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13. 판타지의 꽃은 오크? (82/377)



〈 82화 〉@13. 판타지의 꽃은 오크?

전형적인 오크와는 좀 다르지만 누가 봐도 무섭게 생긴 것은 맞다.

응? 그런데 얼굴은  원래의 얼굴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코가 좀 더 커졌고, 뾰족한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삐져나온 것만 빼면... 그냥 나다.

아!


그랬구나. 내가 원래 저렇게 무섭게 생겼구나.


마음이 상했다.



그래.

고맙다. 나 자신을 알게 해 줘서.

서러운 마음으로 시네마틱 카드 < 우르크마니스탄 >을 찢었다.

그리고 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꼴을 당할 줄 알았다면 그 보상이 뭔지 몰라도, 절대 그 시네마틱 카드인지 무언지를 찢지 않았을 것이다.

-----




끝없이 펼쳐진 거친 황야에 솟아있는 한 언덕 중턱에 수백의 사내들이 주저앉아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모두들 덩치가 좋고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어지간한 남자 허벅지보다 굵은 거대한 팔뚝을 지닌 근육 괴물들이다.


근육만 괴물이 아니다. 그들의 외모 또한 괴물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인간보다 머리 하나는  신장에, 큼직한 주먹코, 사람의 그것보다는 두 배 정도  송곳니는 입을 다물고 있어도 항상 입밖으로 슬며시 삐져나와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전부 오크라는 종족의 사내들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천연덕스레 자리잡고 있는  또한 그들의 외모와 조금도 다를  없다.

이곳은 우르크마니스탄, 오크의 평원이라 불리우는 지역이라 한다.

얼마나 넓은지 감이 잡히지 않는 우르크마니스탄에는 수많은 오크 부족이 여기저기 분포해서 서식하고 있었고, 내가 속해있는 부족은 콕 뵈르, 그러니까 푸른 늑대라는 멋진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날 부르는 이름은 테미르 바스. 오크들의 말로 쇠 대가리.
그러니까 아는  하나도 없는 일자 무식한 놈 정도의 의미인 것 같다.

세상에 오크들한테 무식하다 소리를 듣다니. 조금 억울했지만, 사실 그동안의 일들을 돌이켜보면  말이 없다.


이 낯선 땅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일자 무식이나 다름없다.


난데 없이 오크들의 한가운데 떨어졌으니, 이곳의 풍습이나 자연 환경 따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나마 오크들이 자신의 동족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너그러운 이들이어 먹고 사는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목숨을 걸고 사냥해서 획득한 전리품은 모두 함께 마을로 끌고가 축제를 벌이듯 해체해서 함께 나눠 먹는 그들의 풍습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쫄쫄 굶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시네마틱 카드를 사용했더니, 갑자기 오크 마을의 천덕꾸러기 오크가 되어있었다.

마을의 오크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난 전부 초면이라, 처음엔 무척 당황했다.

다행히도 난, 아니 테미르 바스라는 이름의 오크는 그리 주목을 받는 놈은 아니었는지, 내게 신경을 쓰는 자는 몇 안되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곤 한는 그  안되는 오크들은 내가 묻는 질문에 충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무래도 테미르 바스는 원래 좀 모자란 놈이었는지, 이 마을에 오래 살았다면 당연히 알고 있을만한 질문에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큰 무리 없이 다른 오크들 사이에 끼어들 수 있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오로지 탄사 뿐이었다.


시네마틱 카드라고 해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좀 더 실감나는 영화를 즐길 수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아예 나를 다른 세상으로 보낼줄은 몰랐다.

물론 이게 진짜 세상인지, 아니면 어떤 차원 높은 가상 현실 비슷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뭐가 되었건 엄청나게 실감 나는 경험인 것은 틀림없다.


어느 하나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아무리 보아도 현실 세계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어쨌던 와서 실감 나는 이세계를 즐긴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몇  며칠이 지나도록 난 하는  없이 오크 떼를 쫓아다니며 그냥 사냥 구경이나 하고 있는  전부이다.




