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8. 잠입 수사관 니키타 로마노바의 비극 (41/377)



〈 41화 〉@8. 잠입 수사관 니키타 로마노바의 비극

그런 파란색 바닷가재도 스무 마리.
이걸 언제 다먹나 싶을 만큼 많은 양이다.

그런데 끈으로 묵어놓은 가재의 더듬이가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설마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야?

정말이다. 더듬이 뿐 아니라 집게도 조금씩 움직인다.
그것도 스무 마리 전부.


호! 엄청나게 신선한 놈들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조금전 새우도 방금 물속에서 꺼낸 것처럼 더듬이와 다리가 꿈틀거렸던 것 같다.

산채로 배송된 해산물이라.

뭐. 이제 그런 것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게가 들어있는 상자가 두 개.


하나는 꽃게이고 다른 하나는 킹크랩이다.

킹크랩은  킹크랩이다.


한 마리로 한 가족이 먹고도 남을 튼실한 놈들이  마리나 들어있다.

이정도 크기의 킹크랩이면 한 마리에 얼마나 할까? 뭐. 내 월급으로는 일 년에 한 번 사먹기도 버거운 놈일 터이다.

그래도 킹크랩이란 놈들이 워낙 커다란 놈이라, 개중 제일 납득할 수 있었다.


문제는 꽃게이다.
이놈은 확실히 지구 생명체가 아니다.

생김새는 소래 어시장에서 파는 그 꽃게가 맞는데...
어째서 덩치가 킹크랩에 지지 않을 것 같은 거야?

명백하게 이놈이 제일 이상해!

이걸 누구에게 선물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봐도 놀라겠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뭐라할까?


그렇다고 이 많은 갑각류를 전부 혼자 먹을 수야 없고...


내가 아무리 먹성이 좋아도, 한달 내내 먹어도 다 먹지는 못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신선한 놈들은 빨리 먹어치워야지, 냉동실에 얼렸다가는 맛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모르겠다. 우선 먹고나서 생각해보자.



아이스박스에서 새우를 꺼내 씻었다.

두 마리는 많다 싶어  마리만 꺼냈는데, 이걸로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걸 어떻게 먹지?


새우야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쪄도 되고, 구워도 좋다.

상자에서 꺼내자 몸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회로 먹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살짝 겁이 나니 익혀먹자.


맛알못이라도 상관없다. 난 늘  몸의 안전이 우선이다.

버터 구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소금구이로 하기로 했다.


후라이팬에 소금을 깔고 새우를 얹었다.


뚜껑을 닫고 불을 켜고 새우가 익기를 기다리며 간장에 튜브 와사비를 타서 소스를 준비했다.

 와사비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나가서 사오기 귀찮았다.




새우가 익어가자 고소한 갑각류 특유의 냄새가 새어나온다. 벌써 군침이 돋는다.


가끔씩 뚜껑을 열고 새우를 뒤집어가며 골고루 익혔다.

10분이 조금 안 되어 대충 익은  같아 접시에 담았다.

크긴 크다. 그런데 큰만큼 맛은 있을까?
조금의 의구심을 가지고 껍질을 벗겼다.


새우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껍질은 단단한 편이다. 그래도 속이 꽉차 수율은 좋다.


 마리만 먹어도 성인 한끼 식사가 충분하겠다.

너무 커서 그냥 먹기는 힘들겠다.

칼로 한 입 크기로 잘랐다. 우선 처음 한 입은 간장 없이 먹어본다.


한입 씹으니 쫄깃하면서 진한 새우의 향이 입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

와우!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새우는 도대체 뭐였던 걸까?
새우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대체로 새우가 너무 크면 씹는 맛이나, 입안 가득 넘치는 충족감은 크지만, 새우 특유의 향은 약해지기 십상인데, 이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적당히 쫀득하고 강렬한 향이 존재감을 뽐낸다.

음... 좋다.

행복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소금구이로 해서인지 간도 적절하다. 크기가 큰만큼 살짝 염분이 모자란 듯 하지만, 충분히 맛있다.


