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12. TIME STOP! 시간이 정지되었으니 웃음과 절규를 참고 버텨라!
응접실 소파에 앉아 카메라의 화면을 넘겨보면서도 주변을 오가는 여자들을 심사하고 있는데, 은희가 다가왔다.
"둘 중 누가 더 좋아?"
뜬금 없이 물어보는 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응? 그게 뭔소리?"
"영웅아. 너 바쁜 거 아는데, 누나가 널 왜 불렀겠냐?"
"사진 찍어 달라고."
"바부팅이. 그게 아니고, 둘 중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 내가 열심히 중간에서 노력해볼게."
"아항!"
"그래 멍충아. 이제 알겠냐? 그래서 누구?"
"아 뭐가 그렇게 급해. 본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사람이 반하는 데에는 딱 0.3초가 필요하단다."
"그렇다고 내가 뭐 매력이 있다고, 저 분들이 나한테 관심 있겠냐?"
"내가 벌써 떡밥을 좀 뿌려 놨지. 크크크"
"뭔 떡밥."
"니 꼬추."
"응?"
"니 꼬추 존나 크고, 밤일 존나 잘 한다고. 두 사람 다 말은 안 했는데, 사실은 너한테 관심 많아."
"설마 너 나랑 잤다고 했어?"
"미쳤냐? 내가 아는 후배 핑계 됐지. 뭐. 이름은 말한 적 없으니 상관 없지?"
물론 지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 음"
그지... 그녀들이 지아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다쳐도, 뭐 잠자리 만으로 사람을 만나니?"
"너 몰라서 그러는데, 여자들도 욕구가 강하다. 그것 때문에 만나냐고? 만나지. 암."
은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자리가 마음에 들면 꼭 사귀는 게 아니라도 괜찮잖아? 너. 어차피 여자 친구 사귈 생각도 없어보이는데."
은희는 정곡을 찔렀다.
"어떻게 알았냐고? 바보야. 보면 알아."
귀신이네...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뭘 궁금해하는지 알아차린다.
"저 두 사람 사실은 그거 굉장히 좋아하거든."
"그래?"
"응. 운동하는 여자들은 성욕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커."
"하긴."
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찰싹!
은희는 내 허벅지를 야무지게도 때렸다.
지아가 때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
"왜 날 보는데?"
"아니... 그냥."
"근데. 맞아. 나도 그러니까.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면 실례 아냐?"
"미안."
나도 느꼈다. 실례라는 거.
"여튼 생각 있으면 말해줘. 내가 중간에서 열심히 노력할게."
"딱히 노력까지는..."
"어? 자신 있다 이거야? 내 도움 없어도?"
"그건 아니고. 여튼 니 맘은 알았어. 지금은 일하는데 집중할게."
"착실하네. 하긴. 넌 늘 그랬지."
그때였다. 학원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굉장히 늘씬한 몸매, 조막만한 머리, 세련된 얼굴...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안녕하세요. 김쌤!"
여자가 시원하게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윤영씨"
은희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죠? 저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예. 천천히 해도 되요."
그녀는 상쾌한 걸음으로 탈의실로 들어갔다.
"응? 너 어딜 보는 거니?"
아! 너무 내 취향이라 매의 눈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보고있었나보다.
"자식. 눈은 있어 가지고."
은희는 그리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그래. 눈은 있으니까. 이쁜 여자를 보니 그냥 보게 되네."
"응? 너 윤영씨 몰라?"
"내가 아는 사람이야?"
"음... 역시... 윤영씨 연예인인데. 모르나보구나?"
"그랬어? 어쩐지 이쁘더라."
"영화배우야. 탈랜트이기도 하고."
"그래? 그런데 왜 난 처음 보지?"
"뭐. 주연은 못 해봤으니까. 조연으로 영화도 서너 개 찍고, 요즘은 드라마도 일 년에 하나 정도는 해."
그러면서 그녀는 윤영이라는 여자가 나온 영화와 드라마를 말해주었다.
그걸 전부 외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은희에게는 아주 중요한 고객임이 틀림없다.
