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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로레밸업-134화 (134/174)

00134 아이돌 공략을 시작합니다. =========================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나는 루시에게 도시락을 부탁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루시에게 꾸준히 도시락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녀와 내 접점은 사실상 1시간 뿐이었으니,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도시락을 먹으며 뭐라도 말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루시는 투덜거리면서도 착실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물을 비롯한 칼로리 낮은 음식들로 식단을 짜면서도 식감을 살릴 수 있는 음식들로 도시락을 구성했고, 둘째날에 도시락을 먹은 그녀는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우와... 혹시 절 배려해서 이렇게 반찬을 준비하신건가요?"

그녀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냥 저도 운동하는 중이니까 너무 튀김이나 고기를 먹는 건 안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분명히 기뻐하는거다. 나는 가슴속에 느껴지는 성취감에 양손을 움켜쥐고 속으로 전율했다.

드디어, 드디어 웃은 것이다. 비웃음이나, 웃긴 상황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지어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걸렸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다.

밑으로 살짝 쳐진 모자가 그녀의 얼굴을 어느 정도 가렸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녀는 무척이나 미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몸 자체가 잘록하면서도 키는 또래 여자들보다 큰 편이고, 나름대로 나올 곳은 나와있는 모델같은 몸매였다.

게다가 얼굴형만 봐도 그녀가 미녀라는 것은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런 '높은 랭크'의 여성을 능력도 제한된 상태에서 공략하려니 아주 피똥쌀것 같은 상황이라는 말이다.

대화는 아직도 어색하고(그녀와 내가 통하는 화제가 별로 없다) 조금만 들이대려고 해도 그녀가 한 발 빼버리니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아아......

내가 속으로 절규하면서 그녀의 정체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 공략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혹시, 오늘 시간되세요?"

그녀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본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혼자 가긴 조금 그렇더라고요."

이때까지 내가 꼬시기 위해 했던 말들은 거의 다 거절했는데, 그녀가 먼저 내게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할 정도라면 어떤 곳일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다.

혹시 소금창고 같은 곳은 아니겠지? 순간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장기매매의 장면이었지만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럼, 11시에 저희 집 앞으로 와주시겠어요?"

나는 물론 수락했고 오늘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는 대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데이트니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역시 정장이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정장에 손을 뻗은 순간 루시가 내 손을 맵게 쳐버린 뒤 무난한 셔츠와 바지를 골라주었다.

최근 유행하는 복장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옷에 문외한이라 잘 몰랐다. 확실한 건 방금 전 정장을 고르려고 했던 나를 루시가 쓰레기 보듯이 쳐다봤다는 것 정도일까.

'흠, 그래도 어딜갈지 모르니 진지해 보이는 정장이 좋아보였는데.'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정장을 쳐다봤지만 나를 노려보는 루시의 눈이 무척이나 매서웠기에 결국 루시가 골라준 옷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11시까지는 시간이 꽤나 남아 있었기에 소파에 누워서 루시의 무릎베게를 받은 채 tv를 보고 있던 내게 루시가 물었다.

"그래서, 어떤 여자에요? 주인님."

이때까진 둘러대고, 숨기려 했지만 이쯤되면 숨기는 것도 불가능하겠다 싶어서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마 연예인."

"우와... 잘못하면 큰일나겠네요. 괜찮겠어요?"

루시의 말에 나도 격렬히 공감했다. 사실 한 발만 삐끗해도 이 퀘스트는 개박살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상한 일도 있었고."

나는 스토커가 그녀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던 일을 말하자 루시의 얼굴이 경멸로 변했다.

"우와... 진짜 별의 별 인간이 다있네요."

"자기 딴에는 순수한 애정인지도 모르지. 빠순이든, 빠돌이든 그것 자체가 나쁜게 아니라 선을 넘는게 나쁜거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루시가 조금 몸을  숙이자 루시의 폭유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스웨터 너머로도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지금 당장 주무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고, 그런 내게 루시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른 여자랑 데이트 하러가는데 키스하는거냐."

"일종의 영역 표시라고 생각해주세요. 후훗.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님이랑 제일 오랜시간을 함께하는건 저니까요."

사실상 정실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루시의 표정에서는 어딘가 모를 자신감까지 엿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그렇게 싫어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나한테 달라붙는 여자들을 상대로 질투도 아니고, 여유까지 가지게 될 줄이야.

뭐, 이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는 살짝 뻗대는 표정의 루시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고, 루시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품에 안겼다.

"그럼, 갖다와서 얘기해주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아는 사람일지도."

루시는 최근 집에만 있다보니 tv를 많이 봤는데,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이나 가수들은 나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응, 그럼 갔다올게."

"잘 다녀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집을 나서는 나는, 이런 대화까지 나누는 걸 보면 진짜 부부같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도 그녀의 집을 엿보거나 하는 녀석은 없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의 그 녀석 하나 뿐인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모자녀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고, 잠시 후 모자녀가 걸어나왔다.

"기다리셨어요?"

"아뇨, 저도 방금왔어요."

내 말에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어딜 가는 것일까? 그녀가 저렇게 좋아할만한 장소가 어디일지 나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분명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일 것 같긴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을 따라 걷기 시작한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걸었다. 마음 같아선 손도 잡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까지 나진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옆에 서서 한참을 걷다보니 번화가에서 점점 벗어났고, 점점 평평한 부지가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엑스 아쿠아리움'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예전에 빈이랑도 몇 번 와본적 있는 곳이었다.

내가 모자녀에게 아쿠아리움에 가는 거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 맞아요. 가본 적 있으세요?"

"뭐. 어릴 때 동생이랑 몇 번 가보긴 했죠."

아쿠아리움 치고는 이벤트도 많이하고, 워낙에 잘 꾸며진 곳이라 나도 꽤 좋아했던 곳이었다. 터널 같은 곳의 상하좌우 모두 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물고기들이 유리 벽 너머로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명까지 곁들여지면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그런 곳에 갈 일은 없었다. 약간 유치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자녀는 드물게 웃으면서 아쿠아리움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에 들어가면, 태훈 씨가 궁금해하셨던걸 전부 말씀드릴게요. 그러니 걱정 말고 따라오세요. 후훗."

속삭이듯이 중얼거리고는 갑작스레 내 손을 잡은 그녀를 보면서 나는 눈 앞의 모자녀가 그녀가 맞는지 순간 의심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싫지는 않았기에 얌전히 손을 잡힌채 그녀에게 끌려서 아쿠아리움으로 들어갔다.

아, 아쿠아리움 입장비는 옛날보다 4천원이나 비싸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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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에피소드는 H씬이 최소 3편 예정. 도입부가 길었던 것도 있고, 캐릭터가 캐릭터인만큼 씬을 조금 더 주고 싶어서 쓰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기대해주세요!

2. 요즘 판타지 소설들 중에서는 던전+영지물이 좋게 느껴지네요. 볼 때마다 느껴지지만 작가님들의 두뇌가 좋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소설인데, 이 정도로 재밌다면 작가님들이 천재가 아닐까 의심됩니다. 자료 조사+재능 이라니... 저한테는 너무 무리한 주문이로군요.

3. 그러니 저는 H소설이나 적도록 하겠습니다. 핫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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