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13. 판타지의 꽃은 오크? (90/377)



〈 90화 〉@13. 판타지의 꽃은 오크?


그러니까 이 오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은 모욕이 아니고 칭찬이었다?


나... 짐승같은 것들.




"근데. 어제 한 말이 부족에 전부 퍼졌어. 테미르 바스가 그렇게 결정을 했다면, 우리는 따를게. 준비를 해야지?"




그건 그렇고...
 오크 녀석들을 볼 때마다 난 상대의 이름과 더불어 한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내게 가장 친근하게 구는 녀석은

< 보르치 콕뵈르 >

종족 : 오크
운명 지수 : 231/62,738,000


이렇다.

그런데 저 운명 지수의 양이 너무 이상하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놈은

< 키질라 콕뵈르 >

종족 : 오크
운명 지수 : 121/8,200

운명 지수의 차이가 너무나 현격하다. 거의  배나 차이가 난다고?



"보루치. 뭐 좀 물어보자."
 그들  가장 큰 운명 지수를 가진 놈에게 물어보았다.

우선은 분족의 의미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보루치는 생각해 둔 것이 많았던지, 내가 묻는 질문에 일사천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원래는 망고드가 분족을 해서 나가야 했단 말이지?"
테미르 바스는  부족의 막내라고 한다.
그리고 초원의 율법은 나이가 어린쪽이 부족을 물려받는단다.
나이가  아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부족을 떠나 일가를 이루는게 원칙이다.


뭐 그런 어처구니 없는 방식이 있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큰 아들이 물려받는  아니라고?


그런데 이 부족은 망고드가 워낙 용맹하고, 부족 용사들의 신임이 커서 원래대로 분족을 했다면 망고드를 따라 나갈 용사들이 절반을 넘었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어제 시장에서 내가 이 콕뵈르는 망고드의 후손이 물려받는다 라고 공언을 했으니, 콕뵈르를 망고드에게 양보한다 선언한 것이란다.


어떤 면에서는 부족으로서는 다행이라는 것 같다. 망고드가 부족을 물려받으면, 지금의 성세를 크게 망가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란다.


"우리도 테미르 바스가 언젠가 그런 결단을 내릴 거란 것은 예상하고 있었어."
보루치가 말했고, 다른 오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그게 언제가  지 몰랐을 뿐이지."

흠... 그런건가?

"나름 다들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걱정은 하지 마. 언제 시작할 지만 결정하면 돼."


이 자식들 좋은 놈들이었잖아?
왠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테미르 바스를 무한하게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면  따라나설 자들은 너희가 전부인가?"

"푸하! 무슨 소리를? 그래도 백은 돼."

 녀석들 각자가 스물 남짓한 분파를 이끄는 수장들이었다.
각기 하나의 아크바, 그러니까 백인대를 이끄는 백인장 쯤의 위치인 모양이다.

"우리 아크바는 전부 간다."


"우리도."
"나도."

다섯 명의 오크들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이 맡고 있는 아크바의 충성심을 내비추었다.


그리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분족을 위한 준비에는 뭐가 있는지, 그리고 용사들은 자기가 속한 아크바에 따라 강제로 분족을 따르는 것인지.


물론 난 앞으로  여자만 더 취하면, 이 시네마틱 카드의 세상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으니, 우선 하나라도 더 알아두자.


한동안의 대화로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원래가 좀 특이한 오크였던 것이 맞고, 다른 오크들과 그리 어울리는 일은 없었다.
요 며칠 내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오크도 없다.

그래서 내가 굳이 묻지 않으면  귀찮게 굴지 않은 모양이다.


흠. 이것도 설정인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걸까?

"그러니까  따를 용사들은 전부 자발적이란 말이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따라나선 대가로 암컷 한 마리 정도씩 선물로 주면 좋아할 것이고.

그제서야 망고드가 내게 그런  돈을 준 이유를 납득했다.

테미르 바스는 막내이고, 사냥에도 관심이 없어 모아둔 돈도 그다지 없던 모양이다.

뭘까? 이 테미르 바스란 놈은?
원래가 야망도 없고, 오크들과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고, 사냥도 즐기지 않는다.