내가 기대한 것들, 그러니까 코스튬 카드 < 오크 >에 적혀있듯이 환상의 종족들을 모두 정복하는 일 따위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엘프를 정복해서, 멋진 엘프 여자와 떡을 치고, 무슨무슨 수인들을 사냥해 수인 여자랑 떡을 치고, 드래곤을 잡아 드래곤과 떡을 치고...

음...
어쩌면 내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를 해야 하는 걸까?

그러고 이 시네마틱 카드 속의 상황을 끝내려면 이종족 여자를 따먹어야 한다던지...



지금까지의 AV 마스터 카드가 내게 준 경험들은 대개가 그런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하기는 안내 문구부터가 퀘스트였지.


- 주어지는 카드를 사용해서 멋진 작품을 제작해보세요.


작품이란 당연히 성인물일 것이고, 오크가 된 내가 주연인 성인물이라면, 이종족 능욕 정도가 맞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우선 내가  오크들의 습성에 익숙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크다. 내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뭔 실수라도 하면 곤란다.
퀘스트를 깨기는 커녕 어떤 곤욕스러운 일을 당하게  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곳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기로 했다.

걱정이 되는 것은 한 가지. 도대체 언제나 여기서 나가 현실로 복귀할 수 있을까이다.

벌써 사흘 째이다.
그러니까 난 지금 계속 무단 결근을 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짤리겠지?


쩝. 월급이야 아쉬울 것이 없지만, 난 그 일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전부터 내게 못되게 구는 팀장만 제외하고는 딱히 흠잡을 데 없는 곳이다.

아. 뭘 어째... 잘리면 그만이지. 어찌 되건 그건 나중 일이다.

우선은 퀘스트를 완수하고 현실로 복귀하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서 난 오크들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거기에 퀘스트를 해결할 길이 있을 것이다.


오크들의 생활은 무척 단조롭다.

오늘처럼 벌판이나, 산지, 혹은 호숫가, 어디건 사냥감이 지나갈만한 곳을 찾아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사냥감이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간다.


상대가 어떤 종류이건 오크들은 가리지 않는다.


겨우 주먹만한 눈토끼에서 코끼리는 저리 가라할 정도의 거대한 히파토스 무리에 이르기까지, 오크들은 무작정 달려든다.

때론 사냥감이 버거울 때도 있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 대부분이 큰 부상을 입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그러면 다시 수백이 달려든다.

무모하다?


오크들의 사냥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 말고는 달리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두두 하며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몰려오는 가르강퀴아의 무리를 보자 오크들은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우드득 꺽고 팔을 휘휘 돌리며 사냥의 준비를 했다.

가르강퀴아는 타조와 비슷하게 생긴 날지 못하는 조류의 한 종류이다.
그런데 그 크기는 기린에 버금가고, 흉폭하기는 하이에나 떼에 못지 않는 아주 끔찍한 포식자들이다.


생긴 것만 타조 같지, 실상은 타조의 먼 조상인 육식 공룡과 오히려 비슷하다면 어울린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목이 길고 앞다리가 없는 티라노사우르스의 느낌이랄까?



"투파!"
오크 중 가장 덩치가 좋은 녀석이 들고 있던 도끼를 들고 크게 소리질렀다.


이놈의 이름은 망고드, 나름 여기 모인 오크들의 우두머리 격인 놈이다.



"투파!"
그러자 주변의 오크들이 하나씩 자신의 무기를 하늘로 치들며 따라 구호를 외쳤다.

삽시간에 불길처럼 퍼져나가는 투파!의 물결.
오크들의 한가운데 있던 내가 보기에도 장관이다.

"투파!"
왠지 나도 웅심이 피어올라, 오크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외쳤다.


그런데  목소리 다른 놈들의 목소리 보다 크다.

수백의 오크들이 지르는 소리를 내 목소리가 압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갑자기 수많은 오크들이 날 바라본다.

대장인 망고드도  바라본다. 그런데 어쩐지 언짢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것도 착각이겠지?



"투파!"
그런데 오크들이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커다란 함성을 지른다.
뭐지? 내 목소리 때문에 열받았나?

슬쩍 겁이났다. 그래서 이번엔 좀 작게 따라 외쳤다.


