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2. 이웃의 도도한 부인은 마트에서 절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AV 마스터가 된 이후 난 관능적인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매일 같이 이런저런 야한 상황을 목격했고, 직접 겪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좋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인지 그날 이후 안 좋은 일도 생겼다.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이날 난 평소보다 십오 분 정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쩌다가 나보다 먼저 출근한 정 팀장이 아침부터 갈구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지각은 아니다. 적어도 5분은 남아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난 그냥 고개를 꾸벅이고 사과를 했다. 아직 지각이 아니라는 소리 따위 꺼냈다가는 피곤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요즘 정 팀장, 어쩐지 날 무척이나 갈구고 있다.
"좀 생각 좀 하고 살아요. 회사가 장난이야?"
그러니까 내가 그 AV 마스터가 된 이후부터, 그렇지 않아도 까칠하던 정 팀장은 전보다 훨씬 더 날 괴롭혔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별거 아닌데도, 잔소리하고, 한번 잔소리를 시작하면 결코 쉽게 끝내지 않았다.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고생 많으셨어요. 선배."
정 팀장이 사라지고 동료 직원인 문희 양이 다가와 위로해주었다.
우리 팀에서 가장 착한 아가씨이다.
"하아... 오늘은 좀 운이 없네..."
그렇다. 운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 불운이 계속 겹쳤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마침 우리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있었다.
운이 좋다 생각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그 여자 닫힘 버튼을 휙 눌러버렸다.
틀림없이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손을 뻗어 문을 닫는 단추를 누르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여자이다. 얼마 전 이사 온 옆집 부인이다.
그렇게 어이없게 내려가 버린 엘리베이터는 그리고 한참 만에 올라왔다.
아마도 그 여자 1층에 내려서 층마다 단추를 잔뜩 눌러놓은 모양이다.
괜한 피해 의식이 아니다. 그녀가 내 앞에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려갈 때이든, 올라갈 때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을 때면, 굳이 문을 닫고 올라가 버렸고, 다시 엘리베이터가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더 길었다.
"하. 이 미친 여자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딱히 그녀에게 내가 잘못한 일도 없건만, 그녀는 날 무슨 벌레라도 보듯 한다.
집 앞에서 마주쳐도, 눈을 흘기거나, 혼잣말처럼 한 소리를 하고야 만다.
그녀가 이사 오고 처음부터 그랬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거의 7, 8분 만에 내려와 지하철을 놓치고, 하필이면 지하철이 느닷없이 연착이 되어버려, 결과적으로 오늘의 참사가 벌어졌다.
"어머나! 정말 나쁜 여자네요."
내 설명을 듣고 문희 양이 다시 한번 위로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 집이 조금 멀죠? 가까운 곳으로 오시면 어때요?"
지방 출신인 문희는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자취하고 있었다.
"음... 그렇지 않아도 고민 중이야."
"혹시 이사할 생각 있으면 말해주세요. 내가 같이 알아봐 줄게요."
"고마워."
그녀는 착한 여자였다. 그렇게 내게 위로를 해주고, 또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는 것이 내게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본성이 착한 때문이란 사실을 난 너무 잘 안다.
그녀에겐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고, 두 사람이 꽤 다정하다는 것은 회사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날의 불운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사는 거야? 왜 발주서 숫자가 틀려?"
음... 명백하게 내 실수였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그런 숫자를 써넣은 적이 없는데...
이날 하루에만 몇 번이나 정 팀장에게 갈굼을 당했다.
그러니까 한 번은 내 실수로, 나머지 서너 번은 그다지 수긍할 수 없는 이유로...
그렇다고 대놓고 항변을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정 팀장이 날 왜 이렇게 미워하게 된 걸까?
퇴근길 집 앞에서 불쾌한 장면을 목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집 앞 복도에 여자들 몇 명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아니. 내가 전에도 말했었죠? 우리 은영이 제대로 보살피라고. 근데 왜 얘가 또 왜 그 지민이라는 애한테 맞고 왔다는 거죠?"
"그게 아니고.. 은영이가 지민이를 괴롭히다가..."
"뭐에요? 이젠 우리 은영이한테 뒤집어씌우겠단 말이에요?"
목소리를 잔뜩 높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옆집 부인이다.
또 무슨 일인가?
슬쩍 들어보니, 그 여자가 난리를 쳐서, 유치원 선생들이 집까지 찾아와 사과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니까 고발 취소 절대 못 해요!"
"말씀드렸듯이 CCTV로 찍은 건 전부 제출해 드렸고요..."
"시끄러워요! 전부 편집해 놓은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어차피 우리 남편이 사람들 시켜 조사 들어가면 다 밝혀질 거예요"
그들 부부가 이사 오던 날, 인사를 할 때 들었다.
시청에서 근무한다 했었지.
그것도 시장 비서로 있다고 했었다. 말하자면 엘리트 공무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호원 시 안에서는 그래도 제법 목소리를 낼 만한 위치인 듯하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응? 거기 무슨 구경거리 났어요?"
그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날 보고 공격을 한다.
난 어깨를 으쓱하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주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날 마구 쏘아본다. 이런 무섭기도 해라.
집에 들어와서도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한동안 참아야 했다.
대충 돌아가는 꼴이, 유치원 선생들이 무릎 꿇고 사과를 해 간신히 여자의 화를 조금이나마 잠재운 듯하다.
쾅! 여자가 거세게 문을 닫고 들어갔고, 유치원 선생들이 훌쩍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는 소리까지 들었다.
