의복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이건 무척 재미있는 물건 같다. 그래서 바로 카드를 찢어 본다.

손에 작은 스티커 세트가 한 장 들려있다. 스마트폰 사이즈의 세트 안에는 모두 24장의 작은 스티커가 인쇄되어 있다.

이 한 장  장의 스티커가 간지럼 태우는 스티커인  같다.
당장 사용할 곳은 없지만, 지니고 있으면 언제고 쓸 일이 있겠지.

그리고 마지막 기프트 카드는 정말 굉장한 물건이었다.

기프트 카드 < 놀이 도구 세트 >
- 즐거운 게임을 위한 놀이 도구 모음입니다.
- 플레잉 카드 4벌, 주사위 8개, 동전 12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대로 원하는 카드, 원하는 눈, 원하는 면이 나옵니다.
- 외형을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습니다.
외형 커스터마이징을 위해서는 원본이 되는 물체와 접촉하세요.
- 게임이 끝나면 항상 당신의 수중으로 돌아옵니다.
찢어지거나 손상을 입어도, 게임이 끝난 뒤에는 원상복귀됩니다.

설명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성능을 지니고 있음을 바로 알  있었다.

이건 보류고 뭐고 궁금해서라도 바로 확인해 봐야겠다.



카드를 찢자 설명 대로 플레잉 카드 4벌, 주사위 8개, 동전 12개가 나타났다.

그중에서 우선 동전을 손에 들었다.

전부 동일한 종류이다.


그리고 꽤 낯익은 주화이기도 하다.


오백원 주화보다 조금 작은 금색과 은색의 중간 정도 되는 동그란 동전의 앞면에는 멋진 갈기가 인상적인 사자 대가리가 새겨져있다.

뒷면에는 이곳의 숫자로 100을 의미하는 문자가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그러니까 내가 시네마틱 카드를 사용해 오크가 되었을 때 만져보았던 바로 100츄르 짜리 동전들이다.


놀랍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놀랍지도 않다고 할까?




우선 난  열두 개의 동전을 들고 위로 휙 던져보았다.

"전부 위!"
 사자 대가리를 머리에 떠올리며 작게 불렀다.

차르르르르...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한꺼번에 떨어진 동전들은 정부 사자 대가리를 위로 하고 있다.

흠...


좋아. 다시.


위 아래  위 위 아래....
이번엔 머릿속으로 순서를 생각하며 동전을 하나씩 던져본다.

톡! 톡! 톡! 톡! 톡! 톡!
떨어지는 동전들은 전부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이다.



좋아.
성능은 확실하고...


주머니에서 오백원짜리 주화를 꺼냈다.
그리고 100츄르 동전과 살짝 부딪쳤다.

순식간에 100츄르가 500원 동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런거로군...



다음엔 주사위.


여덟 개의 주사위를  손에 쥐고 휙 던졌다.


65432111

또르르르
주사위가 하나씩 멈추기 시작한다.

내 요구대로 6 5 4 3 2 1 1 1


더이상 실험하고 말고 할 것도 없네...


그런데 이걸 내게 준 이유는 이걸로 도박을 해서 돈을 따라는 것은 아닐테고...

뭐. 물어볼 것도 없다.


어디까지나 성인물을 찍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이다.

아마도 설정 카드 < 게임의 규칙 >과 한쌍인 것이다.



늦은  보라가 찾아왔다.

"이거 받아봐."
난 보라에게 주사위를 건내주었다.


보라는 별 다른 의문을 갖지 않고 그걸 던졌다.


나온 눈은 내가 머릿속으로 지정한 숫자였다.

그녀에게 두어 번 주사위를  던져보도록 시켜본다.

전부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만 해도 돼."

그리고  그렇듯 그녀의 몸을 탐했다.



"윽! 읏!"
이런 실수였다.

신음을 내 뱉은 것은 내쪽이었다.

엄청나다. 보라의 몸안을 오고가고 있을 뿐인데, 참을 수 없을만큼 즐거워졌다.

몇 번이나 난 신음을 내뱉어야 했다.

이거... 좀 무서운데?

그나마 지난번 오크가 되었을 때 느끼던 쾌감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하울링을 해 버리고 말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민폐다.

특히 이 아파트에서는 절대 안 된다.

휴우...
막대한 쾌감 속에 난 보라의 안에 사정을 했다.


이제 나와 섹스를 하는 여자들이 느끼는 쾌감을 조금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내겐 설정 카드 < 중첩 >의 효과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 가도 돼."
만족스러워 하며 보라를 보내주었다. 그녀는  마디 말도 없이 옷을 입고 나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그녀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 뿐이 아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녀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라는 나와의 관계에 익숙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같다.


가정을 지키는 것과 나와의 관계에서 얻을  있는 쾌감 사이에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라가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지연과 수빈은 하룻밤의 잠자리 만으로 내게 항복을 했다.


하지만 보라는 벌써 한 달이 넘게 버티고 있다.

아마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보라에게는 남편도 있지만, 소중한 딸도 있다.


지연에게는 나로부터 딱히 지켜야 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빈도 마찬가지이다.
이성적이고 똑똑하다해도 어른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그래도 그녀가 지연에 비해서는 훨씬  저항을 잘 하고 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가 된다.