그래도 반쯤은 간장을 아주 살짝 묻히고, 와사비와 함께 먹어본다.

이쪽도 좋다.


어느 쪽이 더 좋다라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다. 그냥 기분 좋은 식사였다.


그래. 새우는 확실히 내가 먹어야겠다.

새우 한 마리로 배가 불러와 느긋하게 쉬고 있으니, 보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게 다 뭐야?"

그녀는 거대한 아이스 박스와 안에 담긴 가재와 게를 보고 당황했다.

"또 누가 선물로 줬다고 할거야?"
보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누가 당신 같은 사람한테... 혹시 당신  누구를 협박하고 그러는 거 아냐?"


"묻지마. 알 거 아니야."


"그래. 하기는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에게 난 어디까지나 파렴치한 인간인 모양이다.

"필요한만큼 가져가. 어차피 혼자서는   먹어."

"아니 됐어. 난 필요 없어."
보라는 냉정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재료이지만, 굳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가져갈만큼 탐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뭐. 그러면 어쩔  없지. 난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닫았다. 보라 말고 달리 나눠줄 곳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날따라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면 늘 불쾌한 표정이 떠나가지 않았지만, 오늘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유난했다.

"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야."
역시 냉랭하기 짝이 없다.

"혹시 알아? 내가 무슨 도움이 될지?"


"흥! 그럴 리 있어? 당신은 내 불행을 비웃고 기뻐하기만 할걸?"


"불행을 비웃다니.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면 더 궁금해지잖아?

"지금 이건 잘 하는 거고?"
보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목에 걸린 개줄을 흔들었다.

이웃의 부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목에 개목걸이를 차고 개 줄을 건채 내 앞에 개처럼 엎드려 있다.

"하기는. 그래. 그래도 한  듣고 싶은데? 당신의 불행이 뭔지? 혹시 알아? 정말로 도움이 될지? 원래 사람은 위태로운 상황이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 노력하는 거 아니야?"

"..."

"좋아. 이야기를 들려주면, 우리 계약이 끝나기까지 남은 며칠도 없던 것으로 해주지."
그녀와 한  동안의 계약이 끝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정말이야?  사람을 가지고 놀려는 건 아니지?"


"내가 한 번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 있어?"
그녀는 묵묵히 날 바라보았다.

"그사람한테 문제가 생겼어. 조금... 아니. 사실은 아주 심각해."


"어떤?"

"성추행이래. 같이 근무하는 여직원이 고발했어. 허! 말도 안 되지. 그 사람이..."
그녀가 이렇게 풀이 죽은 이유를 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성추행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뭐 남자라면 언제라도 그럴  있지."

"그 사람은 당신 같은 남자랑 달라.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도 당신이 지금 이 모습으로 있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걸?"


아! 이건 명확하게 내 실수다.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동안 그녀를 괴롭히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그걸 원하지는 않는지, 곧 진정했다.

"아까 하던 이야기 다시 해보지. 누가 남편을 모함했다고?"


"비서실 직원 한 명이야."

"지금 시청 감사실에서 업무 중지 명령이 내려왔어.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래. 감사실의 감사가 끝나면 바로 검찰에 알리든지, 아니면 사직을 권고하든지  거래."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쪽에서는 이미 여자의 말대로 추행이라 단정 지은 듯 하다.


부인은 남편의 결백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이대로 물러서면, 그걸로 끝이야. 다시는 공직에 서지도 못하고,  도시에서 살아갈 도리도 없어."
그녀는 자신에게 덮친 그 절망감을 제대로 표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어쩔 수 없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한 번 추행으로 낙인이 찍히면 그것으로 인생이 끝난다.

차라리 자영업자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면 모를까.
특히나 공무원이나 연예인 처럼 남의 눈에 띄는 일을 한다면 더욱 치명적이다.


한 번 추행으로 몰린 사람은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매장되어버린다.

