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고양이의 저주? 축복?
-고양이의 저주? 축복?-
하고 싶다.. 섹스하고 싶다... 떡치고 싶다...
요즘 내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아니 그 생각으로 넘칠 듯 찰랑찰랑거리고 있다. 사람들 있는데서 나도 모르게 섹스하고 싶다고 혼잣말로 지껄일 것 같아 두려울 정도다.
진짜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길 가다가 강의 듣다가 카페테리아에서 밥 먹다가 갑자기 미친 놈처럼 벌떡 일어나 "나 떡칠래!" 라고 외쳐 버릴 것 같다. 온몸의 피가 자지에 쏠려 진짜 죽을 것 같다.
손으로 폭딸을 쳐도 성욕이 전혀 가라앉지 않는다. 무슨 발정난 개처럼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짝짓기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틀 전, 배고픈 길냥이에게 소시지를 주고 집으로 데려온 뒤부터, 아니 순간이동한 뒤부터 갑자기 떡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모솔의 성욕이 쌓이고 쌓여 임계치를 넘어 폭발해 버린 걸까? 떡치고 싶어 진짜 뒤져 버릴 것만 같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짝짓기에 대한 타는 목마름, 아니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을 채워야 한다. 거짓말 아니라 비아그라도 안 먹었는데, 시도 때도 안 가리고 자지가 바지를 뚫고 튀어나올 듯 빨딱빨딱 대가리를 치켜든다.
* * *
어제 강의실에 앉아 있었지만, 필기는 커녕,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아무 것도 안 들리고 그냥 강의실에 있는 여자들 전부 다 따먹고 싶어 뒤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 가면 사고 칠 것 같아, 땡땡이치고 홍대역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먹을 거 없을 때 물로 배를 채워도 조금만 지나면 오히려 배가 더 고프 듯 보지가 아니라 손으로 성욕을 채워도 오히려 더 짝짓기 고프다는 걸 깨달은 뒤론 성욕이 샘솟아도 자지에 손이 가지 않는다.
몸을 피곤하게 해서 짝짓기에 대한 배고픔을 희석시키려고 해도 머릿속엔 "여자랑 하고싶어!" 그 한 마디로 가득차, 다른 생각이 꼽사리 낄 여지가 눈꼽만큼도 없다.
발밑에 나뒹구는 오피걸 전화번호가 적힌 찌라시. 발정난 여자들로 가득찬 클럽의 간판. 룸싸롱처럼 보이는 야릇한 가게의 간판. 그걸 볼 때마다, 당장 오피걸에게 전화 걸거나 클럽이랑 룸살롱에 뛰어들어가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주머니엔 만원짜리 지폐 몇장뿐.
짝짓기 고파 해질 녘까지 홍대 앞을 어슬렁어슬렁 발정난 수캐처럼 헤맸지만, 결국 아무 짓도 못 하고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 * *
"후우~"
한숨을 쉬며 원룸 문을 열자, 새까만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수상쩍어도 너무 수상쩍은 시커먼 고양이.
야!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집에 온 뒤로는 말 한마디, 아니 '냐옹~' 한 마디 안 하고 식사만 하시고 잠만 주무신다.
어젯밤에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양변기에 올라가 응가하다가 나한테 딱 걸렸다. 고양이가 깔끔 떠는 건 알았지만, 보통은 모래 깔아주면 거기서 해결하지 변기 위에 올라가 사람처럼 볼일은 안 보잖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은 어떻게 연 거야? 아, 맞아. 첫날에도 두발로 일어서서 화장실 문 열었지...
수상해. 정말 수상해..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마치 볼일 보는 걸 들켜,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째리는데...
"미, 미안, 사람 있.. 아니 고양이 있는 줄 몰랐어.."
조용히 화장실 문을 닫고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자, 다시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검정 고양이가 새침하게 네발로 기어나왔다. 들어갈 때는 두발로, 나올 때는 네발로... 이게... 야! 그러니까, 문 어떻게 연 거냐고?!
고양이 귀신한테 홀린 기분이었다.
* * *
뒷통수에 깍지 끼고 침대에 누워 [하고 싶다] [섹스하고 싶다] [떡치고 싶다] [보지에 박고 싶다]를 속으로 계속 외치고 있는데,
낯선 여자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게 하고 싶니?"
"응. 미칠 것 같아."
