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8. 잠입 수사관 니키타 로마노바의 비극
"그럼 주말에 제가 연락 드릴게요."
"꼭 연락해요. 내가 보라 씨 입사 기념으로 제대로 쏠게요."
윤 대리의 눈에는 벌써 주말에 치를 거사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건설사를 나온 보라는 다시 시청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이번에 머문 곳은 주로 시장실 주변이었다. 시장 비서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얼마 전 비서실로 올라온 윤아영이라는 여자에 대한 소문을 모은다.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은밀했다. 당사자가 포함된 장소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다, 매의 눈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쫓아갔다. 누가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누구를 피하는지.
어느덧 일과 시간이 끝났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퇴근을 한다.
아직까지도 니키타 로마노바는 김 비서의 결백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어찌할지 고민하던 보라는 퇴근을 하는 윤아영을 멀찌감치 뒤따른다.
시청을 나선 윤아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택시를 잡을 여유가 없던 보라는 막 출발하려는 승용차의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구... 아..."
불청객에 당황하던 운전자가 보라의 매력적인 모습에 놀란다.
"죄송합니다. 저 택시 좀 따라가 주실래요? 저한텐 아주 중요한 일이어서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그녀는 아주 정중하게, 하지만 결연하면서도 어딘지 알 수 없는 처연함을 드러내며 부탁했다.
"아! 그, 그럴까요?"
여자의 곤경을 무시하는 것은 신사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승용차의 주인은 서둘러 택시를 따라잡았다.
"혹시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면..."
"남사스러운 이야기라... 섯불리 말씀을 드리기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 택시에 탄 여성분이 저희 남편..."
보라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승용차를 몰던 남자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더이상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오늘의 고마움..."
택시가 멈추고 여자가 내렸다. 보라가 감사를 표했다.
"그런 말씀 마시고 빨리 따라가세요."
남자는 보라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연락처 따위 알려줄 생각 없이 그녀를 재촉했다.
아마 이 남자 시간이 지나가면 오늘 있었던 약간의 추적극과 자신이 보인 신사적인 태도에 대해 두고두고 뿌듯해 할 것이다.
윤아영은 시 외각의 한적한 국도변에 위치한 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요즘의 트랜드에 꽤 뒤쳐진 것 같은 그 커피숍은 모텔의 1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고는 조금 안쪽 바깥에서는 커다란 화분으로 몸의 대부분이 가려지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놓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카페로 따라 들어간 보라는 적당히 음료 한 잔을 시키고, 윤아영의 모습이 잘 보이는 테이블에 앉았다.
윤아영이 그런 자리에 앉은 것은 아마도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 터인데, 막상 바로 건너편에 보라가 앉아있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번에도 코스튬 카드 < 잠입 수사관 >는 여실히 작용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카페로 들어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
보라는 그 남자가 조금전 시청 비서실에 있던 소 비서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겨우 십 분인데 뭐."
두 사람은 함께 하는 게 처음은 아닌지, 꽤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 어떻게 됐어? 그 사람?"
"뭐 어떠긴. 하루종일 감사실에서 시달린 모양이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래. 자기가 한 일을 인정은 하고?"
"그럴 리가? 죽어도 아니라고 부인만 했다더라. 당연하지. 여기서 물러서면 죽는 건데."
"뭐. 어차피 자기가 그런다고 살아남을 수는 있고?"
"그니까 말야."
"빨리 그 인간 떨궈야, 자기가 편해지는데. 그지?"
윤아영은 애정이 듬뿍 담긴 손으로 소 비서관의 얼굴을 매만졌다.
"고마워. 자기가 그렇게 힘든 결정 내려줘서."
"뭐가 힘들어. 내가 조금만 힘들면 자기 앞날이 트이는데. 김 비서 나가리되면, 그 인간이 하던 일 자기가 담당하는 거 맞지?"
"그럼. 어차피 작은아버지가 밀어주고 계시니까 문제없어."
