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16. 복수에 몸을 맡긴 여자.
그땐 내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 녹음된 파일이 서로의 합의였음을 증명할 것이다.
녹음을 일상화 하는 것은 이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어쩌면 어떤 이능력보다 당신 주머니속 스마트폰이 당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나처럼 녹음 전용의 스마트폰 한 대 정도 더 지니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항상 상대의 방심을 노릴 수 있다.
물론 내겐 더 좋은 방법도 있다.
캐스팅 카드 < 수동적 주인공 >
하지만 그걸 사용하지 않는 것이 베스트다.
캐스팅 카드 < 수동적 주인공 >, < 능동적 주인공 >, < 능욕형 주인공 >의 등장 확률이 너무 낮다.
한 장 뽑기 위해 대략 1억 원은 쓸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카드 팩을 뽑는 동안 나오는 다른 카드들의 가치도 상당하니 결코 낭비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가능하면 아껴두고 싶다.
내 의도는 다른 여자들에게 한 것 처럼 캐스팅 카드 < 여배우 >로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사실 그것 만으로도 이 여자가 내게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충분히 막을 수는 있다.
그녀와의 대화까지 녹음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안전 장치는 두 겹, 세 겹 많을 수록 좋다.
"먼저 씻을래?"
협의가 끝나고, 자술서를 쓴 뒤로 난 수빈에게 더이상 존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모텔을 들어서면서 그녀의 얼굴은 한껏 굳어있었다.
아직은 도망가거나, 우리의 협약을 깨려하지 않는다.
난 그녀가 모텔에 들어오자마자 수빈의 마음이 바뀔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영리한 여자가 그런 내기에 진심으로 자신의 몸을 맡길 리야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닫고 나갈 생각도, 내게 반항하려 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복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나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걸까
...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다.
이 여자가 내게 갖고 있는 감정은 오직 혐오 뿐이다.
이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거 하나만은 틀림없다.
그저 나에 대해 참기 힘는 분노가 그녀의 용기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포자기?
생각해보면 그쪽이 훨씬 더 말이 된다.
지금 이 여자가 느끼고 있을 분노와 자괴감의 크기를 난 전혀 감잡을 수 없다.
"벗겨줄까? 아니면 스스로 벗을래?"
여자는 대답 대신 자신의 옷을 벗는 것을 택했다.
꽤나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보이는 블라우스를 벗고, 스커트를 벗었다.
레이스가 들어간 검은 브래지어를 벗기 위해 손을 뒤로 돌렸을 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주저하지 않고 후크를 풀렀다.
마지막 한 장 남은 팬티를 벗어버리는 손길에도 더이상의 머뭇거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확실히 이때 즈음의 그녀는 계약의 실행에 대해 결심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내가 우려하던 우격다짐은 생기지 않았다.
나도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캐스팅 카드 < 여배우 >를 사용했다.
수빈의 벌거벗은 몸은 이뻤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여자보다 이뻤다.
은희의 요가 학원에서 내가 무단으로 점령했던 여배우 윤영보다도 명백하게 수빈쪽이 미인이다.
얼굴도 몸도 정말 아름답다.
그나마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가슴이 그리 큰 편은 아니라는 정도.
아마 B컵 정도 될 것이다.
못났다는 것이 아니다. 조금 아쉽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몸에 체지방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그녀의 날렵한 허리 라인을 생각하면 그정도의 크기가 아마 베스트일 터이다.
아름다운 얼굴에 못지 않게 이쁜 몸이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축복을 받은 기분이다.
"이제 뭘 어떻게 할거지?"
미녀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오고 있었다.
"조금 거칠게 해도 될까?"
왠지 그녀에게 조금 겁을 주고 싶었다.
이제 더이상 그녀가 내게서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으니, 또 다시 못된 버릇이 나오는 것 같다.
난 그녀가 이제 두려워하기를 원했다.
증오, 분노, 패배감, 절망, 복수에 대한 기대
그러한 모든 감정을 넘어서는 두려움.
