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5. 폭유의 순진무구한 소녀가 내 귀에 노골적인 음어를 속삭이며...
"아저씨 나 배고파요. 배고파! 다 박았으면 밥을 달라!"
내 팔을 베고 누워서 배고프다 칭얼거리는 지연에게 룸서비스 메뉴를 보여주니 그다지 관심이 없어했다.
"뭐 먹고 싶어?"
"아저씨 꼬추... 아냐. 더는 못 먹어. 떡볶이요."
지연이 원하는대로 떡볶이를 배달시켜 나눠먹었다.
그녀는 제일 매운 걸로 주문해서는 헉헉거리면서도 잘도 먹었다.
"매우면 다른 거 시켜줄게."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스러워 물어보았다.
"아저씨 꼬추보다 안 매워요. 히히!"
그리고 뭐가 재미있는지 눈물이 나게 깔깔거렸다.
사실 이때 쯤 난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녀가 내뱉는 적나라한 단어들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아저씨 떡볶이 다 먹고 또 해요? 교미?"
"지연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만 쉬어도 되지 않을까?"
"나랑 교미하는 거 싫어요?"
그녀가 울상이 되어 물었다.
"그럴리가? 지연이처럼 이쁜 여자랑 하는 게 싫을 리 있어?"
"그럼 또 박아줘요. 많이 먹고 힘낼게요."
난 지연의 언어 생활에 조금은 개입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으응..."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이상은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 더이상의 관계는 없었다.
첫 경험치고 너무 심했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고나니 그곳이 부어서 건드리기만해도 아프단다.
"힝! 더 할 수 있는데!"
마치 배가 잔뜩 부르면서도 더 먹을 수 있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 같았다.
"다음에 하면 되지. 오늘은 이만 쉬자."
"음... 다음에? 또? 아! 진짜요! 아저씨 천재다."
그녀는 배시시 웃고는 내 팔에 안겨 눈을 감더니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쌕쌕거리며 잠이 들었다.
나도 슬슬 자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정식 출시를 위한 충분한 분량을 만족했습니다.
- AV 메이킹을 더 진행하시거나, 여기서 멈추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하려고해도, 그녀가 너무 지쳐있다. 여기까지만 하자. 자동 편집을 골랐다. 아마 잠이 든 사이 올리기까지 끝날 테지.
- 영상물 유통 번호 AVM-003이 마켓에 출시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눈을 떴다.
옆에는 지연이 내 팔을 꽉 안고 정신없이 잠들어있었다.
눈을 감고 쌔근쌔근 잠든 모습도 무척 이뻤다.
난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에서 내 팔을 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언제까지 잘지 모르지만, 난 출근 준비를 해야했다.
조용히 욕실로 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녀가 일어나 거실에 나가 있었다.
"일어났어? 그렇지 않아도 깨우려고 했었는데. 씻고 학교 가야지?"
"저...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가 전날 밤과 사뭇 달랐다.
뭐랄까? 착 가라앉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
"응?"
난 왠지 모를 긴장 속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랑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이요."
꿀꺽! 대충 감이 왔다. 어제의 일이야 어디까지나 캐스팅 카드 < 능동적 주인공 >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지금은 이미 AV 메이킹이 끝난 시점.
캐스팅 카드의 영향은 사라졌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번 은희와의 관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이에는 어떤 신뢰가 있었기에, 관계가 끝나고도 지금까지 잘 지내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는 아침이 되자 내 얼굴 보기 창피하다며 사라졌었다.
그럼 이 소녀에게는 어떨까?
지연과 난 전날 오후 처음 만난 사이이다. 더이상 낯설기도 어려울 정도.
그런 상대와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그녀가 느낄 당혹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왜 그러셨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한껏 실려있었다.
"넹?"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회피. 모든 책임은 그녀에게 있다.
"아저씨가 저보다 어른이시잖아요. 제가 어제 좀 맛이 갔었는데... 좀 타일러서 돌려보내시지 그러셨어요?
너 좀 이상한 아이구나. 집에가서 약이라도 먹는 게 어떠니? 이렇게 한 마디만 해 주셨으면 좋잖아요?"
"그..."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어라 반박을 해야할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대화의 기술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말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게 옳다라고 밀어붙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여자들은 이걸 잘 한다. 논리가 아니다. 감성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대개 이 지점에서 머리에 쥐가 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너무나 당연하게 주장을 하니,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출구를 찾지 못한다.
