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15. 약혼녀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응? 갑자기 그건 왜?"
지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냥..."
그녀의 약혼자가 우리 옆방에 와 있다는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뭐. 혹시 들키면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지아가 웃었다.
사실 그런 생각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난 내 행동에 일말의 정당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원한을 품은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지아였다.
대개 감정적인 복수의 대상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에게 행해지기 일수이다.
"착한 사람이야. 좌절은 하겠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래... 세상 그 누구도, 아무리 오랜 동반자라해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잘먹었습니다. 자긴 그냥 앉아있어."
지아가 배부르게 먹었다며, 나머지를 치웠다.
"이제 또 하자!"
지아가 달려들었다.
결혼식을 하면 나와 볼 생각이 없다면서, 무척이나 밝은 얼굴이다.
"학! 아아! 좋아!"
우리는 아주 지독한 섹스를 했다.
한동안은 침대에서 하다가, 난 그녀를 안고 벽에 붙어있는 소파로 갔다.
그녀의 얼굴은 303호와 사이의 벽과 겨우 한 뼘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물론 지아는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쓰지도 않았다.
"윽! 너무 좋아! 어떻게 해! 자기랑 하는 게 너무 좋아!"
"박아줘! 더!"
"넣어줘!"
"안에 싸줘. 내 보지 안에 오빠 정액을 가득 채워줘!"
난 일부러 그녀에게 적나라한 표현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아는 기뻐하며 자신이 느끼는 쾌락을 마구 질러대었다.
그러니까 지아는 아마도 그 남자가 듣고 싶어했을 소리를 들려주었다.
처음 지아의 목소리가 옆방에서 흘러나왔을 때 남자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벽에 귀를 가져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의 표정이 감돌았다.
난 딱 거기까지만 지켜보았다.
우리의 섹스는 무척이나 격렬했다.
지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마구 울부짖었다.
"하아... 하아... 우리 이러다가 쫓겨나는 거 아냐? 나 목소리가 너무 컸지?"
조금은 창피한 듯, 그녀가 물었다.
"어. 아마 이 건물에 있던 사람들 전부 들었을 거야."
"미쳐... 이게 무슨 꼴이람! 이것도 다 오빠 때문이야!"
그래도 아직 오빠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삐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잠시 휴식을 가졌다.
난 몰라도 지아에겐 쉴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똑똑똑!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뭐지?
혹시 스 남자가?
지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인데, 나만 깜짝 놀라고 있었다.
황급하게 모니터를 켰다.
그 남자는 아니다.
남자는 어느새 자기 벽에서 떨어져서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가서 문 열어줘."
지아가 말했다?
"응? 누가 온 건지 알아?"
"응. 아까 말했잖아. 선물이라고."
그녀의 얼굴엔 장난기가 그득했다.
난 침대에서 내려가 팬티를 집었다.
"그냥 나가봐. 괜찮으니까."
흠... 뭘까? 이 여자의 장난이 엄청 기대되잖아?
난 그녀의 말대로 벗은 몸으로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엄마야!"
놀란 것은 상대방이었다.
"넌 왜 왔냐?"
나도 놀랐다.
"응? 지아한테 못 들었어?"
은희가 말했다.
"음... 들었어. 선물이라고?"
"흐응? 선물이라? 여튼 들어간다."
은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거벗은 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
"지아야!"
두 여자가 호들갑스래 인사를 했다.
아니. 지금 그러기에는 좀 안 어울리지 않아?
난 살짝 당황했다. 어째서?
알몸의 지아와 은희가 서로를 껴안고 인사를 하고는 함께 테이블로 갔다.
은희는 들고온 비닐 봉지를 풀었다. 맥주와 소주가 대여섯 병, 그리고 마른 안주 따위가 들어있었다.
"뭐해? 와서 앉아."
지아가 손짓을 했다.
"그래."
난 문을 닫고 그녀들 곁으로 갔다.
지아와 은희가 준비한 장난이 무척 기대되고 있었다.
"맥주?"
은희가 물었다.
"소주."
지아는 독한 술을 골랐다.
"넌?"
"나도."
"그럼 맥주는 나 혼자 마셔야겠다."
