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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저릿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시야를 확보한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눈 앞에 떠올라 있는 알림창이 반짝 거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저릿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황을 정리하려 하는데 문득 단편적인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어제 날 찾아왔던 가면을 쓴 남자. 평행세계. 그리고... 설화.
그래, 나는 분명 어제 그 정체모를 남자에게 플레이어라는 자격을 얻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 플레이어란 것의 임무를 완수한다면 다시 한 번 설화와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한 나는 흐릿한 시야를 고정시키고 다시 한 번 눈 앞에 있는 알림창들을 확인했다. 똑같은 크기의 알림창들은 모두 8개였다.
[공략 대상]
[스텟]
[상점]
[인벤토리]
[퀘스트]
[업적]
[스킬]
[현재 포인트:0p]
정체모를 이 알림창들을 쿡쿡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어서 한숨을 내쉬는 순간, 새하얀 배경에 검은 글자가 적힌 알림창들과 달리 검은 배경에 흰 글자가 적힌 창이 바로 앞에 떠올랐다.
순간 놀란 나머지 뒷걸음질을 치다 넘어졌지만 빌어먹을 검은 알림창은 친절하게 내 시야에 맞게 이동했다.
[좋은 밤 보내셨습니까, 태훈님?]
동시에 어제 만났던 그 기괴한 가면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빌어먹을, 이런 음성지원 따윈 필요없다고.
[계약의 내용에 따라 태훈님에게 플레이어의 권능을 한가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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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에로스의 손이 부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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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이름: 에로스의 손(Lv1)(Passive)
효과: 손에 닿은 이성의 호감도가 10%증가. 흥분도 10%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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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접 권능 부여에 의해 2배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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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나름대로 쓸만하지 않습니까? 저도 제 권능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해보는건 처음이라 쑥스럽군요.]
나는 알림창을 보고 기가막혔고, 그걸 또 부끄럽다는듯이 말하는 이 남자에게 더 기가 막혔다. 뭣보다 스킬 이름부터 글러먹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대충 짐작이가지만 이 스킬이 태훈님의 플레이에 큰 도움을 줄테니 잘 염두해두시길. 그럼, 본격적으로 튜토리얼을 시작하도록 하죠. 우선,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해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화장실로 걸어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했다. 그리고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 날'의 내 모습과도 같았다. 설화가 죽고 폐인이 되기 전의 내 모습과 말이다.
[제 자그마한 선물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그 날'의 태훈님과 닮은 것 같나요?]
"...재수없긴."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이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잘생긴 건 아니고 꽃미남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제의 나보단 나았다.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고 동공에는 생기가 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이 모습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럼, 튜토리얼 시작합니다.]
튜토리얼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창이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는 방금 전 있었던 8개의 알림창이 떠올랐고, '퀘스트'라고 적힌 알림창에 숫자 1이 떠오르며 알림창이 반짝거렸다. 내가 알림창을 클릭한 순간 다른 알림창들이 사라지고, 하나의 알림창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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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1)
퀘스트 이름:금강산도 식후경
퀘스트 내용:공략 하기도 전에 굶어 죽겠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퀘스트 조건:간단한 식사.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상관없음. 단, 물은 제외.
퀘스트 보상:1000p, 투자 가능한 스텟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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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라."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식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굶어 죽기직전에 가서야 간단한 즉석식품으로만 끼니를 때운 나로서는 굉장히 생소한 욕구였다.
나는 구석의 박스에 쳐박혀 있던 컵라면을 꺼내 스프를 털어넣은 뒤에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그렇게 물이 다 끓자 컵라면에 물을 넣은 뒤에 기다리는데 이게 또 기가막혔다.
평소의 나 자신이라면 절대 느끼지 않을 '냄새'가 컵라면에서 나고 있었다. 자극적이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내 코를 간질였고, 나는 결국 3분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덜 익은 라면을 먹어치웠다. 이렇게까지 식욕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공복에 컵라면 하나라 약간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소의 내 몸이라면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과거의 내 몸은 건장한 남성이었으니까. 그렇게 컵라면 하나를 국물까지 전부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나는 퀘스트 완료 창이 떠올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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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1) 완료!
보상으로 투자가능한 스텟이 1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1000p가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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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2)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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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2)
퀘스트 이름:인간관계 개선
퀘스트 내용:남자든 여자든 좋으니 말이라도 걸어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상관없고, 대학 선배도 상관없다.
퀘스트 조건: 단, 말을 건 상대가 적의를 보이면 재시작.
퀘스트 보상:1500p, 투자 가능한 스텟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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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이 창들은 on/off를 마음대로 조절 할 수 있으니 염두해두시길. 그럼 전 이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계속 있는거 아니었나?"
[이런, 설마 태훈님은 여자와 관계를 맺을 때 남이 지켜보면 흥분하는 타입인 겁니까? 정 그러시다면 계속 있어드리겠습니다만...]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게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는 킥킥 웃는 시늉을 했다. 빌어먹을 신 같으니.
[태훈님의 플레이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계속 보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진 않거든요. 물론 가끔씩이야 조언을 하거나 관전을 하겠지만... 부디, 무사히 클리어하시길 빌죠.]
"그래, 정말이지 눈물나게 고맙구만."
그렇게 그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사라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중얼거렸다.
"후우, 그럼... 시작해볼까."