여기에서 이성적인 태도로 상대의 발언에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논파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지옥에 발을 디뎠다.
그녀의 쏘아붙이는 태도에 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게 정답이다.
음... 그리고 난 그녀의 그런 태도가 신선하고 귀여웠다.
지난밤 그렇게 노골적인 단어만 내뱉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의 이미지는 지금의 그녀와 무척 비슷하기는 하다.
"좋았어요? 이렇게 어린 애랑 하니까?"
승기를 잡은 지연이 날 몰아붙인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그녀는 모르지만, 진짜로 내가 나쁜게 맞거든.
그래도 믿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액티브 카드 < 호감 >
어젯밤 그녀가 느낀 쾌감이 전부 나에대한 호감으로 전환되었다면, 최악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좋으셨냐구요. 가슴도 크고, 나이도 어린 여자가 달려들어서 자자고 하니까, 웬 떡이냐 싶었어요?"
지연의 말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대답 좀 해봐요! 이 못생긴 아저씨야! 나 따먹으니까 좋던? 좋아? 어린애 짬지가 그렇게 좋았냐구!"
음... 금세 본색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아! 진짜! 내가 미친 년이지! 왜 저런 못생긴 아저씨랑 잤냐구?
내가 막 아무하구나 자구 다녔으면 하나두 안 억울해!
근데 첨이었다구!
아저씨처럼 꼬추만 큰 못생긴 사람하구 처음이기는 싫었다구! 히잉!"
이제야 어제 내게 안기면서도 내내 찡찡거리던 그 귀여운 소녀 모습이 드러난다.
역시 이쪽이 훨씬 좋다.
아무리 보아도 그녀의 태도는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극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 모습은 날 완전한 타인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렇게 많이 싫었어?"
"몰라요! 짜증 나!"
그녀가 얼굴을 홱 돌렸다.
그녀의 태도에서 이제 화풀이가 거의 끝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이 귀여운 소녀가 정말로 내게 분노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말 몇 마디로 끝나지 않았을 터이다.
"정말로 많이 싫었나봐."
조금 불쌍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럴때는 약한 척이 제일이다.
"아저씨 좀 만 잘생겼으면... 좋았겠죠!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까 여기 분위기도 좋고... 밤에도 막 찌릿찌릿 기분은 좋았는데... 아우! 아저씨 얼굴 보니까 짜증나! 흥!"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어쩔 거에요? 내 처녀!"
"그거... 어젯밤의 즐거움으로 우리 비긴 셈 치지 않을래? 너 다른 남자는 절대 그렇게 못 해준다."
난 조금은 뻔뻔스럽게 나가기로 했다.
피식! 그녀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얼추 넘어왔다.
그렇게 몰아붙이다가, 한 번 웃음이 떠오르면 슬슬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어젯밤에... 내가 가슴으로 막 이상한 것도 해줬잖아요! 그건 뭐 아무 여자나 해줄 수 있는 건가염? 흥! 칫! 뿡이다!"
응? 그러네. 생각해보면 그녀가 해준 서비스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할말이 없어졌다.
"여하튼 책임져요! 책임져!"
"알았어.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
"내 처녀 돌려놔요! 나도 잘생긴 남자랑 사귀고 싶었단 말예요!
미안해 미남아! 내가 왜 이때까지 너 잘 생긴 걸 몰랐을까?"
듣고 보니 이 소녀는 자신의 소꿉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애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캐스팅 카드 < 능동적 주인공 >는 이길 수 없었겠지.
그리고 지금은 액티브 카드 < 호감 >이 역할을 다하고 있을 테고.
뭔가 조금 미안하다.
나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 잘생긴 소꿉친구와 인연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잘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다.
괜히 상대에게 끌려다니며 배려만 해주면, 결국 남에게 빼앗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남아. 어쩔 수 없으니,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라.
"그래. 내가 나쁜 놈. 아니 죽일 놈이야. 지연이의 소중한 처음이 이렇게 못난 남자여서 미안해."
난 주눅이 든 태도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아! 참! 진짜!"
여기에서 그녀의 양심을 조금 건드려보니, 먹히는 것 같다.
"하아... 진짜! 무를 수도 없고. 히잉!"
