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2 아이돌 공략을 시작합니다. =========================
우선은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공략을 몇 달에 걸쳐서 한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들이댔다가 완전히 박살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조심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에게 캐묻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그저 지나가듯이 질문을 툭툭 던졌고, 그녀도 그런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살며시 미소지으며 간단한 대답을 해줬다.
내가 한 질문은 대체로 아침마다 운동하는 이유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에 의하면 그녀가 운동하는 시간은 거의 나와 동일했다. 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체중 관리라고 했는데, 솔직히 내가 봤을 때 그녀는 마른 편이었다.
뭐, 연예인이나 그런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넘어갔고, 그녀도 미소를 유지한채 대화를 이어갔다.
먹음직스런 요리들이 순서대로 나오고, 나와 그녀는 즐거운 기분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끝나갈 즈음, 나는 이때까지 좋은 흐름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를 은근슬쩍 띄웠다.
"그럼, 앞으로도 강변에서 운동하실건가요?"
"...아마, 2주일 정도는 그럴 것 같아요. 그 뒤에는 제가 일이 있어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거든요."
"그럼, 그때까지라도 같이 운동하실래요? 저도 매일 그 시간에 운동하는데, 혼자서 하니 적적했거든요."
제발, 속으로 애원할 정도로 간절히 그녀가 수락하기를 바랬다. 지금 내가 한 말은 어느 정도 친한 남자나 여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녀가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조차 신청하지 않았다간 그녀와의 접점은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반쯤 도박을 하는 기분으로 내질렀고,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대신, 2주만이니까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좋아, 이걸로 최소한의 공략 조건은 갖췄다. 이제 남은 것은 남은 2주라는 시간동안 어떻게든 그녀를 공략하는 것 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걸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분좋게 디저트를 먹었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어차피 가는 방향도 같았기에 바래다주는 셈 치고 나는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몇 시에 만날지, 혹은 하고 있는 다른 운동은 없는지. 그런 얘기들이었고, 그녀는 성심성의껏 내 대화에 어울려주었다.
다만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모자를 눌러썼는데, 그 모습이 거의 강박증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나는 누군가가 그녀의 집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깨에 맨 가방에는 카메라로 보이는 것이 튀어나와 있었고, 그 남자는 모자녀의 집을 기웃거리면서 명백히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는데,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걸 보니 저 남자가 결코 좋은 목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접근했고,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끄악!"
남자의 비명과 함께 남자는 내게 목을 붙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상황이 됐다. 근력 스텟을 올려놓길 잘했지, 이제 어지간한 성인 남자도 한 손으로 들 수 있게 됐다.
모자녀는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것인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기에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 남자, 아는 사람입니까?"
"...스토커에요. 며칠 전부터 제 주변을 서성이더군요."
"아, 아냐!! 그냥 난 팬으로써 여기 와본 것 뿐이라고!"
남자가 내게 뒷덜미를 잡힌 채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팬이라는 놈이 카메라를 들고 집을 서성이냐? 너, 내가 안왔으면 무단침입할 생각이었지?"
내 말에 남자의 시선이 순간 흔들렸다. 이 개자식, 진짜였구나. 나는 순간 남자를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어떻게 할까요?"
내가 모자녀에게 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안 찾아오겠다고 약속하면, 그냥 놔주세요. 만약 앞으로도 제 주변에서 보이면 바로 신고할거에요."
모자녀의 말에도 그는 여전히 음흉한 눈으로 모자녀를 쳐다봤기에 나는 남자를 땅바닥에 한 번 패대기 친 다음 발로 지근지근 밟았다. 쓰레기 같은 자식.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행동을 무척이나 혐오했다.
직접 말할 용기가 없어서 뒤를 쫓는다. 자신의 욕망을, 욕구를 위해서 그들에게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면서 원망한다.
스스로 기대한 주제에,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자각도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멋대로 실망해서는 자신을 피해자인것마냥 말하는 것이 무척이나 역겨웠다.