"그러니까 말야. 내가 뭐 조금 오명을 쓴다고 무슨 대수라고. 그리고 이런 일 한 번 있으면, 사실 나한테도 나쁠 건 없잖아?"
"그지. 자기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니까. 오히려 청 내에서 입지가 생기는 거지."
"거봐. 자기도 좋고, 나도 좋고."
"그래도 당신한테는 미안한 게 맞지. 나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어?"
남자가 숙연하게 말했다.
"아이구! 착해라. 내 사람이 이렇게 착하다니까."
여자는 남자를 한 번 껴안고, 뺨에 뽀뽀를 한다.
한눈에 봐도 여자 쪽이 남자를 더 좋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럴만하다. 남자가 제법 잘생겼다.
소 비서란 남자, 날렵하고, 키도 큰 것이 꽤 여자를 후리게 생겼다.
아무래도 그 남자가 여자를 조종해서 일을 꾸민 듯싶었다.
"여기는 조금... 아무리 청에서 먼 곳이지만 조심해야지."
남자가 주의를 준다.
"미안해 내가 너무 푼수같지?"
여자는 맞다고 하며 바로 사과를 했다.
"푼수는. 나도 당신이랑 이렇게 있는 거 좋아. 내가 미안해."
"내가 앞으론 더 조심할게. 응?"
여자는 살며시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들을 주시하는 눈이 없는지 확인하고 여자의 어깨를 슬쩍 감싸안았다.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잠시 동안 그들은 다정한 연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남자가 슬쩍 손을 올려 여자의 가슴을 더듬기도 했고, 여자는 남자의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한다.
"그러면 이제 당신이 낼 그거 감사실에 제출해."
한동안 그렇게 다정한 시간을 보내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완전히 보낼 때가 된 거야?"
여자가 반색을 하고 물어봤다.
"어. 그 자식 자기한테 아무 증거도 없는 줄 알고, 죽어라 부인했지. 바보 같은 놈. 처음부터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이었으면 그나마 살길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여태껏 내가 그거 있단 소리도 안 한 거잖아."
"동영상 편집은 해놨어?"
"나 그런 거 할 줄 모르잖아."
"줘바. 내가 가서 해놓을게. 아니다. 차라리 당신은 내일 쉬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나올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이걸 감사실에 넘기는 거지."
"맞다! 당신은 역시 똑똑해."
여자는 또 다시 남자를 칭찬하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럼 지금 줘. 이따 까먹지 말고."
여자가 고개를 들고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가는 거야?"
여자는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음..."
잠시 남자는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는 그녀에게 건내받은 스마트폰 속 동영상 편집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그냥 갈 수야 없지. 여기서 만난 이유가 뭔데. 흐흐흐"
남자는 엉큼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남자가 고민하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선 보라가 그들 옆을 스쳐지나갔다.
"아! 죄송합니다."
보라와 남자의 몸이 살짝 부딪쳤다.
보라의 몸이 살짝 비틀거렸고, 남자가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잡아주고는 사과를 했다.
"괜찮아요.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라는 고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눈으로 살며시 인사를 하고 스쳐지나 갔다.
남자는 보라가 카운터에 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뭐야? 자기. 왜 저여자 계속 보는 거야? 저 여자가 그렇게 이뻐?"
질투의 힘은 강했다. 윤아영은 보라의 매력에 빠지기는 커녕 바로 짜증을 냈다.
"이쁘기는 무슨. 어디서 본 여자 같아서 그래."
남자가 너스레를 떨며 변명을 했다.
"어서 본 것 같기는 무슨. 남잔 다 왜 그래?"
윤아영은 삐진 티를 잔뜩 냈다.
"내맘 알면서 왜 그래. 우리 빨리 가자."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었다. 여자는 조금은 토라진 티를 버리고 그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카운터까지 갔던 보라는 다시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눈으로 쫓았다.
두 남녀는 다정하게 아까 들어왔던 입구가 아니라, 모텔로 연결된 문으로 들어갔다.
보라도 뒤를 따라 연결된 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본다.
