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8 병약 소녀 공략을 시작합니다. =========================
그렇게 백령을 데리고 적당한 2인석에 자리를 잡아 백령을 의자 위에 앉혀준 뒤 나는 식권을 뽑으러 카운터에 향했다. 백령에게 어떤 돈까스가 먹고 싶냐고 했더니 치즈 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식사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다행히도 줄을 설 필요 없이 곧바로 식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왕돈까스 정식 하나랑 치즈돈까스 정식 하나주세요."
"알겠습니다. 현금 영수증 필요하신가요?"
나는 고개를 내저었고 카운터의 점원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영수증과 함께 식권을 건네줬다. 그런데 영수증을 주는 시간이 조금 늦다 싶었는데 백령에게 돌아오는길에 영수증을 뒤집어보니 '010 xxxx-xxxx 연락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외모랑 매력이 상당히 올라서 그런지 이렇게 내게 먼저 다가오는 여자들도 꽤나 많은 편이었다.
'유감이지만.'
나는 영수증을 구긴 뒤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지금은 다른 여자들한테 한눈을 판 상황 따위는 아니어서 말이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백령에게 다가갔다.
백령은 다소곳이 자리에 앉은 채 연신 주변을 힐끔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백령의 머리칼은 눈에 띄는 색이고, 다소 독특하다고 생각되서 그런지 식당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이쪽을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백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빛을 받아 찰랑이는 은빛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내게 있어서는 신기하긴 하지만 그 뿐,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당장 거리만 나가봐도 보라색이나 초록색 머리를 한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백령의 새하얀 머리칼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독특하지만 그것이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욕을 먹을만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백령은 아닌 모양이었다.
"으으...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어요."
"네가 예뻐서 그러는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백령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자 그녀는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히면서 투덜거렸다.
"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백령이 무척이나 귀여웠기에 나는 조금 더 장난을 치기로 했다. 반쯤은 진심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진심이야. 몇 년 못 본 사이에 엄청 예뻐졌는걸. 분명 그때는 키도..."
그렇게 말하며 내가 탁자와 그녀를 번갈아보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도 투덜거렸다.
"그, 그정도까진 아니었거든요?"
"뭐, 그야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며 킥킥 웃자 백령은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삐진' 표정이랄까.
"...그래봤자 어린애 취급하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팩 돌리는 백령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설마하니 이렇게나 대놓고 '나 토라졌어요!'라는 태도를 취할줄은 몰랐기에 더욱 색다른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백령의 뺨을 꼬집고 주물주물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백령이 정말로 화낼 것 같았기에 나는 꾹 참고 모처럼 진지한 목소리를 꾸몄다.
"아니, 널 동생으로 보고 있는건 맞지만 이제 어엿한 한 명의 여자로 보고 있다고."
"...예쁘다고 해놓고도 아까도 손도 안 댔잖아요. 아니, 애초에 그... 여, 여자가 먼저 용기를 내서 고백했는데 그렇게..."
이때가 기회라 생각했는지 나를 몰아붙이던 백령은 뒤로갈수록 방금 전 자신이 했던 행동이 떠올랐는지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런 백령의 순수함에 감탄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백령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내 손을 쳐냈다.
"그건 오해야. 애초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렇게 들이대면 어느 남자가 좋다고 달려들겠냐. 하다못해 고백이나..."
"좋아해요, 오빠. 아니, 좋아해왔어요. 2년하고도 한참 전부터 쭈욱."
영특해서 그런지 응용이 빠르구나.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에 그 행동은 무척이나 부끄러워 했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건 즉답이었다. 아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는 한데...... 정말로 이 말을 하지 못한게 한이 됐던 모양이다.
그녀는 반쯤은 절박한 표정으로, 그리고 진심을 담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고, 나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였나? 분명 전에 만났을 때는 나를 좋아하는 티 같은건 전혀 안냈었는데...
"태훈 오빠는 둔탱이니까요."
"...인정."
그건 다른 여자들도 한결같이 해대던 말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백령과 사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특히 그녀는 아직도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도 엄청 이기적인 거잖아."
