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6. 복수에 몸을 맡긴 여자.
"그렇게 하면 지아가 굉장히 미워할 거 같은데."
난 조금 튕겨보기로 했다.
"뭐 지금은 지아한테 잘 하고 있는 거고?"
은희가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하긴 우린 지금 밤을 함께 보내고 나왔다.
어떻게 보던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다.
"그래도 그거랑 그거랑 같냐?"
나도 조수석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그때였다. 내 전화기에서 톡! 하며 메시지가 왔음을 알려왔다.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은희가 보낸 메시지이다.
"그거 줄게."
은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까 내가 찍어준 자신의 적나라한 사진이다.
"음..."
솔직한 심정으로 꽤 마음에 든다.
사진속 은희는 두 다리를 위로 잔뜩 끌어올리고,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넣고 있었다.
몸이 아주 유연한 여자들만이 해낼 수 있는 고난이도의 포즈이다.
그렇게 다리를 올린 덕에 음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딜도로 자신의 음부를 쑤시고 있는 은희의 얼굴은 내가 싸지른 정액으로 더럽혀져 있다.
그 사진에서 가장 음란한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날 응시하며, 벌린 입에는 내가 싼 정액이 고여있고, 은희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고 있다.
포르노그라피 사진이라해도 너무 하드한 정도이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사진의 주인공이 섹스에 정신이 나간 인생 막장의 여자라 생각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그렇게 망가진 은희의 모습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나로서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런 거 막 보내다가 유출되면 어쩌려고?"
난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 누나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주는 선물이야. 어때? 감동받았지?"
웃고 있는 은희의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하아... 안 돼... 빨리 가자. 나 이러다가 사고 친다."
키스를 끝내고 은희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알았어. 이런 멋진 선물을 받았으니까 보답은 해야겠네."
진심이다.
여사친에게 이런 사진을 선물 받고도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다면 인간도 아니다.
은희가 차를 출발시키고, 우리를 뒤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온 그 선글라스의 남자는 다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키스 장면도 목격했다.
누가 봐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다.
도대체 뭘까?
남자의 얼굴엔 그런 표정이 남아 있었다.
"혹시 지아 남편될 사람."
운전을 하고 있는 은희에게 물어보았다.
"응?"
왠지 은희가 살짝 놀란다.
"어떤 사람이야?"
"지아한테 굉장히 잘 해주나 보더라. 두어 번 본 적 있었는데, 마치 공주처럼 대하더라고. 지아한테 완전히 빠져있는 건 틀림없어."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어. 근데 난 조금 무섭더라. 뭐라고 하지? 그 굉장히 깔끔한 거 좋아하고,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못 하는 사람 말야.
솔직히 난 지아한테는 그 사람 보다 네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내가 줄 수 없는 걸 줄 수 있잖아?"
정말이다. 내가 지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육체의 즐거움이 전부이다.
그녀의 커리어에 그다지 도움도 안 될 것이고, 그녀를 상류층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다.
동영상으로 한 달에 몇 억을 손에 넣는다해도, 진짜 부자들에게는 하품이 나올만큼 우스운 푼돈에 불과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난 지아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 지 모르겠더라고."
은희는 조금 찜찜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은희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지난 밤에서부터 방금전까지의 일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지 사뭇 궁금하다.
- 영상물 AVM-001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은희와 밤을 지내고 온 날 오후 열흘 만의 정산이 있었다.
지금까지 올렸던 AVM-001에서 AVM-009까지 아홉 편의 작품 수익은 모두 280,659,300원이다.
- 영상물 AVM-010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지연과 찍은 수영장물은 65,774,500원의 매출을 올렸다.
- 영상물 AVM-011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지아와 재회해서 찍은 영상은 48,256,000원의 매출이다.
- 영상물 AVM-012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스파 클럽에서 안나, 아라, 민아와 찍은 영상은 36,580,200원의 매출.
- 영상물 AVM-013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지아와 함께 스파 클럽에서 찍은 영상은 46,250,500원을 벌어들였다.
전반적으로 예상보다 높은 매출이 나오고 있다.
