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7. 코스플레이는 좋아하시나요?
"그럼 계약 기념으로 촬영 좀 할까?"
"벌써요? 어떤 사진이요? 화장 좀 고쳐야죠?"
촬영이란 말에 그녀가 허둥됐다. 일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된 모양이다.
"아니. 오늘은 그냥 내가 지연이 사진 좀 찍어주고 싶어서?"
"아! 진짜요? 그럼 말을 하시지. 알았으면 이쁜 속옷 가지고 왔을텐데. 이번에요, 막 야한 속옷 잔뜩 샀거든요. 뭐 오빠... 아니 고객님한테 잘 보이려면 그런 것도 필요할 거 같아서요. 오늘은 하나만 입고 왔는데, 사진 촬영할 생각이었다면 전부 갖고 와서 보여드렸을 텐데말예요."
그러면서 어디에서 배운건지 눈을 반쯤 감고 날 유혹한다는 포즈를 취했다.
음... 틀림없이 어색하고, 야하기보다는 귀엽기만한데... 어쩐지 섹시한 것도 사실이다.
"괜찮아. 그건 다음에 찍지. 오늘은 다른 사진이 찍고 싶어서."
"흐응? 그러면 또 야한 사진을 찍고 싶으신 건가요? 그날 다 못했던 사진들? 아저씨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지연아... 그만 해 주지 않을래? 여기 나 밥벌어먹고 사는 회사야."
울고 싶은 마음으로 하소연을 했다.
다른 사람 없는 회의실이어서 망정이지, 누군가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면 난 아주 쓰레기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이 회사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다.
임원진도 남자는 한 명 뿐.
그나마 남자들이 많은 배송팀은 다른 지역에 있다.
그러니 여기에선 여자들이 싫어할 행동을 결사적으로 피하는 것이 생존의 제1법칙이다.
"흐음... 좋아요. 딴 건 몰라도 공적인 것은 지켜드려야죠."
다행히 그녀는 날 조금은 봐줄 생각인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직접 만났을 때가 메시지를 보낼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스튜디오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조금 있다 내려올게."
스튜디오의 관리를 내가 맡아서, 필요하다면 마음껏 촬영할 수 있다. 물론 일과가 끝난 뒤에나 그렇게 하지만, 어쨌던 스튜디오에 들어와 문을 잠가두면 그다지 방해 받을 일은 없다.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그날 일을 마무리하고 스튜디오로 내려갔다.
"근데 무슨 사진 찍어요? 진짜로 야한 사진 안 찍어요?"
"나랑 야한 사진 찍는 게 좋아?"
"네. 그래야 아저씨가 나 안 만나는 날에도 그거 보면서 내 생각 할 거 아녜요?"
"사진 안 봐도 하루종일 네 생각 해."
"그러시겠죠. 만만한 육변기 젖소 여자니까요. 쳇!"
"참. 너 코스플레이 해본 적 있어?"
난 그녀의 험한 말을 씹어버리고 내가 할 말을 했다.
"코스플레이요? 아뇨? 아저씨 그런 거 좋아해요?"
"나도 처음이야. 근데 어쩌다가 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 코스튬이 생겨서?"
"알았어요. 주세요. 한 번 입어보죠."
물론 내가 그녀에게 입혀보려는 옷은 그냥 평범한 코스튬이 아니다.
바로 이번에 받은 새로운 카드인 코스튬 카드 < 고양이 소녀 >
언제고 써보기는 해야할 터이니, 괜히 길게 끌 거 없이 단숨에 써보기로 한다.
"거기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난 스튜디오 한구석의 창고로 가서 코스튬 카드 < 고양이 소녀 >를 손에 쥐고 힘을 주었다.
카드는 반으로 찢기는 순간 환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내 손에 들른 것은 작은 종이 상자 하나.
상자를 열어보니 몇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색과 검은색이 적당히 섞여있는 옷 한 벌.
상자에서 꺼내서 펼쳐보니 가죽으로 만든 원피스였다.
그런데 밑단의 길이가 너무 짧아 간신히 엉덩이가 가려질듯 말듯하다.
또 앞뒤에 여기저기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어, 몸을 가리기보다는 노출하려 만든 옷 같다.
여러모로 평상복으로는 어림도 없고, 글자 그대로 코스튬으로나 쓸 법 하다.
옷을 꺼낸 상자 안에는 뭔가 수상한 것들이 더 들어있다.
우선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가 하나.
초커 목걸이가 하나.
그리고 한 뼘 정도 길이의 단검이 두 자루, 마지막으로 고양이 꼬리?
