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12. TIME STOP! 시간이 정지되었으니 웃음과 절규를 참고 버텨라!
지아와 스파 클럽에 다녀온 뒤로 한동안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나도 나름 바빴고, 그녀도 바쁜 듯 했다.
지연과는 퇴근한 뒤 만나 잠깐씩 데이트를 즐겼다.
전처럼 하루를 비우고 광란의 밤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녀와 만나는 얼마 안 되는 사이 몇 번이나 외박을 했기에 부모님께 눈치가 보이는 듯 했다.
"아저씨. 그래도 원하시면 안 들어가도 돼요."
"그리고 집에 가서 엄청 혼나려고?"
"혼이야 나면 되죠. 아저씨가 나한테 못풀고 딴데서 푸는 거 보다야 낫죠. 그러다가 나 아저씨한테 버림 받으면 어떻게 해요?"
역시 여자는 여자인가? 혹시 그녀가 눈치를 챈 건 아닐까?
"그래도 지금 잘 해. 괜히 부모님하고 사이가 나빠지면 후회해. 그리고 내가 지연이를 왜 버려? 니가 날 버리면 버렸지."
"절대! 절대! 나 안 버리죠?"
지연이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은 전부 내 탓이다. 그래서 난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아... 진짜 잘한다. 아저씨..."
지연은 자신의 육욕이 만족되면 더는 날 추궁하지 않았다.
응? 그러니까 그녀가 내 육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지연의 육노예에 가까운 거 아닐까?
보라와는 늘 보라했다.
그녀는 점점 더 말이 없어져갔다. 내 집에 들어오면 거의 입을 떼지 않는다.
아무래도 보라는 알아차린 것 같다. 내가 그녀로부터 경멸에 가득찬 욕을 듣고, 그녀가 그런 눈빛으로 날 볼때면, 오히려 기뻐한다는 사실을.
그러기에 내게 그런 기쁨을 주지않으려 입도 열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묵묵히 옷을 벗고, 육체의 봉사를 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럴리 있나?
그녀의 그런 행동이 바로 그녀가 날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 아닌가?
그래도 난 그녀를 좀 더 괴롭힐 방법을 찾고 있다.
보라가 날 더욱 미워하고, 증오하고, 심지어 살의를 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이런 변태같은 생각을 하는 거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다시 주말이 다가왔다.
[ 은희 ]
- 영웅아 요즘 많이 바빠?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 은희에게 메시지가 왔다.
- 근무 시간만 지나면 딱히 바쁠 건 없어. 그리고 너한테라면 시간이야 만들면 그만 아냐?
[ 은희 ]
- 다름이 아니라 우리 홍보 때문에 그러는데...
그녀가 운영하는 학원 홍보용 사진이 필요하단다.
개업할 때에도 포토그래퍼를 불러 촬영을 했었는데, 지불한 금액에 비하면, 결과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게 사진을 몇 장 보내주었다.
내가 봐도 신통치 않다.
성의가 없었다기 보다, 실력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뭐 깔끔한 브로슈어 사진은 맞지만, 딱히 사람의 눈길을 잡아 끌 매력이 부족하다.
그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사진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피사체가 지닌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뭐. 나도 그걸 자신 있다 할 정도는 아니다.
그랬다면 사진으로 밥을 벌어먹고 있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다.
- 좀 심한데...
[ 은희 ]
- 그지? 다른 원장님들도 마음이 상한 모양이야.
그래도 제법 적지 않은 돈을 받고 만들어놓고, 이게 뭔 짓인가?
-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내가 프로도 아니고.
[ 은희 ]
- 그래도 난 니가 찍은 사진 좋아하거든.
예전에 내가 아직 회사에 들어오기 전, 그녀가 지금의 남자 친구를 사귀기 전에, 그녀의 사진을 몇 번 찍어주었었다.
그걸 아직도 말하니 조금 쑥스럽다.
- 그때보다는 낫거든.
[ 은희 ]
- 그니까. 그럼 한 번 부탁 좀 할게.
- 대신 오면 맛있는 거 사줄게.
