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10. 매리지 블루 - 결혼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진 그녀는 옛남친에게 전화를 하고
"그런데 아까처럼 또 그러면, 나 이번엔 정말 어떻게 될 지 몰라."
지아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오빤 무슨 생각이야?"
"응?"
"나 결혼한다는 거. 그걸 망치고 싶어? 나랑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웃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지?"
그녀는 날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응..."
언제나처럼 솔직하게.
"오빠 나랑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예전처럼 나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할 수 있어?"
그건 확실히 아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생각해볼게."
"거짓말."
이건 틀림없다. 난 그녀를 잘 알고 있다.
"휴우... 맞아. 우리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지?"
이번에도 그냥 미소로 대답했다.
"나 이 결혼 꼭 해야해."
나도 알고 있다. 그녀가 좀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은 그녀가 다니고 있는 방송국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의 집안이 바로 그 방송국의 대주주라는 사실이다.
이제 커리어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새끼 프로듀서에게 이 결혼이 어떤 의미일지는 묻지 않아도 분명했다.
"그 사람은 당신이 줄 수 없는 걸 내게 줄 수 있어."
그런 말을 하면서 그녀는 지금까지의 그 어느때보다 더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움따위 미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그 사람에 대해 전부 그렇게 계산적인 것만은 아냐. 좋은 사람이고, 존경할만한 부분도 많아."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이 그 남자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겠지.
"뭐. 전부 만족스러운 건 아니고."
지아는 슬며시 내 물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지아의 말은 전부 지금의 말을 위한 빌드였다.
남자들은 이해 못한다.
대화에 빌드?
게임이 아니잖아?
하지만 여자들에게 대화는 게임이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마치 장기나 체스를 플레이하듯 빌드를 쌓아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한 수를 내놓는다.
내 앞에서 솔직하고 싶다.
그 남자와의 결혼이 필요하다.
하지만 잠자리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니까 당신과는 육체 관계만을 맺고 싶다.
남자들은 이걸 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와의 대화에서 늘 패배하는 것이다.
"난 나쁜 여자야."
"난 지아 네가 항상 욕망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이제 내가 무언가 대답을 해줄 차례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한 지아는 그렇게 욕망으로 가득한 여자였고."
정말이다.
지금의 지아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애정이 없는 결혼도 마다치 않고,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옛 남자와의 밀회를 꾸민다.
명백하게 그녀는 악녀였다.
그리고 세상의 남자들은 착한 여자보다 악녀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네가 가는 길을 난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해줄 거야."
더군다나 지금 여자들을 마구 농락하고 있는 내가 그녀에 비해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지아와 난 제법 잘 어울리는 인간들이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지아는 이번엔 서운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가식적인 말은 이제 필요 없었다.
정말로 만족한 모양인지 지아가 내 위로 올라와 입을 맞춰주었다.
"그럼 한 번 더 할까?"
이번엔 그녀가 요청했다.
내가 그녀의 결혼을 훼방놓을 생각이 없다고 하자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흑! 진짜... 모르겠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이번엔 좀 강하게 했다. 그녀도 그걸 원했고.
"이래서야 나 절대 오빠한테 헤어나질 못하겠다. "
지아가 내게 눈을 흘겼다.
"우리 잠깐 쉬자."
여기에서 끝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지아는 몸이 너무 끈적거린다며 샤워를 원했다.
이번엔 나도 함께 들어갔다.
"어떻게 그새 또 커져? 인간이 맞는 거야?"
내 몸에 비누를 묻혀주다가 발기한 물건을 보고 그녀는 기겁했다.
"그러게."
"나. 참. 좀만 쉬었다가 해. 지금 바로는 더 못해. 이러다가 우리 기록 깨겠다."
"기록?"
"응. 하룻밤에 여섯 번."
언제였더라? 마지막 여행 때는 아닌 거 같은데...
"기억 못하는 구나?"