다음날 오전의 출근길이었다.


난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많이 보던 사람들이 하나씩 올라탔다.

다음 역은 환승역이라 빈자리는 커녕 출근 시간이면 벌써  끼일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찬다.

이날도 그랬다.

그리고 내 앞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한 분 서 계셨다.
그다지 고민도 하지 않고, 난 할머니에게 양보를 했다.

"고마워요. 학생."

어쩐지 할머니의 그 한 마디에 감격스러웠다.
지연인  자신의 두 배나 많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할머니는 겨우 다섯 정거장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웠어요. 이제 다시 앉아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무리였다.


아까부터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던 아주머니 한 사람이 재빠르게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고... 미안해서 어쩌나..."
할머니가 괜히 미안해 하신다.

"걱정 말고 천천히 내리세요."

어차피 그 자리에 다시 앉지 않아도 큰 아쉬움은 없다.


딱히 그 아줌마에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각박한 세상이다. 자기 몫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그게 먹을 것이든,  정거장이라도 앉아 갈  있는 자리이든.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은 아줌마가 계속 눈치를 주어 난 옆으로 살짝 위치를 옮겼다.

좌석 앞이 아닌 옆쪽으로 가서 출입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는 평소 자주 보던 사람이 서있다.

내가 앉는 자리 옆에 서있고는 하던 몸집이 작은 여자이다. 조금 무신경한지 하필이면 자신의 엉덩이나 그곳을  어깨에 비비고는 했었다.

잠시 고개를 내렸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살짝 어떤 표정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그때 지하철이 다시 정차했고, 사람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 올라탄다.


그때 한 여자가 몸을 비틀며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을 휘둘렀다.

"아!"
하필이면 핸드백의 모서리에 조금전 그녀의 얼굴이 맞았다.
여자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핸드백의 주인은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지만, 가방을 도로 자신의 품으로 가져가고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린다.


차암...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이런 일이야 늘상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미안한 기색 한 번 내비치치 않는 걸까?


핸드백에 얼굴을 맞은 여자는 조금 내성적인 사람인가보다.
아픈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한다.

그녀는 울쌍이 된 얼굴로 출입문 옆의 금속에 얼굴을 비춰보려 한다.


혹시라도 상처는 나지 않았나 걱정이 된 모양이다.


사람이 많아 가방에서 거울을 꺼낼 수 없는 걸까?
아니면 너무 소심한 걸까?

"괜찮아요. 상처는 안 난 거 같아요."
어쩐지 안타까워 내가 한 마디 해주었다.

여자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곤 살짝 고개를 들어  보고는 고개를 다시 숙이며 인사를 한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다시 멈췄다.
사람들이 우르르 탄다.


아직은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다.
벌써부터 사람들로 움직일 틈도 없었다.


난 살짝 몸을 돌려 아까의 그녀 옆으로 갔다.
팔을 들어 좌석  기둥을 잡으며 그녀에게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버텨본다.



다시 지하철이 출발했다.

"아..."
두어정거장 쯤 지나 그녀가 내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우리는 살짝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다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는  같았다.


그녀는 나보다 두 정거장 전에 지하철을 내리면서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눈으로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어준다.

그녀가 깜짝 놀란다.

이런... 내가 웃는 모습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아까 핸드백으로 소심한 여자를 친 여자가 내몸을 밀치며 나보다 빨리 내리겠다며 나섰다.

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난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스티커 한 장을 떼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그녀가 문을 나서기 전 스티커를 그녀의 등에 살짝 붙일 수 있었다.

호다닥!
여자는 황급하게 출입문을 나섰다. 환승을 위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략 수십 미터를 갔나 싶을 때, 그녀가 갑자기 그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곤 손으로 자신의 등에 집어넣고는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가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누가 봐도 도저히 참을 수 없겠다는 표정으로 여자는 정신없이 몸을 긁고 있었다.


어이쿠!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너무 좋다.


정말 어지간히 밉지 않으면 쓰면 안 되겠구나.


물론 그 여자에겐 조금도 미안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 뿐이다.





그날 오후 은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혹시 내일 오후에 시간 있어?"
가벼운 안부를 묻고 그녀가 다음날 만나자고 한다.



"응? 시간 되지."
그녀와의 만남은 언제나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기에 난 흔쾌히 대답했다.


"그때 말 한 거 기억하지? 우리 원장 선생님들이 너랑 밥이라도 먹자고 한 거?"


"어? 아! 그래."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지. 이미 대가는 받아 놓았다.

"그럼 서울숲  앞에서 만나."


"그래. 그럼 내일 거기서 보자."


은희가 알려준 곳은 마침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날 위해 그런 장소를 택한 건가 싶었는데, 함께 동업을 하는 은지 원장이 바로 그 근처에 살고 있단다.


그러니까 은지 원장의 집에 초대된 것이다.


전화가 끝나고 메시지가 왔다.

보낸 사람은 은희였다.


확인해보니 사진이다. 그날 내가 찍어준 음란한 사진 중의 하나.

아마도 내일의 일에 대한 중도금인 모양이다.


난 그녀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내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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