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16. 복수에 몸을 맡긴 여자. (106/377)



〈 106화 〉@16. 복수에 몸을 맡긴 여자.



"미남은 지연이라는 여자 아이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알고보니 여자 친구가 아니더라구요.
그냥 소꿉 친구.
그러니까 미남이가 혼자 좋아하는 관계였어요."


그녀는 자신과 미남과의 관계를 이야기했고, 어떻게 지연에 대해 알고 있는지 말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내가 말했어요.
그렇게 힘든 사랑은 포기하고 차라리 나랑 사귀자고.
미친년... 자존심도 없지...
어느날 갑자기 미남이가 그랬어요. 그러면  번 사겨보자고.
그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죠."

 아름다운 여인은 마치 꿈을 꾸듯 먼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랑 사귀자고 했던 게 고작 당신 같은 남자한테 날 넘겨주기 위한 거였어요? 하!"
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아... 고작이라... 역시 미남 미녀들에게 보통의 사람은 고작 정도로 느껴지나 보다.

물론 그녀가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내게도 화가  있는 것일 터이고.

그래도  상처를 받았다.
왜?
도대체 잘생긴 것들은 날 그렇게 우습게만 보는 거야?



"지연이 지금 나랑 사귀고 있어요."


"네? 왜요?"
수빈이 화들짝 놀랐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다.
또 상처 받는다.

"어째서요? 당신 같은 사람이랑?"


"나 같은 사람이 뭔데요?"
울컥했다.

무시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미남이랑 얽히면 자꾸 상처만 늘어간다.



"아!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했어요."
그래도 이 미녀는 지연이나 미남보다는 상식이 있는 편이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는 것이 빨랐다.


"뭐. 솔직히 미남이를 마다하고 날 사귀고 있다면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수빈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반한 남자가 몇 년이나 쫓아다닌 여인이 눈앞에 있는  덩치 크고 험상궂은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말에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그녀였다.


 물론 나 빼고.


"미남이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은 거죠?"

"네. 난 아주 오랫동안 미남이를 알고 지내 왔어요.
내가 알던 미남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변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들어야겠어요.
꼭이요.
 그럴 자격이 있어요."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로 그럴 자격이 있다 할만하다.




"좋아요. 들려드리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미남이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에요. 그러니까."
난 그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녹음은 안 돼요.
만일 녹음을 끄지 않으면 난 지금 여기서 나갈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영영 이유를 알지 못하겠죠."


그녀는 흠칫 놀라 날 바라본다.


그리고 화급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혹시 녹음하고 있는 장면이 화면으로 보여지고 있는 거야?하는 표정이다.

물론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은 꺼져있는 상태였다.



"빨리 결정하세요. 안그러면 일어날 겁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미녀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그냥  관찰력이 좋은 것 뿐이죠."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다.

이야기를 하며 자꾸 쓸데없이 손을 내려본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 표시등이 가끔씩 붉게 번쩍인다.


그정도면 한 번 확인해볼만 하다.

아니면 그만이고.

잠깐 쪽팔린 게 나중에 골치아픈 것보다 낫다.


그리고 빙고!


그녀가 걸려들었다.

이제 내가 한 발 앞서가고 있다.


"좋아요. 끌게요."
미녀는 스마트폰을 켜고 녹음 화면을 찾아 stop 버튼을 눌렀다.

"확인하고 싶으면 확인해 보세요."
수빈이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난 그걸 받아 혹시 다른 앱은 없는지 확인하고, 파워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이제 무장해제된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여자는 쯧!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긴 것처럼 쓸데없이 까다롭다 생각하는 걸까?




잘난 미녀는 모르겠지만,  같은 소시민이  험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진정한 위험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야기된다.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위험을 마주하는 것보다, 소심한 사람이 되는 쪽이 훨씬 낫다.



"우선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위험 요소 하나를 제거했으니, 이야기를 진행하자.


"내가 생각하는 뭐요?"

"내가 불쌍한 미남이를 협박하거나 혹은 공부만 잘하고 사회의 물정에 어두운 미남이를 속이고 있다는 의심 말이죠."
내 말에 미녀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그냥 진실이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어떻게 미남이를 속이고 협박했는지 증거를 찾아낼 생각이었죠. 그래서 녹음이 필요한 거였고요."

이 아름다운 여인은 조금도 지지 않겠다는 눈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떤 타입인지 조금  것 같았다.

거짓, 협박 따위에 익숙하다.

그러니까 그런 행동을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라, 천성이 담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있다.

거짓을 말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피하지 않는다.

곤란한 질문을 받아도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대답은 항상 신중하게 한다.

쓸데 없는 제스쳐가 없다.


수빈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싸움을 즐기고, 승리를 위해 모험을 하고, 대개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물론 대학생인 그녀가 그렇게 대단한 사회 생활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좋아요. 그렇다고 하죠. 그래서요?"
패배의 인정도 빠르다.

그게 자신에게 큰 피해가 없다는 계산이 끝났다면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미남이가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지연은 나와 사귀고 있어요."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지연이 미남에게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했죠.
나를 배려한 거죠.
물론 난 그녀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어요."

여자는 아무말도 없이 내 말을 듣는다.




