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14. 매직미러의 저편에 남편이 있는데
"여긴 왜 오자고 한 거야?"
언제나 그렇듯이 보라는 나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싫어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이 시간 당 몇십만 원에 달하는 최고급 회원제 스파라해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설마 이런 곳에서까지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
그녀는 잠시도 날 믿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조금은 억울하다. 내가 딱히 그녀를 속인 것은 없는데 말이다.
"그냥 좋은 곳이라서 와 본 거야."
난 보라에게 오늘은 절대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냥 같이 스파와 마사지를 받고 헤어지면 돼. 오늘은 손도 안 될 거야."
"쓸데 없는 생각 하고 있는 거지?"
보라는 여전히 내가 그녀를 사모해서 이런저런 낭비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
뭐. 상관 없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을 하건, 그녀는 내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그리고 난 약속을 지켰다.
굳이 보라와 하지 않아도 관계를 맺을 상대는 충분히 많았다.
보라가 상담을 받는 동안 테이블 아래에 숨어있던 아라가 자지를 빨아주었고, 보라가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받는 동안에는 민아와 멋진 섹스를 즐겼다.
심지어 스파도 따로 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칸막이가 있네요?"
커튼이 쳐져 있는 칸막이를 보고 보라가 말했다.
"커플이 오셔도 조금 부끄러워하시는 분이 있어 이렇게 막아두었습니다."
민아의 말에 보라는 오히려 안심을 했다.
보라가 엎드린 뒤에서야 민아는 커튼을 걷었다.
난 매직 미러 저편에서 그녀가 마사지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나와 섹스를 했다.
세 번의 섹스를 했고, 세 번 모두 즐거웠다.
이날은 지아와 왔을 때처럼 아라와 민아를 시켜 보라에게 망측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스파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 준 것이 전부였다.
"어때. 괜찮았어?"
"어. 피로가 많이 풀린 거 같아."
오랜만에 보라의 밝은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럼 다음엔 남편이랑 함께 와."
난 그녀에게 이 럿셔리 스파 클럽의 커플 이용권을 주었다.
"뭐?"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날 하루 내가 그렇게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했다.
"싫어."
보라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나 써. 나 그 사람이랑 여기 올 생각 없어."
물론이겠지.
"이정도 호의는 받아들일 수 있잖아?"
"당신이 주는 호의 따위 필요 없어. 그리고... 나 그사람을 모욕하고 싶지 않아."
날 바라보는 보라의 눈은 차가웠다.
"당신한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해?"
난 일부러 기분이 나쁜 티를 잔뜩 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협박이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는 이용권을 억지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음... 이번주 안으로 오도록 해. 오기 전에는 나한테 말할 필요 없지만, 다녀와서는 꼭 알려줘야해."
그녀가 아니라도 내게 알려줄 사람은 충분히 있다.
보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다. 자신은 결코 날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랑 온다거나, 다른 사람을 준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 그래. 와서 함께 찍은 사진이나 남겨둬."
"알았어."
보라는 여전히 나에 대한 의심은 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말씀하신 두 분 방문하셨어요."
보라와 스파 클럽을 다녀오고 며칠 되지 않아 안나에게 연락이 왔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보였던 태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날의 경험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보라는 남편과 함께 그 스파 클럽에 찾아갔다.
그리고 중간 즈음에 내게 자기가 남편과 함께 왔다는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나를 향한 증오를 버리지 못한다해도, 우리 사이의 힘의 균형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녀는 내가 시키는 것을 충실히 따라야만 했고, 내 안색을 살피며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두려워해야 했다.
내가 스파 클럽에 도착한 것은 두 사람이 방문하고 한 시간 쯤 지난 뒤였다.
"지금 남자분은 스파를 하고 계시고, 여자분은 막 페이셜을 마치셨어요."
딱 적당한 시간에 간 모양이다.
난 안나와 함께 응접실에 앉아, 모니터로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불법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스파 클럽의 이 VIP 구역은 오직 나만을 위한 장소이고,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은 내가 지정한 사람 뿐이니 아무 문제도 없다.
잠시후 보라가 알몸이 되어 스파에 들어갔다.
아직까지 아무런 이상한 일도 생기지 않아 안심한 모양이다.
보기 드물게 편안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멋진 여자분이네요."
안나가 말했다.
"두 분이 부부이신 것 같더군요."
"맞아요. 내가 사는 집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굉장히 의 좋은 부부이죠."
"예. 제가 봐도 서로 무척 다정하셨어요. 사실 부부 사이라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요."
"그죠?"
우리는 같이 즐겁게 웃었다.
"저 여자분은 영웅님을 꺼려하는 것 같더군요. 이런 거 여쭤봐도 되는 건가요?"
"안 될 거야 없죠. 우리 사이에. 내가 협박을 하고, 그녀의 몸을 무단으로 강점하고 있으니까요."
내 대답에 안나가 다시 살며시 웃었다. 난 그녀의 얼굴에서 사악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쩐지 이 여자, 나와 무척 비슷하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는 꽤 사악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간다.
누굴 괴롭히고, 착한 척을 하고, 그런 것에 능숙한 여자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내 바램인 걸까?
"제게 주문하신 것들이 사실은 저 여자분을 위한 거였나 보내요?"
그녀는 금세 알아차렸다.
사실 지아를 이곳으로 데려오기는 했었지만, 내가 정말 괴롭히고 싶은 사람은 바로 보라라는 것을.
"오늘 무척이나 놀라겠군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보라가 스파를 끝내고 일어났다.
나와 안나가 대화를 하는 동안 아래에서 내 자지를 빨고 있던 아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게 눈으로 물어왔다.