- 그리고 원장님들이 다른 사진사 만큼은 낼 수 있데.
- 알았어. 그렇다면 생각해볼게
꼭 비용을 청구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사진을 공짜로 찍어주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다.
자신의 기술을 무료로 나눔하다보면, 정말로 무료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은 돈 때문은 아니다.
하루 시간을 내서 친구를 도와주고, 용돈도 생기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난 번에 손에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사용하지 못하는 Special!! 카드 < 시간정지(時間停止) 스톱워치! >를 드디어 써볼 기회가 왔다.
다음날 오전 난 약속 시간에 맞춰, 즐거운 마음으로 은희의 요가 학원에 갔다.
"여기는 우리 학원 대표 원장님이신 설은지 원장님. 플라잉 요가를 담당하고 계셔."
은희가 소개시켜준 여자는 은희보다 두어 살 정도 나이가 많아보이는 세련된 외모의 여자였다.
그러니까 우리 이웃 보라 씨와 비슷한 또래이다.
하지만 그녀에 비해 키는 조금 작고, 몸이 굉장히 탄탄해 보였다.
십 년이 넘게 운동을 했으니 당연할테지.
"이쪽은 필라테스를 담당하시는 채송아 원장님."
다른 한 명은 키가 더 작고, 균형잡힌 몸의 여자였다.
이쪽도 미인은 아니지만, 꽤 매력있는 외모이다.
그 학원에는 은희까지 모두 세사람의 원장이 있었다.
말을 들어보니 이쪽에서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란다.
이렇게 여럿이 동업으로 학원을 열면 혼자서 시작할 때보다 규모라든지 수강생 모집 같은 것에 유리한 면이 많단다.
또 각기 전통 요가와 플라잉 요가, 그리고 필라테스라서 서로 겹치지도 않고, 수강생에게 다른 과목을 권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아직까지 크게 성공은 못했지만, 세 사람 모두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동업 관계에 대해서도 만족하는 편인 듯 하다.
대표 원장인 은지 씨가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것 같았고, 은희와 송아가 비슷한 돈을 투자한 모양이다.
"고마워요. 바쁘신데 저희들 억지도 들어주시고."
두 여자 모두 날 반갑게 반겨주었다.
은희가 보여준 내가 찍었던 사진이 마음에 든단다. 인사 치례겠지만, 그래도 칭찬을 들으니 반갑다.
"너희 사이트나, SNS 같은 거 전부 봤는데, 사진들이 괜찮더라. 딱히 내가 찍는다고 더 나을 것도 없어보이더라."
"야. 그래도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조금이나마 낫겠지."
"은희 원장님이 보여준 영웅 씨 사진 봤는데, 좋더라구요. 딴 건 몰라도 사진의 주인공이 막 너무 이쁜 거 같아요."
"그니까. 니가 전에 나 찍어준 사진이 맘에 드신다고들 하셔서. 솔직히 실물보다 훨씬 이뻤잖아."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구요. 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 이쁜 사진 나올 수 있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촬영을 시작했다.
세 명의 프로필 사진을 각각 찍고, 함께 모여있는 다정한 사진도 찍었다.
또 요가와 플라잉 요가, 그리고 필라테스하는 모습도 몇 장씩 찍었다.
얼추 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슬슬 수강생들이 올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느낌이 좋다."
"이거 우선 SNS에 올려야겠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아직 보정도 하지 않은 사진을 보고도 만족을 표시했다. 물론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인사치례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미흡한 거 같네요."
난 진지한 얼굴로 그녀들에게 내가 찍은 사진들의 안 좋은 점을 지적했다.
"아무래도 원래 모델분들의 장점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거 같아요."
사실 내 사진이든 남의 사진이든 트집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아... 그렇구나."
여자들은 대략 이해를 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쁘게 나왔는데... 전보다 훨씬 나아요."
그거야 내가 일부러 얼굴이 강조되게 찍어서 그렇다.
보정을 조금 하면 굉장히 미인으로 보일 터이다.
