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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략을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동아리방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후우...후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그녀를 만나면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지나치게 마이페이스인 송희 선배에게 주도권을 줬다간 또다시 놀림만 받다가 끝나고 말 것이기에 나는 대화의 주도권을 내가 잡기 위해 전략을 짠것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결심을 하고 문에 열쇠를 꽂는 순간, 철문이 안에서부터 거칠게 열리면서 내 이마와 딥키스를 나누었다.
"악!"
철문인만큼 이마가 엄청나게 아파왔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내 앞에서 딱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작게 웃는 그녀가 더 싫었다. 차라리 박장 대소하면 덜 쪽팔릴 것을.
"...아, 미안...풉...아니... 이게 아니라..."
그녀는 말하는 중간중간 웃음을 참지못하고 쿡쿡 거렸고 나는 욱씬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이거 혹시 혹으로 변하는건 아니겠지?
"선배, 혹시 달걀 같은거 있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송희, 아니 송희 선배는 그저 고개를 좌우로 내저을 뿐이었다. 하긴, 이런 동아리방에 달걀같은게 있을리가 없지.
"미안."
그녀가 다시 짧게 사과했지만 나는 솔직히 그 사과로 기분이 풀리지 않았기에 그저 퉁명스레 고개를 살짝 숙일 뿐이었다. 쪼잔하다고 할 지 몰라도 철문에 이마를 정통으로 박아봐라. 그것도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 말이다. 마음 같아선 울고 싶은걸 간신히 참는중인데 그런 나한테 용서의 배려심까지 갖추라는건 다소 무리한 주문이었다.
"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동아리방에 들어가려 하는데 송희 선배는 나를 따라오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정좌하고는 말했다.
"미안해. 네 생각은 하지않고 웃어버려서."
진심이 담긴 그 말에 나도 사과했다.
"아니에요 선배. 딱히 선배 잘못이 아니니까요. 서로 실수한 거니까."
사실 어제 놀림받은 것과 더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 조금 화가 났던 것 뿐이다. 개인적으로 송희 선배가 당황하는 걸 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저렇게 정자세로 나올줄이야.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사람인 것 같았다.
"사과의 의미로 조금 도와줄게."
"...뭘?"
그런 내 반문을 무시하고 그녀는 소위 말하는 '무릎베개'라는 것을 내게 해주었다. 물론 무릎베개뿐만 아니라 어딘가에서 가져온 물수건을 적셔서 내 이마를 문질러서 아픈 고통을 식혀주었다.
그녀는 처음봤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회색의 팔목티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정강이나 허벅지 주변에 구멍을 낸 청바지가 아니라 갑갑해보일정도로 딱 몸에 맞는 청바지였다.
머리뒤에서 느껴지는 것이 부드러운 살결보다는 정강이뼈의 딱딱함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그녀의 허벅지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청바지의 너머로도 느껴지는 옅은향이었지만 나는 게임 시작 전에 비해 오감이 꽤나 발달해서 알아챌 수 있었다.
서연의 허벅지 주변에서는 매일 애액냄새만 맡았더니 몰랐는데 여자한테서는 이런 향기가 나는구나.
처음에는 향수 향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것치고는 처음 맡는 향인데다 향이 옅었다.
'이러고 있으니 변태같구만.'
선의로 간호를 해주는 선배의 허벅지 냄새를 맡는 후배라니. 변태가 따로없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송희 선배를 공략해야하고, 공략을 위해선 작은 정보 하나라도 더 많은 편이 좋았다. 물론 허벅지 냄새도 말이다.
"...이상한 표정."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는 그녀는 조심스레 물수건을 내 이마에서 뗀 뒤 다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었다. 그녀의 팔은 그녀가 수건을 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가늘었고, 보호 욕구를 자극할 정도로 앙상했다.
"이제 좀 괜찮아?"
그녀의 물음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선배야말로 괜찮으세요? 동아리실 나와서 어딘가 나가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기다려도 네가 안 오길래... 문을 열어봤는데."
그 순간 내가 문에 부딪쳤단 말인가.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운이 없는 일이었다.
"...다음부턴 조금 더 일찍오도록할게요."
"미안."
그렇게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어제 읽던 책들을 쌓아놓고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어제처럼 책속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우리는 취향이 잘 겹치는 동료였으며 때로는 서로의 다른 취향을 헐뜯지 않고 각자의 장점을 토론할 수 있는 실로 격식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을 토론하고 나서야 떠올랐는데, 이 책들이 다 어디서 났는지가 궁금해졌다. 아마 그녀가 사온 것이겠지만 그런 것치곤 책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대략 500권이 넘어 보이는 이 책들을 모두 학교에서 지원해주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무리 우리 학교가 동아리 지원이 좋다고 해도 부원수가 이렇게 적은데 그런 지원을 해줄리가없지.'