뭐. 그럴만도 하다. 수강생중에 그래도 연예인 한 명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본 건 하나 뿐이네."
그리 흥행은 하지 못한 범죄 영화에서 살인범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역할로 나온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처음에 낯이 익다 느껴진 것은 그때문일 듯 하다.
"원래 나 드라마는 안 보잖아."
"하기는... 남자들은 잘 모르더라. 그래도 여자들은 대충 얼굴은 알던데."
"그랬나?"
"그래도 아직 그렇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서. 그래도 우리 학원에 오시는 분들 중에선 제일 유명인인데."
그렇게 이쁜 얼굴로도 뜨질 못했다니, 확실히 한국 연예계가 경쟁이 치열한 곳이 맞나보다.
"요즘은 이쁘다고 뜨는 것도 아닌 거 같아. 그래도 저정도면 굉장히 미인인데."
"그러네."
"근데. 너 윤영씨는 찍으면 안 돼."
"그러겠지? 그래도 배운데.
홍보 사진에 출연하려면 공짜는 안 되겠지.
뭐 매니지먼트니 그런 데 연결되어 있을 거 아냐?"
"난 잘 모르겠는데, 아마 기획사 없이 혼자 한다고 들었어. 아직 크게 돈이 되는 역할은 못 맡아서 기획사까지 끼면 굶어야 될 지도 모른데. 아. 그만하자. 나 일어나서 준비 해야해."
은희는 수업 준비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난 재빨리 Special!! 카드 < 시간정지(時間停止) 스톱워치! >를 들고 쭉 찢어버렸다.
지금까지 이걸 사용하지 않던 이유는 당연히 아직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여자가 나타나지 않아서였다.
물론 이곳의 원장인 은지와 송아 두 사람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이지만, 한 장 뿐인 카드를 쓰기에는 둘 만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방금 탈의실로 들어간 여자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더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카드가 빛나며 사라지고, 내 손에는 촌스럽게 생긴 동그랗고 빨간 스톱워치 하나가 들어있다.
시계에는 파란색 버튼이 하나 달려있다.
그 외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지만, 사용법을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해야 할 일이라고는 그 파란 버튼을 누르는 것 뿐.
그래서 눌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 유리창 너머에서 필라테스하던 여자들이 멈춰서있다.
다시 버튼을 눌렀다.
여자들이 몸을 움직인다.
다시 눌렀다. 움직임을 멈춘다.
아! 그런데 한 여자가 불안한 자세로 있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그렇다. 내 손에 들린 이 스톱워치는 정말로 시간을 멈추는 시계는 아니다.
Special!! 카드 < 시간정지(時間停止) 스톱워치! >
- 스톱워치가 작동하는 동안 주변 모든 사람들은 시간정지 상황을 연기합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 정지를 연기하게 만드는 것 뿐이다.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세상에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닌자가 내게 이런 힘을 주었다고 해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법칙을 깨버리는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로하여금 시간정리를 연기하게 만드는 것도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그나마 진짜로 시간을 멈추는 것보다는 훨씬 이해가 간다.
난 소파에서 일어나, 필라테스 룸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안 아무도 날 바라보지 않는다.
적어도 이순간 그녀들에게 세상은 멈춰있는 셈이다.
아까 넘어진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엎어진 자세 그대로 멍하니 멈춰있었다.
난 그녀의 엉덩이를 만져보았다.
탱탱하다.
조금 세게 꼬집어 본다. 여자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고통은 느끼나 보다.
- 몸의 움직임은 제한되고, 시각도 청각도 잃어버리지만, 육체가 느끼는 쾌감은 그대로 입니다.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고통도 느낄 수 있어야 정상이다.
더이상 이 여자에게 볼일은 없다.
난 일어나 필라테스 룸을 나왔다.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침 막 겉옷을 벗고, 속옷 차림인 한 여자가 있었다.
바로 그녀, 영화 배우이자 탤런트라는 윤영이었다.
흠. 보기 좋은걸?
갈아입으려는 요가 팬츠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여배우의 모습을 잠시 구경하다가, 그녀에게 좀 더 다가섰다.