하지만 난 이게 개인 프로필용이 아니라 그녀들의 프로페셔널 한 면모를 드러내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우선 전 뒤에서 구경을 좀 할게요.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 생각도 좀 하고, 세 분들 운동하시는 것도 좀 익숙해지고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전 대상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찍기 어렵더군요."
난 미리 생각해놓았던 핑계를 댔다.
"그러면 시간을 너무 빼앗지 않을까요? 죄송한데."
플라잉 요가를 담당한다는 은지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신경을 더 쓰겠다니 좋은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주말이라 오늘 하루 시간이 비거든요."
"어머나. 감사합니다. 오늘은 은희 원장님 덕을 톡톡히 보네."
"제가 말했잖아요. 좋은 친구라고."
어쨌던 초반에는 좋은 이미지를 쌓은 모양이다.
"마침 나도 조금 있으면 강습 듣는 분들 오실 때 되었거든. 참 강습 듣는 분이 계실 때는 사진 찍지 말아줘. 찍었으면 하면 나한테 말해주고. 내가 부탁해볼게."
은희가 내게 당부했다.
"그래."
"그럼 저희도 각자 할 일 하고 있을게요. 편하게 보시다가 촬영하실때 말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해서 난 이 학원을 돌아다니며, 세 사람의 강습을 마음껏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세 사람은 내게 편하게 돌아다니라고 말한뒤 각자 요가룸과 필라테스 룸으로 돌아갔다.
난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잠시 그녀들이 들어간 방들을 구경했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과정을 하는 만큼 강습실도 여러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벽을 전부 시원한 통유리로 해놓아 응접실에서도 강습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아무래도 방문한 사람들이나, 다른 수업을 듣는 강습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건강한 여자들이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고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흠... 나쁘지는 않은데...'
편안하게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난 생각에 잠겼다.
은지나 송아나 두 사람 모두 오기전 SNS에서 확인했던 것만큼 대단한 미인들은 아니었다.
홍보용으로 사용하니만큼 사진에 보정을 제법 넣었다.
그렇다고 이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두사람 모두 제법 매력이 있는 여자들이라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몸의 발란스는 발군이다.
하기는 요가 선생님과 필라테스 선생님이 몸매가 좋지 않다면 과연 누가 오겠는가?
그러니까 오늘의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한다.
처음으로 Special!! 카드를 사용해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한 장 밖에 없는 카드이고, 또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내 손에 들려있는 Special!! 카드 < 시간정지(時間停止) 스톱워치! >가 오늘 써버리면 다음 기회에 또 나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우리들이 약속한 시간이 끝나면 강습생들이 온다고 했다.
이런 곳에 다니는 강습생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거의 여자들이다.
그러니까 기왕 쓴다면 좀 더 많은 여자들을 대상으로 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쁜 여자가 한둘 더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 이유로 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수강생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검토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새로운 여자가 들어올 때마다 매의 눈으로 살펴보기를 잊지 않았다.
마스터 카드 < 매의 눈 >
이거 사실 참 괜찮더라.
그러니까 여자들을 살펴보기 참 좋은 능력이다.
우선 멀리 떨어진 여자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대략 저배율 망원경을 통해 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 시력이란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그다지 보기 힘든 시력이다.
사람의 눈은 초점이 맞는 부위에 특화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주변부는 거의 인식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매의 눈을 가지게 된 이후로, 난 정면에 초점을 맞추고도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하철에서 건너편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도, 그녀의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게 뭐가 대단하냐고? 대단하지. 그 여자 팬티를 안 입고 다니거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두 주일에 한 번 정도, 그녀는 속옷을 입지 않고 스커트만 입은 채 지하철에 올랐다.
그리고 늘 그자리에 앉는다.
내가 늘 앉는 자리의 바로 건너편.
그동안은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스터 카드 < 매의 눈 > 덕분에 난 이제 마음껏 그녀의 치마속을 감상할 수 있었다.
참 남자란 존재는 이상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저런 여자와 섹스를 즐기면서도 또 그런 기회가 생기면 어째서인지 저절로 눈이 간다.
그러기에 남자란 결코 만족을 하지 못하는 동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