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H로레밸업-106화 (106/174)

00106 수업 참관을 시작합니다 =========================

6교시 수업까지 참관하는 이는 열댓명의 학부모들 중 나를 포함해서 두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셨는데, 아마 맞벌이하느라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손주나 손녀의 수업을 참관하러 오신 것 같았다.

6교시 수업은 '영어'였는데, 영어 선생님은 내가 고3때의 영어 선생님과 동일한 분이었다. 내 성적 중 영어가 가장 좋은 편이었기에 칭찬도 많이 받고, 개인적으로도 꽤나 친밀한 선생님이었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남자다. 그것도 유부남.

그 선생님도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알아보고는 씨익 웃었고,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그 다음 이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가관이었다.

"원래는 그냥 진도를 나가려고 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영어 선생님의 말에 애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긴, 나도 저때 무슨 일이라도 진도만 안나가면 행복했던 것 같다. 덤으로 자습시간이면 최고였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자유였으니 말이다.

마침 참관중인 부모님도 한 분 밖에 없으셨다는게 유효했을까, 영어 선생님은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해 진도 대신 토론이나 질의응답을 해도 되겠냐고 했고, 할머니는 그저 허허 웃으시면서 괜찮다고, 자신은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영어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오라고 했다.

"태훈아, 나와 봐라."

동시에 반 애들 전부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그 중에는 빈이와 수빈, 수연의 시선도 있었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내 학창시절을 이 애들이 알리가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적이면서 교탁 옆에 섰고, 영어 선생님은 특유의 푸근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들기면서 말했다.

"자, 여기 이 녀석은 너네 선배인 '최태훈'이다. 참고로 내가 직접 가르쳤지. 영어 1등급을 놓친 적 없는 녀석이다."

선생님의 말에 애들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나름대로 외모가 괜찮아진 덕에 여자애들만 눈을 쫑긋거렸다면, 이제는 공부 좀 하게 생긴 남자애들까지 나를 쳐다보면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태훈아 자기소개 해라."

선생이 제자를 이렇게 팔아먹어도 되는건가 싶었지만 나는 군말 않고 하기로 했다. 학창 시절에 이 선생님한테 상담도 여러번 받았고, 도움을 받은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름은 최태훈이고, K대학교 재학중입니다. 그리고......"

나는 말을 늘이면서 빈이의 얼굴을 쳐다봤고, 빈이는 뭔가 기대하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빈이가 싫어할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 기대하는듯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추가하는게 좋겠다.

"빈이의 오빠입니다."

내 말에 반 애들의 웅성거림이 커졌고, 빈이 주변에 앉은 여자들의 입에서 '꺄아악'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어선생님도 그 사실은 몰랐는지 멍하니 있다가 나와 빈이를 번갈아보더니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대체 어디서 납득할 점을 찾은건데.

그리고 앞에 앉은 공부좀 하게 생긴 남자애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남매가 쌍으로 공부를 잘하네."

"치트아니냐? 유전자의 힘인가?"

"이래서 천재들이란..."

이 자식들아. 난 너네가 자는 시간에 죽어라 공부했단 말이다. 설화 아니었으면 미쳐버렸을 정도로 죽어라 공부만 해댔다고, 남의 노력을 천재라는 단어로 일축시키는 녀석들에게 속으로 화를 내던 도중 나는 빈이가 여자애들한테 잔뜩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빈아빈아, 오빠 번호 좀 가르쳐줄래?"

"빈이 너 맨날 오빠 얘기만 하더니 그럴만 했구나. K대에 저 정도 외모면... 저기, 오빠 여자친구 있어?"

"지난번에 오빠가 과외해서 명품도 잔뜩 사줬다며, 너네 오빠 능력자구나."

갑작스레 쏟아지는 질문들에 빈이는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했고, 나는 괜히 말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얘네들은 빈이랑 내 성이 다른걸 아무도 주목안하네. 뭐, 시간이 조금 있으면 이상한 점을 눈치채겠지만 그건 빈이가 알아서 해명할 일이었다.

그렇게 잠깐 소란이 일자 영어선생님이 중재를 했고, 그제서야 잠잠해진 교실에서 나는 질의응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여기 있는 태훈이한테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봐라."

영어 선생님의 말에 애들은 처음이라 그런지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저 뒤쪽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남자애가 짓궃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첫경험 이야기 해주세요."

그 말에 잠깐 반에 침묵이 맴돌았고, 나도 속으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반이라면 나도 웃으면서 얼버무렸겠지만 합반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어지간히 용기 있는 놈이었다.

사실 내가 고딩일때도 반에 저런애가 있긴 했다. 반 애들이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질문을 용기있게 하는 미친놈. 그 때는 그런 애를 약간 부러워했기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흐음...정말로 듣고 싶어요?"

내 말에 여자애들은 '꺄아악'거리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물론 손가락 틈 사이로 보이는 눈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자애들은 분위기를 타서 내가 말해줄거라 생각했는지 연신 '해줘요!'를 열창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애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었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남자애들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면서 방금 전 그 질문을 한 놈의 귀를 잡아당기면서 훈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만큼, 여기서는 할 수가 없겠네요.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잡혀갈지도 모르니까요."

내 말에 남자애들이 야유를 보내고, 여자애들은 김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봐라,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신, 저한테 직접 연락을 하거나 수업이 끝난 뒤에 찾아오면 아주 상.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선배나 후배가 아니라, 한 명의 남자로 말이죠."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반이 함성으로 가득찼다. 내 번호를 질문해대는 남자애들과, 빈이한테 내 번호를 물어보기 시작하는 여자애들까지, 반은 개판오분전까지 치달았고, 몇 분이 지나서야 조용해졌다.

영어 선생님은 반쯤 포기한듯이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이런 반응을 보는게 꽤나 재밌는걸 어쩌겠습니까. 멋대로 제자를 팔아먹은 대가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럼, 다음 질문은요?"

내 말에 한 여자애가 손을 들었다.

"저기... 공부를 잘 하는 비법같은거라도 있나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들어 질문했다는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곧바로 앉아버리는 것을 보니 부끄러움이 많은 애 같았다. 다소 정석적인 질문이었기에 나는 방금 전 내가 생각했던 바를 말했다.

공부를 하는데 서로 지탱할 수 있는 친구 덕분에 나는 이 대학에 올 수 있었고, 여러분도 그런 친구를 찾기 바란다는 내 말에 애들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무슨 노트 비법이라도 전수해줄줄 알았냐?

그냥 흘려듣던 애들도 어느새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랜만에 즐겁게 애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6교시의 수업참관 시간이 흘러갔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후원, 원고료 쿠폰은 연재 속도나 연참 확률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추천해주시면 연참 확률 UP!)

1.편당 분량이 짧은 대신 연참을 들고 왔습니다!! 부디 즐겁게 감상해주시길.

2.노블레스에 좀 더 많은 떡타지가 필요합니다... 요즘 보고 있는게 '프리시아'랑 '트레이너'랑 '미연시~'랑 '노움의 그녀들'인데, 역시 남성 작가분들이라 그런 것인지 묘사가...어우. 개인적으로 좀 본받고 싶네요.

3.떡타지 쓰는법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원이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4.다음화부터 잔뜩 달아오른 수빈이랑...으헤헤헤헿.

5.추천이랑 쿠폰 늘 감사합니다. 요즘 매일 연참할 기운이 나는 것도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raidmaster님, 쿠폰이 다 합쳐서 801개...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