조금 의아한 일이다.
모든 작품이 지난번 결산에 비해서 다소 매출이 늘었다.
이번에 처음 정산을 한 작품은 말 할 것도 없고, 이미 첫 정산이 지난 작품들도 지난 정산 때에 비해 매출이 오히려 올라갔다.
보통 첫 번째 정산이 가장 큰 매출이 나오고 뒤로 갈수록 하락되는 것이 수순이었는데, 오히려 매출이 신장된 이유가 뭘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성인물을 올리는 그 사이트를 들어가보았다.
그리고 사이트의 메인에 얼마전에 올린 오크 영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성인물 유통망에서 오크 영상을 쓸만한 물건으로 판단하고, 마케팅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 때문이었나?
더군다나 하단으로 내려가니 내 영상 두 개가 더 보였다.
둘 다 지연이 주연인 작품이다.
하긴 지금까지 내가 제작한 작품에 나오는 여자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어리고, 가장 가슴이 크다.
얼굴도 충분히 이쁘다 할 수 있는 정도이고.
지금까지 내가 올리는 영상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배급업자의 마이너한 성인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급의 성인물을 내놓으면서 슬슬 인지도를 쌓아가려는 모양이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돈이 되겠는걸?
나로서야 나쁠 것은 없다.
내가 올린 영상에서 남자의 얼굴이 나라고 생각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여자들도 비슷한 분위기는 나지만 틀림없이 다른 얼굴이고.
내게도 나와 함께 섹스를 한 여자들에게도 어떠한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만족.
돈이 더 잘 들어오고 있는데, 쓸데 없이 걱정할 필요야 없지.
이래서 이번에 정산된 금액은 모두 477,520,500원이 되었다.
와우!
매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가속이 붙었다.
- 현재 정산 가능한 수익은 모두 636,593,600원 입니다.
지난번 남은 금액에서 지아에게 1억 원의 개런티를 선지급하고 남은 돈을 합하니 무려 6억 원이 넘는 돈이 남아있다.
이날은 바로 카드를 뽑지 않았다. 당장 급할 것도 없으니 필요할 때에 쓰기로 한다.
대신 지난 번에 받은 기프트 카드 < 미노 비프 세트 >를 사용해보았다.
카드가 사라지고 내 앞에는 커다란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지난번처럼 아이스박스는 아니고, 그냥 평범한 종이로 된 상자였다.
혹시나 해서 종이 상자의 겉면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지난 번엔 아이스 박스가 그렇게 엄청난 물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이스 박스 뚜껑을 열면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새우와 꽃게가 남아있고, 두 주일도 더 전에 횟집에서 사온 광어도 퍼드득 거린다.
뭐야! 좀 무섭잖아?
심지어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싱싱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이번에도 종이 상자에 무언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상자 하단에서 작은 글씨를 찾아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재활용 가능
분리배출 하세요.
그래. 이번 상자는 아닌 모양이다.
상자의 윗면을 열었다.
안에는 소분되어 흰색 플라스틱 용기에 깔끔하게 담여있는 고기들이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의 위에는 투명한 비닐이 덮여있다.
그러니까 마트나 수퍼 정육 코너에서 살 수 있는 평범한 고기와 다를 바 없다.
안심 3kg
각각의 비닐 위에는 부위의 명칭과 중량이 적혀있다.
하지만 원산지는 적혀있지 않네...
그건 좀 아쉽다.
상자에서 고기팩을 꺼내면서 하나씩 살펴본다.
등심 3kg, 갈비 3kg, 채끝 3kg, 양지 3kg...
하나에 3kg 모두 40개의 용기에 다양한 부위의 고기가 들어있다.
그중 등심과 안심, 그리고 갈비가 각각 열 팩씩 들어있고 다른 부위는 소량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소고기가 120kg?
이건...
혼자는 다 못 먹는다.
저 괴상한 아이스박스에 넣어두면 계속 먹기야 하겠지만...
나눠줄 사람을 생각해 봐야겠다.
종이 상자안의 고기들을 꺼내 아이스 박스로 옮겨 담았다.
