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11. SPA & SAUNA CLUB - Elixir -
"내가 그런 난봉꾼으로 보였어?"
짐짓 점잖은 척 떠본다.
"그럼 싫어? 옛애인하고 여사친하고 한 자리에서 즐기는 거?"
그녀의 표정이 조금 이상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로 은희랑은 안 해. 그런데 좋은 생각이 났다."
조합이라면 꼭 은희와 지아일 필요는 없다.
내게는 아주 많은 카드가 있다.
"뭔데? 아!"
이런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나중에."
"학! 그래! 아아..."
그녀는 더이상 무슨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난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이모저모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만난 지아와는 결국 그날 밤을 함께 했다.
그날 밤 우리는 그때까지 한 번도 해본적 없는 격렬한 섹스를 했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지아가 잠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정식 출시를 위한 충분한 분량을 만족했습니다.
'매리지 블루 - 결혼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진 그녀는 옛남친에게 전화를 하고'라는 다소 긴 제목의 영상을 마켓에 올렸다.
이런 개인적인 불륜까지도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에 스쳐가기는 했었다.
지금까지의 다른 여자들과 달리 지아와는 서로 쌓아왔던 추억과 정이 있다.
하지만 뭐... 그딴 걸 생각했으면 내가 지아를, 그리고 그 남자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했을 리 없지.
출시된 영상에는 그 남자도 몇 장면 나온다.
그러니까 지아와 통화를 하며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 장면, 저 멀리 들려오는 지아의 신음 소리에 의심이 점점 커져가는 모습, 그리고 지아가 집에 들어왔다는 소리를 할 때, 그녀의 집앞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그녀의 집을 올려다보는 장면까지.
그런데 미남이만큼 쾌감을 얻는 표정은 아니다.
아마 쾌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굴욕을 느끼지는 못한 모양이다.
정확히는 지아의 불륜에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희한하네. 어제는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왜 몸이 이렇게 개운한거지?"
아침 나절 잠에서 깬 지아가 의아해했다.
"그동안 몸이 좋아졌나보지?"
"그런 거 아니야. 확실히 뭔가 이상해."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
"음... 몸도 괜찮으니까 우리 헤어지기 전에 모닝 섹스 어때?"
지아는 하루 만에 맛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하아... 어젯밤 보다는 못한데, 딱 이정도가 좋다. 더는 하지 말자."
우리는 함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다시 연락 줄거지?"
그녀의 눈엔 기대가 가득했다.
"응. 너도 무료하면 연락하고."
"알았어. 어제 오늘은 즐거웠어."
지아와 헤어질때까지도 난 그녀에게 지급해야할 개런티를 주지 않았다.
어차피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음번 만날 때 이번 것과 합쳐 좀 크게 줄 생각이다.
지아의 개런티는 2,00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보라나 은희보다는 많고, 지연보다는 적다.
보라와 은희에 비해서는 나이도 훨씬 어리고, 외모도 뛰어나기 때문에 높은 개런티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연보다는 나이가 많고, 가슴도 평범한 수준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녀의 얼굴은 내가 지금까지 함께한 어느누구보다 아름답다. 누구라도 그녀를 보면 미녀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몸매도 굉장히 밸런스가 좋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적지도 않은 편이고, 굴곡이 확실한 몸매와 적당히 풍만한 가슴을 지녔다.
하지만 성인물 시장에서는 밸런스나 뛰어난 외모보다는 나이와 가슴 크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스무살 초반일 때, F컵 이상일 때가 최우선이다.
그걸 고려하면 그녀에게 2,000만 원이 책정된 것은 결코 낮은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흠...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좋은 시절을 함께한 옛 사랑에게 그따위 평가나 하고 있다니...
뭐. 어쩔 수 없다.
나란 놈이 그정도 밖에 안 되는 거지.
어차피 난 고결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억지로 고결한 척 하지 말자.
그 남자에 대한 개런티 30만 원은 지급했다.
미남의 경우와 같은 금액이다.
섹스 장면 한 번 나오지 않으니 최저 금액으로 책정되는 것 같다.
개런티의 지급 방식은 무기명으로 선택 했다.
그 돈이 그 남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해질지는 알 수 없다.
- 무기명은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알 수 없게 특별한 방식으로 지급하게 됩니다.
과연 그 특별한 방식이란 것이 뭔지 조금은 궁금했지만,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알아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난 정말 다른 남자에겐 아무런 관심도 가지 않는 모양이다.
심지어 상대가 내가 저지른 행위의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아와 헤어진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딱히 해야할 일은 없었다.
지연은 가족들과의 행사가 있는 모양이고, 보라와는 오늘까지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무얼할까? 오랜만에 시간이 났다.
혼자 영화라도 볼까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에 새로 받은 카드 중 아직 확인해 볼 것이 남아있었다.
바로 사이트 카드 < 스파 & 사우나 클럽 >
마침 시간도 되고 하니, 한 번 가볼까?
전에 비하면 확실히 피로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스파나 사우나 따위를 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아무 생각 없이 쉴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져 온다.
그래. 하루 정도는 섹스와 관련 없는 시간을 보내보자.
카드에 적혀있는 주소는 수영장, 감옥과 같은 건물이다.
그 주소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영업중인 스파가 있다.
"회원제 스파 클럽? 이런 것도 있었나?"
회원제라 그래서인지 많은 정보를 찾지는 못했다.
한참을 검색한 끝에 회원이라며 몰린 게시물들도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찾기 어려웠다.
어지간한 호텔 스파도 따라오지 못할만큼 고급스러운 곳이고 비싼 가격만큼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만 써놓았을 뿐이다.
- 한 번 가서 받아보면 암. 피로가 날아가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온몸이 뽀송뽀송해져 피부 나이가 열 살은 젊어진 기분.