"그런데 그 여자가 누명을 씌워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거야? 합의금이라도 요구한 건가? 아니면 전부터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그사람 말로는 업무상으로 그다지 접점도 없다고 했어. 그녀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도대체 모르겠대. 그런데... 그 여자랑 상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요즘 시청에 불순한 기운이 돌고 있는 거 같았다고 했어."


부인이 알고 있는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청에는 여러 개의 파벌이 있고, 어쩌면 남편은 알력 싸움의 희생양일지도모른다 정도가 그녀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물론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일지는 알도리가 없다. 그녀의 남편이 부인에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꾸며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농후하다.


"파벌이 있다고? 그러면 남편은 어떤 파벌이야?"

"그사람 똑똑하기는 해도, 그런 정치질 같은 거 못하는 사람이야."

주변 사람의 이야기는 적당이 걸러 들어야 하는 법이다. 나름 엘리트 소리를 듣는 공무원이 아무런 줄도 타지 않는다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당신이 뭘 도와줄 수 있어?  여자한테 합의금이라도 내주고 없던 일로 할거야?"


흠...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니. 그 여자를 회유하는 방법은 합의금 만이 아니다.
캐스팅 카드 한 장이면 정말로 당장이라도 이 여자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어? 그러고 보니 나 대단한데?

하지만 그녀를 위해 얼마나 이쁜지, 혹은 매력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흠... 방법이라.

잠깐!

뭔가 생각이 났다.
아까 받은 카드 중에 쓸만한 게 하나 있다.


"당신은 남편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 거지?"


내 질문에 부인은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남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뭐든지 할 각오는 있어?"

"뭘 해야 하는데? 당신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부인은 늘 그렇듯 냉소적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

"만약에 있다면 말이지."

"좋아. 당신이 그걸 증명해준다면, 내가 뭐든지 할게. 평생 진짜로 개처럼 짖을 수도 있어."


아무래도 이 사람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진짜인 것 같다.
갑자기 쉬고 있던 자지가 부풀어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거야? 변태 자식! 눈꼽 만큼이라도 널 믿은 내가 바보지."

부인은 내가 자신에게 어떤 조건을 내밀지 생각하다고 흥분한 것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내가 흥분한 것은 그녀의 고결한 사랑 때문이다.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농락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같은 변태의 가슴을 뛰게하는 것도 없다.

"내가 방법을 좀 찾아볼게. 내일 오전에 부군 출근하고 나서 잠깐 들러."
아무래도 그녀의 표정을 보니 오늘 재미를 보기는 틀린듯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정말로 걱정이 태산인지, 보라는 그리 고마워하지도 않고 돌아갔다.



보라를 돌려보내고, 난 아이스박스에서 작은 상자들을 꺼내, 각기 해산물을 적당히 담아 가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오랜만에 차를 몰고 아파트를 떠났다.

출퇴근 할 때는 막히는게 싫기도 하고, 또 벌써 10년 가까운 차인데다, 쓸데 없는 생각까지 떠오르게 하는지라,  몰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날처럼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려니 어쩔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지연이 사는 동네였다.

"와! 이게 뭐예요? 엄청 크다!"
트렁크를 열어 바닷가재와 킹크랩을 보여주자 지연이 굉장히 즐거워했다.

"엄청 이쁘다. 이거 정말 먹어도 되는 거 맞아요?"
그녀는 새파란 바닷가재를 보고 굉장히 신기해했다. 나도 그랬으니 당연할 테지.


"어. 프랑스에서 나는 거래. 일반 가재보다 맛이 있다는데, 나도 오늘 처음 봤어."


"근데 아직 살아있나봐요. 더듬이가 꿈틀거려요. 프랑스에서 잡았는데 아직도 살아있어요?"

"그러게? 비행기로 왔나보지?"
나도 자신은 없다. 어쩐지 그런 수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잠깐 들렀다 가요. 엄마 아빠 아직  오셨어요."
그녀의 눈에 서려있는  반짝임은 틀림없이 유혹의 그림자.

"들어가서 둘만 있으면, 너 날 건드리지 않을 자신은 있어?"


"내가 무슨 발정난 기집애에요? 집에서까지 그러게?"
그녀가 발끈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