모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 두 사람은 다정하게 서로를 마주보다가 슬며시 입을 맞추었다.
보라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자신의 물건들을 챙켜 카페를 벗어났다.
국도변에서 잠시 택시를 기다리며, 그녀는 주머니에서 꺼낸 윤아영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아까 윤아영이 혼자 앉아있는 동안 그녀의 모습을 훔쳐봐서 그녀의 패턴을 기억하고 있던 보라는 어렵지않게 스마트폰을 해재할 수 있었다.
톡톡톡
원하던 동영상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동영상을 확인한 그녀는 스마트폰의 파워 버튼을 눌러 완전히 꺼버리고 핀을 스마트폰의 측면으로 찔러넣어 심카드를 제거했다.
이제 다른 장소에서 스마트폰을 켜도 통신과 연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녀의 전화기가 진동을 시작했다.
"예. 접니다. 니키타. 지시하신 사항은 전부 완료한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거기에서 뵙겠습니다."
난 보라에게 걸었던 전화를 끊고, 비어버린 커피 캔을 휴지통에 버리고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보라와 만나기 전에 쇼핑을 끝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했다.
보라가 한울 빌딩에 도착한 것은 우리가 전화를 끊고 거의 한 시간 가량 지난 뒤였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왔어도, 호원 시의 끝에서 강남까지는 꽤 먼 거리였던 탓이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딸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조금 있다 유치원이 끝나면 데려가서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잠입 수사관에게도 가정은 있는 모양이다.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니키타이면서 동시에 보라였다.
그동안 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다.
지금까지는 영상의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성인물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여배우의 벗은 몸이다.
진지한 스파이물은 전반 십오분이면 충분하다.
"여기 계셨군요."
딱딱 떨어지는 말투로 인사를 하면서 보라, 아니 니키타 로마노바는 내게 다가왔다.
"어서오게. 수고 많았네."
그녀가 이 빌딩에 들어오기 전에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러놓았기에,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우선 타지."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로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는?"
니키타는 일반적인 빌딩의 지하에 비해 훨씬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의구심을 표현했다.
"이번에 새로 마련한 비밀 장소. 안전이 제일이지."
"그렇군요."
니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팅!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니키타가 먼저 나갔고, 난 그녀의 뒤를 따르며 그녀의 목덜미에 전기 충격기를 쏘았다.
지이이잇!
뭔가가 내가 들고 있던 작은 장치에서 발사되었고, 그녀의 목에 맞으며 새파란 스파크가 튀었다.
"헙!"
숨이 멎는듯한 소리와 함께 보라가 뒤로 쓰러졌다.
난 그녀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에 잡아주었다.
"니키타. 니키타."
보라의 귀에 그녀의 코드네임을 몇 번을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 효과는 확실한 모양이다.
난 의식을 잃은 보라의 몸을 어깨에 들쳐멨다.
키는 꽤 큰 편이지만, 워낙 슬림한 탓에 그다지 무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가 떨군 서류 가방도 주어들고, 복도를 걸어가 철문을 열고 감옥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메인 메뉴가 시작이다.
그녀의 몸을 고문실까지 들고 가 매트가 깔려있는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가 가져온 서류가방과 스마트폰을 따로 챙겨놓았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니, 그녀가 정신을 잃은지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보라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기 시작했다.
정장을 벗기고, 블라우스도 벗기고, 치마를 벗기고, 신발을 벗기고, 스타킹을 벗겼다.
그런 과정의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음. 속옷은 남겨둘까?
처음부터 발가벗기는 것보다, 조금은 더 재미를 보는 쪽이 낫겠다.
루루루루....
그녀의 옷을 벗기면서 어지간히 흥이 났는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사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멋진 미녀를 가두고, 마음껏 능욕할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 내가 겁탈하려는 여자는 지금가지 마음껏 농락을 해온 이웃의 부인이 아니라, 멋진 여자 잠입 수사 요원이다.
새로운 기분으로 마음껏 즐겨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