"방 안에 [하고 싶다] [섹스하고 싶다] [떡치고 싶다] [보지에 박고 싶다]란 말이 둥둥 떠 다닌단 말야. 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어. [보지 빨고 싶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머릿속에 가득찬 [하고 싶다]가 결국 빠져나와 방 안에 말풍선처럼 둥둥 떠...
"........"
어? 어어?? 어어어??? 잠깐! 나 지금 누구랑 얘기중?
"짝짓기하고 싶은 거지?"
"블랙... 너 진짜 말하는 구나."
"블랙?"
"어? 아, 너 검은 고양이잖아. 그래서 내가 네 이름 블랙으로 지었어."
"피~ 하나도 안 예뻐~"
고개를 숙이자, 발치에 앉아 있던 블랙이 삐친 계집 아이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혀로 앞발을 핥으며 그루밍을 하고 있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눈 뒤 마음에 드냐고 물어 보고 이름 짓는 집사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겠지만,
"미안. 너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내 멋대로 이름 지어서 미안 해."
고양이 성애자답게 블랙이란 안 예쁜 이름을 지은 죄를 사과하고 만다. 하지만 개무시하는 도도냥 블랙. 목소리나 말투 몸짓으로 봐선, 암컷이다. 그것도 왠지 아가씨 타입의 도도한 레이디 캣(Lady cat)이란 느낌이 든다. 말 그대로 아가씨가 '집사'를 대하 듯 고압적으로 굴고 있다.
상체를 일으켜, 침대에 엉덩이 깔고 앉아,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이름 붙어서 정말 미안.."
정식으로 사과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고 고양이 특유의 깔보는 눈빛을 던지는 도도냥 블랙.
* * *
"난 약속 지켰어~"
"뭐? 무슨 약속?"
정면에서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도발적으로 묻는 레이디 캣.
오드 아이(odd eye)...? 지금껏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눈 색깔이 짝짝이다. 눈동자는 검정이지만, 홍채 색깔이 서로 다르다. 왼쪽 눈은 올리브색인데, 오른쪽 눈은 바다처럼 파란 블루톤. 보통 오드 아이는 흰고양이한테만 나타나는 건데...
아몰라~ 말하고 마법까지 쓰는 검정 고양이의 눈이 오드 아이란 거 지적질해서 뭐함?
"짝짓기 하고 싶어 죽겠지?"
"어? 어...."
"시도때도 없이 자지가 빨딱빨딱 서지? 그리고 지금도 꼴렸고."
"어? 어..."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 여자면 자빠뜨려서 따먹고 싶지?"
"그, 그래. 짝짓기 하고 싶어 죽겠어. 자지가 죽을 생각을 안 해. 미칠 것 같아."
"됐어. 내 생각대로야."
"뭐? 뭐가 생각대로야?"
"이틀 동안 일부러 널 발정모드로 만들었어."
"뭐? 왜?"
"[짝짓기 어플]을 네 스마트폰에 깔아 주려고 성욕을 증폭시킬 거야."
"야, 무슨 소리야? 좀 알아 듣게 말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머릿속으로 생각해 봐."
내 말을 쿨하게 한고양이귀로 흘러듣는 블랙.
"생각하면? 그럼 도와 줄거야?"
"응. 도와 줄게."
지껄이고 마법까지 쓰는 능력냥이니까, 아마 진짜 도와줄지도 몰라.
"지금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거?"
"응.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왠지 진짜로 내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아 수치심에 뺨이 화끈거렸다.
* * *
후우우~
도도냥이 입김을 불자,
"어? 풍선?"
내 머리에서 만화의 말풍선 같은 게 빠져나와 머리 위에서 둥둥 떠다닌다.
"ㅇㅇㅇ를 하고 싶다. 이 말풍선 안에 네가 하고 싶은 목적어가 들어 있어."
"터트려도 돼?"
어느새 이 모든 기기괴괴한 현상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나.
"어서 터뜨려. 그대로 방치하면 계속 부풀어 올라서 애드벌룬처럼 커져."
어? 그러고 보니, 점점 커지고 있잖아?
깜짝 놀라 손톱으로 꼬집어서 말풍선을 터뜨리자,
"빠구리!!!"
"헉!"
기분 나쁠 정도로 내 마음 속을 훤히 꿰고 있는 수상쩍은 도도냥.
"약속대로 성욕을 마음껏 충족시켜 줄 게. 스마트 폰에 [짝짓기 어플]을 깔아 줄테니까, 빠구리하고 싶어서 자지가 빨딱빨딱서면 [짝짓기 어플]을 이용해서 마음에 드는 암컷 보지에 씨를 뿌려."