그리고 난 그녀가 느끼고 있을 그 수많은 감정들을 먹어치울 게다.
벌써부터 혀가 즐거워진다.
"당신 맘대로 해.
나한테 뭔가 보여줄 거처럼 말했잖아?
증명해봐.
만일 그냥 그렇다면 나 미남은 몰라도 당신만은 절대 그냥 안 둬."
그녀는 두려움에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녀의 협박이 조금도 무섭지 않다.
거미줄에 묶여버린 애처로운 나비.
그녀는 결코 그 이상이 아니다.
내 손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여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뻐서?
그럴리가.
그녀는 너무나 명백하게 두려워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겠지. 오늘 처음 만난 남자.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를 이상하게 만든 괴물이다.
"그러고보니 미남이 첫 남자라고 했지? 미남이랑은 잤어?"
조금 더 조미료가 필요할 것 같다.
난 일부러 그녀가 반기지 않을 질문을 꺼낸다.
알고 있다.
내가 비열하다는 것을.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더 맛있게 먹고 싶다.
"며칠 전에 함께 모텔엘 갔어.
미남이 첫 경험이라 했어.
나도 그렇고.
근데 못했어.
미남이 발기가 제대로 안 되더라.
경험이 부족하면 그런 경우도 있다는 거 알고 있어.
그래서 그런 걸로 알았어."
그녀가 날 다시 노려본다.
미남의 발기부전의 원인도 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이다.
결국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다.
그리고 수빈은 그 남자에게 몸을 주려한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충분히 근거는 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날 그냥 강간하려는 게 아니라, 내 처음을 가져가는 거야.
당신이 내 삶을 바꿔놓을만큼 잘한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든지, 아니면 감옥에서 아주 오래 있을 각오를 해."
그녀는 눈빛만으로도 날 잡아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녀의 결의는 진심이다.
점점 요리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꿀꺽!
"좋아. 아주 좋은 거래로군.
난 네 처음을 갖고, 넌 쾌락이나, 내 파멸을 얻고."
서로 만족할만한 거래였다.
난 천천히 옷을 벗었다.
수빈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셔츠를 벗고, 바지를 벗었다.
무표정하게 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있자니, 어쩐지 내가 더 떨렸다.
"아!"
변화의 순간은 내가 팬티를 벗어버렸을 때였다.
그녀는 벌써 발기해있던 내 물건을 보았고, 그날의 어느 때보다 더 큰 공포의 기색을 내비쳤다.
"설마... 그... 그거... 당신 그게 크다고 그렇게 자신한 거야?"
수빈은 한참만에 말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남자의 크기가 쾌락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아."
여유 있게 말하며, 수빈이 옷을 벗는 동안 꺼내 놓았던, 윤활 크림을 손에 들었다.
그러니까 은희의 학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후로, 난 항상 이걸 들고 다닌다.
세상에 어떤 일이 언제 벌어질 지 알 수 없더라.
특히 난 더욱 그러하다.
난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주춤.
수빈이 밀려났다.
성기의 크기는 쾌락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대개의 관련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부학적인 의미에서이다.
심리적으로 남자 성기의 크기는 섹스에 있어서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인간의 섹스는 짐승의 그것과는 달리 육체적인 부분에 비해 심리적인 부분의 비율이 상당히 크다.
지금처럼 말이다.
내 성난 기둥을 보는 순간, 우리의 기싸움은 이미 끝나고 있었다.
이젠 더이상 싸움이 아니다.
야수와 그 희생양이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발자국.
그녀의 다리는 이미 침대에 닿았다.
더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난 손을 들었다.
그녀의 몸이 굳어버렸다.
공포에 이성이 마비된 것이다.
난 그녀의 몸을 잡고 침대 위에 눕혔다.
"그만! 나 소리지를 거야."
가련한 희생양이 되어버린 수빈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여긴 방음이 아주 잘 되어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여길 선택한 거야."
난 일부러 비열한 얼굴로 그녀를 겁주었다.
