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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7. 코스플레이는 좋아하시나요? (38/377)



〈 38화 〉@7. 코스플레이는 좋아하시나요?


지연은 내 위에 올라타고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쾌감이 마구 올라오고 있다.

어째서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아! 알았다.
고양이 소녀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이미 엄청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질이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그곳을 계속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인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빨아들인다?
굉장한 흡입력이다.

이러다 그녀에게 먹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풀어준다.
하아... 잠시 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시 빨아들인다.

그렇게 그녀는 조용하고도 격렬하게 날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니 영혼이 빨려들어가는  같았다.
인간의 눈동자는 그렇게 빛나지 않는다.

요사스럽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검고 짙은 눈동자.


그러니까 난 지금 아래도 위도 그녀에게 빨려들어가고 있는 듯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준비 되셨나요?"
그녀가 물어왔다.


준비라고? 이게 겨우 준비에 불과하다고?

순간이다. 지연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수 있는지는 모른다.


상체, 그러니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머리는 조금의 요동도 없다. 하지만 그 목부터 아래로는 무섭게 움직인다.

정확히 내 기둥을 축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움직인다.

어어!  되겠다. 못 버틴다. 오늘은 이 아이에게 완패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지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오라! 그녀도 느끼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이런 엄청난 자극으로, 그런 속도로 움직이는데, 나만 쾌감을 느낄  없다.

하지만 그녀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더 도를 더해간다.

그럴수록 그녀의 얼굴 표정 또한 일그러지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스스로가 참기 어려운 쾌락을 누리는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도 늦출 생각이 없나보다.


그러니까 이건 너랑 나랑   하나는 죽자는 거지?
아니면 둘 다 공멸하는 걸까?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지연도 마찬가지인가보다. 고정하고 있던 머리를 들며 상체를 전부 위로 들어올렸다.


저 포즈는 고양이 특유의 기지개 펴는 모습과 비슷하다.

지연은 눈을 감으며 머리를 완전히 뒤로 젖혔다.

그리고 입을 벌려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다.



"니야아!"
가냘픈 울음 소리가 우리가 있는 스튜디오 안을 울려퍼졌다.

어떻게 저런 울음 소리가 그렇게나 유혹적일 수 있는 걸까?
평소와 다른 고양이 울음 소리로 내뱉는 그녀의 쾌락의 신호가 여느때보다 더 감미롭게 들려왔다.

그리고 난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몸안에 사정을 했다.
윽! 숨을 참아야 했다.

지연은 틀림없이 내가 사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허리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니야아! 니야아!"
그녀의 울음소리가 연거푸 퍼져나갔다.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궁극의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정이 끝나고, 그녀의 절정도 끝났다. 지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위에 엎드려 날  껴안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운이 길게 가는듯, 그녀는 한동안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도 이루 말하기 어려운 허탈감에 빠져, 그대로 누워있었다.

"오늘 엘레오놀의 기술은 어떤가요?"
한참만에 기력을 회복한 고양이 소녀가 묘한 웃음을 띄고 물어왔다.


"굉장해. 이렇게 느끼기는 처음이야."

"키르케 그년 보다 더요?"


그건 누구?


"정말로 오늘 밤이 최고였어."


"나도 오늘 밤이 최고였어요. 희한하네요. 틀림없이 더 작은데...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는 지연은 혀를 내밀어 내 얼굴을 핥았다. 음... 좋다. 왠지 성적인 의미보다는 순수한 애정이 느껴졌다.


정말로 귀여운 고양이가 내 위에 올라와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기분이다.


"이제 일어날까?"

원래는 스튜디오에서는 촬영만하고, 모텔로 갈 생각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응? 오늘은 한 번이 다예요?"
지연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럴리가. 자리를 옮기자."


"그러면 그렇지. 호색의 군주님이  번으로 끝낼리가 있나."
지연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듀디오를 나서 회사를 빠져나올 때까지, 다른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않았다. 수위 아저씨도 건물을 돌아다니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요? 우리?"


