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H로레밸업-135화 (135/174)

00135 아이돌 공략을 시작합니다. =========================

아쿠아리움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린애들한테 안내를 해주고 있는 안내원 누님부터, 커플끼리 사이좋게 금부어를 쳐다보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는 이들과, 흐뭇한 눈으로 물고기들을 관람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번화가의 시끄러운 곳들과 달리, 무척이나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푸른 색의 물이 가득했고, 그 물 안에는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실로 장관인 풍경 앞에서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오랜만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모자녀를 슬쩍 쳐다보니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수족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어린애같이 설레하는 그녀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꿈이 있다고 했다.

'과연, 그 꿈은 뭘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모자녀를 툭툭 치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내 손을 잡고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색의 물고기들이 찬란하게 빛을 받으며 반사하고 있었는데, 나와 그녀는 그 광경을 감상하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니 주변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내가 기억하던 그 '터널'이 있었다.

원통형으로 이루어진 터널은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정말로 바다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는 곳이었다. 많은 곳이 변했지만 이곳만큼은 변하지 않았는지 그대로였다.

붉은색과 푸른색, 검은색의 물고기들이 조화를 이루며 원통형의 터널 주변을 헤엄쳤고, 이따금 커다란 물고기가 그들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그 터널의 중앙까지 온 순간 모자녀가 입을 열었다.

"태훈 씨, 당신은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에요. 며칠 동안 당신의 배려에, 그리고 호의에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아니, 뭐..."

그녀의 진지한 어조에 나도 모르게 몸이 오그라 들었다. 그런데 이거 보통 거절하기 전에 하는멘트 아닌가. '선배는 좋은 사람이지만 사귀기엔 좀...' 같은 거잖아.

살짝 긴장되었기에 나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얼버무렸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솔직히 저는 태훈 씨가 당연히 제 이름이나 정보에 대해 궁금해할거라 생각했어요. 아니, 지난번 그 스토커 일 직후에는 오히려 왜 안 물어본 건지 궁금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야 네가 말하기 싫어하니까..."

"그런걸 보고 배려심 깊다고 하는거에요."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말로 그녀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침묵했고, 모자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하면 좋을까요... 아, 그래. 일단은 통성명부터 하는게 낫겠죠?"

이전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반전하듯이 그녀는 발랄하게 말을 이었다. 남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드러내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해 보이는 태도였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의 모자에 천천히 손을 올리더니 모자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비로소야 그녀의 본 얼굴이 드러났다. 오똑한 콧날과 갸름한 얼굴, 부드러워 보이는 핑크빛 입술과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누가봐도 미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외모.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온전히 본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내가 2년 전, 고등학생 때 우리반애들이 열광하고, 나도 꽤나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

"아이돌그룹 First의 윤하에요."

당시 독특한 뮤비로 엄청난 인기를 몰고, 음반 차트1위를 10주 넘게 차지했던 아이돌 그룹. First의 리더격인 '윤하'.

TV 너머로만 볼 수 있었던 소녀가 지금 내 눈 앞에 있었다.

2년 전의 아이돌 그룹이었지만 그 인기가 어디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인기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그룹인만큼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텐데.

'...왜 여깄는거지?'

연예인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이돌 그룹의 리더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보통은 숙소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경호원 하나 없이 그런 텅 빈 주택에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그녀의 말을 기다렸고, 그녀는 내 의문을 해소해주듯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음 앨범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게 맞아요. 그런데, 요즘 제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거든요. 그냥 이유없이 우울하고, 무력하고, 허무한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의사한테 진료를 받아봐도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약간의 우울증이라 조금 쉬면 나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휴가를 받아서 쉬러 오게 된 거에요. 그렇게 덧붙인 윤하는 작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불과 얼마 전의 빈이가 지었던 미소와 무척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저 미소는 망가지기 직전의 사람의 미소다.

"의사도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 저는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나한테는 꿈이 있었으니까.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사람,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이때까지 노력해왔죠. 한 때는 정상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때도 있었어요."

