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복종도]를 올려 소꼽친구 여사친을 노예로 조교하다 : 박나래 (1)
[복종도]를 올려 소꼽친구 여사친을 노예로 조교하다 : 박나래 (1)
강의 중... 이미 저세상 클라스인 서양 꼰대들이 서기 몇년에 뭘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뭐하다 죽었는지 그리고 왜 위대한지를 기억하라고 내게 강요질을 해대고 있다.
교양세계사... 진짜 밑도 끝도 없이 한없이 따분하다. 아~ 숨막혀 죽을 것 같아. 죽은 사람들이 뭘 했는지 그딴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 개고생을....
강의실 맨 끝 중간 자리에 앉아 있던 난, 숨 좀 쉬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란하늘에 느릿느릿 떠다니고 있는 흰구름을 쳐다보고 있자,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시간... 힐링의 시간... 터져나오는 하품은 점심 먹은 후유증일까? 문뜩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쳐다 보자 아직 단 한마디도 말을 섞은 적이 없는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암컷. 앞으로 운이 좋으면 여사친. 운 별로면 졸업할 때까지 아마 생판 남. 혹시 재수 옴 붙으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 옆에는 남자가 한 마리 앉아 있다. 눈이 마주치면 패시브 스킬로 투쟁본능이 발동되는 수컷답게 날 간보며 경계하고 있다. 나는 잽싸게 눈을 돌려 앞자리에 앉은 여자 신입생의 뒷통수로 시선을 옮겼다.
같은 일문과인 보라도 나랑 같이 교양 셰계사 강의를 듣고 있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여기선 뒷통수만 보여서 무슨 표정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난 강의실 맨끝 중앙. 보라는 강의실 중앙 맨 앞자리에 앉아 정면 칠판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에보니와 짝짓기 어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예쁘고 똑똑하고, 순결하면서 화끈한 보라의 첫남자가 나라는 게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자리 건너 뛴 자리에서 보라의 뒷동수를 흘깃거리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저 녀석의 귓가에 "야,씹새야 보라 내 여자니까 그만 쳐다 봐. 내가 보라랑 도서관에서 대딸한 뒤 젖치기 그리고 뒷치기까지 한 거 모르지?" 라고 속삭이면... 절대 안 믿겠지? 안 믿어도 좋아. 사실이니까.
"으우,끄으으응~"
결국 참고 참았던 하품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어제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차례차례 펼쳐졌다.
* * *
"냐오옹옹~ 냥~ 냥~"
소파에서 꿀잠자고 있던 도도냥 에보니가 사뿐사뿐 내가 누워 있는 침대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폴짝 침대 위로 올라온 검정 고양이 에보니가 "축하해~" [도서관에서 보라를 따먹을 것!] 미션을 완수하고 집에 돌아와 이제나저제나 에보니가 지껄이기를 고대하고 있던 그 말을 토해낸다.
"쌩큐~"
"미션 성공했으니까, 당장 성공보수 은반지 금반지 다이아몬드 반지 그리고 현금 500만원 내놓으시지?~ 라잇롸우!" 라고 외치고 싶지만, 마법 고양이 기분 상하게 하면 좋을 거 1도 없을 것 같아 경쾌하게 쌩큐~ 답례를 하자,
"첫미션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그동안 봉인해 놨던 [복종도]의 록을 해제했어. 그러니까 지금부턴 [호감도]가 아닌 [복종도]를 제어할 수 있는 스킬도 사용가능해."
"[복종도]? 그게 뭔데?"
"스마트폰 꺼내 확인해 봐. 짝짓기앱에 업데이트 표시가 뜰거야."
"어..."
펼쳐진 책 모양의 짝짓기앱 아이콘을 클릭하자, New! Update! 표시가 되어 있다. 건성으로 봐서 몰랐는데, 구글 크롬처럼 탭으로 화면이 분류되어 있다. [스킬] 탭을 클릭하자, 나에 대한 상대의 호감도를 올리는 [부비부비냥]과 상대의 프로필이나 스테이터스를 직관적인 투명상태창으로 보여 주는 [스파이냥]이 차례차례 표시되어 있고 그 아래에 New! 표시와 함께 새로운 스킬이 업데이트되어 있다.
New! [고양이 앞에 쥐다냥!]
[개요] : 눈에 힘을 주고 상대를 쳐다보면 상대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쩔쩔 매면서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게 복종, 내 마음대로 정신을 조종할 수 있다. 성공확률은 랜덤. 통상 확률은 1/3. 최면을 거는 자에 대한 호감도나 신뢰도 등에 비례해서 확률도 상승한다. 그외에도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변수와 요인이 있으므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시험해 보고 스킬의 정확도를 높이는 거다냥!~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한 특별 개꿀팁이다냥!~]
* 대화질 스킨쉽질 현질 선물질 아부질로 가드를 허물고 친밀도를 높이면 최면에 걸릴 확률이 상승한다냥~
* 대상이 최면에 저항하면 더 강하게 정신적인 압박을 가할 것. 정신적 피로가 쌓여 가드가 약해지면 최면에 걸린 확률이 상승한다. 단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정신적 피로를 줄 경우, 상대의 정신이 망가져 버릴 수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다냥~
* 같은 대상에게 반복적으로 최면을 걸어 조종하면, 더 쉽게 최면에 걸린다냥~
* 단순한 남자보다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더 난이도가 높다냥~
**여자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노예처럼 부릴 수 있을 때까지 힘내는거다냥!~ meow~**
나는 스마트폰을 끈 뒤, 궁금한 두 가지를 에보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공보수 안 줘?"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놨어."
