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6.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솔직히 말하면... 싫은 건 아냐."
"흥! 뭐 그렇지. 내 몸에만 관심이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나랑 하고 나서 그렇게 돈이나 주고. 그러니까 아저씬 날 여자 친구가 아니라 그냥 창녀로 보는 거지? 그렇죠?"
그녀의 얼굴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그냥 나 아저씨 창녀 할게요."
어느새 무표정해진 얼굴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녀가 말했다.
"돈은 그렇게 많이 안 줘도 돼요. 그냥 다른 창녀처럼 줘요. 흑! 흑!"
"그래도 되니까 나 버리지 말아요"
지연은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잡아끌고 걸어갔다.
모텔에 도착해서 우리는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녀가 침대에 누웠고, 난 그녀 위에 올라탔다.
"흑! 흑!"
관계하는 내내 지연은 계속 울고 있었다. 어쩐지 난 그녀를 억지로 범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오빤 내가 이렇고 울고 있는데 그렇게 할 생각이 들어요?"
섹스가 끝나고 그녀가 물었다.
이젠 더이상 울지 않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내팔에 안겨 나와 마주보고 있었다.
"우니까 더 이쁘더라구. 참기 어려웠어."
"진짜요?"
"응. 너무 이뻐서 참을 수 없을 정도야."
"웅!"
지연이 날 끌어안고 키스를 요구했다.
"솔직히 말하면요."
"응."
"나 아저씨 하나도 안 좋아요. 그러니까 아저씨 여자 친구 안 할래요."
난 그 여린 소녀의 마음에 어지간히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해 지연은 내게는 너무도 과분한 여자이다.
AV 마스터로서의 능력이 없었다면 그녀와 이런 관계는 커녕, 멀리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할 그런 여자이다.
어쩌면 그녀와 사귀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난 그녀 말고도 다른 여자들과 만나 섹스를 해야 한다.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이다.
만일 내가 더 이상 다른 여자와 관계를 안하고, 지연과 계속 하며, 그녀와의 영상만을 올린다면...
수익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내가 계속해서 그 AV 마스터의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그리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만일 내게 AV 마스터로서의 능력이 없다면. 난 과연 지연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물론 한 여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킬 자신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연은 이미 각종 설정으로 떡칠이 된 아찔한 쾌감을 맛 본 뒤이다.
그런 것 없이 그녀에게 비슷한 수준의 쾌감을 줄 수 있는 자신이 없다.
아니. 좀 더 솔직해보자.
난 아마 지연 한 사람 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터이다.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끝까지 비겁하다.
용렬하고 치졸하다.
이 귀엽고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꿈꾼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걸 주도록 하자.
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지연은 삐진 게 역력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지연이 말처럼 널 무슨 가벼운 여자로 여기는 거 아냐. 그리고 니가 여자 친구라 해줘서 무척 기뻤고. 솔직히 나한테는 지연이가 너무 과분한 여자거든."
"맞아요. 어디서 아저씨랑 사귄다고 하기 좀 쪽팔려요."
역시 아직도 삐져있었다.
"니가 여자 친구인 게 싫다는 거 아냐. 단지 내 유일한 여자친구일 수는 없다는 거지."
"그니까 아저씨는 나랑도 하고 이 여자랑도 하고 저 여자랑도 하겠다는 거네요.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그게 싫으면 지연이가 굳이 날 만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협박까지 할 건 없잖아요."
지연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 어렵다.
나도 지금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와의 관계를 포기해도 관철해야만 한다.
"알았어요. 그럼. 다신 그런 소리 안할게요. 창녀가 무슨 요구 따위를 하겠어요?"
아... 내가 저지른 짓에 내가 마음이 아프다.
"지연이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 하지만 너한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 네 마음에 상처를 줘서 미안해."
난 그녀에게 우리는 사귀는 것 맞지만, 그녀가 내 유일한 여자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려 노력했다.
"흥! 그러기나 말기나. 빨리 박기나 해요. 나 오늘은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안 돼요. 고객님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성욕을 푸시고 돌아가세요. 흥!"
물론 한번 마음이 상한 그녀는 그걸 받아들이는 대신, 무시를 선택했다.
그날은 내가 지연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벌써 몇 번이나 함께 잠자리를 하고 이번이 처음이다. 이래저래 미안함이 많았다.
"이거. 선물."
그녀의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난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네주었다.
"응? 이쁘다!"
그녀는 내가 준 수정 목걸이를 마음에 들어했다.