"자양동으로 가자. 음... 멀리 않으니 걸어갈까?"

고양이 꼬리를 살랑거리는 지연을 데리고 차를 잡으러 큰길로 나가기 좀 그랬다.


코스플레이를 해제하고 평범하게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이모습 그대로 함께 걸어가고 싶었다.

우리 회사에서 자양동까지 가는 길 주변은 전부 사무실 아니면 공장 뿐이라, 이시간이면 사람을 보기 어려우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주인님이랑 함께 걸어가는 것도 좋네요."
지연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호젓한 곳을 둘이 걸으니까 나도 좋네."


"그러니까 주인님도 종종 밖에 나와 돌아다니고 그래요. 맨날 성에 틀어박혀서 여자 따먹는 거나 하고."

도대체 고양이 소녀에게 난 어떤 존재일까?
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여자만 따먹고, 자신에겐 정적의 암살 명령을 내리는 냉혹하고 꼬추가  오크?

역시 평범한 판타지에 나올 설정은 아니다. 성인물에 어울리는 주인공.


어쩐지 난 이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정하게 길을 걸어갔다.




이제 모텔들이 모여있는 동네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다.

우리 뒷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거침없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인도와 차도가 구별되지 않는 이면도로에 가까이 초등학교까지 있어 제한 속도가 20km인데도 늦은 시간 사람이 없다고 전혀 상관치 않고 달리는 차였다.
불쾌해하면서 지연을 끌어당겼다. 차가 다니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했다.


그때였다.  앞쪽으로 황색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길을 건너고 있을 것이 뭐람...

우리가  고양이를 눈치챘을 때쯤, 자동차는 벌써 우리 옆을 스쳐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아! 하는 사이, 문득 내 옆에 있던 지연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끼이이!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쿵!
무슨 이유로  차가 전봇대에 박은 건지 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곁에 다시 돌아온 지연의 팔에는 노란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있었다.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고 다녀야 해. 응? 배가 너무 고팠다고? 하긴. 여긴 먹을게 별로 없겠다."
지연은 자신의 품에 안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안된 일이로구나. 뭐. 사는게 다 그렇지."


우리는 전보대를 박아버린 그 검은색 승용차 곁을 유유히 지나쳤다. 이런 길에서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고, 질주하다 사고를  차주에게 관심을 두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래. 고양이의 삶이  그렇지. 오늘만 살아남으면 되는 거야. 너. 내 권속이 되거라."
갑자기 지연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러더니, 옆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자신의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를 내고, 고양이의 입에 피를 몇 방울 흘려주었다.

"맛이 없어? 고얀 놈일세. 어쨌던, 더는 그런 사고 따위 걱정할  없을 게다. 네 마음껏 살아보거라."

내게 주인님 거리며 어리광을 부릴 때와는 달리, 그녀는 무척이나 어른스러웠다.

"자. 이제 네 살길을 찾아 가거라. 아! 내 이름을 잊지 말거라. 너의 주인의 이름은 엘레오놀, 프린세스 오브 카트시.
네게 아홉 개의 목숨을 주었으니, 이 세상의 끝을 볼 때까지 마음껏 방랑을 하려무나."


지연이 고양이를 내려주었다. 형편 없이 말라있던 고양이는 지연을 향해 가냘프게 한 번 야옹 거리고, 어두운 거리를 달려 사라졌다.




난 이제는 더이상 지연이 하는 행동에 놀라지 않았다. 만일 그녀가 벽을 걸어가고, 높은 건물 위로 뛰어오른다해도 그냥 그렇구나 싶을 것 같았다.


"엘레오놀. 너 혹시 벽타고 뛰어가는  할줄 알아?"

"냐아! 이런 거?"
고양이 소녀가 내 곁에서 사라져, 건물 벽으로 달려가 벽을 밟고 가볍게 달려갔다.