정말로 고객이 올린 것인지, 업체에서 올린 홍보글인지 알 도리는 없다.
막상 가격 정보는 찾을 수 없었지만, 듣기만해도 비쌀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업중인 스파가 카드로 나온 이유가 뭘까?
지난번의 수영장이나 감옥은 그래도 사이트 카드라는 것으로만 출입이 가능한 장소였다.
궁금증이 생겼으니, 찾아가봐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퇴근하고 바로 그리로 넘어갔다. 회사에서 겨우 15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한울 빌딩에 도착해 명판을 살펴보니 19층에 당당히 있다.
SPA & SAUNA CLUB
- Elixir -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을 눌렀다. 아무라도 갈 수 있는 곳이 맞는 듯 하다.
팅!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화려하게 장식된 로비가 나왔다.
안내 데스크 앞에 서있던 멋진 정복을 차려입은 여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영웅님"
어라?
어째서 날 보자마자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걸까?
확실히 평범한 스파는 아닌가보다.
"이리로 오십시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녀를 따라 안으로 걸어들어갔더니 몇 개의 구불거리는 복도를 지나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응접실에 도착했다.
"어서오십시오. 영웅님"
그리고 날 알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련된 정장을 입은 여자가 꼿꼿하게 서있다가 날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인사를 받아주기도 전에 당장 그런 질문이 나왔다.
"아뇨. 오늘 처음 뵙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황송할 정도로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저는 이곳 엘릭시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안나입니다."
"한국 말을 참 잘하시네요."
여기의 주인이나 지배인 쯤 될 것 같은 그 여자는 황금처럼 빛나는 금발에,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여자였다.
나이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스무 살이 갓 넘은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삼십 대의 중반으로도 보인다.
외국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해도 좀처럼 종잡기 어려운 외모였다.
나이는 그렇다쳐도 굉장한 미모의 여인이다.
어디 러시아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는 너무나도 유창했다.
그녀가 한국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듣고만 있으면 절대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 실례했습니다."
귀화를 한 것이거나, 아니면 혼혈일까?
아마 전자가 더 맞지 않을까 싶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유독 영웅님만은 아니니까요. 그런 말씀에는 익숙하니 신경쓰시지 않으셔되 됩니다."
무척 정중했고,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화술이다.
"우선 잠시 앉으시지요."
안나라는 이름의 여자가 날 소파로 안내했다.
그녀는 가장 상석인 자리에 날 앉게하고, 자신은 내 맞은편에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서있었다.
살짝 부담스러운 대접이지만, 이런 고급스러운 회원제의 어딘가에 와본적은 없으니 그냥 여기가 이런 곳인구나 하는 수밖에.
잠시 뒤에 날 이곳으로 안내해주었던 여자가 어디에선가 쟁반 하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조명에 반짝이는 은색 쟁반 위에는 마찬가지로 반짝이는 은색 주전자 하나와 푸른색과 황금색이 잘 어울어진 고풍스러운 도자기 잔, 그리고 세트인 접시에 담겨진 쿠키 몇 개가 올려있다.
그녀는 내 앞에 잔을 내려놓고, 주전자에서 갈색의 따뜻한 액체를 따랐다. 뭔지 모를 차에선 아주 기분 좋은 향이 퍼져나와 금세 코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가벼운 다과를 준비해주고, 그녀는 바로 사라져버렸다.
"드시지요. 히말라야산 다즐링입니다. 오직 만월에만 처녀들의 손으로 섬세하게 채취해 발효시킨 차입니다. 취향에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독특한 향이 나는 차였다. 홍차 같기는 한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과일향이 섞여있는 듯 하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아주 고급 차라는 것은 알겠다.
물론 내 취향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고급스러운 것들은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다.
"내가 올 건 어떻게 알고 있었나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궁금한 걸 물어봤다.
도대체 이 여자는 내가 지닌 카드와 어떤 관계일까?
"그야 저희가 이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이유가 영웅님께서 찾아주시길 기다리기 위한 것이니까요."
도통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굉장히 멋진 스파로군요."
"감사합니다. 영웅님의 취향에 맞으시니 다행이네요."
"이 멋진 장소가 내가 방문하기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요?"
"예. 바로 그렇습니다. 언제라도 편하게 찾아주십시오."
"모든 고객에 대해서 하는 말인가요? 아니면 정확하게 날 말하는 건가요?"
"물론 영웅님 한 분 만을 위한 겁니다."
"어째서죠?"
대충 내가 지닌 카드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저 여자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음... 죄송합니다. 설명을 드리기 어렵군요. 숨기려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요. 말하자면 공기가 있어서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그녀도 모르는 것 같다. 뭐. 그정도로 하자. 내가 지닌 카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미 충분히 격어왔다.
이제 와서 이런 이변 하나 쯤 별 것 아니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니 단정한 정장 차림의 두 여자가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굉장히 키가 컸고, 다른 한 사람은 무척 작았다.
얼추 머리 하나보다 훨씬 더 차이가 커보였다.
"이쪽은 아라. 그리고 이쪽은 민아 입니다."
두 여자가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한 사람씩 자기 소개를 했다.
"아라입니다. 언제 찾아주시나 학수고대하고 기다려왔습니다."
키가 작은 쪽은 태닝이 잘 된 피부가 매력적인 아가씨이다.
그녀도 한국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짙은 갈색 피부 때문에 동남아시아 출신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다.
얼굴, 특히 오똑한 코와 커다란 눈은 내가 알고 있던 동남아시아 여자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하긴. 동남아시아를 여행해본 적 없으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피상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어쨌던 내겐 그녀가 굉장히 귀여운 여자란 사실만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