쯧!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겼는데 말이지...
난 그녀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나이는 서른을 조금 넘었을 터이고, 남편과 초등학생인 아이가 하나 있는 평범한 가정의 주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
아니. 외모만 봐서는 꽤나 호감이 갈 정도이다.
얼굴은 뭐라 할까? 그래. 고양이상의 미인.
여자치고는 꽤 큰 키에, 결혼 뒤에도 몸매 관리를 늦추지 않았는지, 군살 하나 없이, 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쫙 달라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뭐 가슴이야 벗겨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합격선은 충분히 넘어 보인다.
외모만으로는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남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을 타입이다.
그러니까 성격만 그렇게 더럽지 않다면...
흐음...
결정했어!
"캐스팅 카드."
내 손에 황금색 카드 한 장이 나타났다.
< 김보라 >
카드를 손에 들고 그녀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자 카드가 번쩍거리며 사라져버렸다.
내가 우리 옆집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다.
때때로 우리 집과 그 집 앞 현관 사이에 놓여있던 택배 상자에서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집 앞에서 때때로 그 이름으로 아내를 부르는 것을 듣기도 했다.
딱히 그녀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황금색 캐스팅 카드가 사라지고, 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자아! 이제 과연 어떻게 될까?
지난번에는 은희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그때 사용한 캐스팅 카드는 < 능동적 주인공 >
그리고 이번엔 < 능욕형 주인공 >
아마 다른 방식으로 그녀와의 관계가 이루어질 것 같았다.
아니! 혹시 내가 그냥 그녀를 마구 능욕해야 하는 걸까?
집으로 끌고 와서?
물론 그럴 생각은 없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른 사람의 부인을 마구 능욕한다고?
남은 인생의 절반즈음을 감옥이라도 가고 싶어 환장한 것이 아니고서야...
그 남편 나름 연줄도 많은 것 같더라.
물론 그 설정이란 것을 따르면 위험 부담은 없다.
설정 카드 < 성역 >
- AV 마스터와 성관계를 맺은 배우는 AV 마스터에게 어떠한 종류의 위해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여자를 집으로 끌고 와 마음대로 능욕한다 해서 후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일 터이다.
하지만 그걸 믿고 마구 설쳐댈 수는 없다.
지난번에도 확신이 가지 않아 내 오랜 친구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난 비겁한 놈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AV 마스터라는 것에 완전하게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난 내가 겁쟁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스스로가 겁쟁이에 비겁한 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위험을 감수하는 쪽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뭐... 그 정도 인간밖에 안 되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대체 내게 AV 마스터라는 것을 시킨 자는 어떤 의도에서 날 뽑을 걸까?
내게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했었지...
이런 겁쟁이에 비겁한 놈이?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간다.
비겁자와 겁쟁이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있다.
어떻게 하면 이웃의 부인을 능욕하면서도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하는 내 고민은 그날이 가기 전에 전부 해결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해 동네 마트엘 갔다가 이웃의 부인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회색 면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카트를 끌고 수입 과자를 진열해 놓은 코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내가 먼저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다르다.
낮에 그 부인의 이름을 캐스팅 카드에 적어놓았으니, 그녀를 만난 것이 단순히 우연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난 부인이 눈치채지 않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녀를 관찰했다.
왜 이곳에서 만나게 된 걸까?
응? 그때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돌아보던 부인이 슬쩍 작은 초콜릿 하나를 집어서는 카트에 담는 척하면서 들고 있던 가방에 쓱 넣어버린 것이다.
이런... 우아하고 도도하신 이웃의 부인께는 도벽이 있었나 보다.
결코 비싼 물건은 아니다.
기껏해야 일이천 원.
그걸 살 돈이 없어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렇고...
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으로 놓고, 이웃 부인의 뒤를 쫓았다.
어쩐지 이걸로 끝이 아닐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가,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 물건이나 하나 집어 가방에 넣는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신중하게 행동하면서도 자신을 촬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뭐 내가 요령껏 피해서 촬영을 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쪽이 날 잘 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 촬영하는 동안 특별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잘 숨기고 있기도 했었고, 혹시나 누가 뭐라 한다면, 도둑질을 발견해서 공익 제보하려 했다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위험은 내가 아니라 저 부인이 부담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너 개의 사소한 물품들을 가방에 넣고, 그녀는 카트에 실은 물건들을 계산대에 줄을 섰다.
나도 맥주 한 팩을 집어 그녀가 선 줄과 떨어진 곳에 줄을 섰다.
그리고 내가 고른 물건이 훨씬 적었기 때문에, 난 이웃의 부인보다 먼저 계산을 하고 마트를 나설 수 있었다.
맥주가 든 종이백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와 난 1층 현관 앞에서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난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재생했다.
잠시 뒤 부인이 마트에서 산 물건들이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내 옆으로 왔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발견한 척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니,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확실히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몸에 밴 여자다.
내게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수위들의 인사에도 고개 한 번 까딱하지 않던 여자이다.
항상 고압적이고, 도도한 자세가 몸에 배어있다.
단순히 그녀의 남편이 공무원이기 때문만일까?
원래 그런 사람인 걸까?
아직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뭐 천천히 알아가도록 하자.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문이 열렸다.
내가 슬쩍 몸을 비켜주자 그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더니 버튼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녀의 손가락이 위치한 곳은 우리가 사는 층이 아니라 닫는 버튼이 있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