아무리 고양이지만 암컷 주제에 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지껄이는 불랙.
그리고 다음 순간,
"헉!"
몇번 헉헉거리더니 입에서 헤어볼(hair ball)을 토해낸다.
"야, 블랙. 너 괜찮아?"
"갸르릉~ 그, 그거, 하아.. 너 줄 게. 하아..."
"아씨, 필요 없거든!"
지가 게운 토사물, 아니 헤어볼을 나보고 가지라고 선심 쓰 듯 말하는 살짝 맛이 간 도도냥.
그딴 선물 필요 없거든! 오바이트한 털뭉치로 뭘 어쩌라구?! 기대한 내가 바보지.....
삐쳐서 입 꾹 다물고 있자 내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눈-오드 아이-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최대한 무표정하게 속으로 루루루루루♪~♪~ 신나는 댄스곡을 흥얼거리며 마음을 스캔 당하는 걸 회피해 보려고 발악해 보지만... 딱 봐도 이미 내 마음을 훤히 꿰고 있는 눈빛이다. 젠장!
야! 멋대로 사람 마음 훔쳐 보지 마!
* * *
"검정 고양이 털뭉치로 뭘 어쩌라고? 뜨개질이라도 할까? 필요 없거든!"
"바보. 기껏 고통스럽게 헤어볼을 토해 줬더니..."
"그, 그러니까, 필요 없다구!"
"빠구리하고 싶다고 발정난 수컷 고양이처럼 냥냥~ 절규하길래 모든 암컷을 마음대로 후릴 수 있는-조종할 수 있는- [짝짓기 어플]의 록을 해제할 수 있는 열쇠인 헤어볼을 선물해 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기껏 하는 말이 필요 없다니?!"
도도냥이 한 없이 개구라에 가까운 수상한 말을 지껄여 댄다. 이게... 그런 개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피, 개소리 아니 거든!"
"야! 마음 훔쳐 보지 말랬지?! 그리고 이 털뭉치가 세상에 있지도 않는 [짝짓기 어플]의 록을 해제하는 열쇠라고? 개소리 작작 하시지?"
"고양이는 개소리 안 해!"
"뭐?"
하긴 고양이는 개소리 안 하지. 개소리는 개가.. 아씨~ 내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듣보잡 고양이에게 바보 취급 당하며 희롱을 당하다니... 짜증나!~
"그렇게 의심이 많으니까, 동물이면서 징그럽게 털도 없지."
"뭐?"
"고양이는 털 없는 동물이랑 달라서 거짓말 안 해. 내가 너에게 준 선물은 [짝짓기 어플]의 록을 해제하는 진짜 키란 말야"
"아~ 뒷골이야. 피곤하니까 개소리 그만 해. 혼자 있고 싶으니까, 그만 지껄여."
"한번 토해낸 헤어볼은 다시 입 안에 넣을 수 없어. 그러니까, 그 헤어볼은 네 거야. 갖기 싫으면 네가 버려."
눈길도 안 주던, 블랙이 침대 위에 게워낸 헤어볼로 다시 눈길을 돌리자,
어? 엄청 작아졌잖아?
골프공 크기의 헤어볼이 유리구슬 크기로 변해 있다.
"네 스마트폰에 [짝짓기 어플] 깔아 놨어. 확인해 봐. 사용할 수 있는 스킬 목록이랑 사용법이 표시되어 잇을 거야. 그때도 필요 없으면 버리던지."
"거짓말 아니지?"
"고양이는 거짓말 안 해! 같이 살자는 소원, 괜히 들어 줬어. 그리고 헤어볼도 괜히 줬어. 소시지 하나 얻어 먹고.. 내가 너무 손해다 뭐!"
도도냥이 휙 침대에서 뛰어내려 문 앞으로 걸어가 꼬리를 흔들자, 드르륵~ 문이 저절로(!) 열렸다.
'대박! 블랙 너 이젠 두발로 일어서지도 않고 문을 열어 버리는 거야?'
"피곤해~ 그때 비만 안 왔으면, 소원 하나 들어주고 끝났을텐데 앞으로 계속 너랑 살 생각을 하니 머리 아파."
무심코 본심을 중얼거리고 나가 버리는 도도냥.
블랙 너 도대체 정체가... 아, '블랙'이란 이름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새로 예쁜 이름 지어 줘야지... 그런데 '블랙'이 그렇게 별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