혹시?
난 우선 가장 눈길을 끄는 고양이 꼬리를 집어 올렸다.
역시 생각처럼 한쪽 끝에 날렵한 물방울 모양의 투명한 마개가 달려있다. 뭔지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확실히 말해 어른들의 장난감이다. 아! 난 그런 거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다.
초커 목걸이는 그냥 초커이다. 여자들이 목에 메고 다니는. 역시 재질은 가죽이고 검은색 바탕에 반짝이는 쇠로 장식이 되어있다.
뭐 악세사리 코너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각각 황금색과 은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칼집에 들어있는 두 자루의 단검을 칼집에서 뽑아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가짜 칼이잖아?
너무 짧다 싶었더니 칼날이 없는 가짜 칼이다.
겨우 5cm를 넘을까 말까한 칼집 속에 숨겨진 것은 그냥 통짜로 된 짤막한 쇳덩어리였다.
그러니까 칼집에서 빼지 않으면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지만, 막상 칼로서의 의미는 전혀 없다.
만약에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칼이었다면, 좀 무서웠겠다.
전부 꺼내고 보니, 상자 밑바닥에 작은 튜브 하나가 들어있다. 주어올려 라벨을 확인해보니 윤활젤이라 쓰여있다.
고양이 꼬리를 사용하기 위해 넣어둔 것 같다.
흠. 이걸 내게 공급해주는 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무척이나 세심한 성격인 것 같다.
"빠르구나..."
상자를 들고 지연에게 돌아가니, 그녀는 벌써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속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응? 다 벗고 있을걸 그랬나요?"
그녀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자. 이걸 입어볼래?"
난 지연에게 어제 카드를 찢어 구한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지연이 신이 나서 상자를 열었다.
"이게 머예염? 응? 머리띠하고... 앗! 나 이거 안다!"
지연이 고양이 꼬리 끝에 달린 마개를 보고 소리쳤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에요? 나 요즘에 야한 거 엄청 많이 본단 말예요!"
"그랬구나."
지금도 충분히 야한데, 더 야해지면 어쩌지?
"나한테 이거 하라는 거죠? 역시 응큼한 남자가 평범한 사진을 원할리 없지."
지연은 어쩐지 나보다 더 신이 났다.
"그럼 전 이제 육변기의 길을 착실하게 걸어가는 건가요?"
누가 누굴 놀려야 하는 걸까?
지연은 우선 원피스를 입고, 목에 초크를 맸다.
"여기에 꽂는 건가 보네."
그리곤 두 자루의 칼을 원피스 양쪽에 달린 고리에 맸다.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인지, 걷거나 달려도 그리 흔들리지 않을 듯 싶었다.
"이뻐요?"
지연은 머리에 고양이 귀 머리띠를 쓰고 날 바라보며 물었다.
"응. 귀엽다. 무척."
그렇지 않아도 귀여운 여자였다. 그런데 그 깜찍한 고양이 귀 머리띠를 쓰고 있으니 더욱더 이뻤다. 종종 쓰게 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걸..."
고양이 꼬리가 달린 애널 플러그를 들고 엉덩이로 가져갔다.
"잠깐! 지연아. 그거 그냥 넣기에는 너무 아플 건데?"
"그런가? 아! 진짜네."
도로 앞으로 가져와 마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본다.
"크네요. 음... 굵기가 아저씨 꼬추랑 비슷해요."
그러더니 입에 넣어본다. 몇 번 정도 넣었다 뺐다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딱 아저씨 꼬추 굵기네. 그냥 넣으면 뒤지겠다. 뭐라도 바르긴 해야겠어요."
"그러니까. 말야. 이걸 써."
상자에 함께 들어있던 윤활젤을 건네주었다.
"역시! 준비성이 있으시네요. 변태들은 다 부지런하데요."
지연이 투명한 마게 부분에 윤활젤을 바르며 날 비웃었다.
내가 준비한 것도 아니고, 난 변태도 아닌데... 하는 항변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생각해보니 그걸 지연에게 시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그렇다고 누가 그걸 내게 강요한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의지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여러모로 변태라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플까나?"
지연이 플러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윤활젤을 잔뜩 발라놓았지만, 굵기가 무서워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서우면 굳이 할 필요 없어."
"아저씨가 하라고 했는데, 내가 거절할 거 같아요?"
지연의 웃음은 너무나도 고혹적이었다.
"자. 그럼!"
지연은 그걸 자기 엉덩이로 가져가 천천히 가져대었다.