"이거 꼭 차고 다녀. 행운이 생긴데."
"나같은 창녀가 무슨 행운이래? 칫!"
뒤끝이 좀 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목을 내밀며 목걸이를 채워달라는 모습을 보니 고마웠다.
그리고 그녀의 뒤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갔다.
아주 장대하게 길었다.
다음날 그녀에게 날라온 톡이 시작이었다.
[지연이]
- 나 지금 폭풍 공부 중
- 무슨 공부?
[지연이]
- 쩩스
- 전에 시험 기간에도 했었잖아?
[지연이]
- 그건 성교육!
- 이건 쩩스! 완전 다름. 이게 더 재미있음.
- 쪡스! 쩩스!
- 그래. 그럼 열심히 해.
불현듯 더 상대를 해주면 위험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연이]
- 책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열심히 탐닉하는 중
- 아저씨의 귀여운 창녀가 되겠슴!!!
- 그런 말 하지마. 제발
[지연이]
- 창녀임. 아저씨는 날 창녀로 봄.
이제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쪽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성이 풀릴 때까지 하고야 만다.
[지연이]
- 찾았슴.
- 뭘?
[지연이]
- 나한테 맞는 단어.
뭔가 불길했다.
그래서 난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난 절대로 그 뒷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지연이]
- 안 궁금함?
- 전혀 안 궁금해. 나 지금 많이 바빠.
물론 그녀는 내 대답은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단어를 내던졌다.
[지연이]
- 정액 받이!
- 와! 찾았다.
할 말을 잊게 만든다. 그걸 어디에서 들은 거야?
[지연이]
- 정액 받이! 그거임. 난 아저씨의 정액 받이.
- 울고 싶다.
정말이었다. 난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회사에서 이게 무슨 꼴이람?
[지연이]
- 정액 받이는 눈물은 안 받음.
- 오직 정액만 받음
-그래서 정액 받이.
그녀의 톡이 올 때마다, 난 깜짝 깜짝 놀라고 만다.
누군가가 그걸 보기라도 한다면, 내 사회적 삶은 끝장이다.
[지연이]
- 또 있음
그래서 대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연이]
- 육변기
- 와아! 이게 더 좋음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요.
그녀의 뒤끝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날 하루 종일 톡에는 육변기니 창녀니 정액이니 하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보내져 왔다.
마침내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복수가 끝났다.
[지연이]
- 아저씨 내일 뭐함?
- 회사에서 근무
[지연이]
- 끝나면 머함?
- 집에 가서 쉬어야지.
[지연이]
- 나랑 놀아줌!
- 줌!
- 줌!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날 만나고 싶어한다.
이쁘고 또 많이 미안하다.
그래도 난 뒤로 물러설 수 없다.
- 그래. 대신 조건이 있어.
[지연이]
- 딴 여자도 부르는 거얌?
- 육변기 하면 됨?
- 정액 받아줌?
- 아니... 만나서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지연이]
- 알았어염. 오늘부터 아저씨의 착한 지연이에염!
- 음... 아니다. 고객님의 착한 창녀예요.
내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화가 빨리 풀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 사랑스러운 소녀를 냉혹하게 대하고 있는 나를 이렇게 좋아하고 있다니,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모양이다.
변태 같은 놈.
아마도 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좋다. 살아있는 동안 이 기쁨을 마음껏 누릴 생각이다.
보라...
지연...
내게 한없는 즐거움을 주는 여인들과의 관계를 난 조금도 바꿀 생각이 없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
그깟 지옥 가라고 하면 가지.
"지연아. 좋은 소식이 있어."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날, 난 그녀에게 희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먼데요? 오늘은 열 번 쯤 박아줄 건가요?"
"옆에 사람 없니? 누가 들으면 어떻게 해?"
"음... 몰라요. 알게 뭐야?"
"그래... 여하튼 소식은 그게 아니고, 우리 회사에서 너랑 같이 일하길 원해."
"어? 정말요? 야! 감사합니다."
일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태도가 좀 다르다.
"전부 다 아저씨가 내 사진 이쁘게 찍어 주셔서 그런거죠? 감사합니다."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운 대답이다.
"그래서 협의 때문에 그러는데, 오후에 회사로 나올 수 있겠니?"
"당연히 가죠. 그리고 또 어차피 그동네에 갈 생각이었으니까요. 호호호."
일 이야기를 하는 동안엔 박아달라느니 육변기니 하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웃음 소리마저 아주 조심스럽다.