"음..."
"상관 없어. 나만 기억하면 되지. 나가서 침대에 누워 쉬고 있어."
여자들은 씻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린다.
난 침대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뒤 욕실을 나온 그녀가 다시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왔고, 우리는 그걸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엄청난 펀치를 내게 날렸다.
"오빠. 은희 언니랑 잤지?"
"응?"
너무 놀라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설마... 그런 거 까지 말했어?"
"역시 잤구나."
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제서야 그녀의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얼마전에 은희 언니 만났어. 어쩌다가 오빠 이야기가 나왔는데 고개를 슬쩍 돌리더라고. 아! 이 언니가 지금 찔리는게 있구나! 그렇다고 물어볼 수는 없잖아?"
지아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웃고 있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닌가?
"그래. 언제 재미봤어? 둘이?"
지아는 집요했다.
"기억이 안나는데?"
"지난 번에는 언니의 태도가 지금이랑 달랐어. 그게 두 달 전이니까, 한 한 달 사이의 일이네."
똑똑한 여자였다.
그런 작은 눈빛 하나 만으로 굉장히 많은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둘이 얼마나 재밀 본 거야? 섹파? 은희 언니 그런 사람인줄 몰랐는데 아주 엉큼해. 남자 친구도 되게 착한 사람이던데."
착한 사람 맞지.
지아는 은희의 학교 후배였다. 두 사람 모두 인간 관계를 만드는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꽤 친하기에 자주 교류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했어? 은희 언니라고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을 거야."
그녀는 은희가 나와의 관계를 계속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거 아냐."
하지만 난 지아에게 은희와 나의 관계, 그리고 그 남자의 변태적인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없었다.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은 있었다.
"나한테 비밀이란거구나? 흥!"
지아는 삐진 척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은희한테 물어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응?"
"뭘 놀라? 여자들은 서로 깊은 비밀을 공유할수록 의리가 깊어진다고."
아... 그랬구나.
역시 어렵다.
"근데 두 사람 서로 알고 지낸게 한참 됐잖아. 이제와서 그렇게 되다니 신기하네. 하긴 남자랑 여자 사이에 친구가 어디있어. 그지?"
"그런가보다."
만일 내게 그 능력이 생기지 않았다면, 은희와 섹스를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은 어렵다이다.
하지만 난 내내 은희와의 섹스를 꿈꿔왔었고, 앞으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아의 말이 맞다.
무슨 남사친, 여사친인가? 그저 아직 섹스를 하지 않은 관계 라는게 맞다.
"안 되겠다. 은희 언니 얘기 하니까 엄청 커졌다."
지아는 아까부터 발기해있는 내 물건 핑계를 대고, 그 위로 올라갔다.
"은희 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그녀는 자신의 안에 내 걸 넣고 무척이나 민망한 질문을 했다.
이건 여자만의 특권이다.
그러니까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을때, 여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이런 걸 물어보면 안 된다.
남편이 좋아? 내가 좋아?
어떤 대답을 듣건 그냥 자기 만족으로 끝날 뿐이고, 자신의 찌질함을 증명할 뿐이다.
"네가 좋아."
정답일까? 모르겠다.
"은희 언니 만나면 얘기 해야지.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고."
지아의 함정 카드가 또 터졌다. 머리가 아플려고 한다.
계속하다가는 지아의 꼬임에 끝도 없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난 지아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살짝 들어올리고, 허리를 움직였다. 무자비하게. 그녀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아뇨. 막 들어왔어요.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드릴려고 했어요. 괜찮아요. 정말로."
그남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지아의 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긴장으로 가득해, 아주 작은 자극만으로도 절정에 다다르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그럼 이제 잘게요."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날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이런적 한 번도 없었는데..."
기본적으로 너그러운 사람이라, 어지간하면 지아에게 관여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전에도 가끔 여러 사람을 만나느라 늦게 들어가고 했지만, 오늘처럼 여러번 전화를 걸어 확인한 적은 없다고 했다.