"아저씨. 나 듁으면 딴 여자한텐 이런 거 시키지 말아요!"
그녀는 촉촉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나 참... 보면 볼수록 천연덕스러운 연기의 달인이다.
"간다!"
그리고는 손을 움직였다.
"지연아! 천천히..."
하지만 아무래도 늦은 듯, 그녀는 벌써 그걸 한 번에 넣어버린 뒤였다.
어... 그거 아무리 봐도 그렇게 힘으로 우겨 넣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욱! 아파 뒤져!"
지연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 고통을 호소했다.
"너무 아프면 빼!"
"헝! 헝! 아파 죽어요! 지연이가 죽으면 아저씨는 또 누구랑 교미해요?"
아픈게 맞는 건가 싶었는데, 눈에 고인 눈물 방울을 보니, 아픈게 틀림없다.
"괜찮겠니? 내가 도와줘?"
"건드리지 말아요. 좀만 참으면 될 거 같아요. 히잉! 아무래도 아날은 무리에요."
"그지? 미안."
"미안해요. 뒤에다 아저씨 꼬추를 넣는 건 못하겠어요. 히잉..."
응?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꼬추를 뒤에 넣는다고 그랬어?"
"벌써부터 각오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언젠간 아저씨가 그것도 해달라고 할 거 같아서! 근데 당분간은 무리에요. 무리!"
"내가 그걸 왜 하자고 해?"
"뽀르노 보니까 다들 하던데요? 그니까 우리도 하는 거 아니었어요?"
"응? 너 혹시 서양 거 봤어?"
요즘 성에 관심이 많아져 성인물을 찾아본다고 하더니, 설마 서양물을 본 건가?
"백인들 나오는 거요! 꼬추 크기가 아저씨 거랑 비슷한 거 찾다보니까 그런거 진짜 많이 하더라구요."
"나... 그런 취향 없어."
"아! 진짜요? 왜요?"
"응? 글쎄? 한 번도 해본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흐응? 이상하다? 아저씨 같은 변태가 왜 그러지?"
변태 아니라고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준 아날 플러그를 엉덩이에 꽂고 엎어져 아파 죽으려는 여자 아이에게 할 소리가 아닌 거 같았다.
"아! 이제 덜 아프다. 역시 아저씨의 변태 파워 짱!"
지연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어때요?"
그녀가 뒤로 돌아 고양이 꼬리를 보여주었다.
팬티 위로 올라온 길쭉한 검은털 꼬리가 그녀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뻐. 정말로."
"얍얍!"
손으로 고양이 꼬리를 만지며, 지연이 신기해하고 있었다.
제법 근사하다. 겨우 머리에 띠 하나 달고, 고양이 꼬리를 달았을 뿐인데, 정말 고양이 소녀로 변신했다.
물론 아까운 카드 하나의 값어치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참! 그런데 활성화를 하려면 코드를 부여하라고 했었지?
활성화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지금까지 카드의 설명이 의미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틀림없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귀여운 고양이 소녀에게 어울리는 코드가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귀여운 이름이 어울리겠지?
'엘레오놀.'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코드 네임은 엘레오놀로 하자."
"네?"
그때까지도 고양이 귀와 꼬리를 만지고 있던 지연이 무슨 말이냐는 듯 날 바라보았다.
순간이었다. 지연의 몸이 환한 빛으로 감싸였다.
와!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카드가 빛이 나며 사라지는 일은 있었어도, 사람에서 빛이 난 적은 없다.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데, 다행히 그 빛은 금세 사라졌다.
"니야아!"
지연이 가냘프게 울었다. 엄청나게 귀여운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진짜 고양이 같네."
소질이 있네...
"응? 당신 누구야?"
지연이 귀를 쫑긋 세우고 날 노려보았다.
뭐라고?
귀를 쫑긋 세워? 계속해서 귀가 움직인다!?
그리고 어째서 고양이 꼬리가 저렇게 곧추 섰는데?
조금전까지는 살짝 가로로 뻗어 있었는데?
"누구야! 어째서 당신한테 주인님 냄새가 나는 거야?"
연기를 참 잘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녀가 정말로 날 처음 본 것은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표정은 깜쪽같았다.
"잘 어울린다. 지연아."
"응? 당신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아는 거야?"
고양이 소녀가 깜짝 놀랐다.
"니야아!"
고양이 소녀의 귀가 찡긋! 꼬리가 흔들흔들...
장난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퀄리티였다.
마치 진짜 고양이 귀와 고양이 꼬리가 달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