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6.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반짝! 효과와 함께 카드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 손위에 작은 보석 상자가 들려있다.
기프트 카드의 사용법을 이해했다.
상자를 열자 조금전 설명에서 보았던대로 귀여운 디자인의 목걸이가 하나 들어있다.
너무나 귀여운 디자인이라 내가 쓰지는 못하겠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할 수있는 악세사리는 절대 아니다.
그리 비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벼운 선물이라면 여자들이 좋아할 것도 같았다.
우선은 보관해 놓기로 하자.
그렇게 세 팩의 카드팩을 뽑아놓고 생각에 잠겼다 .
남은 돈은 지연에게 줄 개런티를 빼놓고도 아직 1억 원이 넘는다.
"카드팩!"
조금 더 뽑아보기로 했다. 재미 들렸나보다.
캐스팅 카드 < 여배우 >
설정 카드 < 대체기억 >
기프트 카드 < 디저트 선물세트 >
설정 카드 < 대체기억 >
- AV 메이킹이 종료된 이후 AV 마스터를 제외한 메이킹에 관련된 모든 대상은 메이킹 기간 동안의 불가해한 사건들을 납득할 수 있는 상황으로 대체해 기억하게 됩니다.
음... 무얼 뜻하는지 알겠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메이킹 기간 동안의 불가해한 사건이 뭘까?
조금 두려워지는데?
카드를 받고 가장 두려워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 또 기프트 카드이다.
기프트 카드 < 디저트 선물세트 >
- 달콤한 꿀과,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잘 어울어진 아바르진 딜라이트 한 상자입니다.
- 왕실의 가족들도 아껴 먹을만큼 아주 귀한 재료로 만든 최고의 간식입니다.
- 너무 맛있어서 먹으면 어쩐지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 고열량의 간식입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돼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설명을 읽어보니 과자 한 상자인 것 같다. 딱히 무슨 대단한 기능 따위 없다. 설마 행복해지는 것 같다가 정말인 건 아닐테고...
처음으로 카드에서 나온 것 중에 별 의미 없는 물건이 나왔다. 조금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불합리한 것을 받은 적은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아직 모자라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안 나왔다.
캐스팅 카드 < 여배우 >가 두 장이 나왔다.
아무래도 특별한 카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듯 하다.
살짝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이 카드가 돈을 벌어줄 카드이니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 한 장 남은 카드는 그야말로 엉뚱한 것이었다.
사이트 카드 < 감옥 >
- 나쁜 사람을 가둬두고 고문하는 바로 그 감옥입니다.
- 여러 개의 쇠창살 감옥이 늘어서 있습니다.
- 두 개의 고문실과 다양한 기구들이 준비되어있습니다.
- 죄수들은 간수에게 감히 반항하려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 죄수들은 간수의 허락 없이는 결코 도망갈 수 없습니다.
- 모든 장소에 더럽혀진 죄수들의 몸을 씻을 수 있는 수도 시설이 준비되어있습니다.
- 딱히 매일 관리하지 않아도 죄수들에게는 건강을 유지할만한 충분한 식사와 운동이 제공됩니다.
- 원한다면 고문 혹은 결박의 전문가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 위치 : 강남구 논현동 112-23 한울 빌딩 지하 8층
- 한올 빌딩 엘레베이터에 탑승하시고 이 카드를 사용하세요.
뭐야? 이거 정말로 무서워!
감옥이라고?
물론 성인 동영상 중에서도 감금물은 클래식에 가깝지만, 정말로 감금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고?
하아... 당황스러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이 카드를 사용하면 성인물이 아니라 올드보이라도 찍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다.
이건 당분간 보류.
이번엔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카드 뽑는 것에 재미가 붙어 돈을 전부 써버리면 곤란하다.
벌써 5,000만 원이나 썼다.
남은 돈은 1억 1,300만 원 정도.
여기서 지연이 개런티를 주고, 또 다음 메이킹의 개런티를 준비하려면 더는 쓰지 않는 편이 좋겠다.
