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8. 잠입 수사관 니키타 로마노바의 비극
"그리고 왜 내가 아저씨를 건드려요? 아저씨가 날 건드리면 건드렸지."
"그래서 자신 있어?"
"아뇨. 헤헤."
그녀는 참 솔직한 소녀였다.
"그러다가 엄마나 아빠가 들어오셔서 들키기라도 하면?"
"쫓겨나는 거죠. 뭐. 히히히."
찔끔하는 걸보니 무섭기는 한 모양이다.
"그보다 내가 아버지한테 맞아죽지 않을까?"
"음... 아빠가 한 성격 하시기는 하지만, 아저씨 얼굴보면 그래도 때리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 얼굴을 보면 틀림없이 내가 억지로 덮치고 있었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맞다! 그러네. 안 되겠다. 초상 나겠다. 우리 아빠 화나시면 물불 안 가리셔요."
얘는 어떨때보면 너무 솔직하다.
"지금 갈 데 있어서 안 돼. 다음에 들르자."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꼭이에요! 대신 잠시만요."
지연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차에 올라탔다.
나도 트렁크를 닫고 차에 올랐다.
"기왕 얼굴을 봤으니 뽀뽀라도 해줘야죠."
그녀가 말한 뽀뽀는 그런 뽀뽀가 아니었다.
지연은 재빨리 내 바지를 내리고, 기분 좋은 서비스를 해주었다.
"우리 동네니까 아무래도 스릴이 넘치네요."
좋다는 걸까? 무섭다는 걸까?
"이제 들어갈게요. 엄빠 오실 때 됐어요."
지연이 차에서 내렸고, 나도 트렁크에서 그녀에게 줄 상자를 꺼내 주었다.
"끙! 와!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거야."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힘을 내어 들고 돌아간다.
지연과 헤어져 이번엔 은희의 학원엘 들렀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그녀에게 트렁크를 열고 선물로 주기 위해 가져온 해산물을 보여주었다.
"뭐야? 엄청 크잖아?"
누가 봐도 킹크랩의 크기가 오버 사이즈였다. 한 마리로 네 식구가 충분히 먹을 양이다.
"알아서 나눠 먹어."
"세상에, 정말로 너밖에 없다. 근데 잠깐 올라갔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
"됐어. 여자들 뿐인 학원에 내가 올라가면 영업 방해만 되지."
"알았어. 그럼 잠깐만..."
은희가 차에 올라탔다.
너는 또 왜?
조수석에 앉은 은희가 손짓을 해서 나도 차에 올랐다.
"오랜만이다. 그지?"
"한 3주 됐나?"
"그니까 말야. 넌 내가 연락 안하면 어째 전화 한 번 없어?"
"그랬나? 요즘 좀 바빴어..."
근데 남의 바지는 왜 내리고 있는 거야?
"와! 진짜 실하다."
그녀는 조금전 킹크랩을 보았을 때의 눈으로 내 걸 내려보고 있었다.
"확실히 넌 큰 것만 가져오는 구나."
어느새 그녀는 내 기둥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걸 주려고 가져온 건 아닌데...
"여튼 잘 먹을게."
그녀는 내가 주지도 않은 것을 먹어치웠다.
"잘 먹었다."
그랬냐?
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다.
"맨날 이렇게 얻어먹기만 하니 미안하네. 다음 번엔 나도 뭐라도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오늘 해 준것만해도 난 고마운데."
결코 이걸 원하고 그녀에게 선물을 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 잘 지내고 있었지?"
"응. 그럭저럭. 수강생도 좀 늘었고, 수입도 늘고. 그 사람이랑도 너무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다."
"응. 정말로. 어떻게 보면 너랑 그 일이 있기전보다 훨씬 더 사이가 좋은 거 같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좋다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우리 둘 사이에 작은 룰 같은 게 있어. 일상 생활을 할 때면, 너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기. 하지만 야한 상황이 오면 늘 너에 대해 이야기를 해. 그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거든. 꼭 너에 대한 것만은 아냐. 이런저런 섹스에 대한 판타지를 이야기하는 거지."
