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H로레밸업-50화 (5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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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갈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루시를 괴롭히면서 시간을 때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같이 갈 사람들의 시간을 조율하기도 하고, 대충 여행일정을 짜느라고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일단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여섯 명. '서연, 송희 누나, 유민, 빈이, 나, 루시.' 차는 유민이 준비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각자 필요한 도구들만 챙겨오기로 했다.

사실 나야 갈아입을 옷이랑 돈 약간만 챙기면 상관없었지만 빈이도 그렇고 다른 여자들은 대부분 챙길게 많다면서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한 번은 서연이 같이 수영복을 사러가자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가서 무슨 피를 보려고, 일단 대외적으로 서연과 사귀는 것처럼 되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자와 함께 수영복을 사러 갈 정도로 담이 크지는 않았다.

빈이도 금요일인 오늘, 마침 단축수업을 한다고 하길래 낮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참고로 빈이 짐은 나랑 루시가 챙겼다. 빈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올테니 말이다.

참고로 집에서 빈이 짐을 슬쩍 확인해봤는데 정말이지 엄청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속옷이랑 갈아입을 옷은 그렇다쳐도 온갖 화장품부터 시작해서 오일에 스킨, 거기다 쿠션까지... 내 짐의 몇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고작 이틀 노는건데 뭐하러 이 많은 짐을 챙기는건지..."

일단은 빈이도 학교를 가야하니 금요일부터 토요일, 일요일까지 2박3일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다음주 월요일이 마침 공휴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나였기에 하루 정도는 여유를 두고, 2박3일 여행 일정을 잡은 것이었다.

"...네 짐이 너무 없는거거든?"

내 중얼거림에 루시가 투덜거리며 토를 달았다. 아무래도 내게 당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루시의 소심한 반항에 빙긋 웃으며 버튼을 연타했다.

"흐윽. 히끅."

갑자기 루시의 걸음걸이가 어색해지며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루시의 몸을 붙잡아주면서 속삭였다.

"괜찮아? 조심했어야지. 응?"

내 말에 루시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입을 열려햇지만 그것보다도 내 손이 빨랐다.

지잉, 지잉. 가까이에서나 들릴법한 그 소리에 루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덧붙이자면 루시의 아래쪽이 살짝 물에 젖은 듯이 축축해졌다.

"응?"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는 루시에게 빙긋 웃어보이자 루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음, 그래. 좋은 자세다.

나는 상쾌해진 기분으로 내리막을 걸으며 유민이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이게 뭐야."

분명 유민과 만나기로 한 장소인 교문 앞에 있는 것은 리무진 한 대 뿐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서는 신기하다는듯이 구경하고 있을 뿐, 유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이런 짓을 해놓고 모습을 보일리가 없지.

나는 천천히 리무진에 다가갔고, 리무진의 운전석 밖에 나와있던 한 여자가 나를 보고 아는척했다.

"최태훈 씨랑... 루시 씨, 맞으십니까?"

"아, 네."

그러고보니 유민의 비서라고 했었던가. 이름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얼굴은 기억이 났다. 음, 유민 녀석 이런 꼼수를 쓸 줄이야. 죽어도 자기가 운전하기는 싫다 이건가.

아니, 어쩌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해서 자신은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어느쪽이든 간에 무의미한 허세였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유민의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 역시도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리무진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지난번엔 실례했습니다."

"뭘요, 지금이라도 이해해주셔서 저야말로."

그 때는 나를 적대, 혹은 비웃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깍듯이 대하는게 살짝 놀라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녀가 억지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정말로 나에게 공손하게 구는 것으로 봤을 때 그녀가 아직도 나를 싫어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감정 때문에 틀에박혀 있지는 않은 사람같았다. 그녀에 대한 내 평가가 조금 올라갔다.

"오늘과 돌아오는 날의 운전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리고 호텔의 방이나 비용 역시 유민님을 위해 제가 처리할 예정입니다. 괜찮으신가요?"

"...비용은 저희가 각자 낼 생각이었는데."

"아뇨, 지난번 실례를 범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유민 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디 부디 사양마시길."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그녀를 보며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깍듯이 나오는데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유민의 비서가 학교에서 꽤나 유명한것인지 학교의 다른 사람들이 수근거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꽤나 스캔들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아, 네."

