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호감도 [8]일 때, 보라와 엘리베이터에서 가능한 일 (1)
호감도 [8]일 때, 보라와 엘리베이터에서 가능한 일 (1)
5월의 햇살이 금가루처럼 쏟아지는 캠퍼스 안을 걷자, 한줄기 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추는 보라의 윤기나는 긴 흑발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 3시 반. 오늘의 강의와 노예-나래-에 대한 조교는 종료. 나는 햇살 쏟아지는 캠퍼스 잔디밭을 성큼성큼 걸어 보라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목음이 드리워진 아름드리 나무 밑동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있는 보라.
"날씨 정말 좋다~ 책 싫어하면서 왠 책?"
나랑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보라에게 빅 스마일을 날리자, 보라가 나뭇잎 책갈피를 꽂고 방긋 웃는다.
"한국의 야생조류~"
"새가 그렇게 좋아?"
"응. 새가 제일 좋지만, 작고 귀여운 동물은 다 좋아."
"토끼는?"
"좋아. 작고 귀여우니까."
[스파이냥]으로 나에 대한 보라의 호감도를 살짝 엿보자, 며칠전 도서관에서 [7]까지 상승했던 호감도가 -2 하강, [5]로 변해 있다. 도서관에서 대딸에 젖치기에 뒤치기까지 했는데 오히려 호감도가 며칠만에 [-2]나 하강하다니! 이상해.... 아! 맞아, 깜빡 잊고 그걸 보라에게 안 줬어!
"옆에 앉는다."
"응."
보라를 처음 만난 곳도 여기다.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를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고 있던 보라. 견우와 직녀를 새-까치-가 이어줬 듯 나와 보라를 이어준 것도 새다. 그때 그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나뭇가지에 앉지 않았다면 보라를 만나지 못 했을테고 아무리 찌질한 나라도 '야생조류 동호회' 같은 세상 허접한(?) 동아리에 가입했을 리가 없다.
"너 새 별로 안 좋아하지?"
"어? 어.. 솔직히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
"그런데 왜 야생조류 동호회에 들어온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숄더백에 넣고 어깨에 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보라.
"새보다 더 귀여운 '보라'라는 여자 애가 있으니까."
"뭐?"
닭살 드립을 날린 뒤 깜빡 잊고 보라에게 주지 않은 선물 수여식을 거행한다.
"보라야. 눈 감아 봐."
"찬우야..."
"어서 눈 감아 봐."
"응..."
나는 보라에게 주려고 륙색에 넣고다니던 작은 보석 상자를 꺼냈다.
"새 좋아하는 너에게 반짝이는 예쁜 돌을 줄게."
"......"
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라의 약지에 살짝 끼워줬다.
'다행이야. 사이즈 딱이야.'
"눈 떠."
눈을 뜬 보라가 자신의 약지 세째 마디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새는 반짝이는 거 좋아하잖아? 새 좋아하는 너한테 딱이야."
"고마워...."
수줍게 뺨을 붉히는 보라의 호감도를 다시 살짝 엿보자, [5]에서 [8]로 +3이나 상승해 있다!
[호감도] 8이면... 나 또 보라한테 따먹히는 거 아냐?!
* * *
학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왼쪽은 보라가 혼자 사는 아파트. 그리고 오른쪽은 내 원룸이다. 갈림길에서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자, 보라가 불쑥 날 자신의 방에 초대했다.
"우리 집에 올래?"
"어? 응..."
초식이의 입안에서 뱅뱅 맴돌던 말을 육식녀 보라가 쿨하게 내뱉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보라의 옆에서 걷자 가끔 손이 스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인다. 손잡고 걸으면서 커플티 내고 싶지만,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면서 보라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에 쥐처럼 한 없이 순해지는 나.
"잡고 싶으면...."
"응?"
"잡고 싶으면... 손 잡아도 되는데...."
"어..? 어... 고, 고마워..."
보라의 손을 잡고 커플티 내면서 걷자, 배고픈 늑대들의 따가운 시선이 내게 꽂힌다.
"아..."
바로 그때, 한 줄기 바람에 에보니의 털처럼 윤기나는 보라의 흑발이 하늘하늘 춤추며 흑진주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고양이처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동자에 천사처럼 상냥한 미소가 번져 있다.
보라를 만나게 해 준 건 작은 새지만, 그녀를 내게 선물한 건 우리 예쁜 길냥이 에보니! 보라는 길냥이 에보니가 내게 선물한 최고로 멋진 선물이다.
* * *
보라가 혼자 사는 아파트 정문을 지나 현관 앞으로 걸어가자,
"덮칠 거지?"
"아, 안 덮쳐!"
"피, 거짓말...."
나에 대한 보라의 호감도는 무려 [8]...! 빼박 따먹힐 각이다.
보라의 도발에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분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보라랑 하는 건 확정! 남은 건 어디서 누가 먼저 덮치느냐뿐!
* * *
엘리베이터 안. 눈앞에 있는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짙다.
"찬우야, 괜찮겠지?"
"응. 곧 조명이 들어올.. 아, 들어왔어."
고장으로 엘리베이터가 중간에서 멈춘지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움직일거야,"
"응...."
내 정면에 서서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싼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짓는 순간,
[미션] 보라를 엘리베이터에서 따먹을 것!
[핸디] [고양이 앞에 쥐다냥!] 등의 복종도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스킬을 사용할 경우, 성공보수 없다냥!
[성공보수]
세 개의 체위중 하나를 골라서 따먹을 것! 체위에 따라 성공보수가 다르다냥!