확실하게 지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거겠지?
그녀의 앞에 손을 올리고 마구 흔들어보았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윤영의 코 앞에 귀를 가져대보았다.
아주 미약하게 숨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충 예상한 대로이다.
그렇다면...
대망의 시간이다.
난 이날 처음 만난 여자의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었다.
뭉클.
음. 자연산이구나.
내가 여자에 대해 그리 잘 안다고는 자부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수술한 가슴과 아닌 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내가 잘 모르고, 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가슴을 무도하게 만지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좋아. 굉장히.
브래지어 끈을 어깨에서 풀고 밑으로 내렸다.
정말로 시간이 정지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어서,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 밑으로 내리고, 브래지어를 내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내가 움직이기 편하게 도와준다는 느낌도 들었다.
윤영의 가슴은 적당한 편이었다. 한 손으로 잡으면 약간 넘쳐날 정도.
크기는 그렇다 쳐도, 모양은 이쁜 편이다.
적당히 봉긋하고, 유두의 크기도 적당하다.
그러니까 어디든 너무 모자라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보는 사람이 만족스러울 정도의 균형을 유지한다.
잠시 그녀의 가슴을 감상하다가, 다시 다가서서 그녀의 팬티에 손을 가져댔다.
이때는 아주 약간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이거 틀림없이 나쁜 짓이다.
아니. 그냥 나쁘다의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서 범죄 행위이다.
그런데 난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세상 어느 남자건 이 말도 안되는 스톱 워치를 손에 넣는다면, 나와 똑같은 짓을 할 것이라는 것을.
물론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성욕이 없다거나.
하지만 적어도 99%는 나를 지지할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난 과감하게 내렸다.
그 여자의 팬티를 종아리까지 죽 내려버렸다.
마침내 저지르고 말았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을 때의 만족감이 밀려온다.
이래서 못된 아이들이 꼭 하지 말라는 장난을 치는구나.
팬티 속에 감춰진 비경이 드러났다.
관리를 따로 받고 있는가 싶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된 헤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아래의 갈라진 부분엔 털이 전혀 없다.
이쪽은 내 취향에 잘 부합한다.
그녀에게서 한 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잠시 그 상태로 감상을 한다.
아름다운 여자이다. 그리고 몸매 또한 조금도 모자란 부분이 없다.
이런 여자와 사귈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남자가 세상에 한가득이리라.
그래. 이런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이지?
좋은걸?
다시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아랫도리에 손을 댔다.
왠지 전율이 등줄기를 짜릿하게 스쳐지나간다.
윤영의 아래는 건조했다.
남자든 여자든 속옷 아래는 축축하기 쉬운데, 이 여인은 땀이 많이 나는 편은 아닌 모양이다.
이래서야 삽입을 할 수 있겠어?
아! 물론 지금 당장 삽입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윤활젤을 가방에 넣어 왔다.
난 그래도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다.
하지만 그걸 쓰는 것 보다 여자 스스로가 흥분하는 것이 더 좋은데...
그래서 한 번 실험해보기로 했다.
난 다시 무도하게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양쪽 다.
그리고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오른쪽은 전체적으로, 그리고 왼쪽은 젖꼭지를 주로 공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영의 젖꼭지가 톡 하고 부풀어오른다.
그래. 이거야.
진짜로 시간이 정지되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멈춰있는 상태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고, 그녀의 몸은 내 손에 반응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숨소리도 아까보다 거칠어졌다.
살짝 입도 벌어진다.
그녀가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는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으니, 재미있다는 생각 한편으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그 죄책감이란 놈을 집어서 멀리 던져버렸다.
어차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아무도 모른다.
일이 끝나고 나서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괜히 혼자서 죄책감 가질 이유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죄책감으로 재미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잠시 여배우 조윤영씨와 놀이를 하다가 그녀에게 다시 옷을 입히고, 조용히 탈의실에서 벗어나왔다.
재미는 조금 있다 보도록 하자.
우선 이 학원 안을 점검하고 싶었다.
내 발길이 향한 곳은 플라잉 요가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