40팩이나 되니 이것도 제법 일이다.
그런데 마지막 팩을 꺼내고 보니 상자 구석에 무언가 들어있다.
고기를 담은 팩보다 조금 작은 상자이다.
이번엔 플라스틱이 아니라 갈색 종이로 되어있다.
종이 상자 안에는 다시 금속으로 된 통이 여러개 들어있다.
꺼내어 살펴보니 측면에 설명이 쓰여있다.
< 전진 캠프의 비제 허브 믹스 >
- 어느 음식에도 잘 어울리는 특별한 조미료입니다.
- 특히 고기와 잘 어울리니 참고하세요.
고기에 뿌려 먹는 후춧가루나 허브 솔트 같은 조미료인 모양이다.
금속 통은 모두 열두 개, 그리고 전부 똑같은 설명이 쓰여있다.
흠...
궁금한데?
아이스 박스에 넣지 않은 마지막 팩을 뜯었다.
두툼하게 썰여있는 등심이다.
한 팩에 세 덩어리가 들어있으니, 한 덩어리가 1kg인 모양이다.
한 덩어리만 꺼내고, 나머지는 팩에 싸서 아이스 박스에 넣었다.
고기는 제법 마블링이 잘 되어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름 투성이의 꽃등심은 아니다.
아마 한국 기준이라면 절대1++은 받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원산지 표시 조차 없으니...
이걸 선물로 준다고 딱히 좋아는 할까?
사실 나도 소고기는 기름이 충분한 쪽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쇠기름이 몸에 좋지 않다는 둥, 고기에 기름을 많이 만들기 위해 곡물을 잔뜩 먹인다는 둥 말이 많지만, 고기야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그래도 기대가 된다. 지금까지 기프트 카드로 받은 선물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후라이팬에 버터를 올리고, 고기를 구웠다.
기름기가 적으니 버터를 좀 많이 써야겠다.
이렇게 커다란 덩어리를 잘 구으려면 꽤 기술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때 문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 보라가 올 시간이다.
문을 열어주자, 보라가 들어와 옷을 벗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개목걸이를 목에 매고, 개줄을 채웠다.
난 그녀가 그렇게 굴욕적인 모습으로 기어 들어올 때가 너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그녀가 그 상황을 끔찍히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보라는 내가 주방에서 마무리를 하는 동안 소파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적당히 익은 고기를 접시에 담고 잠깐 레스팅을 시켰다.
음... 보라에게 먹이려면 잘라가야 겠다.
지금 그녀는 이 집의 암캐이다.
암캐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난 그녀 몫의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개밥그릇에 담았다.
소금을 뿌려 입만으로 먹을 수 있게 한다.
개밥그릇에 담긴 스테이크를 보라 앞에 가져 놓았다.
"먹어."
보라는 잠깐 날 노려본다.
"멍!"
그리고 굴욕적인 표정을 참지 못하며 강아지 소리를 내고 고개를 숙여 개밥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가 한 조각을 입으로 집어올려 씹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난 내가 먹을 고기를 접시에 담아 소파에 앉았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찍어 입에 넣었다.
음...
이거 생각보다도 훌륭하잖아?
기름기가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입안에 넣으니 소고기 지방 특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입안에 넘쳐 흐른다.
와우!
한 입 만으로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다.
언젠가 누가 사줘서 먹어보았던 비싼 고깃집 꽃등심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잠시 동안 난 그 고기의 맛을 음미했다.
적당히 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질기지는 않다. 육향은 풍부하고, 지방의 고소함은 버터의 향기에 조금도 지지 않는다.
역시 기프트 카드는 결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고개를 내려보니, 보라는 못마땅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고기 하나를 집어 먹는다.
틀림없이 그녀도 이 맛을 느끼고 있을 텐데, 그녀는 얼굴의 찌푸린 표정을 조금도 풀지 않았다.
대충 이해는 간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해도, 그렇게 개 취급을 당하고 있다면 기쁘지 않을 테지.
"전부 먹어치워."
내 말을 듣고 보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묵묵히 고기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