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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로레밸업-161화 (161/174)

00161 그곳에 토끼가 있었다 =========================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작은 하품이 새어나왔다. 후아암. 하품을 하는 순간 머리에 쓴 귀여운 토끼 귀가 흔들리면서 아래로 축 늘어졌다.

시야에 들어온  귀여운 토끼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심심해.'

노골적으로 하품을 하면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들, 드물게 무표정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걷거나, 벤치에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이 광장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인인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등 뒤에서 물을 뿜어내고 있는 분수를 잠시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그에 반응하듯이 토끼귀가 흔들렸고, 나는 후드의 귀를 매만지면서 눈을 반쯤감은체 게슴츠레 떴다.

절반 정도 좁아진 시야,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그래, 이 정도가 좋아."

사람들을 너무 진지하게 쳐다보면 눈이 아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늘 눈을 반쯤 뜬 채로, 이렇게 졸려 보이는 모습으로 다니곤 했다.

실제로도 잠이 많은 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런 대낮에 자신이 깨어있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자신이 활동을 하는 것은 밤 9시 이후부터였다. 9시부터 보통은 12시. 때로는 새벽까지.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 자신이 활동할 시간은 아니었다. 단지, 오늘은 뭔가에 이끌리듯이 나왔을 뿐이다. 토끼 귀를 만지작거리며 거리를 걷던 나는 천천히 눈이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 또 이 기분이다.

기면증(嗜眠症). 거의 하루 종일을 잠자는데 써도 갑작스레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잠에 빠져들면 기억을 잃는다. 필름이 끊기는게 아닌, 말 그대로 기억을 잃는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단지  기억에 남는 것은 주머니에 있는 돈 뿐.

그래도 그런 삶도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자신만을 믿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들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저녁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쉬운대로 완전히 잠에 들기 전에 간단하게 점심이라도 먹을까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거리를 걷던 순간, 갑자기 다리가 휘청였다.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아, 아직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흔들리는 의식을 놓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부딪쳤다. 어차피 잠에 들면 몽유병(夢遊病) 상태의 또 다른 자신이 알아서 처리해주기야 하겠지만, 조금 귀찮게 됐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의식을 놓으려는 순간. 갑작스레 정신이 맑아지면서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의식을 되찾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몸이 흔들리며 뒤로 넘어졌고, 엉덩이에 딱딱한 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야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 갑작스런 격통에 고통을 호소했고,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뜨니 훤칠한 남자가 눈 앞에 있었다. 꽤나 잘 생겼...아니, 그 전에 사과부터 해야하나.

"죄송합니다아...멍하니 걷다가 그만."

솔직하게 사과하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내가 일어날 수 있도록 잡아주었다. 아무래도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뭘까, 이 미묘한 기분은.

이 남자를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비록 하루마다 기억을 잊기는 하지만 몇십번씩 만난 사람이라면 그 기억이 누적되어 약간이라도 기억에 남지만, 이 남자는 그 기억속에 없었다.

그리고, 저 남자 역시 나를 처음 보는 것으로 보이니 어디서 만났을리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 남자를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끌렸다.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건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 혹은 왠지 모를 이끌림 정도가 맞으리라.

남자가 천천히 걸어서 가버리는 것을 뒤에서 쳐다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탓이겠지. 그리도 실로 오랜만에 크게 떴던 눈을 다시 반쯤 내린 채, 다시 비틀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밤의 거리, 그것도 유흥가가 한국에도 존재한다. 물론 네덜란드나 다른 외국처럼 개방적이지는 않아도 한국의 은밀한 유흥가에는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밤상대를 찾는 사람과, 그 상대를 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 각자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밤의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들을 찾는게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한 모텔 앞에, 토끼 귀를 한...이 아니라, 토끼 귀가 달린 독특한 후드를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매끈한 허벅지가 드러나는 핫팬츠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의 후드와 게슴츠레한 눈동자가 색기를 줄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눈이 살짝 돌아가더니 모텔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남자 역시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기에 그녀는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고,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아직 상대 없으면. 어때요?"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그녀를 한 번 훑어본 남자는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몸은 마음에 드는데... 너 미성년잔 아니지? 걸리면 귀찮다고."