"커플 사이에 그런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말야. 때론 내가 할 때도 있고, 때론 그사람이 할 때도 있어.
알고 보니까 그 사람 생각보다 성적 욕망이 크더라고. 정말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알고보니 변태였어."
"재미있네. 정말 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있잖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반대로 살아간다고 하더라. 동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 강한 혐오를 보이기도 하고, 아동성애자가 아동 보호에 앞장서는 경우도 많데."
은희도 자신의 남자 친구의 성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설명이 제법 납득할만 했다.
변태적인 욕망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더 고리타분하거나 융통성 없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분석은 그 남자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SNS에 올릴 사진도 자기가 직접 찍고, 직접 골라. 내 몸을 다른 남자가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속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온데. 질투가 나기도 하고, 또 자랑스럽기도 하다나. 그러니까 너희들이 구경만하는 여자가 내 여자다. 뭐 이런 심리라네. 풋!"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웃겨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좀 더 나가면 아예 날 발가벗겨 사진을 찍을 지도 모르겠더라고. 하지만 난 거기까지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원래 욕망이라는게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폭주하기 마련이잖아? 그러면 결과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여자가 남사친의 자지를 빨아주고, 이제는 조수석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자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보다는 내가 좀 더 자제력이 있는 거 같아."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자신도 웃긴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고마워. 정말. 읏! 어떻게 해! 나 간다! 윽! 윽! 윽!"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은희의 절정은 다른 여자들보다 과격했다.
단순히 신음을 터트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쾌감을 표현했다.
"윽! 아! 나... 잠깐! 헉!"
그녀 자신도 통제가 불가능한 모양이다.
거의 1분이 넘게 그렇게
"와... 확실히 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르구나."
한참만에 진정이 된 은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랑 마주보고 할 땐 이정도는 아냐."
"그 사람이 알면 서운하겠다."
이젠 나도 그녀와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도 껄끄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하나도. 오히려 더 좋아하더라구.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잘 맞을 수 있는 거 같아. 뭐랄까?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질투심? 그런게 그 사람을 더 흥분시키나 봐."
"그래. 잘 맞는 거 같다. 넌 그사람이 질투하는 모습을 즐기는 거고?"
"그것도 있지만, 그런 모습에서 날 사랑하는 게 느껴지는 게 더 큰 거 같아. 뭐랄까? 이렇게 사랑해주고 있구나. 그런 거? 응?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수강생 올 시간 됐어. 나 가볼게."
은희와 함께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킹크랩과 바닷가재가 든 상자를 건네주었다.
"진짜 크다. 큭!"
은희의 웃음이 반가왔다. 그녀에게 펼쳐질 미래가 어찌될 지 몰라도 난 그녀의 모험을 지지해주고 싶었다.
난 그녀의 행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난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말로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없고, 내가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난 나 나름의 신세계를 찾아 항해를 하고 있고, 그녀도 나름의 항해를 하고 있다.
"들어가."
"응. 또 연락해."
그렇게 두 사람에게 나눠주고도 아직 적지 않은 해산물이 남았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회사 근처에 사는 문희 양에게 들러 킹크랩 한 마리와 가재 몇 마리를 나눠주었다.
"와! 선배. 고맙습니다. 나 이렇게 커다란 킹크랩은 처음 봐요. 바닷가재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구요."
"나도 그래. 그러니까 맛은 장담 못해. 들어가서 쪄서 남자 친구랑 맛있게 먹어."
"응? 남자 친구랑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문희 씨 얼굴에 쓰여 있거든."
"호호. 들켰네. 어머나."
문희 양이 귀여운척 하고 선물을 받아 돌아갔다.
뭐 그동안 신세 지은 것이 많으니 이런 선물로라도 보답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자를 세 통 받았다. 세 사람 모두 고맙단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기프트 카드 한 장으로 무려 세 명에게 내 고마움을 표시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세 여자에게 각각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 어째 하루하루가 충만하기만하다.