"조금은 눈치챈 게 아닐까?"
난 일부러 그녀의 약점을 건드려본다.
"못됐어... 하지만 정말일지도... 나 오늘 그렇게 티가 났어?"
"전혀."
그 남자의 그런 행동은 아마도 내 탓이겠지.
지아와 두번째의 관계를 맺으면서 난 캐스팅 카드 < 빼앗기는 남자 >를 사용했다.
내가 생각해도 솔직히 지독한 짓이다.
윤리적으로 볼 때 일말의 변명의 여지도 없다.
그 남자에게 악의는 없다.
하지만 딱히 호의를 가질 이유도 없다.
어쩌다 다시 만난 지아와 섹스를 해보니, 꽤 만족스러웠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아와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이미 예전에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앞으로도 지아와 관계는 맺고 싶고, 그렇다고 지아의 앞날을 막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캐스팅 카드 < 빼앗기는 남자 >
어떻게 그런 일을?
뭐... 그런 놈이었던 거다. 이제와서 무슨...
생각해보면 그 남자에게 그렇게까지 나쁜 일만도 아닐것이다.
그날 미남은 무척 행복해했다.
아마 그 남자 또한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비겁한 놈은 그렇게 변명을 한다.
"집에 들어갔다고 한 거... 괜찮아? 혹시 찾아오면 어떻게 해?"
난 계속 지아를 자극했다. 재미있었다.
"그럴 일은 없어. 그런 사람 아냐."
지아는 상대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어쩌면 지금 너의 집 앞에서 불이 켜졌는지 확인하고 있을 지도 몰라."
'몰라'가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 그 남자는 지아의 집 아래에 세워진 세단의 운전석에 앉아 불편한 얼굴로 계속해서 지아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액티브 카드 < 모니터 >를 통해 지켜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못 됐어!"
지아가 내 팔을 세게 내리쳤다.
"학!"
하지만 내가 조금 움직이자 바로 반응이 온다.
그랬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욕망이 강하고, 또 그런만큼 성욕도 강했다.
"오빠 혹시 나랑 은희 언니랑 셋이서 같이 해보고 싶어?"
섹스의 도중 그녀가 물어왔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어째서 이런 걸 물어볼까?
지아가 성욕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행위를 원하지는 않았었다.
그녀는 상식있는 여자였고, 위험한 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은희랑은 더이상은 섹스 안 해."
"정말? 학! 어떻게? 아!"
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희와 관계를 맺었을 때에는 아직 설정 카드 < 중첩 >이 없었다.
단지 설정 카드 < 민감 >만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것 만으로 은희는 충분히 겁을 먹고 도망쳤다.
만일 그녀에게 설정 카드 < 중첩 >까지 작용한다면, 그녀는 결코 도망치지 못하리라.
그래서 난 다시는 은희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설정 카드는 캐스팅 된 배우에게만 작용하고, 캐스팅 카드는 한 번 사용하면 끝인 소모성 카드이다.
그녀와 지속적인 섹스를 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각자 충분한 쾌락을 얻고 있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글쎄?"
하지만 지아에게 그걸 전부 설명할 수는 없었다.
"대단하다. 하여튼 약은 언니라니까."
지아가 입을 삐죽거렸다.
아! 어쩐지 그녀가 한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지아가 내뱉는 말에는 항상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봐야한다.
높은 수를 쓸 줄 아는 여자이기에 그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차 하는 사이에 넘어가버린다.
그녀는 나와의 관계를 그런식으로 규정짓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육체를 나누는 관계.
나와 애정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불륜 관계에서 애정이 개입되면 반드시 파국에 이르른다.
지아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섹스는 즐기고 싶다.
그런데 우리의 관계는 호혜 관계라기보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혜택을 입는 관계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무언가 사용할만한 카드를 내놓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