오크 답지 않은 오크였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따르는 오크들이 제법 된다.

어째 이녀석들은 내가 분족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는 모습까지 보인다.


테미르 바스라는 오크에 대해서는 좀  알아보자.

하지만 질문에는 주의를 해야 했다.
내가 테미르 바스를 모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선물로 줄 암컷은 노예상인에게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적당한 선물은 만 츄르 정도.

망고드 이자식 좋은 형이었나? 백만 츄르면 충분한데, 삼백만이나 준 거야?

다른 준비로는 짐을 끌고 다닐  늘보, 그리고 부족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 필요한 양식 정도.

날 따라나설 오크 용사들은 각기 자신의 천막이나 가재도구 따위는 각자 알아서 할 거란다.


크게 힘든 준비는 없다고 했다.



"얼마나 남았지? 분족하려면?"

"그거야 테미르 바스가 결단을 내리기 나름이지."


빠르면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를 하려면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당장 오늘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너무 깊이 생각할 것은 없다. 우선은 내 할 일부터 하자.

난 그들에게 각자 알아서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고, 노예상에게 갔다.


우선 어제 내게 다크 엘프를 판 그 녀석을 찾아 물어본다.


"아!  다크 엘프 말씀입죠..."
어제와는 사뭇 태도가 다르다. 아마 내가  부족 족장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다.


"구매에서 지금까지 제가 관리를 맡아왔으니, 제가 잘 알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자는 노예 장부를 찾아와 다나스 엘피나에 대해 적어놓은 서류를 찾았다.

오크들과 달리 고블린이나 인간들은 굉장히 체계적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노예들의 과거 행적까지 전부 기록을  놓았다.


"이름은 마리나 엘핀. 다나 공화국에서 넘어온 노예상에게 넘겨받았습니다."


다나 공화국은 우르크마니스탄 서쪽에 위치한 인간들의 나라라고 했다.

"다나 공화국으로 팔려가기 전에는 사브락 왕국에서 두 번 거래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노예가  건 1년 전에 사브락 왕국에서 범죄 행위로 노예형을 받았군요. 도둑질 3번, 상해가 2번. 사기가 4번... 이정도면 노예형이 과하지 않군요."

역시 공주는 개뿔. 사기꾼에, 폭력, 절도 전과자였다.
모두 9번의 범죄로 갱생의 여지가 없어 노예로 팔려왔고, 노예가 되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아 이리저리 팔려 마침내 오크의 땅까지 오게  모양이다.



"그 문신은 뭐지? 금제라고 했었지?"

"아! 그건 인간들은 암컷 노예를 사고 팔면서 그렇게 금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녀처럼 이쁜 경우라면 말이죠. 뭐. 아무래도 원치 않는 자식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나요. 어처구니가 없죠?"


오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인간인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범죄 행위로 노예형을 받기 전에는 여기저기서 모험가의 일을 한 모양입니다만... 그런 것까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런데 혹시 자네 제마이티야 라는 나라를 알고 있나?"


"제마이티야라굽쇼?  처음 듣습니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 영감이 안다고 합니다."
고블린이 초로의 노인 하나를 데려왔다.
목에 가격이 붙은 나무판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노예였다.


"제마이티야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노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생긴  보면  학자 풍이다. 아는  많을 것 같다.


"저 서쪽 끝에 있던 나라입니다. 지금은 멸망한지 오래되었지만요."


"오래라고?"

"예. 제가 한 서른 즈음이었으니, 아마 30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 워낙 멀리 있는 나라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나라의 침공을 버티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 30년 전이라고?"
그러니까 그 다크 엘프 여자가 그 나라의 공주라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아무리 봐도 이제 스무살 중반으로 밖에는  보이...

"혹시 다크 엘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

"예... 다크 엘프들은 주로 대륙 서쪽에 많이 살고 있지요. 제마이티야도 아마 다크 엘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크 엘프들은 혹시 오래 사는 종족인가?"
원래 판타지에서는 그렇지 않던가? 엘프니 다크 엘프는 수백년  년도 산다던데...