잠깐 동안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즐겼다.
대개는 예전 나와 지아가 사귀던 시절의 일들이다.
그 무렵은 이렇게 셋이 함께하던 자리가 가끔은 있었다.
은희가 나와 지아를 이어준 장본이기 때문이다.
지아와 헤어지고 은희가 지금의 남자를 사귀고 나서부터는 난 이 두 사람과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나 좀 씻고 올게."
맥주 두 병 정도를 비우고 은희가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넌 갑자기 왜?
"지난번에 느낀 건데."
지아가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둘이 하는 것도 좋은데, 사람이 더 있으니까 뭔가 자극이 되는 거 같더라고."
그건 알겠다. 지아 스스로도 그날의 경험은 끝내준다 했었다.
"그런데 니가 다른 여자랑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까, 막 자극은 되는데, 가슴이 저려왔어. 아마 질투겠지."
아마도 설정 카드 < 참사랑 >의 영향이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남자랑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런 것은 나도 결코 보고 싶지 않다.
난 세상에 남자는 나 하나 뿐이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은희 언니랑 얘기를 해보니까, 언니가 오빠랑 섹스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성적인 긴장감은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
벌써 몇 번이나 그녀는 나와 유사 성행위를 가졌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어. 우리 하는 거 보고 싶으면 오라고."
아항!
이젠 조금 이해가 간다.
은희는 나와 지아의 관계를 구경하면서 나와의 섹스를 떠올리고 싶은 모양이다.
"은희 언니가 말했어. 대신 내가 약속해줘야 한다고. 너. 오늘 은희 언니랑 절대로 하면 안 돼!"
지아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만약에 내가 이성을 잃으면?"
"나 삐질거야."
하하... 귀여운 협박이었다.
"진짜루. 너랑 언니랑 하면서 막 그러는 거 보고 싶지 않아. 하고 싶으면 둘이 있을 때 해."
그런데 지난번에 나한테 했던 말은 뭐야?
뭐. 이해는 간다. 그냥 말로 하는 것과 실제는 다른 것이지.
스파 클럽에서 나와 안나, 민아, 아라의 관계를 본 것이 지아에게 조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설정 카드 < 참사랑 >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대충 알 것 같았다.
< 참사랑 >은 질투를 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를 하면서도 내가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막을 생각은 하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벤트를 준비한 모양이다.
"우리도 씻으러 가자."
지아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고 보니 두 번이나 섹스를 해서 그녀의 몸속에는 여전히 내 정액이 남아있을 터이다.
그녀로서는 그 상태로 다시 섹스를 하는 것이 창피한 모양이다.
"언니 같이 씻어. 우리."
"뭐야! 깜짝 놀랐잖아!"
은희는 마침 자신의 그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흐응?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건데?"
"몰라! 어쩌다가 네 꾀임에 빠져가지고..."
은희는 정말로 창피해하고 있었다.
난 그녀가 여기에 오기까지 적지 않은 갈등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난 그녀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은희의 결정은 오롯이 그녀의 진심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성욕에 굴복한 모양이다.
"왜 들어왔어? 나 나가면 니들끼리 다정하게 씻지."
"언니 앞에서 다정하게 씻으려고."
지아는 은희를 도발하며, 샤워기를 틀어 내 몸에 뿌렸다.
"못됐어."
"나 못된 여자인 거 언니도 잘 알잖아?"
"그러게 말야."
지아는 내 몸을 아주 정성껏 씻어주고, 자신의 몸도 씻었다.
그리고 그동안 은희는 우리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난 몇 번이나 그녀가 침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대개는 지아가 내 기둥을 어루만지거나, 입으로 희롱할 때였다.
셋의 기묘한 샤워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은희는 가운을 걸쳐입었다.
그게 꼭 그녀의 다짐 같아 조금은 웃겼다.
"그럼 재미있게 놀아. 난 여기서 조용히 없는 척 하고 있을게."
은희가 소파로 가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지. 언니도 이리로 와."
확실히 지아가 더 못됐다.
그녀는 굳이 은희의 손을 잡아끌어 침대 머리에 앉혔다.
"기왕 볼 거면 가까이서 봐."