다음날 오전, 평소와 같은 시간에 출근 준비를 끝내고, 보라가 방문하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남편은 평상시처럼 이른 시간에 출근한 모양이다.
감사를 받는 도중이라도 조금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가 찾아왔다.
현관을 들어선 그녀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옷을 벗는다.
예외는 없다.
현관 안으로 들어올 때는 벌거벗고 있을 것.
그게 우리의 규칙이다.
"그건 또 뭐야?"
부인은 내가 들고 들어간 검은 라텍스 옷과 검정 선글라스, 그리고 검은색 부츠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입어."
"하..."
그녀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혀를 차며 내게 건네받은 옷을 입었다.
벌거벗은 채, 라텍스 제복을 입고, 부츠를 신자 제법 멋진 모습이 나왔다.
무엇보다 그녀의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가 라텍스 제복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가슴이 살짝 부실한듯 하지만, 그거야 내가 늘 지연과 비교를 하기 때문이지 결코 평균에 못미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자 완벽하다.
평소와는 또 다른 매력이 넘쳐난다.
와! 난 사실 그 검은 라텍스 복장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매력을 느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늘씬한 보라가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으니, 벌써부터 한 번 뽑고 싶어진다.
특히나 보라의 그 냉랭해보이는 얼굴과 너무 잘 어울린다.
"이걸 입고 뭘 어쩌라고?"
물론 이것만으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이제부터 너의 코드네임은 니키타 로마노바."
검은 제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여자 캐릭터 둘의 이름을 대충 섞어 만들었다.
뭐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순간이다. 갑자기 부인의 얼굴에서 지금까지의 조소하는 표정이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요원 니키타 로마노바.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표정만 바뀐 것이 아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처럼 몸을 꼿꼿히 펴고 두 팔을 허리 뒤에 각을 세워 고정시키고 두 눈을 내게 고정했다.
"작전 명령이다. 호원 시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움직임의 비밀을 밝히고, 시장 비서관 김한성의 누명을 벗겨라."
난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위험한 임무이다. 너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내가 계속해서 명령의 내용을 말하는 동안 그녀는 몸을 꽂꽂히 세우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세심하게 듣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잠입 수사 요원 니키타 로마노바는 결연한 표정으로 내게 경례를 했다.
음... 마음에 드는군.
정말로 죽음을 무릅쓴 위험한 임무에 나서는 여자 스파이를 보는 기분이다.
아... 그냥 보내기 아쉬운데...
한 번 하고 가기에 시간이 되려나?
하지만 내가 멈칫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현관 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럼 강녕하십시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게 경례를 하고 그대로 집을 나가 버렸다.
이제 시장의 비서 김한성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그녀가 나간 뒤로는 내가 그녀를 따라다닐 수는 없다. 하지만 내겐 그녀의 행적을 확인할 방법이 있다.
난 소파에 앉아 액티브 카드 < 모니터 >카드를 여배우 보라에 대해 활성화를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으로 그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치 내게 제3의 눈이 있어, 그녀를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처음엔 너무 생소하고, 당황스러웠다.
내 두 눈은 거실을 향해 있는데, 내 머릿속에 또다른 이미지가 들어오고 있는 경험을 달리 누가 해봤을까?
살짝 머리가 아파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편히 앉아, 그녀의 행적을 따라갔다.
아예 눈을 감아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낫겠다 싶어 일부러 뜨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내게 재능이 있던 걸까?
몇 분 되지 않아 제법 익숙해졌다.
뭐랄까?
TV를 보면서 화면 한구석에 작은 화면을 하나 켜놓은 PIP 기능과 비슷하다 해야할까?
물론 TV 화면을 통해 보는 게 아니라 좀 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TV 화면보다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용하다보니 그 작은 서브 화면을 시야의 한쪽으로 밀어놓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니 훨씬 낫다.
음... 어쩌면 마스터 카드 < 매의 눈 >으로 향상된 시각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