"...개자식."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그를 다시 한 번 밟았다. 개인적으로는 남자가 경찰에 신고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야 이 남자를 제대로 감방에 쳐넣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과연 경찰이 도착해서 스토커를 붙잡을지, 스토커를 두들겨 팬 나를 먼저 붙잡을지 무척이나 궁금할 지경이었다.
나는 분을 삭히지 못하고 남자의 멱살을 붙잡고 말했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그 땐 진짜 죽을줄 알아라."
내가 진심을 담아 그를 노려보며 살기 담은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서야 그가 히익하고 비명을 내지르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남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체구의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 그런 사람이지만 집착을 가졌을 때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오늘 내가 그를 족치지 않았다면 분명 모자녀는 험한 꼴을 봤으리라.
남자가 허겁지겁 도망가고나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모자녀를 쳐다봤다. 그녀가 숨겨왔던 진실은 이미 반쯤 까발려졌다. 과연 그녀가 지금 내게 사실을 말해줄지, 아닐지는 그녀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마음 같아선 어째서 저런 놈을 며칠 동안이나 방치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을 것은 그녀였다. 그녀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말을 할 자격은 아직 내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그녀에게 있어서 타인이니까. 그렇기에 꾹 참아 눌렀다.
하지만 속으로 결심했다. 내가 그녀를 공략하고 난다면, 그녀의 주변에 저런 놈들이 절대 꼬이지 않게 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잠시 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푹 숙인채 나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네요. 오늘은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서 쉴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어딘가 울먹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를 스쳐가듯이 뛰어 집으로 돌아간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중얼거렸다.
"...더럽게 꼬였군."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화가난 이유는 하나 뿐이 아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개자식이 멋대로 스토킹을 했기 때문이 맞다. 나는 그딴 짓거리를 무척이나 혐오하고 있었고, 저런 비겁한 수를 써서 남을 노리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래, '노리는 것'을 말이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녀석은 모자녀를 좋아하고 , 쫓고 있었다.
그래, 내가 느꼈던 감정은.
두 번째 이유는.
"어딜 선수를 치려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짜증, 분노. 그 감정의 근원중 일부는 그 녀석이 선수를 치려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팔자에도 없는 데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접점을 만들려 했는데, 저 개자식은 같잖은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다.
뭐,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딱히 나도 선인이라는 생각은 들지가 않았다. 이건 내가 에로스의 권능을 받아 이 짓을 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늘 말했듯이. 나는 선을 지켰다. 상대가 예의를 지킨다면 나도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고, 존중한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의 철칙이었다. 그 개자식처럼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머리 한편에서 속삭이듯이 울림이 떨려왔다.
'그러는 너도, 스킬이랑 아이템을 써서 공략해왔잖아? 피차일반이야.'
라고 말이다. 갑자기 짜증이 더욱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그것을 꾹 눌렀다.
"...아, 모르겠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가뜩이나 스토커 때문에 남자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그녀일텐데, 내가 과연 그녀를 공략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그녀가 나와의 약속을 지킬지조차 의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후원, 원고료 쿠폰은 연재 속도나 연참 확률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추천해주시면 연참 확률 UP!)
1. 평소에 피시방에서 이런거 적으면 경찰서에 잡혀가겠지만 건전한 파트를 적는거라 그런지 아무도 신경 안쓰네요. 캐릭터 신음 뒤에 하트같은거 붙이면 사람들이 바로 쳐다볼텐데.(아쉽)(?)
2. 오빠가 군대간지 꽤 됐는데도 실감이 잘 안나네요. 군대 가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히토미를 감상하던 사람이라 그런가.
3. 물론, 오빠 덕에 저도 제 취향에 맞는 동인지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보는건 아이돌 능욕 계열 동인지에요. 순정은 찾기가 힘들더라고요.(아쉽) 주소 아시는거 있으면 쪽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