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굶주린 아이와의 만남
-굶주린 아이와의 만남-
그 애는 굶주려 있었다. 더러운 얼굴만큼이나 더럽게 배가 고파 보였고, 더럽게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배고파?"
무심코 굶주리고 있는지 물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뭐, 처음부터 대답할 거란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 했지만... 하여간 더러운 꼬마는 확실히 더럽게 굶주려 있었다. 먹이는 물론 사랑에도 굶주린 듯 보였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산 소시지를 주자, 게눈 감추 듯 허겁지겁 먹더니,
"아~ 배 불러~ 고마워. 잘 먹었어. 세상 하직할 준비하고 있었는데 니 덕에 죽다살아났어."
날 쳐도보지도 않고 혀로 앞발을 핥으며 영혼 1도 없이 건성으로 대답하는 검정 고양이.
와, 대박! 배가 부르면 길냥이도 말을 하는구나.... 되게 신기하네....
"더 먹을래? 소시지 하나 더 사올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 해. 사다 줄 게."
"아니, 됐어. 고마워. 그런데 목 마르다. 뭐 마실 거 없어?"
"아, 맞다. 당연히 목 마를텐데, 그 생각을 못했네. 생수, 아니 우유 사다 줄까?"
"우유 사다 줘~"
"응. 잠깐만 후딱 뛰어가서 사다 줄....."
어? 어어?? 어어어???
아놔, 잠깐!? 잠깐만!? 잠깐! 잠깐!
배가 부르면 길냥이도 말을...
........
......
.....
아니! 아니야! 아니 거든! 배 불러도 길냥이는 말 못해!
* * *
"내 소원?"
"응. 말해 봐. 내 배를 채워 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너의 욕망 중 하나를 배가 터지도록 충족시켜 줄 게."
"정말? 와 대박!! 고양아, 탱큐~ 소원이라.. 그러니까 내 소원이 뭐냐면....."
대박! 길냥이도 배가 부르면 말을 하.....
........
......
.....
아니! 아니거든! 고양이는 배 불러도 말 못하 거든!
* * *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을 말해. 딱 봐도 비 올 각이야. 고양이 물 싫어하는 거 알지? 비 완전 싫거든. 비맞은 생쥐, 아니 고양이보다 더 비참한 건 없어. 빨리 말해~"
"잠깐, 욕망? 무슨 욕망? 소원 아니고?"
"응. 동물의 욕망. 예를 들면, 먹고자고 싸고 짝짓기해서 새끼 낳고 싶은 욕망."
자, 잠깐!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니? 길냥이는 말 못.... 아놔~ 근데 말 하잖아?! 말만 잘 하잖아?!
사람말을 지껄이는 고양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머리에 쥐가 나면서 사고회로가 엿타레처럼 비비 꼬인다.
"욕망 없어? 난 비 싫다고 분명히 말했어. 내 털에 빗방울, 한방울이라도 떨어지는 순간, 은혜 갚는 고양이 모드 종료야."
뭐냐 진짜.. 아몰랑!~
* * *
길냥이가 충족시켜 주겠다고 말한 동물적 욕망은 식욕, 수면욕, 성욕이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자지 않으면 수면부족으로 미쳐 죽거나 점점 쇠약해지다가 결국 죽는다. 인간이 짝짓기-교미-에 흥미를 잃는 순간, 영장류의 일종인 털없는 원숭이-인간-는 이 지구상에서 절멸. 즉 영영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 때 되면 먹고, 때 되면 싸고 때 되면 자고, 때 되면 짝짓기애 목숨 건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싸고 자고 떡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짝짓기에 열중한다.
인간이 공룡 등 수많은 종이 멸종한 빙하기를 거쳐 대기근이나 페스트, 스페인 독감 같은 전염병과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도 멸절하지 않고 진화를 계속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문화와 문명을 꽃 피운 건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강하게 3대 욕망-식욕, 수면욕, 성욕-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8억 2100만명.
지금 이 시간에도 8억명이 넘는 인간이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해 비참하게 굶어죽고 있다.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로 넘쳐나는 풍요한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이 지구상의 인간 중 1/9은 홍수, 가뭄, 태풍, 전쟁과 지역분쟁 등으로 쌀 한톨, 밀 한톨 못 구해 굶주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기아에 허덕이는 8억명 속에 속해 있지 않아 '배고픔'으로 괴로워해 본 적이 없다.
'배고픔'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배고픔'의 고통이 어떤 건지 솔직히 짐작 1도 안 간다. 오늘도 뭘 먹어야 맛있게 점심 한끼 떼웠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 행복한 고민을 진진하게 했을 정도다.
* * *
"먹구름 낮게 깔린 거 안 보이니?"
"먹구름?"
"말했잖아? 물 질색이라고. 비 오면 털 젖거든. 털 젖는 거 극혐이야. 빨리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을 하나 골라."
3대 욕망 중에서 하나만 무한정 충족시킬 수 있다면...