"그런데, 이 책들은 다 어디서 난거에요?"
"일부는 학교의 예산으로 구매한거고, 나머지는 사비로..."
"사비로요? 이 많은 책을?"
내 경악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표정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걸보니 정말로 맞는 것 같은데 돈에 대한 관념이 없는건가? 아니면 책을 사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타입인가?
"이 책들 전부 다 선배가 사 오신거에요?"
"아니... 목록을 작성해놓으면 언니가 사줘."
그렇게 '언니'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기에 나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다른 책들의 주인공이 어떻다던지, 그런 것으로 그녀의 시선을 돌렸고 그녀도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싶지 않았는지 내 말에 답해주었다.
그렇게 그 날도 저녁까지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공책에 공략 방법을 기록하면서 샤프 끝으로 머리를 꾹꾹 눌렀다.
'우선 키워드는 세 개'
나는 밑줄 그어놓은 '관능소설' '인형' '송희 선배의 언니' 라는 단어들을 톡톡 두들겼다. 그녀의 취미와 외모. 그리고 그녀의 약점을 정리한 것이었다.
"일단... 관능소설 쪽은 미뤄두고."
나는 관능소설 위에 X표를 쳤다.
솔직하게 말해서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관능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흥분도가 잘 오르지 않는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였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어설프게 손을 썼다간 되돌릴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다음으로 '송희 선배의 언니'라는 단어를 두들겼다. 송희 선배는 '하'씨라는 흔치않은 성씨를 가지고 있었기에 송희 선배의 언니를 찾는 일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건드릴 수 있을만한 인물이 아니란 것이다.
송희 선배의 언니 이름은 '하유민'
내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것만 해도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에 철혈의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발이 넓은 지훈에게 정보를 얻어보려고 전화를 해봤지만 지훈은 내가 그 선배의 이름을 꺼내기만 했는데도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선배한테 접근할 생각은 절대 하지마! 잘못 걸렸다간 그대로 끝이라고! 알았지? 절대로......"
결국 지훈 녀석은 왜 그런 반응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답해주지 않았기에 내 궁금함은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송희 선배에게 책을 대리구매해주는 것을 보니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게 있는건가.'
하긴, 고작 책을 대신 사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착하다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것도 아니고..."
나는 '송희 선배의 언니' 위에도 X표시를 쳤다. 관능소설과 마찬가지로 정보가 부족했다. 애초에 약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약점이라기 보다는 최종 보스를 본 기분이다.
아마 송희 선배가 혼자서 동아리를 존속시키고 있을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언니의 도움을 받아서였겠지.
"결국은 이것 뿐인데..."
나는 '인형'이라 적혀 있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단어를 샤프로 두들기면서 생각했다.
인형이란 단어는 비단 그녀의 외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즐겁게 대화하고, 토론해도 그녀는 호감도와 흥분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오늘 헤어지기 전 확인한 그녀의 창에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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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송희
성감대:없음
공략 랭크: C
현재 호감도:57%
현재 흥분도:4%
(Lv증가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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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적어도 조금은 더 올릴 수 있을줄 알았건만, 그녀의 호감도는 퀘스트 이후로 거의 오르지 않았고 흥분도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혹시 불감증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공략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만한게..."
내 가장큰 무기는 에로스의 손과 에로스의 페로몬이라는 스킬인데 그녀에게는 이 두 개 모두 제대로 통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연관점과 공략 방법을 고민하는데 갑자기 카톡이 왔다.
'서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신인을 확인한 순간, 나는 굳어버렸다.
톡의 발신인은 다름 아니라 내가 방금전까지 조사했던 '하유민'이었다. 그리고 톡의 내용은 이러했다.
[학생회장 하유민입니다. 다름 아니라 제 동생에 관해서 상담을 하고 싶은데 가능한 시간을 톡으로 보내준다면 일정에 맞춰서 시간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시간을 내주신 것에 대한 보상은 별도로 할테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전의 나라면 별 생각없이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이 말이 굉장히 추잡하고, 무기질적이며, 속물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가 '진짜'공략의 시작이란 것을 깨닫고 실소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해볼까."
============================ 작품 후기 ============================
음... 제가 원래 '화,수,목,금'이렇게 3박4일 여행을 가게 되서 오늘은 글을 안쓰고 가방을 챙겨두려 했었는데...
한 독자분께서 원고료 쿠폰(350원X10=3500)을 자그마치 10장이나 선물하셔서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짬내서 열심히 글을 적어 업로드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주말에 연참을 지향하지만 평일에도 간간히 올라옵니다. 선작 수나 추천 수가 늘어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이만 여행다녀오겠습니다!
(아마 금요일일 것 같지만 올 때 연참들고 오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