새삼 그녀가 달리 보인다..
"근데. 이따가 회사에서 아저씨도 볼 수 있는 거죠?"
"응. 계약은 나랑 하게 될거야."
정식 모델 계약이 아닌 탓에 내 선에서 전부 끝날 것 같았다.
"그럼 계약 끝나면 박아줄거에요?"
취소다. 도로 그놈으로 돌아갔다.
"우리 그런 이야기는 사적인 통화할 때만 하면 안 될까?"
"음... 그러면 계약 하고 나면 사적으로 만나서 박아 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확실히 깨달았다.
이아이는 내가 당해낼 수 없는 존재이다.
그날 오후 지연이 회사로 찾아왔고, 내가 건네준 계약서에 날인도 했다.
"잘 읽어. 그런거 한 번 잘못 도장찍으면 아주 골치아파. 전속 계약 한 번 잘못했다가 몇 년은 고생하는 모델도 종종 있어."
다 우리 회사처럼 깨끗한 거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어디든 양아치같은 인간들이 있고, 놈들은 사회 초년생에게 어처구니없는 계약을 강요하고, 더러운 짓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나야 아저씨한테 메인 몸인데요. 뭐. 아저씨가 도장 찍으라면 노예 계약서라도 찍어야죠. 뭐."
음... 확실히 아직 끝이 나지 않았나보다.
"근데요. 이거 덕분인가봐요."
그녀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에 쥐고 말했다.
아! 설마...
하기는 조금 이상하기는 하다. 한참이나 말이 없어 물건너간줄 알았는데 오늘 갑자기 결재가 떨어졌다.
"우연이겠지. 듣고 보니 사장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셨다고 하더라."
"사장님이면 나 회사에 갔을 때 나오셨던 세 분 중에 제일 키가 크고 날씬하셨던 분이지요?"
"응."
"그분 되게 멋있던데. 나이가 어떻게 되요?"
"나보다 두세 살 쯤 많지? 아마."
"와! 그렇게 나이가 많은데 그렇게 멋질 수 있어요?"
음... 지연에게 그 나이는 무지 많은 걸로 느껴지나보다. 하기는 이제 겨우 스물의 그녀에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근데 무슨 사장님이 그렇게 이뻐요?"
"원래는 걸그룹 하다가..."
"걸그룹이요? 진짜! 우와! 무슨 그룹이요?"
"'엑서사이즈' 라고 한 십년 전쯤에 활동하던 그룹 있어."
"음... 몰겠다."
"그렇게 뜨지는 못했고, 또 그나마 알려진 멤버도 아니라서. 흐지부지 해체하고 쇼핑몰 모델을 하시다가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생각보다 그쪽에 소질이 있으셨데.
그래서 이사님하고 힘을 합쳐서 지금까지 키워온 거야."
"이사님도 걸그룹 출신이에요?"
"아니. 이사님은 처음부터 쇼핑몰 모델을 쭉 하셨었고."
"근데..."
지연이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응?"
"보통 회사 다니면 자기 회사 사장님 이력 같은 거 그렇게 외우고 있어요?"
"으응? 글쎄?"
뭔가 싸 했다.
"혹시 오빠 사장님 좋아하는 거 아녜요?"
"응? 아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하지."
사실이다. 난 우리 회사 사장님과 이사님을 존경한다.
뭐 존경하는 이유에 그 두 사람의 미모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없이... 아니. 그냥 그 멋진 몸만 가지고 시작해서 중견 패션 회사를 일군 능력은 존경할만 하다.
"수상해. 아저씨 나한테 여자 친구는 안 된다고 한 거, 사실은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어서죠?"
"절대 그런 거 아냐. 내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거는 너야."
"흐응?"
여전히 고양이 눈으로 치켜뜨고 그녀가 날 바라보았다.
"혹시... 아저씨 이 회사에 이쁜 여자들 많죠? 거기서 무슨 하렘이라도 만들려는 거 아녜요?"
"쓸데 없는 소리 한다."
"아! 진짜. 짜증나. 그 사장님 생각해 보니까 멋있었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아저씨는 자기 사장이랑 떡칠 생각이나 하고 있구!"
"야. 야. 그거 아니라구."
"그럼 정말로 사장님이랑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
그녀의 추궁하는 눈빛을 보면서, 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거봐! 남잔 다 똑같아! 흥! 칫! 뿡이다! 나쁜 자식!"
난 그녀의 투정이 사랑스러웠다.
이쁜 여자가 내게 질투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기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