정상위 : 스포츠 시계 1 개 (중고)
뒷치기 : 레이벤 선글라스 1 개 (중고)
벽치기 : 테그호이어 시계 1 개 (중고)
[특전 스킬] : 닌자냥 1회 사용권.
닌자냥을 사용하면, 반경 5미터내에 있는 전자기기가 먹통이 된다. 즉, CCTV에 안 찍힌다는 말씀!
눈 앞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미션 상태창이 떠오른다.
성공보수가 전부 중고인 걸 보니, 또 부하 길냥이들 풀어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 거 슬쩍 뽀린 모양이다. 그런데 나래의 아날을 개발하는 미션을 클리어 한 성공보수-돈가방-은 어디서 입수한 걸까?
[Yes] or [No]
이번 미션도 강제미션이 아닌 선택미션. 난 당연히 [Yes]를 쿡 눌렀다.
* * *
"저.. 나래야...."
[러브러브결계냥!]과 [닌자냥!]을 동시에 발동시킨 뒤, 내 정면에서 몇발짝 떨어져 있는 보라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자,
"찬우야.. 너 정말...."
"정말 뭐....?"
"그러니까.. 정말 여기서 할 거야?"
".....!!!"
은근한 눈빛만으로 내 흑심을 간파, 돌직구 선빵을 날리는 육식녀 보라.
"여기서 뭐, 뭘 하는데...?"
"할 거잖아."
"........"
"도망칠 수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갑자기 내 입술을 빼앗고 짐승처럼...."
자신이 내게 당하고 싶은 플레이를 자세하게 설명하며 커다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그, 그래! 하, 할 거야! 정전되는 순간, 속으로 영혼의 샤우팅을 외쳤거든!"
"무슨 샤우팅..?"
눈을 치켜뜨고 장난스럽게 쳐다보며 날 도발하는 보라.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 보라랑 하고 싶다...!"
도발에 넘어가 무심코 속마음을 털어놓자,
"알았어. 자, 앞으로 다가와."
"어? 응...."
내 정면에 서 있는 보라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보라가 천천히 벽쪽으로 뒷걸음친다.
"보라야..."
벽에 등을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입술을 뾰족 내미는 보라.
보라에게 한발짝 더 다가서자 심장고동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려퍼진다. 표면상으로는 분명 내가 덮치는 건데, 왠지 거미줄에 걸린 듯한 이 느낌은 뭐지...?
"보라야. 여기 너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이야.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그것보다 어서...."
"CCTV...."
"정전이잖아? 틀림 없이 CCTV도 먹통일 거야."
"......."
야! 권찬우! 미친 놈아 뭐하는 거야? 뎦쳐 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여친에게 무슨 개소리야?! 보라 쪽팔리게 하지 말고 빨랑 덮쳐!
나는 길게 숨 한 내쉬고 보라의 두뺨을 두손으로 감싼 뒤 천천히 입술을 보라의 입술에 근접시켰다. 입술이 닿으려는 순간,
"풋! 걸렸어!"
"뭐...?!"
예상 못한 반응에 얼굴을 떼자, 보라가 고개를 치켜들고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권찬우, 너 딱 걸렸어!"
"그, 그러니까... 뭐가....?"
"엘리베이터에서 너랑 이런 거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더 이상은 아무리 나라도 할 용기 없어."
좋은데서 딱 잘라놓고 장난스럽게 히죽 웃으며 날 놀려 먹는다.
"후훗, 귀여워. 내가 그렇게 좋니?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할 정도로...?"
"보라 너.. 그럼 전부 연기였어...? 넌 두근두근 안 했어?"
"바보, 당연히.. 두근두근거렸어. 끔찍히 좋아하는 남친 얼굴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 있니? 엄청 두근거렸어."
"그런데 왜 중단시킨 거야?"
"바보. 아무리 설레여도 어떻게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를 해? CCTV에 전부 찍힐텐데. 꿈이라면 몰라도."
미션... 실패하는 거 아냐... 호감도가 높아도 엘리베이터에서 하는 건 역시 무리야. 그렇다고 복종도를 올리면 성공보수가 날아가고...
"아 진짜..."
무심코 투덜거리자,
"지금 뭐라고 옹알거렸지?"
"아니 그냥...."
"아~ 실망~ 멈추라고 정말 멈추냐...? 남자면 남자답게 그냥 덮쳐서.... 아..."
"보라 너...."
"왜? 바보야...!"
손바닥 위에 손오공을 올려놓고 가지고 노는 관음보살-맞나?-처럼 날 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락펴락 하면서 가지고 노는 순결한 악마, 이보라.
"하긴 그런 점이 토끼 같은 찬우의 귀여운 점이긴 해."
"........"
못참아!
"어머, 우리 찬우, 뿔났어요?"
"아니, 뭐....딱히...."
절대 못참아! 이번에야 말로 멋지게 덮쳐 주겠어!
나는 다시 보라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응? 차, 찬우야.... 왜 그래? 도끼눈을 뜨고....무섭게...."
"보라 너...!"
"어머~ 무서워. 응큼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1도 무서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나한테 무슨 짓을 당하길 은근히 즐기고 있는 장난스러운 눈빛...
"하지마. 멈춰."
벽에 등을 기대고 영혼 1도 없이 마치 연기를 하듯 대사를 읊는 보라.
"짐승. 나한테 무슨 짓 하려고...."
"이런 짓!"
"으응, 응응...!?"
나는 보라의 작은 턱을 치켜올리고, 거칠게 보라의 입술을 빼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