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0. Pornlog
이 세계에 소환되어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돌아갈래."
딱히 원래의 세상에 남겨두고 온 미련 따위 하나도 없지만, 이세계에 남아있을 수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은 깨끗하게 처리했지만, 그 와중에 원한이 좀 쌓인 모양이다.
만약 소원을 사용해 세상의 지배자가 된다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반란군과 싸우면서 마왕 시즌 2. 를 찍어야 할 판이다.
편안한 노후를 누리겠다고 은퇴한다면, 날 찢어 죽이겠다고 찾아올 온 세상 수많은 영웅들을 상대로 1년 365일을 쉬지 않고 싸워도 모자랄 것 같았다.
싸움은 끝났지만 내 앞으로는 여전히 시산혈해로 이루어진 피의 길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돌아간다니 모두들 좋아했다.
"그래. 여기쯤에서 덮는 게 낫지."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더 좋아한 것 같다.
온 세상이 축제 분위기였다.
하! 어이없다.
그렇게 해서 난 소환되던 시간의 바로 그 시절로 돌아왔다.
그 전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우주적 시간의 축이 무너지니 어쩌니...
빌어먹을... 정작 중요한 건 들어주지도 않네.
그런데 지구에 와서도 내 공적이 커서 소원권이 좀 남는다고 한다. 원하는 걸 물어왔다.
"그럼 남은 인생 AV처럼 살고 싶어."
그렇게 하란다.
오! 쩌는데?
그리고도 공적치가 남았다.
지구와 저쪽 세상이 사실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저쪽에서 내가 한 일이 이쪽에서도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럼 거기서 있었던 일 전부 잊게 해줘."
정말이다. 잊고 싶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승리를 위해 내가 해야 했던 선택들이 사실은 내게도 얼마나 커다란 상처로 남았는지.
난 싸움의 가장 앞에서 적들과 전투를 벌이는 용사 포지션이 아니라, 늘 가장 안전한 자리에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장기 말처럼 부리는 참모 포지션이었다.
날 바라보며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착한 놈들을 명백한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겨우 아이템 몇 개를 얻어내기 위해서나, 혹은 원성만 잔뜩 끌어모으고 있던 지역 영주의 못된 둘째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물론 대국적으로 보아 필요한 일들이었지만, 그런 일들이 차곡차곡 하나씩 마음에 쌓이다보면, 나중엔 정말로 괴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의 원망도 이해가 간다.
늘 다른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주제에, 난 안전하고 편하게 지내왔다.
혼자는 아니다. 마왕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도망 온 각국의 쓰레기 같은 왕공귀족들과 함께 흥청망청 사치를 부리며 지내왔다.
전부 그들이 도망쳐올 때 지니고 온 재화를 얻어내어 싸움에 꼭 필요한 자금으로 쓰려는 것이었지만, 자신의 친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영웅들에게, 결코 그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싸움에선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전력을 밀어 넣어 마침내 승리를 쟁취했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평범한 병사들은 대개 전사자로 남았다.
맨손으로 산을 뽑을 만큼 강대한 힘을 지닌 영웅들도 태반은 죽거나 팔다리 하나씩은 잘렸다.
나와 함께 소환되어 왔던 용사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듣기로는 영웅적인 죽음이었다고 한다.
그 끔찍한 전쟁의 끝까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이는 바로 나 혼자뿐이다.
내 곁에 머물며 함께 흥청망청하던 왕공들은 슬며시 뒤로 빠져 다른 이들과 함께 날 매도했다.
뭐. 사실 이방인이 제일 만만하잖아?
세상은 구했지만, 난 정말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젠 날 구원할 차례이다.
- 한 번 지운 기억은 다신 복원할 수 없습니다.
OK! 그걸 원했어. 다신 보지 말자. 더러운 기억들.
쓸데없는 기억은 전부 잊고, 이제 즐기며 살 거다.
- 변태 같은 능력으로, 변태 같은 전략을 짜서, 변태처럼 이기더니, 끝까지 변태 같은 소원을 바라는군요.
친숙한 음성이 말했다.
"뭐. 내가 그런 인간인데 어쩔 수 있어?"
긴 시간 비난 속에 살아왔다. 그 정도는 비난 축에도 들지 않는다.
- 그럼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강녕하시길.
"그래. 그동안 더러웠고. 이제 다신 만나지 말자."
- 그건 당신 생각이고.
"응?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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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AV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내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존재가 내게 AV 마스터라는 걸 시킨다고 했다.
- 초회 특전으로 스타터 팩을 무료로 드립니다.
AV 마스터가 무언지는 차치하고,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난 작은 종이 상자 안에는 다섯 장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난 상자 안에서 꺼낸 그 다섯 장의 카드를 하나씩 읽어보았다.
설정 카드 < 관능 >
- AV 마스터의 삶은 늘 자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주위에서 관능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 설정 카드는 보유하는 것 만으로 효과가 생깁니다.
설정 카드 < 성역 >
- AV 마스터와 성관계를 맺은 배우는 AV 마스터에게 어떠한 종류의 위해도 가하지 않습니다.
설정 카드 < 민감 >
- AV 마스터에 의해 캐스팅된 배우는 사소한 자극에도 성적으로 흥분합니다.