그렇게 말하며 나는 루시와 함께 리무진에 올라탔고, 루시는 신난듯이 발을 구르면서 리무진을 둘러봤다.

"우와! 여기 엄청 넓은데? 뭐야, 냉장고도 있잖아! 이거 정말 차 맞아?"

어린애처럼 놀라면서 방방거리는 루시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약간은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이 냉장고야. 어지간한 음료는 다 있으니 마음대로 마셔도 돼."

다름아니라 내 앞에 앉은 유민이었다. 그녀는 패드를 휙휙 넘기면서 다양한 통계나 기사를 훑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패드를 탁하고 빼앗았다.

패드를 빼앗긴 유민이 나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무슨 짓이야?"

"너야말로 무슨 짓이야. 이제 곧 여행갈건데."

"...아직 출발도 안 했거든?"

"난 이번 기회에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 친해졌으면 하거든. 네가 처음부터 그런 태도를 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너랑 못 친해질거 아냐."

내 말에 유민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어쩔 수 없이 수긍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유민치고는 이걸로도 많이 타협한 것이겠지.

내가 시험기간 내내 생각해본 결과 내 주변 여자들은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서연이나 빈이의 경우에는 조금 덜했다. 서연은 원래 인기가 많은 편이었고, 빈이도 교우관계에 별로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둘 다 남자에겐 인기 폭발이고 여자들과도 무난하게 잘 지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유민과 송희 누나. 그리고 루시의 경우에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전무했다.

"너, 친구 없지?"

내 말에 유민이 움찔했다. 그리고 드물게도 당황한 목소리를 내면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친구같은거 사귈 시간 없어. 애초에 내가 뭘 위해서 송희를 괴롭혔다고 생각하는거야? 친구를 사귈 바엔 다른 정치력 있는 사람을 포섭하는게 더..."

"그거, 친구없는 애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사거든? 학생회장까지 했으면서 친구가 없다니. 농담치곤 질이 나쁜데."

점점 말이 빨라지는 유민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친구 한 명쯤 있는게 좋다고 생각하지? 하다못해 자매인 송희 누나랑도 이제 슬슬 화해해도 되잖아."

"...그야 뭐. 한 명 정도라면..."

기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수긍하는 유민을 보며 나는 슬쩍 입고리를 올리며 거칠게 유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민은 처음엔 기분나쁘다는 듯이 나를 노려봤지만 점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린애 취급하지마."

"네이네이, 아무튼 오늘 오는 애들 중엔 내 여동생도 있으니까 이상한 짓은 하지마."

내 말에 유민이 살짝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넌 섹스하는걸 여동생한테 보여지고 싶었던거구나..."

"아니거든!"

"하지만 나는 당연히 네가 이때까지 같이 섹스한 적 있는 여자들을 부르는줄 알았는데. 서연이라는 후배도 그렇고, 송희도 그렇고. 둘 다 했을 거아냐. 아니, 걔들은 둔하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지금 네 옆에 있는 여자도 딱 보니 이상한 짓을 당하고 있는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슬쩍 넘기자 유민도 더 이상 집요하게 캐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좋아, 바다에 가서는 가장 먼저 유민을 엉망진창으로 해줄테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슬쩍 창 밖을 쳐다봤다. 멀리서 하얀 셔츠와 짧은 치마를 입은 서연과 교복 차림의 빈이, 그리고 옅은 핑크색의 원피스를 입은 송희 누나가 함께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의 여행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래, 설화가 죽은 뒤로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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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씬 전에 잔잔한 일상이 몇 화 정도 나올 예정입니다. 대략2~3화 정도?

2.매일 씬에만 집착하다가 이런 툭탁거리는 일상도 뭔가 괜찮네요. 치유가 된다고 해야하나?

3.표지에 4명이나 되서 그런지 보기에 좋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前)일러스트는 공지에, 현재 표지는 아는 형(오빠라는 호칭은 심히 오글거려서 잘 안씀)이 그린 걸 허락받고 빌려왔습니다.

4. 내일...아니 오늘은 투표 하고 와서 공휴일인 점을 이용해서 실컷 글을 써야겠군요. 어쩌면 연참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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