빨리 끝낼까요?
난 고개를 흔들었다. 급할 것은 없다. 이미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아직 내가 등장할 차례는 되지 않았다.
잠시 뒤에 탈의실에서 보라와 그 남자가 만났다.
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따라 마사지 룸으로 향했다.
"여긴 커플 마사지인데, 왠 칸막이가 있지?"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여자가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데요."
보라가 전에 들은 이야기를 남자에게 해주었다.
직원이 남자에게 마사지 베드를 지정해주었다.
지난번 보라가 누웠던 장소이다.
남편이 눕는 모습을 보고, 보라가 민아를 따라 칸막이 너머로 갔다.
매직 미러 저편을 볼 수 있는 유리는이미 커튼으로 막아놓았기에, 보라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못했다.
보라가 마사지 테이블 위에 누웠다.
저쪽에서는 벌써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오늘 처음 보는 여자이다.
대략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정도로 보인다.
어쩐지 굉장한 베테랑일 것 같았다. 그리고 여자 치고는 꽤 덩치도 있다.
"저분은 이곳에서 가장 경력이 긴 분이에요."
안나가 설명해주었다.
"물론 믿을만한 사람이고요."
오늘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이다.
이쪽에서 보라와 재미를 보는 동안 남자를 정신 없게 만들어야 했다.
혹시 이상한 느낌이 생겨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이 작전의 성패 여부는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 달려있다.
음... 그러니까 이건 내가 아니라, 저 남자를 위해서이다.
나야 들켜도 큰 상관은 없다.
이미 보라와 그 남자가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두 사람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지금 보라의 남편에게는 엄청난 저주가 걸려있다.
캐스팅 카드 < 빼앗기는 남자 >
만일 그 남자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스스로만 다칠 뿐이다.
그러니까 난 그 베테랑 마사지 사가 잘 해주기를 바랬다. 보라와 그녀의 남편을 위해서
그때 막 민아가 보라의 가운을 벗겼다.
드디어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사지로 시작한다.
머리를 누르고, 목을 누르고, 어깨의 여기저기를 누른다.
"으음..."
보라는 기분이 좋은지 약한 신음을 내었다.
"어때? 좋아요? 여보?"
그리고 칸막이 저편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좋아요. 당신은요."
"응. 굉장히 좋아. 아주 기분이 좋은데? 마사지라고 해서 아플줄 알았는데 말야."
두 부부는 그렇게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가 보라의 등에 테라피 오일을 바르기 시작했다.
"학!"
보라가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낀 때문이다.
"괜찮아요?"
"예. 살짝 간지러웠어요."
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으음... 하아... 오일 마사지가 무척 기분이 좋네요."
"그러게요. 몸도 마음도 마구 풀어지는 기분이에요."
그때즈음 마사지 룸에 틀어놓은 음악의 볼륨이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뭐. 이제 슬슬 가봐야 할까?
"하아..."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보라는 아주 기분 좋은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잠깐 동안 경각심을 갖기는 했었지만, 자신을 마사지해주는 여자가 기분 좋게 다독거려 마음이 풀어진 탓이다.
내가 들어가자 민아가 내게 보라를 양보해주었다.
그리고 칸막이 양쪽에서 매직 미러를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버렸다.
바로 저 건너편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사실 그걸 보고 싶지는 않다. 다른 남자가 등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보아서 좋을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으응?"
역시 숙련된 민아의 손길과 내 손길은 차이가 꽤 있는 모양이다.
보라가 바로 눈치를 챈다.
하지만 그걸로 고개를 올려보지는 않는다. 아직은 조금 이상하다는 정도이겠지.
난 열심히 안나의 흉내를 내어, 보라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하아..."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잠시 긴장한 것 같던 보라는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난 그녀의 엉덩이를 만졌다.
"아!"
깜짝 놀란 보라가 상체를 들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그녀의 입가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대었다.
보라는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리고 경악한 눈으로 날 노려본다.
아니. 놀란 눈이 아니라 화가 난 눈이었다.
이런... 눈빛 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그런 눈일 테다.
난 그녀의 놀람과 화남에 미소로 답해주었다.
보라가 눈을 굴린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겠지.
뭐. 난 그녀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잠깐 가슴이나 만져보도록 하자.
내 손이 보라의 아름다운 가슴에 닿았다.
화들짝 놀란 보라가 황급하게 내 손을 가로막았다.
음...
한 가지. 아직 그녀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난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그녀가 그걸 바라본다.
손을 옮긴다. 오른쪽으로.
보라의 고개가 돌아간다.
"헉!"
그녀는 보았다.
아까까지만해도 커튼이 있던 곳에 유리만 있었다.
유리창 건너편에서는 남편이 마사지를 받고 있다.
경악 이상의 어떤 상태가 있다면, 바로 지금 그녀가 그러할 것이다.
보라는 아직 그게 매직 미러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는 그냥 유리창에 불과할 뿐이다.
"아팠어요?"
남편이 물어왔다.
"아, 아니... 괜찮아요."
보라가 황급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혹시라도 남편이 고개를 들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가끔씩 간지러워서..."
"그러게..."
남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척이나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역시 베테랑은 다른 모양이다.
"하지마. 나가"
보라는 날 바라보며 입술을 꿈뻑거렸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말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었다.
"싫어."
나도 입술로 대답했다.
그 순간 보라의 얼굴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를 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난 그녀의 팬티에 손을 댔다. 보라가 흠칫 했지만, 저항은 하지 않는다.
"빨리해."
그녀는 다시 입술로 그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