액티브 카드 < 표현 >
- AV 마스터에 의해 캐스팅된 배우는 자신이 느끼는 쾌감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 액티브 카드는 AV 마스터의 의지로 켜거나 끌 수 있습니다.
캐스팅 카드 < 능동적 주인공 >
- 캐스팅된 배우는 AV 마스터에게 호감을 지니고,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 그녀는 당신과의 관계를 야릇한 상황으로 이끌고, 적극적으로 달려들 것입니다.
- 카드를 사용하시려면 카드들 들고 캐스팅하려는 상대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면 됩니다.
- 캐스팅 카드는 소모성 카드입니다.
그렇게 다섯 장의 카드 중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캐스팅 카드라는 것이었다.
원하는 사람을 지정하면 소위 캐스팅이 되고, 관계를 할 수 있다는 것 같다.
그리고 설정 카드나 액티브 카드라는 것은 그 캐스팅된 사람에 적용되는 내용이겠지?
재미있는 것은 내 손에 들려있는 다섯 장의 카드를 다른 사람은 보지도 읽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사무실에서 그걸 들고 있어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상사 앞에 다섯 장의 카드를 펼쳐보았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어라? 진짜로 못 보는 건가?
이 AV 마스터 카드라는 것 무늬가 무척 현란하다.
수십 명의 여자들이 벌거벗고 각기 야릇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만일 그걸 알아봤다면 당장 성희롱이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카드를 어디에 두건, 내가 원할 때는 내 손에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집에 두고 왔는데, 어째서인지 그 카드를 생각하니 내 손에 들려있다.
어머나! 씨... 화들짝 놀라 손에서 던져버리고 잠시 뒤 카드를 생각하면 다시 손에 들어와 있다.
아무래도 귀신에 씌인 건 아닐까?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일들을 생각해보면 절대 망상이나 귀신 따위는 아니다.
아무래도 난 지금 무슨 범우주적인 농담에 휩쓸린 모양이다.
내가 범상치 않은 일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침 출근길에서부터였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8시가 조금 넘는 시간 지하철에 올랐다.
내가 이용하는 역은 시착역이라 출근 시간에도 앉아갈 수 있어 좋다.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가장 끝자리에 앉아있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가 허겁지겁 올라탄다.
저절로 눈길이 가 올려다보니 눈에 띄게 이쁘다는 생각이 드는 젊은 여자였다.
나풀거리는 흰색 원피스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아하아!"
멀리서부터 뛰어왔는지 조금 거세게 숨을 몰아쉬더니 자리에 앉는다.
펄럭~
그녀가 앉는 순간 그 새하얀 치마 앞단이 들렸다가 내려왔다.
그녀의 은밀한 부분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목격하고야 말았다.
'실화냐?'
잘못 본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그녀의 하얀 치마 아래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대담한 여자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노팬티라니?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당황해하는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가 내게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쩐지 쑥스러워 눈을 피하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야릇한 상황은 계속됐다.
첫 역은 꽤 자리에 여유가 있지만, 한 정거장만 가면 환승역이라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제일 끝에 앉아있는 내 옆에 붙어서서 몸을 자꾸 밀어붙인다.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상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내 어깨에 대고 거의 문지르고 있었다.
사람이 많다고는 해도 그럴 정도는 아니다 싶은데...
마음이 불편해져 어깨를 안쪽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는 그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내 앞으로 밀려와 섰다. 고의적인 걸까?
지하철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엄마야!"
"죄송합니다."
어디선가 놀라는 소리가 울리며 사람들이 밀려 쓰러졌다.
저쪽 어디에선가 누군가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연쇄적으로 밀려난 모양이다.
"앗!"
연쇄의 여파는 내 앞까지 이어졌다.
내 앞에 서 있던 스커트의 여자도 밀려 앞으로 넘어졌는데, 하마터면 나와 얼굴을 부딪칠 뻔 했다.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지만, 난 상체를 숙인 그녀의 옷자락 사이로 출렁이는 가슴을 보고야 말았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며 일어서는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한 여자로는 결코 생각되지 않는다.
멀끔하다. 꽤 이쁜 편이다.
아마 아까는 정말로 사람들에 밀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를 비벼댄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을 위해 걸어갈 때였다.
급하게 걸어가던 여자가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쓰러지는 것을 나도 모르게 잡아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얼굴이 발그레해져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눈웃음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하자 그녀도 눈으로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계단을 오를 때였다. 앞서가는 여자의 스커트가 바람에 휘말려 핑크색 팬티를 보여준다.
뭐 따지고 보면 일상생활에서 있을 만한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출근 시간 한 시간 동안 전부 겪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일은 회사에서도 이어졌다.
"엄마야!"
내 앞에서 일하던 여직원이 바닥에 무언가 떨구고 상체를 숙이며 가슴골을 보여주었다.
서류철을 들고 걸어가던 동료 직원이 서류 한 장을 떨궈 주저앉아 주우려 하고 있을 때, 옆을 지나가다가 그녀의 치마 속을 보고 말았다.
그런 가벼운 행운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어났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상대들이 내게 불쾌함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묘한 일이다.
설마 그 카드에 쓰여있던 문구가 사실인 걸까?
설정 카드 < 관능 >
- AV 마스터의 삶은 늘 자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주위에서 관능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나 어쩐지 정말로 대단한 것을 손에 넣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