카드 뽑기를 끝내고 난 기프트 카드 < 디저트 선물세트 >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카드를 꺼내 손에 들고 찢자 카드에서 빛이 나며 사라지고, 대신 내 무릎 위에 큼직한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대략 초코파이 30개 들이 상자와 비슷한 크기이다.
이정도면 디저트가 꽤 많이 들었겠구나 싶었다.
"이게 먹는 거야?"
상자를 열어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무슨 투명한 유리 장식 같은 것이 각각으로 구별된 칸에 아주 가지런히 정렬되어있다.
디저트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석 장식품 같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대략 각각이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이다.
숫자를 세어보니 모두 48개.
뭐야? 이건 한국산 과자의 포장을 아득하게 능가하는 최첨단 포장아닌가?
내용물만 보면 작은 과자 상자 하나로도 충분할텐데...
거기다가 상자의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금색의 화려한 문양에 알 수 없는 글자가 잔뜩 적혀있다.
하지만 내용물의 아름다움을 보니 이 과대 포장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나 하나가 각기 다른 색의 보석 같아, 그냥 보석 상자라 해도 믿을 듯 싶다.
선물용이다. 이건 누가 봐도 여자들에게 주기 위한 선물용이다. 너무나 이뻐서 받으면 당장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상자의 한쪽엔 디저트를 집어먹으라는 것인지, 금도금한 집게 비슷한 도구가 두 개 들어있다.
대체 이게 뭐람? 정말로 별다른 의미 없는 디저트 선물 세트?
그나저나 먹는 게 맞기나 해?
그래도 궁금하니 하나 먹어보자.
난 단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단 거 많이 먹으면 살쪄... 그리고 남자는 디저트가 아니라 고기 라는게 내 신조이다.
그래서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생김새는 굉장히 이쁘다는 점을 제외하면 투명하다는 것 때문인지 언젠가 먹어보았던 터키쉬 딜라이트, 로쿰이라는 젤리 비슷한 터키 과자를 연상된다.
그러고보니 아마 저 낯선 글자는 그쪽 동네 어딘가의 문자가 아닐까 싶었다.
흠... 과연 맛은 어떨까? 예전에 먹었던 로쿰은 그냥 엄청나게 달고, 말캉한 젤리 비슷했었는데...
손으로 집어보니 질감은 약간 바삭한 편이다.
손에 뭔가 끈적한 게 묻는게 느껴져 살짝 기분이 좋지 않다.
아! 그래서 금도금 깁게가 있었나보구나.
그제서야 세트에 그런 걸 넣어둔 이유를 깨달았다.
왕실 이야기까지 한 걸 보면, 나름 고급스러운 컨셉인 듯 하다. 왕족이 손에 끈적이는 걸 묻히면서 간식을 집어먹고, 손을 빨아먹는 모습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다.
뭐 다음엔 나도 집게를 써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입안에 넣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향기가 코를 간지른다.
음... 나쁘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이빨로 깨물었다. 로쿰보다는 좀 더 단단한 질감.
바사삭! 굉장히 즐거운 소리가 내 귀를 행복하게 만든다.
어떻게 그렇게 가볍고 시원하게 부서질 수 있을까?
그런데 바삭한 것은 겉의 아주 일부분 만이었다.
바삭 다음으로는 쫀득한 감촉이 이빨에 느껴진다.
그리고 결코 과하지는 않다.
치감을 적당히 자극할정도로 쫄깃하지만, 결코 이가 아플만큼 단단하거나, 이빨에 불쾌하게 달라붙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좋아할 만큼 딱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참 재미있는 간식이다. 우선 시각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다음으로는 바삭하고 부서지는 청각이.
그 뒤로 쫄깃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이걸 처음 만든 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영리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서부터 진짜가 몰려왔다.
씹자마자 훅 밀려오는 뭔지 모를 과일의 향.
딸기? 파인애플? 아니면 오렌지?
전부 아니다. 내가 지금껏 접해본적 없는 새콤하고 화려한 향기가 온몸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혀를 자극하는 단맛.