"오래산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어지간하면 백 살은 넘긴다더군요."
엄청나게  시간을 살아가는 놈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도 어려보인다거나... 50이 넘어도 20대처럼 보이고 하지는 않아?"

"뭐. 우리 인간들 보다야 좀 나이를 덜 타기는 하지만... 그정도까지인지야 모르겠습니다. 다크 엘프들이 워낙 인간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해서 말이죠."


"그래. 그런데 이 노인은 어째서 데리고 다니는 건가?"

노인의 목에 걸려있는 가격은 29,800츄르. 오크들이 저 가격을 주고 살 리는 절대 없다는데, 백 츄르 건다.



"예. 이 영감도 다나 공화국에서 팔려왔습니다. 뭐. 오크 분들께야 딱히 가치가 없지만,  동쪽으로 가져가면 그래도 아는게 많으니 신기해서 사줄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말이지요."

흠... 하기는 노예 중에서도 아는 게 많다면 쓸모가 있겠지.
그것도 이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딱히 재미 있는 유흥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있는 TV나 영화 따위로 쓸 수도 있고 말이야.


만약에 내가 이곳에 살아가고 있다면 살만도 하다.


"그래. 영감은 언제부터 노예가 된 건가?"

"이제 육개월이 채  되었습니다. 지은 죄가 있어서 노예로 팔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군요."
체념일까? 아니면 달관일까? 초로의 나이에 노예가 되어서도 절망의 빛은 보이질 않는다.


"무슨 죄를 지었지?"
궁금했다. 순하고 학식있어 보이는 이 노인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노예로 팔린 걸까?

어쩌면 학자로 있으면서, 권력자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한 것은 아닐까?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쩌다가?"

"뭐. 사람을 죽일만한 일이라면 달리 뭐가 있겠습니까? 원한입죠. 참기 힘든 모욕을 당했고, 참지 못했을 뿐입니다."
노인은 담담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자신이 노예가 된 것에 분노하기보다,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사람을 죽여?

그자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래. 살인을 하기 전에는 무얼 했었나?"


"나라에서 벼슬을 했습니다. 그리 대단한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미관말직입죠."

"죽인 사람은?"

"상관이었습니다."
노인이 씩 웃었다.
순간 난 등골이 서늘해졌다.

노인의 얼굴 그 어디에서도 분노 따위는 찾아볼  없었다.
마치 해탈에 가까운 자애로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통쾌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남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고 있지 않았다.


난 어쩐지  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결과를 맞이할 지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상관을 죽여? 그랬는데도 사형이 아니라 노예형이라? 그 나라도 꽤 관대로운 나라였나보군."

"그럽죠. 저 같은 놈은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을텐데... 나랏님께서 제게 자비를 배풀어주셨습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그러자 노인의 눈에 이채가 머물렀다.

"그럼요. 나으리."

노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입담이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딸의 복수를 하고, 상관의 비리까지 밝혔다. 그말이로군."

몇 년 전 딸이 누군가에게 겁탈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단다. 범인은 곧 잡혀 목이 잘렸지만, 노인은 그자가 범인이 아니라 의심을 했고, 진범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범인은 노인의 상관이며, 그의 위치로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왕족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국왕의 조카라고 한다.


몇 년 동안 노인은 그자의 범행의 증거를 모으고, 그가 저지른 악행들, 그리고 그자의 비리까지 전부 모았다.


노인은 그것만으로 왕족인 범인에게 충분한 처벌을 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해봐야 지금의 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이 전부.
그래봐야 몇 년 뒤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겠지.


어느 나라든 권력자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한 법이지.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처벌을 내렸다고 한다.

그제서야 난 노인으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이해할  있었다.


만족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국왕 폐하께서는 제가 모은 증거로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왕족을 죽이고도 죽지도 않았고, 그의 가문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처벌을 받은 것은 자신 하나 뿐이고, 다른 혈족들은 무사하단다.


"그러니까 국왕이 자네에게 은혜를 갚은 거로군."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국왕의 조카라면 국왕의 아들에게는 왕위를 놓고 다툴 정적이나 다름없다.


"흐음..."
노인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나으리는 참으로 특이하신 분이로군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