가장 먼저 샤워를 하고 수염과 머리를 손질했다. 평소엔 꺼내지도 않았을 과거의 내가 입었던 청바지의 셔츠를 입었다. 마지막으로 쓴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향수를 뿌렸다. 어쩌면 몸에 배인 홀아비냄새를 지우고 싶어 그런건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서,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갈아입은 뒤에는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상쾌하고 묘하게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렇게 거울 앞에 선 순간,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그 날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닮긴 했지만 조금이나마 키가 크고, 몸에 근육이 잡혀있는 것 같았다. 그 때의 나는 공부하느라 몸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니 분명 그 신이란 녀석이 만든 것이리라.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달랐다. 전의 과거도, 전전의 과거와도 다른. 온전한 지금의 나만이 이곳에 존재했다.
그렇게 나는 자신을 확실하게 점검한 뒤 현관의 문을 열고 나섰다. 현관의 문을 나서는 순간 눈부신 빛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덧붙여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회사원과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집에만 쳐박혀 있고, 할 수 없이 나갈 땐 저녁시간을 이용했던 방학에는 이런 광경을 볼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거리를 지켜봤다. 마치 전에는 없던 색채감이 입혀진 것 같았다. 단순히 몸이 바뀐게 아닌,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 생겨났기에 그런 것이리라.
"누구한테 간다."
우선은 튜토리얼 2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내 지인이 있는 학교나 집으로 가는게 가장 좋겠지만.......
아직은 개강이 하지 않아 학교에 간다 하더라도 내 지인을 만나기는 힘들거라 생각됐다. 그렇다고 집에 가자니 부모님의 외근을 가셨을 거고 여동생은 학교에 갔으리라.
머리를 쥐어뜯고싶은 것을 참으며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나는 살짝 긴장했다. 지금은 멀쩡해보이더라도 한동안 방구석에만 쳐박혀 있었기에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가 걱정되서였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는지 사람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않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추운 날씨에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다급하게 달려가는 회사원과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보다 신경쓴 것은 한창 멋을 부리고 거리를 활보하는 20대의 여자들이었다. 정확히는 나와 같은 대학생이라고 보는게 맞으리라.
'처음부터 연상은 힘들겠지.'
연상과 연애를 하려면 말빨이나 돈, 귀여움이 있어야할텐데 나한테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게 아니라면 평소에 자주 마주치며 호감을 올리는 수 밖에 없는데 내게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다.
'연하나 동갑으로 가자.'
기왕이면 말이 잘 통하고, 자주 마주칠 일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려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방구석에 쳐박혀 있지도 않았겠지.
그렇게 정처없이 거리를 걷던 나는 목이 말라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짤랑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말이 겹쳤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중저음의 음울한 분위기의 내 목소리와 다르게 활발한 분위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내 앞에 있는 그녀가 평소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만났던 그녀라는걸 깨달았다.
'야간 알바를 하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음료수가 있는 매대로 걸어가 콜라를 골랐다. 방금 전의 아쉬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삼각김밥도 두 개 잡아서 계산대에 올려놓으니 계산을 하는 그녀가 어째서인지 평소와 달리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계산을 하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혹시, 밤마다 물건 사러오셨던 분 아니세요?"
"...네?"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었기에 이해가 되질 않아 반문했더니 그녀가 갑자기 허둥지둥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 그게 밤마다 후드 입고 물건 사러오셨던 분이랑 굉장히 닮으신 것 같아서요. 분위기는 다르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계속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꽤나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물건 사러 올 때마다 친절하게 인사해줬던 것도 그녀고 가끔씩 즉석식품만 사가는 나를 보고 걱정해주기도 했던 것 같다.
"네, 그거 저 맞아요."
"역시! 제가 잘못 본 줄 알고 걱정했다구요."
뭐지, 엄청난 위화감이 든다. 나도 잠깐이지만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냥 최소한으로 필요한 일만을 하고 그 이상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그녀는 손님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비정상인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지나치게 활발한 것일까.
"평소랑 분위기도 완전 달라지셨고, 왠일로 아침에 오셨네요?"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아... 네. 그 뭐랄까... 변하게 될 계기가 생겼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쑥스러워 머리를 슬쩍 긁으며 멋쩍어하자 그녀가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은 변화에요. 기왕이면 즉석식품도 좀 끊으시고 직접 밥 해드시고요."
"네.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내 말에 그녀는 '그럼 이건 제가 쏠게요.'라고 말하며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찍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계산대에 채워넣었다.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막으려 했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질 않았다.
"괜찮아요, 저 이래봬도 시급 꽤 많이 받고 있다고요. 야간수당에 이 부근은 자취생들이 많아서 시급도 높은 편이고. 사람이 새 출발을 하는데 조금 정도는 돈써도 아깝지 않아요. 자, 받아요."
그렇게 말하며 윙크를 하는 그녀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작해야 2500원 남짓이긴 하지만 사람이 새 출발을 하는 것이라 해도 나와 그녀는 대화조차 몇 번 하지 않은 사이인데. 정말 이걸 받아도 되는걸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없는 용기를 쥐어짜내서 말했다.
"그럼... 나중에 밥 한끼 살게요."
그런 내 말에 그녀는 순간 멈칫하더니 다시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대신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맛있는걸 사주는걸로."
"물론이죠."
그렇게 말하며 웃은 나는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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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2) 완료!
보상으로 투자가능한 스텟이 2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1500p가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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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2)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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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3)
퀘스트 이름:스킬 사용
퀘스트 내용:이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그래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여 받은 권능을 사용해보자.
퀘스트 조건:'에로스의 손'을 사용. 대상은 여자여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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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 작품 후기 ============================
드물긴 하지만 정말로 저런 분이 있습니다. 제가 그 편의점에 많이 가서 어쩌다보니 안면을 익혔는데 제가 쑥스러움이 많아서 인사를 잘 못하면 먼저 인사해주는 친절한 분이십니다. 물론 현실의 그분은 남자입니다.