"으응..."
은희는 못이기는 척 지아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앉았다.
"근데. 너 약속 해. 난 안 할 거야."
은희가 날 바라보며 다짐을 요구했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정말이다.
"진짜 못됐다. 꼭 자기가 뭐라도 되는 거처럼 말한다니까."
지아가 은희를 대신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 영웅이가 이렇게 얄미운 남잔 거 몰랐어."
"그지?"
왠지 두 여자는 짝짜쿵이 잘 맞았다.
지아는 내 손을 잡아끌고 침대에 눕혔다.
고개만 돌리면 바로 은희가 옆에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세심한 자리 배치였다.
오늘의 이 놀이의 주제자는 지아였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세팅했고,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길 원했다.
지아는 내가 누워있는 아래로 와서 털썩 엎드렸다.
정확하게 내 자지가 그녀의 머리 앞에 있었다.
지아는 입을 벌리고 그걸 집어 넣었다.
그녀의 눈은 은희를 향해 있었다.
"으음..."
소리의 주인공은 당사자인 내가 아니라 은희에게서 나왔다.
그녀는 내 물건을 희롱하고있는 지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지아는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눈가에 장난기가 가득해서,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내게 봉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
문득 은희가 입을 열었다.
"응?"
"너 우리 학원에 왔을 때 말야."
"응.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사진은 이미 넘겼다.
내가 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진이었고, 은희도 그렇게 말했었다.
"문제 있지."
"무슨 문제?"
"송아 쌤이랑 은지 쌤 말이야. 요즘 나 굉장히 귀찮게 해."
"뭘로? 사진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게 아니고. 너한테 고맙다고, 언제 한 번 꼭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말이야."
"아아..."
"근데 내가 보니까 두 사람 원하는 게 그게 아냐."
"그러면?"
"너한테 꽂혔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이번에 물어본 사람은 지아였다.
"너한테도 말했잖아. 영웅이가 우리 프로필 찍어줬다고. 근데 다른 원장샘들이 마음에 들었나 봐."
"우리 오빠를? 어째서? 뭐가 이쁘다고?"
지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니까. 내가 두 사람한테 한 번 말 했거든. 영웅이 그게 엄청 크다고. 그것 때문인가? 영웅이가 사진 찍던 날, 두 사람 되게 이상했어. 좀 안절부절 못하고... 진짜. 얼마나 웃겼는데."
아니... 설마 남자의 거기가 크다라는 소리를 들어서 안절부절 못할 여자 따위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녀들의 그러한 이상한 행동은 어디까지나 내가 못된 장난을 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내게 캐스팅 된 여배우들이었고, 액티브 카드 < 호감 > 때문에 그날의 쾌감이 나에 대한 호감으로 남았을 것이다.
보라의 경우와 달리, 난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서 액티브 카드 < 호감 >을 비활성화 해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진짜! 왜 그런 소리를 한 건데?"
지아가 항의했다.
"난... 지아 너가 영웅이랑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으니까."
어쩐지 은희의 말에 약간 의기양양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일까?
하필이면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굳이 은희가 그걸 말한 이유는 지아를 자극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여우 같은 여자가 둘이나 오빠를 노리고 있다는 거야?"
"여우?"
지아의 말이 조금 과격했다. 무얼 알고 있는 걸까?
"나도 언니 학원 가끔 놀러가잖아. 보면 알아. 보통 여자들이 아니더라."
지아는 그 두 여자에 대해 경각심을 감추지 않는다.
아니. 경각심이라기보다는 질투에 가깝다.
"뭐. 조금 그런 경향이 있지."
은희가 지아의 말에 동조를 했다.
"남자들은 느끼지 못할 거야."
"그지.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한테 쉽게 넘어가니까. 여튼 언니는 그걸 알면서도 영웅이를 그 여자들이랑 이어주려고 한 거야?"
"그잖아. 영웅이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근데 왜 여우야?"
"여자들만 아는 게 있어. 꼭 남자 앞에서만 하는 행동들이 있다구."
지아가 말했다.
은희는 더이상은 동조하지 않는다. 차마 자기와 동업하는 여자들의 험담을 입에 올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