오케이. 일단 성공보스는 획득했고...
"어디서 난거야?"
"길냥이 부하들 시켜서 길바닥이나 계단에 앉아 자고 있는 사람들 있으면 돈이나 돈될 만한 거 뽀려오라고 시켰어~"
에보니 이거 혹시 길냥이의 왕초 아냐? 장물인지 아닌지 좀 얘매한데... 아니 뭐 상관 없어. 뻑치기한 것도 아니고 술처먹고 길바닥에 쓰러져 자면, 길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지갑이나 귀금속은 누가 가져 갔어도 가져갔을 거야.
"호감도가 오르면 내게 복종하고 [8]이상이면 거의 노예처럼 다룰 수 있잖아? [복종도]랑 [호감도]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 해 줘.
앞발을 혀로 핥더니, 에보니가 꽤 자세하게 복종도에 대해 설명해 준다.
"비슷해 보여도 많이 달라. [호감도]가 오르면 네가 좋아서-호감이 높아서- 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네 말을 듣는 거야. [호감도]가 만렙이 되면 네가 너무너무 좋아서 노예처럼 복종하면서도 행복한 거야. 하지만 [복종도]는 좋고 싫고가 없어 [복종도]를 높이면 너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되는 거야."
"알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좋아하는 여자는 [호감도]를 높여서 연인기분 만끽하면서 데이트도 하고 같이 여행도 하면서 꽁냥꽁냥 즐기면 되고, 너한테 건방지게 굴거나 마음에 안 드는 여자는 [복종도]를 높여서 혼내 주거나 노예로 만들어 조교하면 돼."
"노예...? 조교....?"
* * *
톡톡~ 손님?
'어...? '
톡톡~ 톡톡~ 손님 일어나세요?
'어? 뭐? 뭐야?'
"손님, 자려면 숙박비 내셔야 해요~"
나는 벌떡 일어나 입가에 흐르는 침을 후루룩 마시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제 일을 회상하다, 지루함을 못 참고 잠이 들었어...'
"점심 먹은 뒤라 졸음이 쏟아지는 건 이해하겠는데, 코까지 고는 건 좀 너무하지 않니?"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매섭게 눈을 흘리는 교양 세계사 강사(♀)
"죄, 죄송합니다.."
"자장가, 곧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 줄래?"
"죄송합니다. 교수님,"
시간 강사란 걸 알지만, 일부러 '교수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경비 아저씨에게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좋아하 듯, 교수가 되는 게 꿈인 시간 강사에게 '교수님'이란 호칭을 붙이면 열에 열 다 좋아한다. 이세상에 아부 싫어하는 사람 없음!
"알았으면 됐어. 서로 예의 좀 지키고 살면 좋겠어."
"네, 교수님..."
"곧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
봤지? 자기가 교수 아니란 소리 절대 안 하잖아? 기분 좋아서, 그냥 한소리하고 다시 교단으로 걸어가는 여강사.
강의 종료 10분 전. 맨 뒤에 앉아 있으면, 강의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죽은 사람들이 한 일 듣는 것 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걸 지켜보는 게 훨씬 즐겁다. 조는 남자, 소곤소곤 잡담하는 여자, 폰 만지작거리며 게임이나 톡하는 녀석이 있고 우리 예쁜 보라처럼 앞자리에서 진지하게 강의 들으며 부지런히 필기하는 성실남녀도 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맨끝 구석 자리에서 흘깃흘깃 곁눈질하며 나를 관찰하고 있는 수상쩍은 여사친도.....
큰 맘 먹고 맨끝 구석자리의 여사친 나래와 눈을 마주치자,
"......"
내 시선을 피할 생각따윈 1도 안하고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 괜히 개겼어..
끔살 당해, 꼬리 말고 슬그머니 고개이 옆으로 돌리는 나. 감히 나래에게 개기다니, 무모한 도전이었어. ㅜ.
박나래. 같은 동네에 부모님끼리 절친. 같은 유치원, 같은 중고등학교. 설상가상으로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원. 엎친데덮친 격으로 같은 대학에 같은 과에 같은 동아리. 일본 애니에나 나올법한 소꼽친구중의 소꿉친구.
어렸을 때부터, 나를 귀여워(?)해 준 나래. 내가 하는 짓이 토끼 같아서 너무 귀엽다는 나래. 고딩 때, 사춘기의 짝짓기욕으로 나래가 여자로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여사친 그만 두고 내 여친이 되어 달라고 없는 용기를 쥐어짜내 그녀에게 고백을 감행했다. 결과는 순살.... ㅜ.
나래가 그때 한 말,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토끼처럼 널 키우고 싶긴 해. 하지만 사귀는 건 무리."
나래에게 난 토끼처럼 귀여운 초식남 남사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뒤로 나 역시 나래를 여사친 이상의 존재로 여겨 본 적이 없다. 보라를 제외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 그게 소꼽친구 중의 소꼽친구이자 같은과 같은 동아리의 여사친 박나래다.
내가 나래를 [고양이앞에쥐다냥~] 스킬의 첫번째 테스트 타켓으로 삼은 이유는...
사나이 순정을 끔살하고 순살한 것에 대한 복수! 복수할 거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