그녀는 더이상 날 추궁하는 대신 혼자서 발을 굴렀다.
"근데 너 오늘은 수업 없어?"
"있어요. 씻고 나가야 해요! 흥! 나빴어. 할 말 없으니까 말돌리기나 하고! 흥! 흥!"
좋아. 여기까지. 그녀는 이정도로 타협하려는 모양이다.
툴툴거리면서도 아까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누그러졌다.
"씻어. 나가서 밥은 먹고 학교 가야지."
"아저씨 나빠요!"
지연은 마지막까지 눈을 치켜뜨고 날 노려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와 함께 호텔을 나와 패스트푸드 점에서 각기 가벼운 버거와 커피를 시켜 먹고 헤어졌다.
함께 길을 걷는 동안에도,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녀는 날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래도 정작 무섭다기보다는 귀엽게만 느껴졌다.
내가 정말로 보기 싫었다면, 굳이 그때까지 함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갈래요! 잘가요! 못생긴 아저씨! 흥!"
그녀는 마지막까지 날 노려보고 삐질거리며 사라졌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마음이 아련해진다.
"좋은 아침! 영웅 선배!"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날 불렀다.
"좋은 아침! 문희 씨."
우리 회사에서 제일 착한 문희 양이었다.
"방금 인사하고 헤어진 분은 누구세요? 혹시 여자 친구?"
문희 양이 쿡쿡 웃으며 날 바라본다.
"응? 아! 뭐. 그냥..."
예상치 못한 사태에 난 적절한 답을 하지 못했다.
"근데 영웅 선배 어제랑 똑같은 옷이네? 혹시?"
역시 날카로운 문희 양... 그녀는 이제 응큼한 웃음을 지으며 날 몰아세웠다.
"늦겠다. 우리 빨리 가자."
착한 문희 양은 내가 거북해하자 더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고마웠다.
지연과의 일이 있고 바로 그날 오후부터 그녀에게 톡이 왔다.
[지연이]
- 짜증! 짜증!
- 왜?
[지연이]
- 아저씨 짜증남!
- 아! 진짜! 내가 왜 그랬을까?
- 존나 서러움! 힝힝!
- 아저씨 바쁘니까 할 말 없으면 여기서 그만
어쩐지 어울려주면 피곤할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의 말을 듣는 타입은 아니었다.
[지연이]
- 아저씨 진짜 내 타입 아님.
[지연이]
- 진짜루! 그때는 눈이 뼜나봄.
[지연이]
- 나쁜 넘. 나 같은 어린 여자를 따먹구!
[지연이]
- 변태!
- 니가 하자고 했잖아?
한 번 쯤은 버팅겨줘야 했다. 한번 밀리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지연이]
- 잠깐 정신이 나간듯.
- 근데 나 정말 바빠.
- 이제 대답 안 한다.
당연히 지연의 괴롭힘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툭하면 톡을 보내 날 비난했다.
[지연이]
- 아저씨를 규탄한다. 내 처녀를 돌려내라!
- 내 처녀 먹튀하고 이젠 대답도 안 한다.
- 나쁜 넘. 꼬추만 크면 다냐!
- ... 그런 말 안 쓰면 안 되겠니?
설마하니 톡으로까지 그렇게 적나라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연이]
- 흥! 칫! 뿡! 꼬추 아저씨!
- 저기 남이 보면 좀 남사스럽지 않겠니?
[지연이]
- 하나도 남사친 안스럽거든요!
- 응... 그래.
[지연이]
- 나쁜 놈! 규탄한다! 규탄한다!
이 아이의 행동에서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친한 사이에 오가는 격의 없는 투정에 가까웠다.
[지연이]
- 아저씨 나빠!
- 너 심심하지?
[지연이]
- 하나도 안 심심함. 지금 엄청 바쁨
- 뭐 하는데?
[지연이]
- 시험 공부
아! 그러고보니 뭔지 모르지만 시험 준비한다던 것이 생각났다.
- 또 시험 공부 핑계대고 집에 안 가고 노는 거지?
[지연이]
- 나 그런 여자 아님!
- 아저씨랑만 그랬던 거임!
- 나빠! 나빠! 나빠!
그리고 한참 동안 톡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삐진 거 맞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여자와 대화할 때는 함정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자칫 잘못 고른 단어 하나 만으로 아주 끔찍한 재앙이 엄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