두려워 해! 무서워 해! 그리고 날 더 증오해!
너의 그런 감정을 모두 받아주마.
난 수빈의 두 다리를 들고 허벅지 옆으로 팔을 빼,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아주 간단하게 그녀의 움직임을 완전하게 봉쇄했다.
"하지마. 소리지를 거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쉿.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우리의 약속을 지켜줘."
점잖은 목소리였지만, 명백하게 협박이다.
"싫어..."
협박이 먹혔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때쯤 잔뜩 성이난 내 자지는 그녀의 입구에 닿아있었다. 좀 뻑뻑하기는 하겠지만...
"하지마요! 제발"
그녀가 뒤늦게 후회를 시작했다.
"이미 늦었어."
내 물건은 이미 계속해서 그녀의 입구를 두드리고 있었다.
금세 젖지는 않지만, 계속하다보면 조금이라도 젖기 마련이다.
여자의 그곳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극을 받으면 반응하기 마련이다.
잠시 뒤 아주 조금이지만, 귀두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윽! 아파!"
여전히 한 손에는 러브젤을 들고 있지만, 일부러 처음엔 그거 없이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다.
그녀가 겁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난 잠시 그녀의 고통을 무시하고 귀두를 넣은 상태에서 천천히 더 밀어보았다.
들어간다.
무척 뻑뻑하지만, 들어간다.
"흑! 아프다고요! 그만 해요!"
수빈은 계속해서 고통을 표시했다.
이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여자이기를 선택했다.
더 이상은 전사가 아니다.
자신을 가지고 놀던 남자에 대한 복수도 의미가 없다.
그저 낯선 남자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한 불쌍한 여자에 불과하다.
그렇게 여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내 즐거움은 더욱 커졌다.
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녀의 안으로 찔러 넣었다.
"윽! 흑! 그만해! 이 짐승 같은 새끼야! 넌 내가 가만 안 둘거야! 아빠한테 말해서 널 평생 감옥에 가두고 말거야!"
그토록 침착하던 그녀도 결국은 그 나이 또래의 여자였다.
극한 상황이 되니, 아빠를 찾는다.
어쩐지 조금 미안했다.
그만큼 내 쾌감도 커졌다.
어느 순간 난 내 저주받은 물건이 이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완전히 관통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만큼 커다란 쾌감에 사로잡혔다.
저질러버렸다.
이젠 뒤로 물릴 수도 없다.
그리고 그녀의 반항이 멈추었다.
벌써 쾌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수빈은 몸에서 힘을 풀어버리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
"빨리 끝내."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실수 한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이성을 잃다니..."
수빈도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비가역적 순간에 도달해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좋아. 여기 들어온 것까지는 내 잘못이라 생각해.
하지만 조금전에 내가 명백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 뒤 부터 당신의 행동은 강간죄의 성립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
그러니까 난 당신의 행위가 끝난 뒤 당신을 신고할 거야. 아까 우리가 했던 그 농담 같은 자술서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파멸시켜 버릴꺼야."
이제서야 이성이 돌아온 걸까?
그녀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했다.
무척이나 독특한 여자이다.
이정도라면 울부짓으며 내게 반항을 하거나, 두려움에 휩싸여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일 터이다.
하지만 수빈은 전혀 다른 해답을 도출해 냈다.
"그렇게 해. 다 끝나고 나서도 그럴 생각이라면, 경찰서든 어디든 같이 가 주지."
내가 하는 말이 조롱처럼 느껴져서일까? 수빈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내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난 천천히 그걸 빼냈다.
수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떤 감정 때문이 아니라 고통 때문이다.
여전히 그녀의 안쪽은 뻑뻑하기만 하다.
당연하지.
오늘이 처음이라면.
더군다나 원치도 않는 관계라면 더욱 그러하다.
다시 한 번 집어 넣는다.
"으윽!"
수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많이 아픈 모양이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저건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후회?
뭔지 모르지만 그녀의 눈물은 내게 죄책감을 강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