내 말에 백령이 의뭉스런 표정을 지었고, 나는 부연 설명을 추가했다.
"지금 네가 나한테 안기고 싶다거나, 섹...아무튼 그런 짓을 하고 싶다는건 나한테 기억되고 싶어서, 네 과거의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인거잖아."
내 말에 백령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거였군.
"근데 생각해봐. 넌 별로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이, 단순히 나랑 그런 짓을 해서 나한테 너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은거면, 너랑 한 뒤에 네가 사라져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널 추억하면서 가슴 아파해야하는거야?"
내 말에 백령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사람 하나 살리는셈치고 하겠다고 한 건 나였지만 백령은 영특한 아이니 내가 한 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인정할게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오빠한테 상처가 될 수도 있을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백령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뒤 백령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저도 진지하게 노력할게요. 살아서 오빠랑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도록이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백령...어?
"그러면 문제 없는거죠?"
"어...어, 그렇긴한데. 그렇게 쉽게 마음이 변해도 되는거야?"
뭔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 같긴한데 왜 이렇게 불안한걸까.
"삶의 목표가 생겼으니까요. 오빠를 2년도 넘게 기다렸다고요. 그, 중학생 때는 오빠를 상상하면서 그... 그런 짓도 했고."
백령이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백령이 말한 '그런 짓'이 뭔지 무척이나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 돈까스가게의 전광판에 내 식권의 번호가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돈까스 집에 가서 식권을 건네주고 음식을 받아왔다. 돈까스는 가격에 비해 실로 혜자스러운 양이었다. 어지간한 일반 돈까스집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다가 옆에 얹어진 밥은 일반 공깃밥에 버금갈 정도로 양이 많았다.
"...여긴 원래 이런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에 식판을 올려놨고, 백령은 눈을 반짝이면서 돈까스를 쳐다봤다.
"잘라줄게."
그렇게 말한 내가 옆에 놓여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백령의 치즈돈까스를 천천히 자르기 시작했다. 조각을 떼어내자 쫀득거릴 것 같은 치즈가 늘어졌고, 백령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내가 돈까스에 꽂은 포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내가 포크를 백령에게 건네주려는 순간, 어째서인지 백령은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걸 보니 아무래도 꽤나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부끄러우면서도 굳이 이러긴.'
그녀의 마음을 대충 짐작한 나는 그녀의 앙증맞은 입에 돈까스 조각을 천천히 넣어주었다. 끈적거리는 치즈와 함께 입 안을 가득 채운 돈까스를 그녀는 천천히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경탄과 함께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그녀의 눈이 무척이나 반짝거리는걸 보니 그녀가 평소에 어떤 음식들을 먹어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하긴 병원식은 더럽게 맛이없지. 나는 옛날에 병원에서 먹었던 식단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건 밥이 아니야. 폐기물에 근접한 무언가지.
백령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허겁지겁 돈까스를 먹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먹기 편하도록 돈까스 조각들을 나눠주었다. 먹여주는건 처음 한 번 뿐이었고, 그녀도 개의치 않고 돈까스를 먹었다.
나도 돈까스를 먹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이게 맛있다. 양만 많은 줄 알았는데 달달한 소스랑 부드러운 육질, 거기다 바삭한 튀김까지. 내가 먹어본 그 어떤 돈까스보다도 맛있었다.
"...우와."
백령이 저렇게 허겁지겁 먹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기에 나도 입을 다물고 음식을 먹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백령과 나는 10분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먹는 것에 집중했고, 다 먹을 때즈음에야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와아, 잘 먹었다."
나는 배가 터질 것 같은 포만감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배를 두들겼고, 백령 역시도 얼굴에 어느 정도 화색이 돈 표정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저도요. 평소엔 맛없는 식사만 했었는데...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그 말에 나는 손을 뻗어 백령의 뺨을 잡아당기려 했지만 백령이 고개를 살짝 돌려 내 손길을 피했다. 호오, 이것봐라.
"...흥, 이제 그렇게 당하지만은 않는다구요."
그렇게말하며 새침하게 말하는 백령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아무런 의욕도 없이 있는 것보다는 저런 모습이 훨씬 나았다. 그렇게 백령의 연한 미소를 보던 도중 나는 보상으로 습득했던 영단이 떠올랐다.