식욕...? 아니, 식욕은 이미 배 터지게 충족시키고 있다. 배 고플 때 손만 뻗으면 맛난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까. 매일 꼬박 꼬박 세끼 챙겨 먹고,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폰 몇번 눌러, '배부른 민족'으로 간식 야식으로 피자나 짜장 통닭 떡볶기까지 실컷 먹고 있어서 굳이 '배고픔'을 충족 시킬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 1/3이 절대빈곤인, 세계에서 제일 배고픈 나라인 아프리카의 '수단'이 아니라 제일 배부른 나라 중의 하나인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
수면욕은... 꼬박 꼬박 7시간 이상 꿀잠 자고, 학교 오고갈 때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짬짬이 폭침, 점심 먹고 졸리면 학교 강의실이나 캠퍼스 잔디에 누워서 한숨 자고, 주말에 방구석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다가 졸리면 낮잠도 맛나게 자고, 지난 주엔 토요일에 점심으로 쟁반 짜장 2인분 폭식하고 큰대자로 뻗었는데, 일어나 보니 일요일 저녁이었다.
잠 따위 자고 싶으면 얼마든지 잘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이런 나라에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싶어진다. 좋아. 배 고프지도 않고 잠이 부족하지도 않아.
마지막으로 성욕... 흠.. 이건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몹시 어려운 문제다. 왜냐면 난 아직 한번도 '그걸' 해 본 적이 없다.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걸 범죄시, 아니 범죄로 여기는 유교 탈레반이 지배하는 나라. OECD국가 중 유일하게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 포르노 사이트를 국가에서 검열하고 통제하는 씹선비국. 풍족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대한민국이지만, 성욕을 해소시킬 수 있는 컨텐츠는 절망적일 만큼 빈곤하다.
공창(公娼)이 있는 네덜란드에선 창녀가 직업으로 인식 돼, 세금까지 내며 합법적으로 성을 사고 판다는데.. 한국에선 몰래 성을 사고 팔고, 재수 없게 딱 걸리면, 피 같은 돈을 지불했어도 남자만 페미와 기레기의 뭇매를 맞고 사회에서 생매장된다.
위험을 무릎 쓰고 오피걸을 부르거나 야시시한 업소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다. 경기 좆망이라 알바 자리도 없고 있어도 대학졸업할 때까지 가능한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먹고 살려면 싫어도 좆 빠지게 일해야 겠지만, 적어도 대학 다닐 때는 좀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 씨발 청춘을 돈 몇푼에 팔아먹는 게 말이 돼?
돈 주고 여자랑 할 경제력도 없고 그냥 해 줄 착한 여친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모솔을 졸업하냐고!
태어난 걸 후회할 만큼 절망적으로 못생긴 건 아닌데, 여사친 중 여친으로 발전한 케이스가 한 건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밤이면 밤마다 일본 야동과 손으로.... 서글퍼서 안구에 습기 찰 각이라 자세한 얘기는 이하생략..
생각해 보니, 유일하게 굶주림에 허덕이는 게 '성욕' 한번도 기분 좋게 충족된 적이 없다. 가끔은 강제로 자빠뜨려서 하고 싶을 만큼 절대적 허기를 느끼는 성욕.
* * *
"야옹아, 내 욕망이 뭐냐면..."
"비와서 털 젖으면 소원이고 뭐고 안 들어 주고 그냥 갈거야. 그러니까 빨리 말해."
"털 젖는 게 그렇게 싫어?"
"너처럼 털 없는 동물은 털 있는 고양이의 섬세한 기분 절대 모를 걸?"
"아, 빗방울 떨어진다."
"셋 셀 동안 소원 말해."
"뭐? 어, 그러니까..."
"셋."
"잠깐!"
"둘."
"어.. 어... 그러니까 내 소원은..."
"하나!"
소원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뇌를 거지치 않고 엉뚱한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네가 비에 젖을 염려가 없는 내 집에서 나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알았어. 네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게. 이걸로 너에게 진 빚은 갚은 거야."
* * *
굶주린 짝짓기에 대한 욕망-성욕-을 충족시켜 달라고 말하려고 했다. 잘 먹고 잘 자는 내가 유일하게 굶주린, 아니 한번도 배불리 충족 시켜 본 적이 없는 유일한 욕망인 성욕. 지껄이는 고양이니까 성욕을 충족시켜 달라고 말하면 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비만 안 왔어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 취향이 행운을 가져 왔다가 도로 빼앗아 갔다.
"저.. 냥이님, 한번만 무르면 안 될까요?"
"안 돼. 이미 발동했어."
딱 잘라 말하는 얄미운 검정 고양이. 어느새 지껄이는 고양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나.
"어, 고양아. 비 쏟아져. 털 젖으면 어떡해?"
"눈 감아."
"어? 어, 알았어."
"내가 눈 뜨라고 할 때까지, 눈 뜨지 마."
"응.."
* * *
"눈 떠."
5초? 10초? 잠시 동안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우리 고양이 털 젖으면 어떡하지? 옷 안에 쏙 넣고 존나게 집까지 뛰어가면....
"눈 뜨라고 했지?!"
"아, 미안.."
살며시 눈꺼풀을 위로 치켜올리자,
어? 집? 내 방? 어? 어어...?? 어어어....???!!!
"같이 살자고 했지? 알았어. 앞으로 여기서 너랑 살 거야."
"응.."
뭐지? 순간이동? 고양이 주제에 지껄이고, 그것도 모자라 마법까지...? 그건 그렇고 졸지에 냥줍해서, 고양이 집사가 돼 버렸어. 고양이님 부양할려면 역시 알바를....
"화장실 좀 써도 돼지?"
"응."
화장실 앞으로 걸어가, 두발로 서서 몇번 폴짝폴짝 뛰더니,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걸어, 아니 기어들어가는 검정 고양이.
얘 도대체 정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