"미남인 믿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매달렸죠.
이해할  있는 일이에요. 오랜 시간 좋아했으니.
그래서 지연이가 내게 미남을 한  만나달라 했어요.
남자 친구가 있으니 그만 보는게 좋겠다고 해달라 요청했죠."
내가 말하는 동안 수빈은 꽂꽂한 자세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날 만나지 말았어야 했죠.
그자리에서 미남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고, 난 미남이를 데리고 모텔에 두고 가려고 했어요.
모텔에 들어갔다가 지연이랑 관계를 하게 되었죠. 그건 명확하게 내 실수였어요."

잔잔하던 그녀의 얼굴에 한줄기 놀라운 기색이 떠올랐다.


이런 순간이 너무 좋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해도 그녀는 사회의 경험은 그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엔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들이 곧잘 벌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나이이다.

더군다나 성에 관련되어서는 그다지 면역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술에 취한줄 알았던 미남이 깨어나서 그 장면을 보게될줄 몰랐어요."


"비열한 사람이네요. 어떻게 그런 모습을 미남에게..."
수빈은 얼마전까지의 그 침착함을 어딘가 내다 버리고, 불같이 솟아오르는 분노를 표현했다.


그녀는 여전히 미남에게 미련이 남아있었고, 어떻게해서든 내게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난 그런줄 몰랐어요.
지연이 말하길 미남이 소주 반 병만 먹어도 만취라던데... 그날은 한 병은 먹었죠."
슬쩍 나에 대한 변명도 잊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방안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그 여자는 제정신인가요?"
이번엔 지연을 비난했다.


수빈은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고 있다.
자신의 불행의 근원지를.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불행을 납득할 수 없었다.

똑똑한 사람들은 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려고 한다.
그래서 잘못된 이유를 찾아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누군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불행도 있기 마련이다.


"그날 우리가 조금 흥분했었나 봐요. 좀 과격하게, 여러번 했어요."

여자는  무슨 짐승이라도 보듯 경멸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음... 난 그런 눈초리가 좋았다.


어차피 나란 남자가 이런 멋진 여자에게 사랑을 받는 일은 좀처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움이나 증오, 아니면 하다못해 경멸이라도 좋다.

존재하지도 않는 듯한 취급 보다, 그쪽이 훨씬 더 상대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응?
뭐라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어째서 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거지?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알고 있던  이런 음모를 꾸미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여자에게 미움 받는 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변태 같은 놈이잖아?


하지만...
이런 내가  낫다.


정말로.
이 순간이 즐겁다.


"미남에게는 그게 무척 커다란 충격이었죠. 말하자면 자신의 세계가 바뀔만큼 커다란."
잠시 난 머릿속을 스쳐가는 감상을 다독이고, 다시 침착하게 우리에게 벌어진 사고를 설명해주었다.

"당연하죠. 그런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변해요."
수빈의 얼굴엔 당장이라도 날 때려주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누구나 미남처럼 변하지는 않아요. 수빈 양."
난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수빈은 깨달았다.


미남의 변화라는 것이 정말 평범한 종류는 아니다.


단순히 분노였다면 이 남자를 향했어야 한다.

하지만 미남은 오히려 이 남자를 좋아했다.

존경한다 했었다.



"미남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아래에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발정했어요."




"흥!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람이 성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그걸 성적 도착이라하고, 어떤 사람은 그걸 취향이라고 하죠.
그리고 각자의 취행은 당사자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수빈은 영리한 여자였다. 그리고 내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이해했다.
갑자기 어두워진 그녀의 눈빛이 그걸 말해준다.

"그걸 납득하지 못하면 그냥 변태라고 부르겠죠.
사실 그편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그냥 변태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면 그만이죠."

그렇게 말함으로서  그녀가 우리를 그저 변태라 부를 것을 막아버렸다.

물론 나나 미남이 변태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자에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변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모종의 사태로 조금 이상해졌다 생각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알았어요. 그래서 미남이 그날의 일로 자신의 성적 취향에 눈을 떴단 말이군요."
그녀는 간신히 내 말에 동의했다.
변태가 아니라 성적 취향...

"미남은 지연이 쾌락을 느끼고 있는 모습에서 자신도 쾌락을 느낀 모양이에요."


"그런 이유로 다시 쾌락을 느끼기 위해 나와 사귀고,  당신에게 넘겨 당신과 내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음에 할 말이 도저히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모양이다.




"당신과 내가 섹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다 라는 주장인가요? 그렇다쳐요. 네토라레라고 했죠."


이해가 빠른 여자라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시 당신이죠?
어째서 당신을 그렇게 따르고 존경한단 말이에요?
미남이 느끼는 쾌락의 근원은 당신이 아니라 자기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거잖아요?"

미남과 내가 했던 대화에서 들었던 네토라는 단어를 기억해, 날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찾아본 모양이다.


수빈은 그 단어의 의미를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미남의 경우는 좀 다르죠. 아마  쾌락의 중심엔 지연이 아니라 내가 있는  같아요."


"허!"
어이가 없다는 표정.
그건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남자로서 어떤가요? 미남과 비교가 될만 한가요?"
이때 즈음  이 여자가 내 말에 정말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거면 된다.


"... 솔직히 말할게요. 아니요."
수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참 솔직한 여자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후벼팔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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