그녀의 옷을 본 남자가 아무래도 그녀가 가출청소년, 혹은 이런 일로 용돈벌이를 하는 양아치는 아닌지 가늠하는 듯했다. 그 말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증 보여줘요?"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어. 어차피 하루 땡치고 말거니까. 가격은?"

"한 번 대주는데 15. 대신 내일 아침까지 마음대로 하는건 30."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짓자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품에서 황색 지폐 6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좋아, 거래 성립이군."

그렇게 말한 남자가 모텔비를 지불하고 그녀를 데리고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은 조잡해보이는 침대와 퀴퀴한 냄새.

'하기야, 싸구려 모텔에 뭘 기대하겠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침대 위에 천천히 드러누웠다. 그리고 남자에게 물었다.

"누가 먼저 씻을래?"

"내가 먼저 씻도록 하지. 여자가 먼저 씻고 나오는 걸 보고나면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는 남자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웃을 집어던지고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샤워기의 물 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곧바로 남자가 집어던진 옷의 바지에서 방금 전 황색 지폐를 꺼낸 검은 지갑을 꺼내더니 중얼거렸다.

"하나, 둘, 셋...뭐야, 몇 장없네."

황색의 신사임당이 열장 정도, 나머지는 배추잎이었다.

"대충 60인가... 좀 두둑해보여서 기대했는데 말이야."

가끔 저런 놈들이 있다. 자기 지갑이 두둑한 척, 뭐라도 되는척 가오를 부리면서 여자한테 치근덕거린다. 전형적인 졸부의 행동이었다.

아쉬운대로 지폐만 꺼낸 다음 지갑을 다시 바지에 넣어놓은 그녀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그곳을 벗어났다. 모텔을 나올 즈음 남자의 고함이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원래부터 매춘은 불법적인 짓이었다. 자신이 도망간다고 해서 그가 신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수십번도 더해본 일이었으니까. 가끔씩 자신을 경계하면서 속지 않는 남자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는 망설임 없이 포기를 하고 남자가 씻는 동안 도망쳤다.

자신이 하는 짓도 합법적인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오늘 얻은 수익을 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지하의 방, 그곳에 아직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 세 명이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은게 무척이나 추워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오늘처럼 나름대로 중박을 치는 날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소박도 건지지 못하는게 대부분이었다. 전기세,월세와 네 명의 식비를 부담하기에는 아슬아슬한 액수였다.

밤상대를 찾는 남자들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장소에서 계속 하면 약발이 떨어진다. 당한 남자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중박을 쳤으니 적어도 보름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토끼 귀의 후드를 입은 그녀는 웅크린 여자애들 사이로 끼어 들어가 이불을 덮고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꿈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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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번 편은 다음 히로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페셜 퀘스트까지는 두 편 정도 남았네요. 하핫... 기대해주세요. 스페셜 퀘스트는 그야말로 떡 떡 떡 교체 떡 떡 떡 교체 떡 떡... 대충 이런 느낌이랄까...읍읍.

2.H씬 적을 때만큼은 마음이 너무 편안합니다. 하아, 다양한 플레이를 시켜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으로 주인공이 너무 사랑스럽네요. 굴러라 주인공!!

3.쿠폰 주신 독자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글 잘 안써질 때 힘내서 치킨을 먹고, 과제를 하고, 울다가 글을 쓰고, 욕하면서 과제를 하고,그러다 과제하고, 야동보고(?) 소설에 쓸 수 있는게 있는지 기록하고(??),치킨 먹으면서 글쓰고,롤하다가 과제 남은걸 기억해서 욕하고, 하는게 일상입니다. (의식의 흐름)

4.아, 그리고 남자분들 혹시 고백을 한다면 아쿠아리움이나 정원을 강추합니다. 조용하면서도 분위기 있는데가 제 친구들 말로는 좋아고 하더라고요. 저야 잘 모르겠습니다만.

5.아, 역시 집 안이 좋아. 아주 좋아. 늘 새로워. 정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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