백령이 지금 혈색이 좋아보이긴 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하지만 영단이라도 먹는다면 몸 상태가 비약적으로 좋아질 것이 틀림없었다. 병의 완치는 불가능하더라도 몸 상태의 호전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으리라.
나는 주머니에 넣어놨던 영단을 조심스레 꺼내들었고, 백령은 신기한 표정으로 그걸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그건 뭐에요? 사탕?"
"응. 하나 먹을래?"
"색깔이 신기한데... 오렌지맛이에요?"
황금색의 사탕(영단)이 생소했는지 백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게서 영단을 받더니 코로 킁킁 냄새를 한 번 맡더니 조심스레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태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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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의 영단이 '한백령'의 병을 일부분 치유합니다.
기력의 영단이 '한백령'의 기력을 회복시킵니다.
기력의 영단이 '한백령'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기력의 영단이 '한백령'의 정신력을 회복시킵니다.
현재 치유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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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창과 함께 황금빛이 백령의 몸에서 뿜어져나왔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는지 그저 식사를 계속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게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백령에게 물었다.
"어때?"
"맛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요. 팔이랑 다리에 힘도 조금 돌아온 것 같고. 기분탓인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령을 보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작 사탕 하나가 그럴 리가 없잖아. 무슨 약도 아니고."
"오, 오빠! 진짜라니까요. 팔에 힘이..."
그렇게 말하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힐끔거리는 백령이었지만 내가 너스레를 떨며 잡아떼자 결국은 내 손에 이끌려 식당을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들어올 때는 내게 업혀서 왔지만 나갈 때는 제 발로 나갈 수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백령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간간히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병원 안을 걸었다.
"옥상에 산책이라도 하러 갈래?"
내 말에 백령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사람 많은데는 싫어요. 이상하게 쳐다본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는 백령은 마치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백령을 뒤에서 껴안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 만약 너보고 이상하다고 하거나 시비거는 사람 있으면 내가 박살내줄 테니까."
장난처럼 말했지만 나와 꽤 오랫동안 지냈던 백령이라 그런지 내 말이 진심이라는걸 눈치챈 것 같았다.
"...오빠, 몇 년 사이에 엄청 변했네요. 그 때는 완전 약골이라 꼬맹이 몇 명한테도 졌으면서."
".......그 때 일은 잊어주라."
그 때의 나는공부하느라고 운동할 틈도 없었다고. 불가항력이란 말이다.
"뭐, 좋아요. 오빠가 그렇게 가고 싶다면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민 백령의 손을 부드럽게 쥐면서 나는 피식웃었다. 더 이상 백령의 눈에서는 절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묘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백령을 보면서 나는 루시와 빈이의 말대로 병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후원, 원고료 쿠폰은 연재 속도나 연참 확률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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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끔 제가 일상생활 가능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뇌내 망상은 소설에서만 표출되니 걱정 마세요. 문제는 이 소설 쓰는데 하루에 두시간 넘게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약간 그렇긴한데... 그래도 또 막상 소설 안 들고오면 또 뭐라하실거잖아요.
2.지난화에 제가 골뱅이 되는거 아니냐고 하신 분 계셨는데 걱정마세요. 저는 원래 술을 못해서 절대 안 마시는 주의이지만 만약 불가피하게 마시게 되면 일단 속에 있는걸 다 읍읍...(비위상 여기까지.) 그래서 데려갈 남자도 없을거에요.
3.소설과 현실은 엄연히 구분하는 어엿한 성인입니다. 포x리랑 입싸각(?)은 예외로 두고요.
4.밖에 빗소리가 되게 듣기 좋네요. 글쓰기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5.추천이랑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쿠폰을 많이 주셨길래 비축분 탈탈 털어서 이번편까지 연재했네요. 요즘은 한 편 쓰는데 두세시간씩 걸리는데......시험 전에 비축분 한두편이라도 마련해놔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추천이나 쿠폰, 재밌는 코멘트가 많으면 오늘 중에 한 편 더 들고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