설탕과는 다른 천상의 무언가와 같은 달콤함.
그 달콤함이 목을 넘어가면서 부드럽게 퍼져나오는 진한 맛은 버터나 밀크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농후하다.
도대체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합을 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머릿속은 온통 이 자그마한 한조각의 디저트가 남겨준 감각으로 가득찼다.
어? 뭔데?
뭐가 이리 맛있는데?
왜 이 자그마한 디저트 한 조각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기쁨을 주는 거야?
그냥 맛이라 표현할 수는 없었다.
맛은 사람이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아바르진 딜라이트라는 디저트는 그 다섯 가지 감각.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전부 만족시켜준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난 정말로 행복하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당연했다.
인간은 감각의 동물이다.
그리고 이 디저트 한 조각이 인간의 모든 감각을 꿰뚫고 충만한 만족감을 준다.
여운은 생각보다 꽤 길게 갔다. 한동안 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각을 즐기는 것에만 몰두했다.
와우!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만일 이걸 돈을 주고 샀다해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정말로 사람이 많는 간식이 맞는 걸까? 생각해보면 이게 사람이 만들었다는 보장은 없다.
내게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준 그 카드에서 얻은 선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믿을 수 없는 맛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 하나만... 더..."
손이 절로 그 아바르진 딜라이트라는 간식을 향해 갔다.
안돼! 가까스로 참아냈다. 카드에 쓰여 있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돼지가 된다고.
다른 건 몰라도 살이 찌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키와 덩치 때문에 불편한데, 살까지 찌면 끝장이다.
물론 내게 생긴 능력으로 여자를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해도, 난 살이 찌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건 내게 인간으로서 최저한의 마지노선이다.
상자를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놀려놓고, 그 과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확실히 저건 날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만한 것이다.
아마 누구에게 주어도 크게 환영받지 않을까 싶다.
오후에 이웃 부인 보라가 방문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현관에서 발가벗고, 개목걸이를 차고 기어들어와 소파 앞에 앉았다.
"입벌려."
난 그녀가 주는 개줄을 잡고, 오늘의 첫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주는 간식을 입에 넣고 여전히 마땅치 않은 얼굴로 입을 다문다.
"아!"
보라는 멍한 얼굴로 입안에 든 아바르진 딜라이트를 씹어 삼켰다.
한참 동안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으리라.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 이게 뭐야?"
"어때? 먹을만하지? 선물로 들어온 거야."
"그... 그게 뭐야?"
평소였다면 내가 뭐라하든, 그게 명령이 아니라면 시큰둥했을 그녀는 이번엔 정체를 알고 싶어했다.
그만큼 맛있었던 것이다.
"나도 몰라. 선물인데, 어느 나라에서 만든 건지도 모르겠어. 먹을만 해?"
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테이블 위에 놓았던 그 과자 상자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보석 같잖아?"
여자라서 그런지, 그 아름다움에 나보다 훨씬 더 감탄을 했다.
그녀는 한동안 남아있는 46개의 디저트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걸..."
그러다가 깜짝 놀란다. 그녀는 나와 이런 걸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착취당하는 입장이고, 난 파렴치한 개새끼이다.
잠시라도 그녀에게 그걸 잊게 만들었으니, 정말 굉장하잖아?
"나도 하나 먹었는데, 맛은 있는데 너무 달아서 많이는 못 먹겠더라고. 이따가 갈때 가지고 가."
보라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돌았다. 명령이 아닌 권유였다.
그러니까 평소의 그녀라면 반길 리 없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은 조금 심각해보였다.
난 대충 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당연히 너무 맛있어서 였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간식보다 맛있었다.
한 번 맛본다면 누구라도 거절할 리 없다.
그리고 보라는 아마도 자신이 먹고 싶다기보다는 딸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녀의 어린 딸은 달콤한 걸 무척 좋아했었다.
보라는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만, 틀림없이 자신의 딸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엄마에게도 지지않게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