그렇게나 빠르게 달려가는데 발걸음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정말로 한 마리 커다란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벽을 밟고 건물의 꼭데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래... 굉장하구나."

"이정도가 굉장할 게 뭐가 있어요?"
엘레오놀은 아주 건방진 태도로 으쓱거렸다.

미안하다. 내가 널 몰랐구나.



모텔에 들어가 우리는 밤새 섹스를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달려들어 전쟁과 같은 관계를 나누었다.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관계를 한 날일 터이다.
지연도 그렇게 거듭되는 관계를 그리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주인님을 독차지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내게 안겨 잠이 들었다.

나도 아주 푹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내곁에 누워있는 사람은 평소의 지연이었다.
고양이 귀도, 꼬리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벗어놓았던 의상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지연은 어제의 일이 피곤했었는지 아주 쌔근쌔근 잠이 들어있다.
잠든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녀의 뺨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돌아오면 다시는 고양이 소녀의 코스플레이를 할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카드에 적혀있는 설명에는 귀속이라는 단어가 쓰여있었다.


귀속(歸屬)
그러니까 특정 사용자에게 한정적으로 소유되는 것을 말한다.

 번 밖에 사용할  없으면 일회용이라 쓰여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보자.


"엘레오놀."
난 그 고양이 코스플레이에 부여한 코드를 불러본다.


고양이 소녀 엘레오놀은 강림(降臨)대기중입니다.
- 다음 강림까지 234시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합니다.

강림(降臨)이라니. 좀 이상한 단어가 나왔다.

신이나 영험한  따위가 지상에 내려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였지.

뭐. 억지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소녀는 지연이 역할을 했지만, 확실히 같은 사람이라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정말로 지연에게 고양이 소녀가 강림한 느낌이기는 했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234시간이라면...
어젯밤 잠이 들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6시간을 더하면 대략 240시간인가?
그러면 열흘에 한 번 꼴이로구나.


다행이다. 다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끔찍할 뻔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혼자서 당황하고 말았다.

끔찍하다고?
어째서?

그까짓 코스플레이를 못하게 된다고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뭔가 조금 이상하다.



 자연스럽게 어제의 고양이 소녀를 머리에 떠올렸다.

귀여웠고, 신비로웠고, 매력적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고, 우리는 정말로 화끈한 밤을 보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니 어째선지 가슴 언저리가 화끈거린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어제 너무 무리를 해서 가슴 근육이 아픈 건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언지 아련한 것이  가슴을 찌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야?


내가 무슨 코스플레이 마니아도 아니고, 귀와 꼬리가 달린 짐승인간에 대한 특이한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양이 소녀가 내게 무엇이라고?


본질은 지연이 아니었던가?

아니었나?
생각해보면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엘레오놀.
고양이 소녀.

뭐라고 했었지? 카트시의 공주님이라고 했었나?
그런데 카트시가 도대체 뭘까?


난 도대체 왜 그 소녀와의 하룻밤에 대해 이렇게 감상적이 되어버린거지?

눈을 뜨고 한동안  그  수 없는 회한에 잠겨있었다.




"응? 아저씨 울어요?"
갑자기 눈을 뜬 지연이 날 보고 놀라 물었다.


"응? 아니. 하품을 해서 그랬나봐."


"에이! 아닌데? 내가 그것도 구별 못할까봐?"


"사실은 니가 너무 이뻐서 행복해서 그랬어."


"아! 진짜! 그거 하지마요!"
지연은 민망하다며 베개로 내 머리를 마구 때렸다.


귀여운 그녀 덕분에  그 정체 모를 아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그 정체 모를 감정의 원인과 난데 없이 흐른 눈물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선은 기억 저편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이고, 아무런 단서도 없는 신비에 대해 고민해봤자 정력 낭비일 뿐이다.


"씻고 나가자. 아침 먹어야지."

"네. 진짜 배가 엄청 고파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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