First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었다. 음원 차트도 10주 넘게 차지했으니 그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명하면 유명해질수록 질 나쁜 것들이 달라붙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난번 앨범의 반응을 보니 무척이나 기분 나쁜 악플이랑 욕설 댓글이 많이 있더라고요. 물론, 응원이랑 선의의 댓글이 훨씬 많았지만 그런 악플들을 보면서 계속 괴로웠어요."

연예인들의 대부분이 앓는 증상중 하나다. 다름 사람들이 자신을 헐뜯고, 비방해서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게 되는 그런 증상. 윤하의 경우에는 그녀가 어릴때부터 간직했던 꿈과 맞물려 그 증사이 가속화됐으리라.

"그래서 제가 어릴때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곳으로 온 거에요. 바로 이 곳에서, 아쿠아리움의 터널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나를 바라보고, 모두에게 온전한 나 자신을 보이고 싶다고,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사랑받기는커녕 미움만 받는 것 같아요. 특히 스토커가 있다는 걸 알았을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그녀는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자신의 저런 감정을 토해낼 사람이 없었던 걸까. 그녀는 늘 사람 앞에 서서 웃는 역할을 맡는 존재였다. 하지만 저런 감정을 품은 채 웃음을 지어왔던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녀를 공략하는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태훈 씨는 제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데 무척이나 친절하게 대하고, 정체를 캐묻지도 않으셨죠."

아니, 그건 퀘스트 때문인데.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태훈 씨, 저를 좋아하세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윤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건 좀 기분 좋은 말이네요. 죄송하지만 태훈 씨. 전 당신의 여자친구가 되어드릴 수는 없어요."

뭐,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상대가 아이돌 그룹의 리더라면 어쩔 수 없지. 특히, 그녀의 삶을 위해서라도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으니까.

"...하지만, 저도 태훈 씨가 좋아요. 며칠 간의 태훈 씨를 보고 저는 태훈씨를 신뢰하게 됐어요. 지금 당장만 해도 제 대화를 듣고 진지하게 생각해주시고 있는게 그 증거에요."

...어라? 그 말은.......

내가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녀는 천천히 내게 걸어오더니 까치발을 들고, 내 얼굴에 자신의 입을 들이밀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다음 순간, 입술에서 부드러운 감촉이 잠깐이지만 느껴졌다. 황홀할 정도로 달콤한 향기가 정신을 강타했고, 부드러운 미성이 내 귀를 간질였다. 다음 순간, 간절하다고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 들었다.

"이건 이때까지의 호의에 대한 보답이에요. 그리고 이번이 진짜 질문. 태훈씨는, 제가 변한다 하더라도, 누구보다 저를 사랑해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마음도, 정신도 피폐해진 상태였다. 과연 이런 상태의 그녀를 지금 내가 탐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을 놓기 직전까지 가서야 시선이 마주친 윤하의 눈에서 뜻을 읽을 수 있었다.

계속되는 상처와, 비난에 지친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식으로 사귈 수는 없지만 필요할 때 기댈 수 있고, 변치 않는 사랑을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말이다.

나를 응시하는 윤하를 보면서, 나는 말했다.

"...응, 물론이지."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윤하의 입술과 내 입술에 맞닿았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맞닿아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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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해보니까 딱 이번편까지가 스토리 파트고 다음화부터 H씬파트라 오늘은 연참했습니다. 사실 이틀에 한 편씩 쓰는걸 목표로 하고, 반응이 좋으면 한편씩 더올리는걸로 정해놨었는데, 오랜만에 추천이 잔뜩 있더라고요. 감사합니다!!

2.초반부가 급후회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민 파트. 하아아.... 고치긴 고쳐야하는데, 엄두가 안 나네요. 그때 제가 대체 무슨 약을 했던 건지 참. 그것만 아니었어도 더 많은 분들이 보셨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약간 남습니다.

3.일단 초반부도 스토리를 한 번 재구성 해봐야겠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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