그러자 오크들이 내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음이 편해졌다.



저멀리에서 달려오던 거대한 타조의 무리가 이제 한마리 한마리 구별이 가능할 수준이 되었다.

놈들도 오크들이 외치는 구호 소리를 눈치채고, 달려가는 방향을 바꾸었다.

놈들에게도 오크 떼는  무더기 맛있는 식사 거리로 보인 모양이다.

그때까지도 신이나서 투파! 투파! 거리던 오크들이 눈을 빛냈다.



"투파~"
가장 외각에 있던 오크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대체가 명령 체계나 지휘 체계 따위 없다.

누구든 가장 가까운 놈이 닥돌을 하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놈이, 그리고 뒤를 이어 다음 놈이 달려간다.

겨우 5분도  되는 시간 사이 언덕을 가득 채우던 오크들이 전부 가르강퀴아 무리를 향해 용감하게 달려갔다.


이제 언덕 위에 남아있는 것은 수십 마리의 어린 오크들 뿐이다.
아. 성인 오크도 한  있다.

바로 나다.




난 나다. 어느 세계엘 가든지, 난 결코 바뀌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 몸의 안전이다.


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오크들처럼 도끼  자루 들고, 공룡 떼를 향해 뛰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오크들에게 멍청한 겁장이 취급을 받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어차피 이건 진짜  삶도 아니다.



"우와!"
"죽인다!"
"투파!"
어린 오크 놈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어른들이 목숨 걸고 거대한 타조들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신이  있다.

언제쯤이면 자신도 저 위풍당당한 대열에 낄 수 있을지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러기나 말기나.

솔직히 저 놈들이 그런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냥에 뛰어든다해도 난 말릴 생각이 없다.


어차피 내 애들도 아니다.

전쟁이 끝났다.

그건 사냥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그건 전쟁이지, 사냥이라 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적어도  마리가 넘는 오크 전사들이 가르캉퀴아의 입속으로 사라졌고, 다시 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커다란 부상을 입었다.


팔 하나나 다리 하나를 잘리고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는 놈들은 조금 풀이 죽어 보였다.


어디까지나 풀이 죽은 정도이다.
팔 하나 정도로 절망하는 놈은 없다.

알고보니 이놈들 팔이 잘려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 자라난단다.
무슨 도마뱀이냐?


재생력이 거의 하등 동물 수준이다.



대신 오크들은 전리품으로 스물여섯 마리의 가르강티아를 손에 넣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적어도 몇 톤은 나가는 놈들이니, 오크 무리로서는 적어도   이상은 식량 걱정 없게 생겼다.

사냥이 끝나고 난 어슬렁 어슬렁 사냥터에 합류해서 사냥감을 나르는 걸 도와주었다.
 사냥감을 나눠먹는 대가로 이정도의 수고는 해야지.

오크 무리는 사냥감을 나눠먹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않는다.
심지어 나처럼 구경만하던 놈도 대충 나르는 것을 돕는 것만으로 축제에 참가할 수 있었다.



때론 마을에 무리를 잃은 유랑 오크가 이들 무리에 섞여들기도 한단다.
그리고 오크 부족은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그들을 형제로 받아준다고 한다.
그게 전통인 모양이다.


형제 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나름 감명 깊었다.



가르강티아를 끌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 흥겨웠다.


오크들은 각자 이번 사냥에서 자신이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자랑하고 있었다.


난 그냥 어께에 두른 밧줄이 무거워 힘겹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마을로 돌아와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야만스러운 놈들이지만 고기를 날로 먹기보다는 불에 구워 먹는 것을 선호했기에 어디선가 나무를 잔뜩 모아다가 불을 피우고 커다란 새의 몸통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각자 알아서 구워 먹기 시작했다.


나도 다리살 한 조각을 잘라다 불에 구워 먹었다.


제법 맛있다.

아니. 소금도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맛있는 거지?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진미에 가깝다.

오크 놈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든 이유를 알  같았다.



하아... 그런데  놈들은 정말로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다니는 건지, 항상 상대를 보면 닥치고 돌격밖에 모르는 것 같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